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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698화 (698/858)

제698화

갈란군주의 표정이 어찌나 흉악한지 귀신이 따로 없었다. 오늘 일로 체면이 바닥에 떨어졌다지만 어쨌든 그녀의 죄라고 밝혀지진 않았으니, 여기서 약하게 나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다들 자연스레 이 일을 잊을 것이다. 그럼 사람을 시켜 보기 좋게 이 일을 포장하면 되고 그녀는 결백한 사람이 될 것이다. 주비양은… 그의 마음은 앞으로 천천히 되돌리면 된다.

“아아악!”

불만이 가득한 오 부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하늘도 무심하구나! 하늘도 무심해!”

그녀의 처량하고 새된 목소리에 자리에 있던 백성들과 포졸들은 그녀에게 더없는 연민을 느꼈다.

“에휴 참. 분명…….”

다들 속으로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갈란군주의 죄를 처벌할 수가 없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을까! 백성들은 잇달아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숙! 정숙하시오!”

정 부윤은 쉴 새 없이 경당목으로 책상을 두드려 댔고, 그제야 백성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멈추었다. 정 부윤은 헛기침을 하고는 상황을 종결시키려 했다.

“물러…….”

“잠시만요!”

이때, 누군가가 차갑게 소리쳤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소리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방금 전 그 퉁퉁한 남자가 외친 것이었다! 남자는 손을 위로 높이 들었다. 토실토실한 그의 얼굴엔 불안함이 담겨 있었지만 왠지 모를 결연함이 엿보였다.

정 부윤은 미간을 쉴 새 없이 씰룩거렸다.

“무슨 일이냐?”

“갈란군주께서 어떻게 모르실 수가 있습니까? 군주는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퉁퉁한 남자는 심호흡을 하더니 용기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사실 그 여종이 처음 왔을 때 갈란군주와 함께 와서 계내금을 구매했습니다.”

“뭐?”

공당 안팎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기함하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었어?”

갈란군주는 낯빛이 확 변하더니 써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허튼소리 말거라! 군주인 귀한 몸으로 내 어찌 청과 시장 같은 지저분한 곳에 갔겠느냐?”

“허튼소리라는 말을 대체 몇 번을 하는 것이냐?”

오 부인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녀를 맹비난했다.

“하나 그런 소리를 할 때마다 그게 결코 허튼소리가 아님이 증명됐다!”

“연유는 저도 모르지만, 군주께서 분명 맨 처음에 같이 오셨습니다.”

퉁퉁한 남자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더니 두려운 나머지 두서없이 얘기를 늘어놨다.

“저희가 손님이 많다고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군주는 꽃처럼 아름다운 분이라 전 보자마자 군주의 얼굴을 기억했습니다. 당시 만심 처자가 계내금을 살 때 전 두 분이 나누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만심이가 군주께 반드시 신선한 것이어야만 하냐고 여쭸고 군주께서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말씀하셨죠. 그렇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고 하셨어요!”

다들 아연실색했다. 효과 얘기까지 했다면, 역시나 만심은 갈란군주의 수족으로 움직였을 뿐 아닌가!

“이 고얀 것! 온통 헛소리뿐이구나!”

채결은 화가 나 죽을 것만 같았다.

만심은 일개 여종에 불과하므로 이 일을 전부 그녀에게 떠넘겼다. 물론 보기 좋은 모양새로 정리된 건 아니지만 어쨌든 간신히 치부를 가릴 수는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것들이 치부를 가릴 마지막 수단마저 없애 버리려는 것이었다!

이건 황실의 체면 그리고 황제의 존엄과 관계된 일이었다!

“전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퉁퉁한 남자는 채결을 보더니 놀라서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고 어젯밤에 채결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채결을 배신한 상황이었고, 목을 자르겠단 말이 귓가에서 윙윙거리며 맴도는 것 같았다.

하나 퉁퉁한 남자는 채결보다 오일의의 망령이 더 무서웠다. 게다가 눈앞의 이 상황을 차마 보고 넘길 수가 없었다! 갈란군주는 도저히 참아 줄 수 없을 정도로 뻔뻔했다.

그리고 오 부인은 ‘어머니는 강하다.’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아들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조차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이 절절한 모정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에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는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지금 이렇듯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 관음보살께서 분명 그를 보호해 주실 거고, 그가 이로 인해 봉변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다.

“감히 날 모함하다니! 여봐라, 이자를 끌어내 곤장 50대를 쳐라!”

갈란군주는 두려워하면서도 순간 음험하고 악랄한 눈빛을 번득였다.

‘이 빌어먹을 놈이 계속……! 이놈만 아니었으면 나와 만심이가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거야.’

“아, 안 됩니다!”

퉁퉁한 남자는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고 놀라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걸핏하면 사람을 때리는데… 절 때리시면 안 됩니다! 게다가 전 증거도 가지고 있습니다! 증거가 있으니 군주의 범행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뭐? 증거?”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무슨 증거가 있다는 거야?”

“저 사람 말뜻은 실은 갈란군주가 벌인 짓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있다는 거지.”

“세상에. 그럴 리가 있겠어?”

공당 주변은 더할 수 없이 떠들썩해졌고 사람들은 전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퉁퉁한 남자를 쳐다봤다.

갈란군주는 멍멍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에도 이 퉁퉁한 남자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됐는데, 지금 그에게 또 증거가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자 마음이 타는 듯 초조해졌다.

“감히 또 허튼소리를 늘어놓다니! 너희들은 뭐 하는 것이냐? 어서 이자를 끌어내지 않고!”

불호령에 포졸들은 깜짝 놀랐고 얼른 무리에서 두 명이 나오더니 퉁퉁한 남자에게 다가가 그를 끌어내려고 했다. 그러자 퉁퉁한 남자는 깜짝 놀라 ‘악’ 하고 비명을 질렀고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뒤에 있는 상인들 틈으로 몸을 웅크렸다.

두 포졸은 퉁퉁한 남자의 재빠른 몸놀림을 보고 저도 모르게 조금 감탄했다. 그들이 퉁퉁한 남자를 잡으려고 하자 뜻밖에도 누군가가 휙 나타나더니 건장한 몸으로 그 퉁퉁한 남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다름 아닌 주비양이었다.

갈란군주는 깜짝 놀라더니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부군… 다, 당신이……!”

“방금 전 내 질문에 당신은 아직 대답하지 않았어요!”

주비양은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갈란군주는 눈물을 왈칵 쏟더니 목소리를 떨며 그를 달랬다.

“우리 일은… 집으로 돌아가서 말해요! 집으로 돌아가서 얘기하자고요!”

“비양아!”

진씨도 앞으로 나와 주비양을 타일렀다. 어찌 됐든 간에 갈란군주가 이미 주씨 가문으로 시집을 온 후였다. 지금 주비양이 갈란군주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그건 어머니인 자신의 체면을 깎는 일이었다. 이쪽이 전에 했던 모든 행동이 틀렸다고 말하는 셈이니까!

“좋습니다.”

주비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일은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얘기합시다. 하지만 지금 공당에서 벌어진 일은 공당에서 해결하십시오.”

갈란군주는 낯빛이 확 변했다. 공당에서 벌어진 일?

“맞습니다. 지금 새로운 증거가 나타난 게 분명하니 이 사건은 아직 종결하면 안 됩니다.”

이 싸늘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엽연채였다. 갈란군주는 분노와 원망이 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죽일 듯 노려봤다. 그러나 그녀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백성들이 먼저 소란을 피워 댔다.

“군주께서 결백하다면 두려울 게 뭐가 있습니까?”

“저 사람에게 증거를 내놓으라고 하세요!”

주비양은 고개를 돌려 그 퉁퉁한 남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증거를 내놓게나.”

퉁퉁한 남자는 꾸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공당 안팎에 자리한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그는 소매 안쪽으로 천천히 손을 집어넣어 더듬거리더니 이어 반짝반짝 빛나는 줄 같은 걸 꺼냈다.

사람들은 다들 저도 모르게 앞으로 다가섰고 그 물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보니 엄지손가락 크기만 한 진주가 달린 금줄이었다.

“엥? 저게 뭐지?”

사람들이 물건을 보고도 갈피를 잡지 못하자 퉁퉁한 남자가 설명을 했다.

“이건 제가 주운 겁니다. 갈란군주와 마마의 여종이 함께 제 노점에 계내금을 사러 온 그날, 두 분이 떠날 때 군주의 머리에서 뭔가가 떨어졌습니다. 그게 바로 이 물건인데, 제가 줍고 돌려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도 군주의 여종이 몇 번 더 제 노점에 와서 계내금을 사 갔지만… 전 욕심이 났습니다……. 저희 집 둘째가 곧 있으면 출가하는데 그럴듯한 혼수조차 없어서 그 애에게 혼수로 주려고 했습니다. 흑흑… 대인, 제가 잘못했습니다. 욕심을 내서는 안 되는 거였습니다.”

‘잘못하긴. 욕심내길 잘했네!’

하나 울며 뉘우치는 남자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 말을 떠올렸다.

“어……!?”

이때, 누군가가 작은 목소리로 외마디 소리를 냈고 보니 엽연채가 갈란군주의 정수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보세요. 군주의 머리에 꽂혀 있는 진주 보요의 일부 같지 않나요?”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더니 그쪽을 유심히 쳐다봤다. 과연 갈란군주의 쪽머리에 보요 하나가 꽂혀 있었는데, 보요의 몸체인 황금색 봉황 머리 아래로 총 다섯 개의 술이 달려 있었다. 그런데 진주가 달린 금색 술이 퉁퉁한 남자의 손에 들린 것과 똑같아 보였다.

갈란군주의 조그만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녀는 퉁퉁한 남자의 손에 들린 진주 술을 쳐다보며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머리에 꽂힌 그 보요를 만졌는데, 정말로 그중 하나가 저치의 손에 있었다……!

이 보요는 육괘잠주봉두보요六掛簪珠鳳頭步瑤라고 불렸는데 순금으로 만든 봉황 머리에 총 여섯 개의 진주 술이 달려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쯤 전에 그녀는 보요의 진주 술 하나가 사라졌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언제 잃어버렸는지 몰라 일단 하인들에게 집 안을 뒤져보라고 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그때 그녀는 매우 실망하긴 했지만 술 하나가 없다 해도 이 보요는 미관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 보요를 아주 좋아해서 이후에도 자주 꽂고 다녔다.

그런데 더는 신경 쓰지 않던 이 진주 술이 여기서 다시 나타날 줄이야. 공당에서, 그것도 증인의 손에서! 아꼈던 장신구가 하필이면 저치의 손에 들어가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증거로 돌아오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퉁퉁한 남자의 증언과 그가 내민 증거에 관아는 일순 소란스러워졌다.

“법망이 느슨해 보여도 죄인이 빠져나갈 수는 없지!”

“그렇고말고!”

바깥에서 사람들의 경악하는 소리, 정죄하는 소리 따위가 들려왔다.

창백해진 갈란군주가 넘어질 듯 휘청대자 만소가 군주를 부축했다. 그 옆의 진씨 역시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어질어질, 녹엽에게 몸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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