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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717화 (717/858)

제717화

“당시엔 이곳의 주인은 제가 아니었어요. 게다가 여기에 팔려 왔다 팔려 간 아가씨가 천 명은 안 돼도 수백은 되는데 누가 누군지 어떻게 다 기억하겠어요?”

춘 마마가 난색을 표하자 용효는 안색이 변하더니 다급히 물었다.

“그러면 옛날 주인은 어찌 됐소? 당신이 녹초루를 산 것은 언제요?”

춘 마마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짧게 대꾸했다.

“예전 주인은 벌써 죽었어요.”

용효의 얼굴이 더 일그러지면서 그가 주먹을 꽉 쥐는 찰나.

“하지만 제가 그때도 여기 있었습니다.”

용효가 반색했다.

“정말이오?”

“네! 십 년 전쯤 전 주인이 나이가 들어 이 기루를 팔아 버리겠다고 했는데, 저는 다른 자매들처럼 예쁘지 않아 갈 곳이 없었지요. 그래서 평생 모아 놓은 돈으로 다 쓰러져 가는 이 기루를 산 거지요!

겨우 이어 왔는데, 얼마 전 현에 새 기루가 생길 줄 어찌 알았겠어요. 저희 상황은 날로 나빠져서 이제는… 목구멍에 겨우 풀칠만 하고 있답니다.”

이야기를 듣는 용효의 마음이 격해졌다. 이 춘 마마가 그때도 여기 있었다면 운 이낭을 만났을 가능성이 컸다. 용효는 소매 속에서 그 그림을 꺼내 천천히 펼쳤다.

“자, 이 사람을 알아보겠소?”

춘 마마는 그림을 가만 바라보더니 곧 놀라서 두 눈이 커졌다.

“이 사람은 바로 그……! 어… 이름이 뭐였더라?”

용효는 춘 마마의 반응이 몹시 반가웠다. 그는 춘 마마가 기억을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이름을 알려 주었다.

“낙운이라 하오.”

“낙운?”

춘 마마는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낙운! 이름이 낙운이었어요! 그 이름이 분명해요!”

용효는 안도의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여주인이 알아보았으니 이 뒤는 술술 풀릴 가능성이 높았다.

춘 마마는 눈썹을 살짝 찡그리면서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기루도 처음에는 인기가 괜찮았어요. 그래도 낙운이 팔려 오기 전까지는 현이나 성부의 기루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지요. 낙운이 오면서 덕분에 우리 기루의 수준이 훨씬 높아졌지요. 그 얼굴에 그 미색. 당연히 들어오자마자 우리 녹초루의 일등 기녀가 되었고요.

그 애는 얼굴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금도 잘 타고 글씨도 잘 써서 도읍의 젊은 공자들도 일부러 그녀를 보러 왔거든요. 그 애가 간판이 된 후로 저희 녹초루는 날로 번창했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웬 장군이 그녀를 사 갔고 그때부터 저희 기루 인기가 서서히 식어 결국 지금은 이런 꼴이 되었어요.”

용효의 두 눈이 흥분으로 빛났다. 모두 맞아떨어졌다! 그 운 이낭을 사 간 사람이 바로 주 백야인데, 그는 그때 장군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확실해야만 했다.

“낙운을 사 간 사람이 장군인 줄 어떻게 아는가?”

춘 마마는 차갑게 웃으며 설명했다.

“그때 낯선 무식쟁이들이 우리 기루에 잔뜩 몰려와 술을 마실 때 저도 시중을 들고 있었거든요. 그들이 떠날 때 우리의 일등 기녀를 사 갔으니 당연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지요. 게다가 우리가 올라가서 술 시중을 드는데 모두들 그 귀인을 장군이라고 부르기도 했고요. 어디의 장군인지는 모르지만요.”

“이 그림을 잘 보시오. 확실히 그 사람이 맞소?”

용효가 다시 한번 묻자 춘 마마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장담했다.

“오래되긴 했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미인을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겠어요. 기억이 조금 흐릿하긴 하지만 인상은 분명히 남아 있어요. 그 사람이 틀림없어요.”

“그러면 누가 그 사람을 기루에 팔았는지도 알고 있소?”

용효의 질문에 춘 마마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를 곤란하게 하시네요, 나리. 그렇게까지는 어떻게 다 기억하겠어요.”

용효는 살짝 눈을 빛냈다. 이 여주인이 정말 하나도 몰라서 이리 말하는 건 아닐 터였다. 오자마자 일등 기녀가 된 여인이고, 또 이곳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한 여인인데. 녹초루에서 가장 특별했던 여인의 일을 어찌 정말로 모를까.

용효도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이었다. 그는 소매에서 은표를 꺼내 쾅 하고 탁자에 올려놓았다.

춘 마마는 50냥이라고 쓰여 있는 은표를 보곤 뛸 듯이 기뻐했다. 이런 거액의 은표를 얼마 만에 보는지!

“하하. 나리께서 이리 물어보시니 조금 기억이 나는 것 같네요. 아마도… 시골 건달 같았어요.”

“시골 건달?”

용효는 눈썹을 찌푸렸다. 인신매매를 당했으리라 예상했는데.

“제 기억이 맞는다면 분명… 네, 그래요. 낙운이 너무 아름다워 다들 어느 정도는 속으로 질투하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오게 된 건지 알아봤었죠. 어떤 시골 건달이 팔아넘겼다고 하더라고요.”

“어디의 건달이오?”

다급해진 용효가 물었다.

“어휴, 그건…….”

춘 마마는 이건 진짜 모르겠단 양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용효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괜한 입씨름이나 할 시간은 없으니 그는 곧 소매 속에서 은표를 하나 더 꺼내 탁자에 세차게 내려놓았다.

“어서 말하시오!”

춘 마마는 입이 찢어지게 웃으며 은표를 챙겨 넣었고, 그런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생각이 정말 나질 않네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누가 그런 걸 기억 하겠어요? 하하하.”

용효는 거의 쓰러질 것 같았다. 은표라도 도로 빼앗고 싶었지만 체면이 있어 그러지도 못하고 속만 터져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춘 마마가 양심은 있는지 잠깐 눈을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저 말고도 여기 오래 있던 사람이 두어 명 더 있어요. 어쩌면 그 사람들은 알지도 모르죠. 어디서 팔려 왔다고 누가 얘기했었던 것 같은데, 아, 취낭이에요.”

“그게 누구요?”

“아래층에 있어요.”

용효가 눈을 부릅뜨자 춘 마마는 복도로 나가 아래층을 살폈다.

“취낭!”

아래층 대당에는 기녀들이 금린위 병사 둘을 둘러싸고 술을 권하고 있었다. 그중 사십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둥근 얼굴을 들었다.

“나 말이야?”

“그래, 올라와.”

“돈 버는 일인가?”

“그래, 그러니까 얼른 올라와.”

방에 있던 용효는 ‘돈’이란 말을 듣자 눈꺼풀이 떨렸다. 계속 여기 여자들에게 돌아가며 피를 빨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고지가 바로 눈앞이니 그리 큰돈을 쓴 것도 아니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문제가 아니니까!

곧 춘 마마가 취낭을 데리고 들어왔다.

“나리께 인사 올립니다.”

용효는 취낭의 실실대는 얼굴을 보자마자 쇄은을 탁자에 꺼내 놓았다. 취낭은 다섯 푼은 되어 보이는 은을 보자 흥분해서 재깍 챙겼다.

춘 마마가 운을 뗐다.

“나리는 사람을 알아보러 오셨어. 20여 년 전에, 왜 낙운이라고 기억하지?”

“낙운? 무슨 낙운?”

“누군 누구야, 우리 녹초루가 인기 많았던 시절의 일등 기녀 있잖아.”

춘 마마가 다시 콕 짚어 준 다음에야 취낭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기억난다. 팔려 가지 않았나? 갑자기 그 사람 이야기는 왜?”

“그때 누가 그 사람을 팔았는지 기억하지? 우리가 다 같이 낙운 이야기를 할 때 네가 어떤 촌놈이 와서 팔았다고 했잖아.”

춘 마마의 말에 취낭은 잠시 우두커니 있다 대답했다.

“맞아, 그런 놈이 있었지. 예전에는 매일 기루에 와서 나만 찾더니 하루는 여자를 사는 게 아니라 아가씨를 데려와 팔더라고.”

“그게 누구지?”

용효가 급히 묻자 취낭은 향기를 입힌 손수건을 던졌다.

“잊어버렸어요.”

“잊어? 어떻게?”

취낭은 안색이 어두워진 그를 힐끗 흘겨봤다.

“잊은 게 뭐 이상한가요? 여기서 20년 넘게 손님을 모셨는데 누가 누군지 어떻게 기억해요? 그때 고마운 손님이 팔아서 그 일등 기녀가 우리 기루에 들어왔다는 것만 기억해요.”

용효는 아차 싶었다. 아무리 마을이 작다지만 이곳은 기루였다. 마을뿐 아니라 근방에서도 손님들이 오가는 곳이니, 대략 계산해 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길 다녀갔는지 몰랐다! 게다가 그동안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으니 손님을 특정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터.

그때, 취낭이 갑자기 소리쳤다.

“맞아! 우… 미인! 우 미인牛美人!”

누가 묻기도 전에 취낭이 알아서 말을 보탰다.

“언니, 그때 그 여자가 막 팔려 왔을 때 우리가 뭐라고 불렀는지 기억나? 우리끼리 우 미인이라고 불렀잖아!”

“그랬나? 그런 기억은 없는데.”

춘 마마는 갸웃거리고 말았으나 용효의 반응은 달랐다. 뭐든 단서는 많을수록 좋았다.

“그건 무슨 말이오?”

“나리, 그 여자가 기루에 들어오고 손님들이란 손님들은 전부 다 그 여자한테 반했어요. 손님을 뺏겼으니 기분이 좋을 턱이 있나요. 우리 아가씨들이 자연스럽게 그 여자 흉을 보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우 미인’이라고 한 거예요.

그 여자를 판 남자가 예전에 자기 집에 소가 있다고 엄청 자랑했었거든요! 그 여자도 그 사람이 판 것이니 우리끼리는 그 여자를 우 미인이라고 놀렸었어요.”

“그래서, 그 여자를 판 사람 집에 소가 있다는 말이오?”

“네.”

그렇단 대답을 들은 용효는 기분이 좋아졌다. 실마리를 얻었으니 남자를 찾기도 훨씬 수월해진 것이다. 소가 얼마나 귀한데, 이 시골에 집마다 소가 있지는 않을 것 아닌가.

“그 남자, 성이 뭔가?”

“아휴, 그걸 어떻게 기억해요.”

용효는 취낭에게 몇 마디 더 물었지만 영양가 있는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용효는 다시 은자 한 냥을 꺼내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용효가 녹초루를 나서고 나서야 그의 부하들 역시 중년 여인들에게서 해방될 수 있었다.

“대인, 찾아내셨습니까?”

바깥으로 나온 부하 하나가 묻자 용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녹초루에 있던 사람이 우리가 찾는 사람인 것은 확실하다. 그 사람의 신분과 출신은 아직 알 수 없지만 단서를 찾았다. 웬 시골 남자가 그 사람을 팔았다는데 소가 있었다니 살 만한 형편이었던 것 같다.”

부하들의 눈이 일시에 반작였다.

“소는 굉장히 귀한 재산 아닙니까. 누구든 집에서 소를 키우거나 잡으려면 관아에 신고해야 하니 이곳 지현知縣에게 알아보면 누군지 금세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객잔으로 돌아온 이들은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곧바로 말을 타고 현성으로 향했다.

관아에 도착하자 용효는 즉시 영패를 꺼내 신분을 밝혔다.

지현은 당연히 바짝 엎드렸다. 용효가 현의 소 장부를 확인하겠다고 하니 까닭도 묻지 않고 서둘러 모든 소 장부를 가져오게 하여 용효에게 보여 주었다.

용효는 그중에서 20여 년 안팎의 소 장부를 골라냈다. 장부에는 당시 청산진에서 소를 키우던 농가가 세세히 기록되어 있었고, 용효 일행은 밤을 꼬박 새워서 마흔 가구가 좀 넘는 명단을 추렸다.

새벽경에야 청산진으로 돌아온 용효는 부하들에게 명단을 넘겼다.

이튿날 아침, 부하들이 용효의 방으로 찾아와 급히 보고했다.

“대인, 명부에 있는 모든 사람을 조사했는데 동두촌東头村의 이 백정이 제일 의심스럽습니다.”

흥분과 기대가 밀려와 용효는 몸이 절로 떨렸다.

“가자, 가서 보자꾸나.”

용효는 당장에 객잔을 나섰다. 마음이 급해 아침도 길에서 해치우려고 점원에게 총유병葱油餠(파를 기본으로 넣고 그 외 여러 소를 추가해 부쳐 먹는 전병) 두 개를 싸 달라 하고 급히 말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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