소설리스트

가유서부-724화 (724/858)

제724화

형부 감옥.

예순이 넘은 노인이 기묘한 자세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의 손발은 이상스러운 각도로 꺾여 있었고 얼굴에는 짙은 조롱이 담겨 있었다. 지난번 비적 사건 때문에 재산을 몰수당한 요양성이었다.

그는 갈란군주가 보낸 견기牽機를 먹고 이런 꼴이 되었다.

그러나 사지는 마비됐어도 귀는 잘만 뚫려 있었다. 나중에 갈란군주도 감옥에 갇혔다는 옥졸의 말을 듣자 그는 우스워 죽을 지경이었다.

“까각깍…….”

요양성은 이따금씩 음흉한 웃음소리를 냈다.

우선 갈란군주 먼저, 그리고 금린위가 돌아오면 주운환 차례렷다! 조금만 더, 조금만. 아직은 때가 아니니!

그의 염원이 하늘에 닿은 건지, 갈란군주와 요양성의 희망과 기대 속에서 엽연채의 생일 연회 날 금린위의 밀서가 황궁에 날아들었다.

정선제가 침상 머리맡에 기대 장계를 보고 있는데 채결이 황급히 뛰어왔다.

“폐하, 드디어 용효의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뭐라고?”

정선제는 흥분하여 손안의 장계를 내던졌다.

“어서 가져와라.”

말을 하는 정선제의 음성이 떨려 왔다. 이번 일로 그는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며 계속해서 진상을 알아보고 있었다. 엽연채의 팔찌를 조사했더니 매노태군이 준 것으로 밝혀져 그다음에는 또 운 이낭의 생김새를 조사했다. 알아볼 때마다 처음엔 운 이낭이 분명 운하인 것도 같다가도 또 아니었다.

‘만약 그 이낭이 정말 운하라면 소 황후를 무슨 낯으로 보지? 소 황후가 나를 용서할까……. 그리고… 그렇다면 주운환도 살려 둘 수 없을 것이다!’

주운환이 단지 자신의 평범한 외손자라면 당연히 잘 지내길 원했겠지만, 그 신분이면 양왕과 한패일지도 몰랐다. 증명할 수 없어도 그게 사실이라면? 분명 엄청난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이 고통을 참아 내야만 한다……. 하나 정선제는 생각할수록 너무나 가슴 아프고 절망스러워 마음속에 응어리가 맺힐 지경이었다.

하지만 아직 진상이 밝혀진 건 아니니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정선제는 요 며칠 그렇게 마음을 졸이며 하루를 일 년처럼 보냈다. 그리고 지금 드디어 그 수수께끼가 풀리는 순간이 온 것이다!

정선제는 마음이 급하면서도 겁이 났다.

“폐하.”

채결이 침상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서신을 높이 들어 정선제에게 바쳤다.

정선제는 금사를 수놓은 미색 서간지를 고개 숙여 응시했다. 평범한 황실의 서간지였지만 오늘은 몹시 낯설게 느껴졌다.

정선제가 떨리는 손으로 서신을 집어 들어 천천히 펼치니 서신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모든 조사를 마쳤습니다. 진서후의 생모 운 이낭은 정주 거상 뇌씨의 딸, 뇌영월입니다.」

“아……!”

정선제는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폐하, 서신에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정선제가 뛸 듯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한숨 돌린 채결은 벌떡 일어서서 서신의 내용을 확인하더니 역시 크게 안도했다.

정선제는 금린위가 어떻게 조사하고 어떻게 사람을 찾아냈는지 차근차근 읽어 내려갔다. 공교롭게도 운이 따라 줘 녹초루에서 여러 단서를 포착한 셈이었다.

“경하드리옵니다, 폐하! 결국 알아냈습니다.”

채결이 웃으며 축하했으나 정선제는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하나… 너무나 닮았다. 정말로 거울처럼 똑같지 않으냐.”

“닮은 사람은 여럿 있습니다! 다른 건 둘째 치고, 후궁의 마마들만 봐도 닮은 이들이 많지 않습니까! 게다가 폐하께선 진서후와 운하공주 마마가 닮았다고 어찌 확신하시는지요?”

정선제는 살짝 놀라며 되물었다.

“무슨 뜻이냐?”

“소인의 기억 속에 공주 마마는 이미 흐릿해져서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진서후와 정말 그렇게 닮았는지도 모르겠사옵니다.

더군다나 출궁할 때 공주 마마의 나이는 고작 열 살이었습니다. 여자는 자라면서 열여덟 번은 변한다는데 공주 마마께서 다 자라서 어떤 모습일지 누가 알겠습니까? 무탈히 성장하셨다면 진서후와 조금 비슷한 정도가 되셨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진서후가 닮은 것은 제 생모인 운 이낭이겠지요. 그저 공주 마마를 향한 폐하의 그리움이 너무 커서 상상 속 공주 마마의 모습에 진서후의 생김새를 덧씌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채결의 대답에 정선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랬다. 자신이 그린 초상화는 실제 인물을 두고 그린 게 아니었다. 단지 상상 속 얼굴임에도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로 의심했던 건 누군가가 흑심을 가지고 저를 계속 부추겼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생각이 미쳤지만, 정선제는 의심을 아주 내려놓지는 못하고 묵묵히 수중의 밀서를 다시 한번 읽었다.

“하지만 조사가 너무 순조로운 것 같다.”

“네?”

채결은 잠시 말이 없었다가 부드럽게 그를 설득했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자연스럽게 꼬리를 찾아내 조금씩 찾아낸 것입니다. 예전에 찾지 못했던 것은 그저 진서후가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정선제는 허허 웃으며 반문했다.

“정주와 사주는 먼 거리도 아닌데 20년을 찾았으면서 어떻게 못 찾아냈다는 말이냐?”

“작년 궁 밖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집 사내아이가 몇 년이나 사라졌는데, 알고 보니 이웃집 지하실에 갇혀 있는 것을 찾았다더군요. 그 뇌씨 집안이 20년을 찾았다고 하나 그것은 남들 앞에서 하는 얘기일 겁니다.

얼마간 찾아보기야 했겠지만, 바깥세상에는 좋은 일보다 흉한 일이 많으니 집에 돌아온다 해도 집안 망신이라 생각해 나중엔 아예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와 달리 그들에게는 털끝만큼의 단서도 없었을 겁니다.”

채결의 말은 들을수록 그럴듯했다. 정선제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큰 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우리 대제의 국경을 믿고 맡길 사람이 있구나.”

가슴을 누르던 커다란 돌덩어리가 쑥 내려갔고 주운환에 대한 미안함은 더 커졌다.

정선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참, 오늘 진서후부에서 무슨 연회를 연다고 하지 않았나? 지난번 황후가 진서후부 선물을 준비한다고 한 것 같은데.”

“오늘 진서후 부인의 생일 연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진서후도 오늘 휴가를 내고 집에 갔습니다.”

정선제는 살짝 한숨을 쉬더니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대리시경을 불러라.”

채결은 일순 전율이 일었으나 조용히 대답하고 밖으로 향했다.

곧 장찬이 채결과 함께 침궁으로 들어왔고 그곳에서 일각 정도 머물다 나갔다.

* * *

진서후부.

엽연채의 생일 연회가 열리는 오늘, 진서후부 전체가 시끌시끌했다.

임신한 지 6개월이 되어 가는 엽연채가 모든 일에 신경 쓸 수는 없어 강심설이 건너와 음식 준비를 도왔다.

진씨는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강심설의 모습에 화가 나서 얼굴까지 새파래졌지만 온갖 일을 겪고 나니 감히 성질을 부릴 수는 없었다. 결국 진씨는 앓아누운 척 연회에 오지 않고 방에 틀어박혔다.

친한 가문에만 초청장을 돌렸다지만, 찾아온 손님은 결코 적지 않았다. 장씨 집안, 엽씨 집안, 진씨 집안, 영안후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가문에서 모두 참석했다.

하지만 막상 아무도 오늘의 주인공인 엽연채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주운환이 연회석을 준비한 답풍원에 엽연채와 함께 떡하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엽연채 곁의 그는 작은 산처럼 뿌리내려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고, 그에 엽연채와 이야기하려 찾아온 귀부인들도 차마 다가서기 어려워했다.

분위기를 읽은 엽연채가 그의 팔을 쿡쿡 찔렀다.

“저쪽으로 가서 고모부하고 놀아요.”

주운환은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부인과 철단이랑 같이 있고 싶은걸요.”

“철단이 아니래도요.”

엽연채는 짜증 섞인 투로 되받아쳤지만, 이 화제는 잠깐 얘기해서 결론을 낼 종류가 아닌지라 길게 말하진 않았다.

“있잖아요.”

주운환이 갑자기 눈이 안 보일 정도로 웃으며 말머리를 틀었다.

“어제 도성 병영에서 돌아올 때 드디어 말했어요.”

“무슨 말이요?”

엽연채가 궁금해하자 주운환은 세상 행복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 우리 철단이 보고 싶다! 하고요.”

엽연채는 좋아 죽는 그 얼굴을 보고 소리 내어 웃었다. 철단이가 여전히 걸리긴 했지만, 엽연채는 웃으며 그의 가슴팍에 손가락을 대고 빙빙 돌렸다.

주변의 귀부인과 귀공자들은 부부에게 더 가까이 갔다가는 아예 닭이 될까 봐 못 들은 척하고 자기들끼리 담소를 주고받았다. 물론 속으로는 두 부부가 정말 해도 너무하다고 흉을 보고 있었다. 이런 날에는 좀 떨어져서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면 안 되나?

“성지를 받으시오.”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엽연채와 주운환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채결이 어린 환관 몇을 데리고 직접 찾아와 있었다!

엽연채와 주운환은 손님들과 함께 서둘러 그에게 다가갔다.

채결은 성지를 읽고 저를 따라온 수하들에게 선물을 건네라 했는데, 귀한 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주변의 귀부인들은 부러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젊디젊은 부인의 생일 연회, 그래서 ‘소연小宴’이라고 불리는 연회에 황제가 직접 선물을 보내다니! 대제가 세워진 이래를 통틀어도 이런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채결은 성지를 덮고 웃으며 인사했다.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매일 오늘처럼 기쁘고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감사합니다, 채 공공.”

엽연채는 공손히 성지를 받아 들었다.

채결이 떠난 직후, 소월이 부리나케 뛰어 들어와 외쳤다.

“마님, 갈란군주에게 사형이 내려졌습니다!”

“판결이 나왔어?”

“네. 밖에 장 보러 갔던 어멈이 돌아와서 그러는데 덕화루德和酒 문 앞에 황방이 붙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어떤 서생이 남편을 살해한 악녀에게 결국 판결이 내려졌다 얘기하더랍니다.”

뒤따라온 강심설이 급히 다가서며 자세히 캐물었다.

“판결이 어떻게 났다더냐?”

“그 어멈이 글도 모르고 물건도 잔뜩 지고 있어서 오래 있지는 못하고 돌아와서, 현재로선 아는 건 이것뿐입니다.”

소월의 이 대답에 엽연채가 청유를 불렀다.

“청유, 네가 가서 한번 보고 오렴.”

“만월아, 너도 같이 가거라.”

강심설도 제 여종을 함께 내보냈다.

제민과 원남옥은 서로 바라보았다. 그녀들도 몹시 궁금하기는 마찬가지라 결국 우르르 청유와 만월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물론 겉으로는 걸음만 재촉하고, 이렇다 할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갈란군주가 벌을 받은 것은 기뻐해야 마땅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독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으니 이럴 때는 얼마간 자중할 줄도 알아야 했다.

“자, 안으로 다시 들어갑시다.”

한편, 주운환은 마음껏 기뻐할 수 있도록 아예 엽연채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이며 강심설을 보았다.

“형님, 같이 가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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