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1화
정주, 동조현冬枣县, 객래루客来楼.
이곳은 동조현에서 가장 고급은 아니고 끽해야 중간쯤 가는 주루였지만, 그래도 장사가 잘되고 또 분위기도 점잖은 곳이어서 평소에도 한가한 부자들이 죽치고 앉아 있었다.
뇌 지주도 매일 여기서 아침 내내 시간을 보내는 한 명이었다.
옷을 만드는 뇌 지주 집안은 원래 정주에서 힘깨나 쓰는, 손꼽히는 거상이었다. 하지만 요 십여 년 동안 상황이 계속 나빠져 사업은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었다. 결국 도읍에서 사업을 이어 갈 수 없어 이 동조현까지 밀려났고, 현재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손꼽히던 일류 거상 뇌씨 집안이 어디 가서 이름도 못 말하는 소상인이 된 것이다.
“뇌 지주님, 도화주와 수정고 나왔습니다.”
점원은 몹시 익숙한 듯 쟁반을 들고 와 술과 음식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뇌 지주는 젓가락을 들어 수정고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점원은 음식을 내려놓고 나가려다 새로운 손님이 온 것을 보고 급히 문 쪽으로 뛰어갔다.
“나리들, 식사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주무시고 가십니까?”
“밥 먹으러 왔다. 저쪽이 조용하니 거기 앉지.”
“예예, 앉으세요.”
점원은 반갑게 손짓하며 자리를 안내했다.
술을 마시던 뇌 지주 앞에 언뜻 그림자가 스쳐 가는 게 느껴졌다. 두 손님은 그와 가까운 탁자에 자리 잡고 앉았다. 조용한 것을 좋아해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있는 걸 싫어하는 뇌 지주는 슬쩍 인상을 썼다.
하지만 이 주루가 자기 것도 아니니, 그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계속해서 술과 음식을 맛보았다.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더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맞다, 방금 성부에서 본 그 사람 지휘사指揮使 용 대인 같지 않았어?”
“응? 용 지휘사? 그게 누군데?”
두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누구긴 누구야, 당연히 도성의 금린위 지휘사지! 왜, 정월 열닷샛날에 우리가 그 집에 술을 배달했잖아! 고향에서도 그 사람을 또 볼 줄이야. 참 공교롭구먼.”
“그래? 가서 인사도 했나?”
“하하하, 어떻게 감히 인사를 해. 나야 그 사람을 알아봤지만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나 같은 놈을 어떻게 알아보겠어. 그리고 그 멀리서 여기까지 왔으면 무슨 사건을 처리하러 왔을지도 모르는데, 모르는 척해야지.”
용 대인 운운하던 남자는 말하다 말고 목소리를 낮췄다.
옆에서 술을 마시던 뇌 지주는 흠칫 놀랐다. 도성에서 왔다고? 뇌 지주는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봤다. 둘 다 이십 대 초반 정도로 호리호리한 체구에 얼굴은 까맣게 탔는데 인물이 낯설었다.
한 사람은 남회색, 다른 하나는 연청색의 평범한 비단옷을 입고 있었지만 수놓은 문양이 이곳 정주와 다른 것이 아마 도성에서 새로이 유행하는 것 같았다.
뇌씨 집안은 옷 장사를 하는 집이라서 뇌 지주도 옷감과 자수에 관심이 많았다. 옷감이건 옷이건 새 물건을 내놓지 않은 지 이미 오래되긴 했지만, 그는 자기도 모르게 그들을 계속 바라보았다.
옷차림을 관찰하다 젊은이들이 나누는 이야기에도 호기심이 생긴 뇌 지주는 집중해서 말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용 대인이 뭘 조사하러 여기까지 온 거야?”
남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묻자 맞은편 남자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어쩌면… 진서후의 일을 알아보고 있는지도 몰라.”
“진서후? 그 사람이 왜?”
“그것도 몰라? 자네도 그때 도성에 있었잖아!”
연청색 옷을 입은 남자가 눈을 똥그랗게 뜨며 타박하듯 대꾸했다.
“난 정말 모르겠는데. 우리 집 물건에 문제가 생겨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잖아.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경 쓸 정신이 어디 있어.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남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자 연청색 옷의 남자가 대답했다.
“진서후는 우리 대제의 영웅 아니겠어. 한데 그 망할 놈의 비적들이 감히 진서후를 모함했었지 뭐야. 한술 더 떠서 그 비적 두목이 후야의 이낭이 자기 딸이라면서 자기가 진서후 외조부라고 거짓말까지 하고! 세상에, 이렇게 몰염치한 사람이 어디 있나.
그 일 때문에 온 도성이 난리도 아니었어. 후야를 눈엣가시로 보는 사람들이 이때다 하고 그 유언비어를 퍼뜨리면서 일파만파 일이 커졌으니.
그걸 막으려고 황제 폐하가 금린위를 도성 밖으로 보내 후야 이낭의 신분을 알아보라 했다는 거야. 결국 비적이 거짓말했음이 낱낱이 드러났지만 폐하께서 이미 보낸 김에 제대로 알아보라고 하신 거지!”
“에이. 그렇다고 해도 설마 용 대인이 여기 온 이유가…….”
“그게 분명해! 여기까지 왔다는 건 진서후의 외가가 우리 정주 사람이라는 얘기지! 그게 정말이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진서후의 외조부가 우리 정주 사람이라니.”
그 말을 들은 남회색 옷의 남자는 다만 웃으며 상대방에게 술을 한잔 따랐다. 연청색 옷의 남자가 말을 이었다.
“작년 진서후가 막 급제했을 때 모두들 그 이야기를 했잖아. 나도 정국백부에 종종 술을 배달해서 거기 하인과도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 사람 말이 진서후 생모가 기루 출신이라지 뭐야……. 어디서 잡혀 와 기루에 팔렸다고. 거기서 주 백야를 만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뭐. 쯧쯧, 하지만……. 에이, 세상에 사람 장사꾼이 어째 그리 많은 거야?”
남회색 옷의 남자가 뭔가를 떠올렸는지 탁자를 쾅 내려쳤다.
“아! 생각났다. 20년 전쯤에 우리 정주에서도 여자들이 엄청 많이 사라지지 않았어? 굉장히 큰 인신매매 조직이 활개를 쳤었잖아! 쯧쯧, 용 대인이 여기까지 찾으러 왔으면 당시 실종된 처녀들을 찾으러 온 건지도 모르겠네.”
연청색 옷의 남자가 실실 웃었다.
“헛소리는! 20년 전에 자네는 꼬마였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어릴 때 한동안 어머니가 밖에 나가 놀지 못하게 하셨거든. 너는 여자애처럼 예쁘게 생겼다고 하시면서, 조심해도 잡혀가니 집에 있어야 한다고 말이야. 하하하!”
남회색 옷의 남자가 호쾌하게 웃었다.
“자네가 여자애처럼 생겼었다고? 에라이!”
연청색 옷의 남자가 못 믿겠다며 껄껄대는데 점원이 쟁반을 들고 다가왔다.
“손님, 음식 나왔습니다! 헤헤, 무슨 얘기가 그리 재미있으십니까? 도성의 인신매매꾼 얘기입니까?”
“그게…….”
남회색 옷의 남자가 얘기를 들려주려는데, 연청색 옷의 남자가 그를 잡아당기더니 웃으며 선을 그었다.
“쓸데없는 이야기지 뭐.”
점원도 그냥 해 본 말이라 그대로 돌아 나갔다.
다시 둘만 남자 연청색 옷의 남자가 주의를 줬다.
“어쨌든 관가官家 일이고 조사 중인 사건일 수 있으니 말을 아끼는 게 좋아. 자자, 얼마나 오랜만에 마시는 고향의 술인가, 한잔하자구!”
그렇게 두 사람은 두서없는 한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식사를 마치고 가게를 나갔다.
구석 자리의 뇌 지주는 혼이 나간 듯 앉아 있었다. 20년 전의 인신매매라면 그의 딸이 사라진 그때 일이었다!
당시 뇌씨 집안은 정주에서 유명한 거상이었다. 딸이 사라지자 차마 관아에는 알리지 못하고 하인을 시켜 찾았다. 관아에서도 그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고 나중에 사건을 해결해 소녀 몇 명을 구해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의 딸은 거기에 없었다.
딸을 찾으라고 푼 사람들이 족히 반년은 발품을 팔았지만, 소식을 찾지 못하자 결국 자신도 포기했었다. 딸이 바깥세상에서 반년을 떠돌았으니 어떤 꼴이겠는가 싶었던 것이다.
더러운 곳에 발을 들였을 수도 있고, 아니더라도 어디 내놓지 못할 사람의 아내라도 되어 있다면 딸은 도리어 골칫거리가 될 것이며, 뇌씨 집안의 체면은 땅에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결국 딸을 더 이상 찾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딸이 병으로 죽었다고 거짓말했다. 그러나 부인은 이 일로 마음의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몹시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20년이나 흐르고 보니 자신에게 납치당한 딸이 있었다는 기억조차 희미해졌다.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니까 갑자기 떠오른 것이었다.
한데 그때 잡혀간 처녀들 중 도성으로 팔려 간 사람이 있다고? 백야의 이낭이 되어 아이까지 낳았다니. 그리고 그 아이가 출세해서 대제에 명성이 자자한 진서후가 되었다니!
뇌 지주는 왜인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부럽기도 했고 은근한 기대감도 솟았다.
그 시절, 자신의 딸도 그중 하나지 않았는가! 무엇보다도 꽃처럼 빼어난 용모를 가졌으니 권문세가에 팔려가 첩이 되는 것도 그럴 법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들까지 낳고도 집에 편지 한 장 없다니……. 그래,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뜬 것이다!
집안이 결국 몰락한 것도 사실은 지부의 세도가와 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서후라면… 하늘의 새도 떨어뜨릴 세도가 아닌가! 이렇게 외진 정주에서도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후야 말이다.
뇌 지주의 가슴이 타는 듯 뜨거워졌고 온갖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차가운 술 한잔을 마시자 정신이 조금 들었다.
‘어디 그런 좋은 일이 있겠나. 좋은 일은 모두 남의 집 이야기지.’
그렇게 스스로 설득했지만 그래도 가슴속에 뭉글대는 기대와 희망을 모두 억누를 수는 없었다.
바로 그때, 땅딸막하고 뚱뚱한 그의 시동이 다가왔다.
“노야, 새 물건이 일찍 도착했습니다. 어서 집으로 가셔서 물건을 확인해 보시지요!”
하지만 뇌 지주는 딸 생각을 도무지 떨칠 수가 없었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자기 아들더러 대신 확인하라고 전하라 했다.
“가서 첫째한테 보라고 해라.”
“네? 하지만 지난번에 신중하지 못해 늘 실수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더구나 이번 물건은 무척 중요한 건데, 직접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시동의 말대로 뇌 지주는 늘 물건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진서후 외조부와 연이 있을 수도 있는 판국에 이런 물건들이 무슨 대수란 말이냐!
하지만 진짜로 연이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어떡해야 알아볼 수 있을꼬. 초조해 견딜 수 없었던 뇌 지주가 소리쳤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라, 쓸데없는 소리 말고.”
“네, 그러면……. 한데 노야께서는 집에 안 가십니까?”
시동은 쭈뼛대며 물었다. 이맘때면 뇌 지주는 특히 장사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오늘따라 분위기가 이상했다.
과연 뇌 지주는 마음이 붕 떠 있었고 기대는 한량없이 커져 가고 있었다.
“안 간다. 좀 이따 볼일이 있다! 아니다, 집에 좀 다녀오거라. 물건 확인은 첫째에게 시키고 너는 마차를 몰고 이리 와라. 중요한 일이 있으니 성부에 다녀와야겠다.”
“네.”
내복은 고개를 끄덕이고 집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