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723화 (723/858)

제723화

“아버지, 왜 그러세요? 깜짝 놀랐잖아요!”

놀란 뇌씨 집안 형제들이 그를 부축했다.

“아버지, 이 여자를 아세요?”

“누군데요?”

장남이 묻고 차남도 물어보자 용효와 부하들이 웃으며 다가갔다.

“뇌 노야, 알아보시겠습니까? 이 여자가 당신의…….”

마지막 말은 꺼내지 않았다.

뇌 지주의 머릿속은 웅웅 소리로 뒤덮였다. 그는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중얼대듯 대답했다.

“알지… 그래요…….”

뇌 지주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며 다시금 말을 반복했다.

“아는 사람이요…….”

용효와 부하들의 가슴은 더 세차게 뛰었고 용효가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다시 잘 보세요. 누구입니까?”

뇌 지주는 얼이 빠졌다. 내가 지금 무슨 거짓말을 한 건가! 하나… 어떻게 내 딸이 아닐 수가 있단 말인가!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순 없어!

어쨌든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여기 오기 전 그리 많은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다들 자기 딸이 아니라 했다. 진서후의 생모를 찾아서 여기까지 온 이 관리들도 그녀가 이 뇌씨 집안 딸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조급해진 뇌 지주는 눈물까지 흘리며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애는… 20년 전에 사라진 내 딸이오…….”

용효와 부하들은 몹시 기뻐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찾았다!

“뭐라고요?”

오히려 뇌씨 형제가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이라고요?”

장남이 묻자 뇌 지주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래! 너희 누이다……. 흐흑… 그때 너희들은 어린애들이었고… 어느덧 20년이나 지났으니… 누이의 얼굴을 몰라보는 게지!”

뇌씨 형제는 그 자리에서 얼이 빠져 있다가 하얗게 질린 뇌 지주를 보고 다가가 부축해 앉혔다.

한편 용효는 성공을 목전에 두고 더없이 설렜다. 그러나 확실하게 물어봐야 하는 일이기에 반쯤 눈을 찡그리며 다시금 뇌 지주에게 물었다.

“뇌 소저가 병으로 죽은 게 아닙니까?”

뇌 지주는 창백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게… 병으로 죽은 게 아니라 사라졌소. 20년 전이니 그때 겨우 열네 살이었소. 내 생일 선물을 사겠다고 나갔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오.

당연히 우리는 미친 듯이 그 애를 찾았소. 원래는 관아에 신고하려고도 했지만… 알잖소. 여자가 밖에서 밤을 보내면 정조를 지키지 못한 더러운 여자라고들 할 테니, 차마 관아에 신고할 수 없었소.

게다가 그 무렵 관아에서 사람 장사꾼을 조사하고 있었기에 거기에 기대도 있었고. 만약 그 장사꾼들을 잡아들이면, 우리 딸이 거기 있으면 조용히 집으로 데려올 수 있겠거니 말이오. 아무튼 어디 소문만 안 나면 되겠다 했었다오. 하지만 관아에서 장사꾼들도 많이 잡고 여자들도 꽤 구했지만, 우리 월이는 거기 없더군.

이후로 반년 정도를 더 찾아봤지만 바깥에는 길한 일보다 흉한 일이 많을 테고, 나중에는 친구들이나 친척들도 딸아이의 안부를 물어보기 시작해, 딸과 우리 뇌씨 집안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딸이 병으로 세상을 떴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소.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딸을 찾는 걸 포기한 적이 없다오.”

뇌 지주가 흐느끼며 이야기하자 뇌씨 형제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집안에 잃어버린 누이가 있다는 건 그들도 물론 알고 있었지만 의관묘를 세운 후로는 더 이상 그녀를 찾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무정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하나 속으로는 누이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어딘가에서 죽었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녀를 찾는 사람들이 집까지 찾아오다니……. 밖에서 더러워진 여자 때문에 집안에 풍파가 부는 건 아닐까. 뇌씨 형제는 걱정되기 시작했다.

“우리 월이는? 그 아이의 초상화를 들고 찾아온 걸 보면 분명 그 아이를 아는 것 아니오?”

한편, 흥분한 뇌 지주는 용효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월이는 어디 있소?”

용효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림 속 여자는 벌써 죽었습니다.”

“뭐라고?”

뇌 지주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러면… 왜 찾아왔소? 월이와는 무슨 사이요?”

용효는 만약 그녀의 집을 찾게 되면 어떻게 둘러댈지 미리 생각해 두었기에 그대로 읊었다.

“그림 속의 여자를 한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3년 전 우리 형제가 근교로 놀러 갔다 비적을 만나 산으로 납치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산에서 묶여 있던 이 여자를 만났습니다. 같은 곤경에 처한 인연으로 몇 마디 나누었는데 자기가 정주에 살던 뇌씨라고 했습니다.”

용효는 낮게 신음하더니 그녀가 생일 선물을 사러 집을 나섰다는 뇌 지주의 말이 떠올라 덧붙였다.

“저희더러 자기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만약 저희가 그곳에서 도망칠 수 있다면 대신 정주로 가 아버지께 마지막 생신 선물을 전해 달라 부탁하면서 옥 한 덩어리를 저에게 건넸습니다. 그런 다음에… 비적들이 들어오더니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따님을 죽였습니다.”

용효는 말을 하며 예전 도성에서 집히는 대로 샀던 평범한 옥패를 소매에서 꺼내 뇌 지주의 손에 쥐여 주었다.

“함께 고난을 겪은 인연으로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이제 저의 임무는 끝났습니다.”

뇌 지주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진서후 외조부를 찾는 게 아니었단 말인가!

하지만 다른 생각이 번뜩 들었다. 금린위는 은밀하게 진서후 외가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황제에게 보고하기도 전에 감히 다른 이에게 먼저 이 일을 알릴 수는 없을 터.

금린위가 도성에 돌아가 황제에게 보고하면 황제는 진서후의 생모를 가련히 여길 것이고 딸을 그리워하는 부모의 마음을 생각해 분명 뇌씨 집안의 일을 진서후에게 알릴 것이다. 그러면 진서후는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찾아올 것이다.

용효는 몇 가지를 더 물어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는 용효의 뒷모습을 보면서 뇌 지주는 흥분도 되고 걱정도 됐다. 그러나 이제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용효는 뇌씨 집을 떠나 이씨 집으로 갔다. 이씨 집에서는 예상대로 그림 속 여인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씨 집에서 나온 용효는 날이 어두워지길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뇌씨 집안 큰딸의 무덤을 파서 안을 확인하니 틀림없는 의관묘였다. 뇌씨 집안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금린위는 모두 한시름 놓았다. 임무를 완성했으니 이젠 도성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 * *

이튿날 아침. 용효는 황궁에 서신을 보낸 다음, 채찍을 휘두르며 도성으로 향했다.

금린위의 준마는 먼지 바람을 일으키며 정주 성부를 가로질렀다. 길가의 사람들은 얼굴을 가린 채 그 뒤꽁무니에 대고 몇 마디씩 욕지거리를 했다.

그 시각. 길가 쪽 2층 주루 내실. 양왕이 창가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양왕 맞은편에 선 언동 형제와 주 선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서후 대인의 위기는 해결된 것 같습니다.”

“그 뇌 지주라는 사람을 제대로 봤습니다.”

언동의 말에 언서가 코웃음을 치며 한마디 보탰다.

양왕의 눈에도 비웃음이 스쳤다. 상인이란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물며 몰락한 상인이니 더더욱 가문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기회만 찾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상인이 사업을 키우려면 관가에 끈이 있어야만 한다는 사실은 어린애도 아는 바였다.

절박한 상인에게 진서후같이 토실토실한 양을 안겨 주었는데 어찌 그가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양왕은 우선 뇌 지주를 낚아 마음을 동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희망 한 조각을 주운 뇌 지주는 과연 고 비장을 찾아가 확인했고, 용효가 가져간 명부에 자신의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 희망을 끝도 없이 키웠다.

그 상황에서 용효와 부하들이 명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모두 조사하고 마지막에는 뇌씨와 이씨만 남게 되었고, 이씨 집안은 딸을 잃어버린 적이 없으니 뇌 지주는 운 이낭이 틀림없이 사라진 자신의 딸이라고 확신했을 터.

하지만 용효가 찾아와 들이민 초상화는 그의 딸이 아니었다!

희망이 클수록 실망도 큰 법. 더군다나 뇌 지주의 이상한 표정과 반응이 용효와 뇌씨 형제들에게는 그림 속 여자를 알아본 것으로 보인 것이다.

용효와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과 짓는 모든 표정이 뇌 지주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리고 뇌 지주는 강렬한 갈망과 유혹을 이겨 내지 못했다.

주 선생도 웃으며 한마디 했다.

“그래도 그들과 마주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양왕은 섬섬하고도 남자다운 손가락으로 영롱한 백자 찻잔을 돌리다가 낡은 탁자에 탁 내려놓았다. 그의 눈이 차갑게 반짝였다.

“가자, 우리도 도성으로 돌아간다!”

세 사람의 몸에 전율이 흘렀다.

* * *

그 시각 도성.

진서후부는 한창 엽연채의 생일 연회를 준비하느라 시끌벅적했다.

엽연채는 따로 은자 일천 냥을 들여 도성 서쪽에 천막을 치고 생일 연회 날부터 사흘 동안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 줄 준비도 했다. 당연히 엽연채를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악독한 갈란군주를 욕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엽연채에게 찬사를 바쳤다.

대리시 감옥에서도 몇몇 옥졸이 엽연채의 선행을 칭송하는 중이었다.

그곳에 갇힌 갈란군주는 옥졸들의 대화를 들으며 증오를 불태웠다.

“천한 것, 어디서 착한 척이야.”

갈란군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됐다. 화낼 것 없어.”

갈란군주에게 먹을 것을 전해 주러 온 평왕비도 거기 있었다. 평왕비는 그녀를 위로하며 바구니 속 음식들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이제 곧 그것들이 재앙을 맞을 것이다.”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해진 갈란군주는 평왕비가 건넨 산삼탕 한잔을 받아 들었다.

“어마마마, 여기 더는 있고 싶지 않아요. 금린위는 언제 돌아오나요?”

“곧 올 거야.”

평왕비는 갈란군주의 손을 끌어 만져 보니 뼈만 앙상하게 남아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눈가가 시렸다. 그렇게 아름답던 딸이 이 꼴이 될 때까지 고통을 받고 있다니! 엽연채 부부에 대한 증오가 해일처럼 덮쳐 왔다.

“금린위의 소식이 도착하면 그것들의 좋은 날도 끝이다. 가시밭길만이 그 앞에 펼쳐져 있겠지! 반면에 너는 다시 자유로워질 테고!”

주운환의 진짜 신분을 밝히는 큰 공을 세웠으니, 이제 자신이 부탁하면 군주의 죄를 면해 주지는 못해도 대신할 희생양을 찾아 풀어 줄 것은 지당했다.

하나 금린위가 도성에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곳은 대리시의 감옥뿐이 아니었다. 형부 감옥. 그곳에서 거의 잊히다시피 한 요씨 집안 사람들도 금린위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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