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6화
도성은 여전히 갈란군주의 사건에 주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갈란군주가 대리시에 갇힌 후로는 새로운 소식이 없었고, 대리시는 조사 중이라며 계속 판결을 미뤘다.
백성들은 자연히 정선제가 손녀를 감싸려 한다며 흉보기 시작했다.
어디서 말이 났는지, 태후가 진씨를 불러들여 선물을 내렸다는 소식까지 돌자 모두 황실이 갈란군주 일로 사과를 하고 싶은데 말을 꺼내기는 어려워 대신 선물을 줬다고 수군거렸다.
평왕비는 이 일을 듣고 차갑게 웃었다.
“이제는 금린위만 기다리면 된다!”
“황제 폐하께선 의심이 많으시니 주운환의 모친이 동주 출신이라는 것만 밝혀내도 주운환을 반드시 죽이실 것입니다.”
곁에 선 마마도 단언하며 주인의 비위를 맞췄다.
그 시각, 사주.
해동청은 창공을 가르며 내려와 금린위 통령 용효의 팔에 내려앉았다.
용효가 해동청 다리의 죽통을 열어 보니 소녀의 초상화가 들어 있었다. 뒤에 선 금린위가 함께 그림을 보며 반색했다.
“이것이 저희가 찾는 사람의 초상화입니까? 일이 수월해지겠군요.”
“맞다. 가자, 형제들이여! 녹초루로 가자!”
“녹초루에 가면 형님이 가극 구경 좀 시켜 주십니까?”
뒤편의 부하들이 껄껄대며 떠들었다. 용효도 너털웃음을 흘리며 호탕하게 대답했다.
“이 일을 해결하고 도성에 돌아가면 어디든 원하는 데로 가자.”
넓지 않은 시골길에서 용효는 세차게 채찍을 휘둘렀다. 한데 앞에서 소달구지 한 대가 천천히 가고 있었다.
보니 누더기를 입은 일흔 정도의 노인이 달구지를 몰고 있었고 옆에는 스물대여섯 정도의 건장한 청년이 앉아 있었다. 달구지에 누워 있는 사람은 얼굴에 두립을 덮어 눈부신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용효는 이 시골 촌부들을 향해 웃으며 양해를 구했다.
“앞에 가는 형씨들, 먼저 좀 지나가겠습니다. 먼지 조심하십시오.”
이어 기병대가 길을 질주하며 일어난 자욱한 먼지바람이 좁은 시골길의 반을 덮어 버렸다.
“쿨럭, 쿨럭……!”
달구지에 탄 세 명도 먼지 때문에 쉴 새 없이 기침을 했다. 노인은 연신 고삐를 당겨 늙은 소의 걸음을 재촉했고 그렇게 겨우 먼지 구덩이에서 벗어났다.
“퉤, 용효의 저 오만한 꼴 좀 보십시오.”
노인 옆에 앉은 까무잡잡한 청년이 말했다. 바로 언동이었다.
“황제에게 20년 넘도록 홀대받다가 이제야 조금 쓸데가 생겼으니 사력을 다하는 게 당연하지. 이번 일을 잘해 내면 다시 중용될 테니까.”
주 선생이 말했다.
“그럼 우리가 잘 막아야 하겠습니다.”
언동이 비웃으며 뒤를 돌았다.
“전하, 마을에 있는 녹초루에 들르시겠습니까?”
달구지 위의 양왕은 여전히 두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십 리 밖의 흑석촌으로 간다.”
“그건…….”
망설이는 언동에게 양왕이 차가운 목소리로 일렀다.
“저들이 녹초루에서 그곳을 찾게 될 것이다. 가자!”
“네.”
마음 같아선 양왕은 증인들을 전부 죽여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모두 죽이면 누이의 행적이 더욱 묘연해 보일 것이고, 그리되면 정선제는 더더욱 그녀가 바로 운하이고 누군가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의심할 것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누군가가 누가 됐든, 정선제는 주운환과 양왕은 한패라고 결론 내리고 잔인하게 죽여 없애려 할 터였다.
청산진青山镇은 특별할 것 없는 사주의 작은 마을이다. 그나마 특색이랄 게 있다면 마을에 작은 기루가 있다는 점 정도. 보통 현은 되어야 있는 기루가 청산진에는 있었다. 그 이름하여 녹초루绿蕉楼.
30년 넘게 이 마을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녹초루였으나 장사는 전성기 같지 못한 데다 보수도 하지 않아 건물은 많이 낡은 후였다.
한마디로 예전에는 이곳에서 꽤 유명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싸구려 술집으로 전락한 후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골은 있어 장사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용효와 그 수하의 기마병들은 작은 마을에서 겉보기에 가장 그럴듯한 주루 문 앞에 멈춰 섰다.
주루의 점원은 기골이 장대하고 옷도 잘 차려입은 사람들을 보자 웃으며 다가왔다.
“나리들, 주무시러 오신 건가요 아니면 요기를 하실 건가요?”
용효도 웃는 낯으로 그를 상대했다.
“자고 갈 거네. 방을 다섯 개 내주시게나.”
용효는 처음에는 스무 명을 데리고 출발했는데 그중 열 명은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도록 멀지 않은 현도에 대기시켰고, 나머지 열 명만 데리고 이 마을로 정탐을 나왔다.
점원을 따라 들어가 음식을 주문한 후 용효가 물었다.
“이봐, 이 마을에 기루가 있다는데 어디에 있지?”
점원은 외지인이 기루를 찾자 조금 놀라더니 이내 실실 웃었다.
“나가셔서 동쪽으로 50장 정도 가서 왼쪽으로 꺾으시면 바로 보입니다. 그런데 나리들은 도읍에서 오신 것 같은데 저희 마을의 기루는 그렇게 좋은 곳이 아닙니다. 시골 홀아비들이 심심풀이 삼아 들르는 곳인데 나리들 눈에 차겠습니까.”
용효는 그 대답에 흠칫 놀랐다. 진서후의 생모가 정말 그런 곳에 있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자 저도 모르게 탄식이 새어 나왔다.
뒤에 서 있던 금린위 병사가 용효 대신 능청스레 말을 받았다.
“그런가? 나는 여기 미인들이 많다고 들었는걸, 허허허.”
“하하. 십몇 년 전이야 괜찮았지만 요즘은 아닙니다. 조금 먼 걸음 하시더라도 현으로 가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점원이 자신들을 말리자 용효는 그저 웃으며 그를 내보냈다.
“어서 가서 술을 가져오시게.”
곧 음식이 나와 배불리 먹은 후 용효는 부하 두 명을 데리고 주루를 나섰다. 점원이 얘기한 대로 동쪽으로 향하니 몹시 허름한 2층짜리 건물이 길에 우뚝 서 있었다.
한데 대낮인데도 문을 열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용효를 따라온 병사가 의아하단 투로 말했다.
“한낮부터 손님을 맞다니 이상한데요.”
“하하. 이런 작은 마을은 사람이 원체 적잖느냐. 저녁이 되면 더 인적이 드물어지니 대낮에 장사를 하는 수밖에 없지. 가자.”
용효는 대꾸하며 둘을 데리고 들어갔다. 곧 짙은 화장을 한 여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눈을 빛내며 그들을 에워쌌다.
“누굴 찾으세요, 나리? 저를 찾아오셨나요?”
아름답지만 나이는 꽤 많아 보이는 여인들이 저마다 손수건을 그들에게 던졌다.
건장한 체격에 옷도 잘 차려입은 세 사람은 한눈에 보기에도 시골 가난뱅이는 아니었던 것이다. 더럽고 가난한 시골 가난뱅이들만 상대해 왔던 그녀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앞다투어 달려들었다.
기녀들의 추파, 아니 공세가 어찌나 맹렬한지 용효 일행은 놀라서 혼이 빠질 정도였다. 이들은 비록 고관대작은 아니어도 수중에 돈은 좀 있어서 평소 기루에 가면 화려한 외모의 젊은 아가씨들이 그들을 시중들었다. 하니 이런 짙은 화장을 한 나이 든 여인들이 어떻게 그 눈에 차겠나.
“비켜라, 비켜.”
따라온 젊은 금린위 병사들은 용효보다 더 놀라 소리를 질렀으나, 금세 침착해진 용효는 품속에서 돈을 한 움큼 꺼내 뿌리며 차가운 목소리를 냈다.
“우리는 여기 주인을 만나러 온 거다.”
중년의 기녀들이 환호하며 바닥에 엎드려 열심히 돈을 주웠다.
“아유, 배포를 보니 보통 분들이 아니시네요. 분명 도읍에서 오셨겠죠?”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용효 일행이 고개를 돌려 보니 키 크고 뚱뚱한 여자가 칠이 벗겨진 계단을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기녀들과 마찬가지로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지만 연분홍 주단으로 만든 대섭 상·하의를 입고 왼쪽 머리에 금 보요와 붉은 꽃 한 송이를 꽂아 두어 한눈에 이곳의 여주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집 아가씨들도 어디서 빠지지 않는데 누가 세 분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요.”
그녀가 웃으며 말을 건네자 용효와 부하들의 입가가 부들거렸다. 빠지지 않는단 게 진심인가? 게다가… 까놓고 말해 ‘아가씨’라고 부르기에도 어폐가…….
그러나 용효도 헛되이 나이를 먹은 게 아니라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자네로 하지.”
여주인은 놀랐지만 금세 웃었다.
“나리는 제가 마음에 드셨군요. 좋아요.”
녹초루의 사업은 날로 내리막길이었다. 손님이 원한다면 주인인 자신이 직접 상대해 주는 건 물론이고 하늘의 선녀를 데려다 달라고 해도 잡아다 손님에게 내줄 판이었다.
주위를 둘러싼 중년 여인들은 통 크고 멀끔한 손님들을 놓치게 됐으니 몹시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중 하나가 말했다.
“마마媽媽(기루의 여주인) 혼자 어떻게 세 분의 시중을 들겠어요, 사람도 많은데 두 명 더 고르시죠.”
“그래요, 두 명 더 고르시지요.”
여주인이 맞장구를 쳤다. 그녀는 눈앞의 손님들을 보자마자 그들이 놀러 온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음을 알아챘다.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 왔으니 기회를 놓치지 말고 돈을 뜯어내야 했다.
용효는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뒤돌아 두 명에게 말했다.
“너희들도 한 명씩 골라라. 어서!”
두 사람의 안색이 변했지만 감히 명령에 불복종할 수도 없었다.
“네…….”
이렇게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기 무섭게 옆에 있던 중년 여인들이 좋아라 하며 두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용효는 부하들이 도움을 청하는 소리가 듣기 싫어 돌아서서 여주인에게 말했다.
“갑시다!”
“그래요, 가시죠! 전 춘 마마라고 부르시면 되어요, 나리.”
여주인, 춘 마마는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용효를 위층 첫 번째 방으로 안내했다.
춘 마마가 술과 안주를 내오게 하고 용효에게 자리를 권하자 용효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춘 마마, 우리는 사람을 찾으러 사주 성부에서 왔소.”
춘 마마는 들고 있던 손수건을 던지며 호호댔다.
“어머, 나리도 참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기루에 와서 사람을 찾지 않는 손님이 어디 있답니까.”
용효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춘 마마, 나는 지금 진지하오.”
춘 마마는 놀라 마른기침을 했다.
“하하, 농담이에요. 그렇게 진지할 일인가요? 좋아요. 말씀하세요, 나리! 누굴 찾으시나요? 하지만 우리 기루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깨끗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기루에 있는 게 확실한가요?”
“여기가 녹초루라면 틀림없소.”
용효는 자신의 잔에 술을 채우고 말을 이었다.
“우리가 찾는 사람은 이곳 아가씨요. 하지만 20여 년 전의 일이지.”
“20여 년 전이요?”
춘 마마는 눈썹을 찌푸리더니 이내 웃었다.
“그러면 지금은 적어도 삼사십은 됐겠네요. 아래에 있는 저 아가씨들 중에도 그 나이 또래가 많은데 나리가 찾는 사람이 있는지 내려가서 한번 보세요.”
용효는 고개를 저었다.
“20여 년 전에 녹초루에 팔려 왔다 손님에게 다시 팔려 갔다고 하오. 더군다나 지금은 이미 죽은 사람이지. 그래서 여기로 확인하러 온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