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700화 (700/858)

제700화

“어머님, 어머님……!”

한편, 갈란군주는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며 진씨를 향해 소리쳤다.

“절 구해 주셔야 합니다!”

진씨는 심장이 저 발치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벌떡 일어난 그녀는 너무도 화가 나서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나더러 뭘 하라고? 나쁜 것, 감히 나를 속여!”

갈란군주의 두 눈이 커졌다가 이내 싸늘하게 웃었다.

“어머님을 속여요? 제가 뭘 속였죠? 한 번도 제 의사를 물어보신 적 없잖아요! 제 혼사는 어머님이 저희 어머니와 상의해서 결정하신 거잖아요! 어머님, 제 어머니와의 약속을 잊으신 건가요?”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지켜보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져서 저마다 옆 사람을 붙잡고 물었다.

“지금, 갈란군주가 주씨 집안으로 시집가는 걸 주 부인과 미리 의논했다는 거야?”

그때 누군가 목청을 높였다.

“쳇, 그게 뭐가 이상해! 오일의가 꿈에 나와서 군주를 주씨 집안에 시집보내라고 했다는 말을 아직도 믿는 거야? 독살당한 남편이 그리했다고? 갈란군주가 시집가고 싶어 난리 친 게 뻔해. 남자가 그리웠던 게야. 주 부인이랑 뭘 약속한 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얘기를 마쳤으니 주 부인도 상중 과부를 집에 들였겠지.”

진씨는 몸의 모든 털이 바짝 서는 듯했다. 주 백야가 그런 그녀를 무섭게 노려보며 다그쳤다.

“역시 당신의 농간이었군. 평왕비와 무슨 약속을 했소?”

“아, 아니에요. 그런 일 없습니다……!”

낯빛이 바뀐 진씨는 포졸들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어서 끌어내지 않고 뭣들 하느냐!”

포졸들도 겁이 났다. 갈란군주가 또 이상한 농간을 부린다면, 위에서는 자신들을 들볶을 것이었다.

“갑시다!”

포졸 둘이 계속 갈란군주를 끌어당겼고, 갈란군주는 거의 발광을 했다.

“비양! 모든 게 당신 때문이에요! 설마 상중에 시집간다는, 그런 일이 나라고 좋았겠어요? 하지만 정말이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어요. 정말 당신을 사랑해서 시집온 거라고요. 아니면 내가 왜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상중에 혼인을 했겠어요?”

주비양은 성큼성큼 걸어가 싸늘하게 그녀를 응시했다. 그의 말투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무척 차가웠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소? 아니면… 아직도 그 자만심 때문에 이미 졌다는 것,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요?”

갈란군주는 흠칫하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비양은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가까이 지냈고, 당신이 나를 배신한 적도 있지. 당신 성정이 어떤지 나는 정확히 알고 있소.”

멍해진 갈란군주는 그저 주비양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당신은 언제나 법도 따위는 상관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했지. 하지만 나쁜 짓을 할 때면 오히려 꼭 법도를 들먹였소. 당시 분명 당신이 나를 버렸으면서 부모의 뜻이니 매파의 말이니를 들먹였잖소. 이번에도 오일의를 버리면서 또 똑같은 핑계를 댔지.

혼인날 밤, 내가 오일의 이야기를 꺼내자 당신은 모든 것이 인연이니 운명이니 하며 둘러댔지. 그래도 당신들이 꾸며 낸 그 오일의의 혼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집을 오게 되어 다시 인연이 이어지게 되었다는 말은 못 하더군. 당신도 마음속으로 두려우니 무의식적으로 그 이야기를 피한 것이겠지.

난 당신 속셈을 두 가지로 추측했소. 첫 번째는 당신 스스로 꾸며 낸 이야기라는 것, 두 번째는… 몹시 가능성이 큰데, 오일의를 당신이 죽였단 것. 두 번째는 믿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조사하는 데 문제가 되지는 않았소. 오일의는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이 아니오. 당신은 몰랐겠지만 오일의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나와 만난 적이 있소.”

주비양이 오일의의 문병을? 갈란군주는 멍해졌다.

“패전의 고통은 내가 제일 잘 알지. 그 감정을 누가 나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소. 그래서 몰래 위로하러 갔었는데, 오히려 날 노려보면서 그러더군.

‘왜 나를 보러 온 거지? 내가 얼마나 낙담했는지, 언제 죽을지 보러 온 건가? 단념하시오. 나 오일의는 불구가 될지언정 여든까지 살아 낼 테니! 아니면 내 아내와 아이들이 다른 성을 따라야 할 거 아니오?’라고 말이오.

살겠다는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그대로 느껴졌소. 긍지가 높은 사람이라 우울해하기는 했지만 불구가 된 마당에 죽기까지 하면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기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어. 어떻게든 살려고 했었지. 그런 사람이 어떻게 죽을 수 있단 말이오?”

“부군……!”

갈란군주는 믿을 수가 없었다. 애타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으나 주비양의 얼굴은 여전히 냉담했다. 모든 것은 이미 짜인 판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원하지 않았다 해도 갈란군주는 정선제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주씨 집안에 들어왔을 것이었다.

시집온 후, 부부 사이가 좋지 않다면 군주는 자연히 조심스럽게 경계하면서 모든 신경을 자신에게 쏟으며 어떻게 하면 자신의 마음을 얻을지만 생각할 것이었다. 당연히 그런 상황에서는 일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군주였다. 그녀에게 억울한 일이 생기면 정선제는 그녀 대신 나설 것이고 군주는 전보다 더 잘 지낼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군주는 조심하고 또 조심해서 그 마각馬脚을, 꼬리를 쉽게 드러내지 않을 것이었다.

자신은 당시 오일의의 죽음이 미심쩍었는데 갈란군주의 태도에 그녀의 짓이 분명하다 생각했다. 하여 주운환과 몰래 오일의 무덤을 파내 관을 열고 사람을 불러 시신도 검안했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태의들에게 물어봐도 털끝만 한 단서 하나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단서가 없다는 것, 그게 가장 큰 단서였다.

주운환은 예전 남쪽 이민족을 공격할 때 그곳에 오래 머물렀는데, 그러면서 연지묵臙脂墨이라는 독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갈란군주는 그 남쪽 이민족 출신인 노왕 측비와 가까이 지내면서 종종 노왕부에 들르곤 했다.

작년, 주운환이 남쪽 이민족을 정벌할 때 강화를 원했던 그들은 고원을 내세워 대제와 화친을 청했다. 고원은 주운환과 혼인하길 원했지만 양왕이 주선하여 결국 노왕의 측비가 되었다.

주운환이 알아보니 갈란군주는 아직도 노왕의 측비와 가까이 지내고 있었다. 갈란군주가 그녀를 통해 연지묵을 손에 넣었대도 이상할 게 없었다.

갈란군주야말로 진정한 악녀였다. 진씨나 비 이낭 같은 이들은 나쁜 짓을 벌인다고 해 봐야 남을 조롱하고 비아냥대는 수준이지만, 군주는 서슴지 않고 사람 목숨을 빼앗았다!

매일 도둑질을 하는 사람은 있어도, 언제나 지켜 내는 사람은 없다. 이런 독사를 남겨 둬서는 안 되었다.

게다가 평판도 아랑곳 않고 상중에 온갖 방법을 동원해 시집왔으니 반드시 꿍꿍이가, 그것도 빠른 시일 내에 그녀가 손에 넣고자 하는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씨 집안에 남이 탐낼 것이라곤 오직 하나, 주운환뿐이었다! 주운환에게 원하는 게 있으리라!

이게 주비양 형제의 추측이었다.

그러니 결론도 바로 나왔다. 한시바삐 군주를 해결해야 한다!

다행히 군주는 불같이 급한 성격이었고, 자기를 때려잡으려는 몽둥이를 감아 올라가는 독사처럼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무섭게 공격하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거만한 군주는 처음부터 강심설을 무시했기에 주씨 집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주비양의 총애는 당연히 자기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덕에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어찌나 오만한지. 당신이 손가락만 까딱하면 내가 다시 좋아라 당신 품에 안길 줄 알았소?”

주비양의 차가운 말에 갈란군주의 얼굴은 새파래졌고, 꽉 깨문 입술에서는 피가 흘렀다. 주비양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녀의 뺨을 후려쳐 귀가 다 웅웅 울렸다.

갈란군주는 이날 이때까지 이토록 좌절한 순간이, 굴욕적인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더러운 상인 따위에게 내몰리고 하찮은 포졸 따위에게 끌려가는 일도 지금처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드디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것도 아주 고통스럽고 참혹하게.

어린 시절 주비양과 정혼한 후로 갈란군주는 진심으로 그를 사랑했었다. 도성 최고 세도가의 후계자인 데다 누구보다 외모가 특출나고 비범한 기개 역시 넘치는 남자이니 안 그럴 이유가 없었다.

얼마나 많은 도성 여인들이 꿈에 그리던 신랑감이던가.

주비양과 혼인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삶이 그렇게 행복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주씨 집안은 패전을 거듭하더니, 따르던 이들도 뿔뿔이 흩어져 집안이 그야말로 한순간에 몰락해 버렸다. 주비양은 더 이상 하늘에서 내려온, 최고 명문가의 귀공자가 아니었다.

그때 군주의 마음은 저 깊은 심연으로 떨어져 마치 컴컴한 어둠 속에 침잠한 듯 고통스러웠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가장 먼저 그의 곁에서 위로해 주고 그를 도와야 한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정조를 지켜 이럴 때야말로 그와 혼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러면 사람들의 칭송을 받을지도 몰랐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정말 그리해야겠다는 충동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렸고 그 후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전전긍긍했다.

나중에 모비와 집사가 파혼을 의논하는 것을 알고 놀라긴 했지만 남몰래 안도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주비양을 사랑했기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 후에야 깨달은 것이다. 현실은 이토록 잔인한 것이기에 사랑만으로 지속할 수 없음을.

현실을 이해한 군주는 오일의와 정혼했고 정말 행복했다.

혼인하고 2년이 다 되도록, 주씨 집안이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녀는 더더욱 안심했다. 하지만 주비양이 아내를 맞이한다는 소식을 듣자 마음이 이상하고 불편했다.

그는 죽지 못해 살면서 자신만을 그리워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 사람이 다른 여자와 혼인을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강심설을 보자마자 자극하고 공격했고 기회만 있으면 조롱했다.

이후, 돌고 돌아 주비양에게 재가하게 되자 과연 자신의 생각대로였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신이 울고 웃을 때마다 주비양은 맞춰 주지 못해 안달이니 그가 자기에게 완전히 빠져 있는 게 아니면 또 무엇일까.

주비양은 자신의 매력에 정복당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정복의 쾌감에 의기양양한 날들을 보냈다. 하니 단 한순간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이 모든 것이 계략이었을 줄은!

목에 힘을 잔뜩 주었던 지난 모습을 생각하니 꼭 광대가 된 기분이었다. 자신은 무대 위에서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광대이고 관객들은 장막 뒤에 숨어서 그런 저를 지켜보고 있었던 셈이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그 장막이 걷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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