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0화
용효는 황사구가 있는 대로 겁을 먹은 모습을 보고 다시 차가운 목소리로 을렀다.
“기회를 한 번 더 주지.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얌전히 우리에게 협조하면 네 목숨만은 살려 주마.”
“목숨?”
황사구의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목숨은 살려 준다니, 누굴 속이려고. 구슬려서 사실을 듣고 싶을 뿐이면서!
“그래.”
용효가 다시 초상화를 꺼냈다.
“자세히 봐라. 이 여자를 알아보겠나? 20여 년 전에 네가 이 여인을 네 사촌 형 맹대각에게 팔지 않았더냐.”
황사구는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림을 보았다. 보면 볼수록 황사구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지켜보던 용효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알아보겠나?”
“이건…….”
“아직도 거짓말이냐!”
황사구가 우물쭈물 말을 흐리자 용효가 다시 발길질을 가했다. 황사구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신음했다.
“저놈을 묶어라. 지금 바로 지현에게 가자.”
“아니… 나리……! 그게… 알아보겠습니다…….”
황사구가 그제야 부들부들 떨면서 용효 앞에 바짝 엎드렸다.
“분명 제가 맹대각 형님에게 판 여자입니다.”
용효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물었다.
“이 여자를 어디서 찾았나?”
황사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아이고, 나리! 저는 정말 모릅니다! 제가 장사를 하면 뭘 얼마나 크게 했겠습니까. 그저 힘 있는 형님들과 밥이나 먹은 정도입니다. 그 형님들이 못생기든 예쁘든 전부 기루나 세도가에 팔아넘기는 겁니다. 저는 그저 발만 담근 사람입니다. 그 조직에 호 형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따금 그자가 불쑥불쑥 못생긴 여자들을 저에게 넘기면 제가 대신 옮겨다 판 정도입니다.”
“못생긴 여자?”
용효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면서 그림을 가리켰다.
“이 여자를 보고 못생겼다는 소리가 나오느냐?”
“아니, 아니 아니! 이 여잔 예외입니다. 그래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조직에 사고가 생겨 관아에서 턱 끝까지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형님들이 빨리 정리하려고 가지고 있던 좋은 물건들을 저처럼 발만 담근 사람들에게도 나눠 줬습니다.
그때 제 수중에 들어온 것이 이 여자였는데, 미인이라 큰 기루에 팔아 돈을 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관아에서 워낙 단속을 심하게 하는 바람에 겁이 나 그 사촌 형님에게 싸게 팔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번엔 뒤에 선 부하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황사구가 정말 발만 담근 수준이라면, 다시 위쪽까지 조사해야 한단 얘기 아닌가! 정말 한도 끝도 없구나! 부하 중 하나가 사납게 물었다.
“네가 말한 그 조직은 어디서 사람을 잡아온 것이냐? 동주냐?”
그때 공주는 동주에서 실종되었고 나중에 시신도 거기서 수습했다.
“아이고. 나리, 저는 정말 모릅니다. 저는 그저 발만 담갔다니까요. 어디서 사람을 잡아 오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그 여자는 자기가 어디서 왔다더냐?”
황사구가 우는소리를 해도 용효의 목소리는 여전히 냉랭하기만 했다.
“그건…….”
황사구가 머뭇대자 용효가 다시 다그쳤다.
“네놈에게 분명 말했겠지!”
당시 관아에서 쫓고 있었고 그 조직은 도망가기 바빴으니 잡혀 온 소녀들도 관아에서 자신들을 찾고 있는 걸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 상황에서 황사구에게로 넘겨졌으니 감시의 눈도 줄었겠다, 자기가 어느 집안 사람인지 말하고 사정하면 놔 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말하래도!”
그리고 지금 황사구의 표정은 분명 들어 본 적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용효가 황사구를 다시 세게 찼다.
황사구는 아이코 비명을 내지르더니 비틀대며 일어나 흑흑댔다.
“나리… 말을 안 한다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때릴 것까지 있습니까? 하지만… 나리, 만약… 제가 말을 하면 정말 저를 살려 주실 겁니까?”
“그래!”
용효가 차갑게 내뱉었다. 황제의 명을 받아 진서후의 신분을 조사하고 있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증거였다. 게다가 진서후는 보통 사람이 아니니 황제도 쉽게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니 자신 역시 눈앞에 있는 증인을 아직 죽일 수 없었다!
황사구는 벌벌 떨면서도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해 댔다. 안 죽이기는 무슨! 자기가 그 마님의 딸을 팔았으니 갈가리 찢어 버린다 해도 한이 풀리지 않을 것이었다.
“뭘 머뭇거리는 것이냐, 어서 말하라니까!”
그러나 용효가 버럭 노성을 치자 황사구는 결국 그때 일을 털어놓았다.
“그때 호 형이 그 여자를 줘서 집에 가둬 두었습니다. 그런데 울고불고 풀어 달라 난리를 쳤습니다……. 그러더니… 자기가 엄청난 부잣집 딸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풀어 주면 분명히 후하게 사례할 거라고요.”
부잣집 딸? 용효가 미간을 찌푸렸다. 왜 공주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래, 하기야 자신이 공주라고 해도 누가 믿겠는가. 어떻게 공주라는 사람이 마음대로 밖을 나돌아다니다가 인신매매꾼에게 잡혔겠는가.
“그리고?”
황사구는 이를 악물고 대답을 이었다.
“하지만… 제가 이제껏 팔아 치운 처녀들이 부지기수인지라 저렇게 사정하는 것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다고 다 풀어 주면 어떻게 일을 했겠습니까? 물론 그 여자는 정말 부잣집 규수 같아서 저도 그 말을 믿었습니다만… 그 여자를 풀어 주면 다른 사람들이 제가 사람 장사 하는 걸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정말로 나중에 저에게 사례를 할 수도 있지만 저를 감옥에 처넣을 가능성이 더 크고요. 그러니… 사촌 형님에게 팔아 버린 겁니다.”
“됐다. 쓸데없는 소리 할 것 없이 그 여자는 자기가 어디 사람이라 하더냐?”
황사구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 여자가 매일… 자기가 정주定州 거상의 딸이라고 소리를 질러 댔습니다. 성은 이씨라고 했던가, 여씨인지 뇌씨인지… 아무튼 그 비슷한 성이었습니다.”
“뭐? 거상의 딸?”
용효는 놀라서 부하들을 보았다.
정선제는 지난 서신에 그녀가 첫째 공주인 것 같다 했었다. 만약 정말 동주에서 잡혀 왔다면 공주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지금 황사구는 그녀가 정주의 뇌씨 집안 출신이라고 하고 있으니…….
“네 말이 사실이냐?”
“정말입니다, 정말! 제가 나리들을 왜 속이겠습니까!”
“사실을 말해라! 사실을!”
황사구가 울부짖다시피 외치는데도 용효는 연달아 세차게 차며 추궁했다. 황사구는 통증에 신음하며 가까스로 말을 했다.
“모두 사실입니다……. 아무튼 그 여자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이고, 아파 죽겠네……. 사람 잡네!”
용효는 두 부하와 눈빛을 나누다가 고개를 숙여 황사구에게 경고했다.
“일단은 살려 주마. 하나 만약 네 말이 거짓말이면 절대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 같은 비렁뱅이는 도망도 갈 수 없을 것이다!”
부하도 한마디 내뱉고는 용효를 따라 말에 올랐다.
황사구는 부들부들 떨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오래오래 바라보다가 그제야 한숨을 놓았다.
오늘 아침 그 사람들이 저더러 팔아 치운 여자의 신분에 대해 ‘정주에서 온 이씨, 뇌씨 아니면 여씨 집안 소저’라고 속이라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어떻게든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거라고. 어차피 나중 일은 그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자기를 다시 찾아와 괴롭히지 않기만을 바랄 뿐.
* * *
용효와 부하들은 말을 달려 마을 객잔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바로 방으로 직행해 이후의 일을 의논했다.
“동주 쪽에서 잡아 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갑자기 정주 거상의 딸이랍니까?”
“자기가 공주이니 도성이나 황궁으로 보내 달라고 한다 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겠죠. 거상의 딸이니 뭐니 한 것은 탈출하기 위한 계략일 겁니다. 만약 우리가 그 입장이라 해도 뭐가 됐든 신분은 밝혀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황사구가 정말로 풀어 줬다면 그 부잣집에서 대신 관아에 신고를 해 줄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부하들의 이야기에 용효가 눈을 번쩍이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너희 모두 그렇게 생각하냐?”
두 부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용효는 가볍게 한숨을 지었다.
“대인, 왜 그러십니까?”
부하들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용효를 바라보았는데, 용효는 냉정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여인이 반드시 폐하가 말한 사람이리라 생각하는 것은 너희들의 선입견이다. 어쩌면 정말 정주 거상의 딸인지도 모른다!”
두 부하는 멈칫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상에 더 가까울지도 몰랐다.
20년 전 공주의 시신도 금린위에서 수습했는데, 당시 시신을 찾았을 때는 이미 들짐승이 얼굴과 배를 다 물어뜯고 난 후라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했다. 그에 황제는 시신이 자신의 혈육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적혈법을 썼는데, 피는 곧 뼈 속으로 스며들었다고 했다.
이미 20여 년 전에 죽은 사람을 어떻게 갑자기 만들어 낼 수 있나. 한편, 용효 생각에는 그저 닮은 사람일 뿐이었다. 황제는 예전에도 어떤 귀족이 공주와 닮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 일이 한 번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생김새만 놓고 혈연이네 아니네를 어찌 말할 수 있겠나. 나만 해도 도성의 어떤 귀공자와 무척 닮았는데 그럼 그자가 내 아들이란 말인가?’
어쩌면 황제가 사특한 몇 마디에 흔들려 오래전 죽은 사람이 실제론 그때 죽지 않았다고 오해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내일 정주로 가 알아보고 다시 얘기하자. 그리고 우리는 조사한 것을 폐하께 보고드리면 되는 것이니 다른 걱정은 할 필요 없다.”
“네!”
부하들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 *
용효와 부하들은 이튿날 일찍 출발했다. 사주와 정주는 가까이 있어 하루면 충분히 갈 수 있었다.
정주에 도착하자마자 용효는 정주 지부로 향했다. 그는 당시 주변에서 인신매매꾼이 사람을 납치한 일이 있었는지 오래된 문서를 살펴보았다.
용효는 정주 지부의 권종卷宗(보관용 관문서) 중에서 그 무렵 이 지역에서 있었던 심각한 인신매매 사건을 찾아냈다. 황사구가 거짓을 고한 게 아닌지 과연 그 조직은 사주, 백주, 정주, 호주 네 개의 지역에 걸쳐 있는 큰 조직이었고, 그들 때문에 조정까지 들썩였던 사건이었다.
네 주에서 힘을 모아 조직을 소탕해 사건을 마무리했지만, 실상 잡은 것은 조무래기들뿐이었고 윗선의 주모자들은 모두 도망쳐 버렸다.
당시 관아에서 소녀 십수 명을 구출했지만, 인신매매 조직과 신고된 실종자는 수십, 아니 수백 배는 되었다. 용효는 낮게 탄식하며 신고자 명단을 살펴보았지만 거상 이씨나 뇌씨 집안의 사람은 없었다.
“대인, 이씨든 뇌씨든 아무도 실종 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부하의 말에 용효는 조용히 코웃음을 쳤다.
“있다 하더라도 신고하지 않을 것이다.”
여자가 사라졌다는 말은 곧 순결을 잃었다는 뜻이니, 체면을 지켜야 하는 대부호들은 관아에 찾아오지 않고 자기들 선에서 해결하려고 했다.
“권종에는 그해 사주, 백주, 정주, 호주만 오갔다고 쓰여 있습니다. 더구나 동주는 여기서 5백 리나 떨어져 있으니 공주일 리가 없습니다.”
부하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당시 양왕과 공주는 황릉을 벗어나 아직 동주를 벗어나기 전에 비적을 만난 것이었다.
용효가 생각하기에도 뭔가 아닌 것 같았다.
“우선 그 거상들을 찾아보자.”
그들은 다시 조사를 시작했다. 지금 정주에 사는 부자들 중 이씨와 여씨 그리고 음이 비슷한 영씨, 능씨 성을 가진 사람들까지 이러저러하게 확인했더니 열 집이 좀 넘고, 개중 뇌씨는 딱 한 집이었다.
용효는 거상 명단을 들고 부하들과 함께 찾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