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7화
갈란군주의 표정이 굳어지다 못해 창백해졌다.
“전…….”
그녀는 자신과 오일의가 정이 두터운 부부였으며 자신은 흔들리지 않는 굳은 절개를 가진 사람임을 보이려고 했다. 그런데 주비양이 이 부분에서 갑자기 튀어나올 줄이야!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멍해지더니 순간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주비양만이 죽은 사람이 따로 없게 무감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혼례를 올린 밤에 당신은 울면서 내 품에 달려들더니 단 한 번도 날 잊은 적이 없다고, 오일의에게 시집간 건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었던 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게 다시 시집오게 된 건 하늘이 정해 준 운명이라고 했죠.
그때 분명 하늘이 우릴 가엾게 여겨서 선물을 주었고, 당신은 너무 기뻐서 꿈을 꾸는 것만 같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또 울면서, 내 앞에서 오일의와 함께 죽겠다고 하는 겁니까?”
이 말에 공당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고 다들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갈란군주를 쳐다봤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지금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이때, 한 할멈이 툭 뱉었다.
“상중에 재가를 하다니.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다들 부끄러워 자진하려고 했을 거야.”
“게다가 군주는 꽃가마에 오를 때 죽어도 싫다며 자신은 강요당한 거라고 말했잖아!”
담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사탕수수를 질겅질겅 씹고 있던 노인이 입안의 찌꺼기를 퉤! 하고 내뱉더니 이렇게 말을 보탰다.
“오씨 가문 부자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꽃가마에 오르라고 군주를 밀어붙였지!”
“그랬지만 주씨 가문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옛 정인의 품에 달려들어 오일의에겐 아무 감정도 없었고 자신이 사랑한 사람은 그뿐이라고 말했다?”
“주씨 가문에서 옛 정인과 알콩달콩 사랑을 나눴으면서 지금은 또 울면서 죽은 남편에게 왜 자기는 데려가지 않았냐고 악을 쓰는 거야? 쯧쯧!”
백성들은 수군거리며 적대적인 눈빛으로 갈란군주를 훑어봤다.
‘이 뻔뻔하고 음탕한 여자는 대체 어디서 굴러온 거야! 후안무치도 정도가 있지!’
갈란군주는 머리가 멍해졌고 이 세상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옷이 전부 벗겨져 알몸으로 이곳에 선 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말문이 막혀 한 마디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오씨 가문 부자와 진씨는 물론이고 정 부윤마저도 할 말을 잃고 멍한 표정을 지었고, 본인들이 다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주비양은 갈란군주의 손을 꽉 움켜잡았다. 그의 낯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말해 봐요!”
갈란군주는 몸이 뻣뻣하게 경직됐고 조그만 얼굴은 하얗게 질려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부군… 제, 제 뜻은… 오일의가 끝내 저와, 저와…….”
그녀는 주비양 앞에서 절대로 오일의를 언급하지 않았고 과거도 절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마치 예전 일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부부 관계에 나쁜 영향만 줄 일을 뭐 하러 입에 담겠는가.
그랬는데, 이런 자리에서 이 화제를 꺼내 주비양과 갈등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말하라고요!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오일의입니까? 아니면 나입니까?”
주비양이 사지로 밀어 대니 갈란군주는 정말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이제 와 사랑하는 사람이 주비양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신이 내 영원한 사랑이다!’ 하고 말해 버리면 전에 죽어도 재가하지 않겠다고 했던 것과 오일의와 두터운 정이 있다고 했던 것은 뭐가 되겠는가.
하지만 오일의를 사랑하며 그를 한시도 잊지 못했다고 말한다면 그동안 자신이 주비양에게 보였던 사모의 마음은 또 뭐가 되겠는가. 그래서야 스스로 위선자가 되는 셈이었다. 앞으로 오일의라는 가시가 부부 사이에 깊숙이 박혀 빼낼 수 없게 되리라.
갈란군주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는데 주비양이 냉소를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너무 성급했습니다.”
갈란군주는 표정이 굳어지더니 이렇게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부군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럼 내가 당신이 알아들을 수 있게 명확히 얘기해 주죠.”
주비양은 갑자기 잡고 있던 손을 팩 놓았다. 그러자 갈란군주는 바닥에 쓰러졌고 바닥에선 시리도록 차가운 느낌이 전해졌다.
주비양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일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내게 시집을 왔으니 당신은 이 집안에 들어오자마자 냉담하게 굴며 원치 않는 연기를 제대로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일이 년 정도 지난 후에 ‘천천히 날 받아들여야’ 차근차근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죠.
그런데 당신은 너무 성급했습니다. 아니면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모든 사람을 깔봤던 거겠죠. 과부임에도 여전히 자신이 가장 우월하다고 생각해, 내 아내를 억누르고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집안에 들어오자마자 아무 거리낌 없이 내게 옛정을 얘기했던 거예요.”
갈란군주는 낯빛이 확 변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속마음을 한 꺼풀씩 벗겨 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부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전, 전…….”
“됐다!”
누군가가 성난 목소리로 호통을 쳤는데 보니 진씨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녀가 쳐다보는 사람은 뜻밖에도 주비양이었다.
“범인을 잡았으니 우린 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편이 좋겠다. 일이 있거든 집으로 돌아가서 얘기하자꾸나! 만소야, 네 상전을 부축하거라. 우린 이만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무도 이곳을 떠날 수 없습니다!”
오 부인이 황급히 앞으로 나오더니 갈란군주를 가리키며 비통에 잠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여러분. 방금 전에 다들 군주의 진짜 모습을 보셨죠! 뻔뻔하고 천박하며 비열하고 표리부동한 사람이에요! 내 아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재가를 하더니 바로 옛 정인의 품에 달려들어 사랑을 속삭였어요. 내 아들이 현몽했다는데 왜 내게 현몽하지 않고 하필 이런 악독하고 뻔뻔한 인간들에게 현몽했을까요? 에이, 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숨을 헉하고 들이켰고 일제히 오일의가 현몽했다고 말했던 사람들을 쓱 훑어봤다. 오 노야, 오일봉, 진씨, 갈란군주… 정말이지 다들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란아.”
오 부인은 껄껄대며 앞으로 나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넌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거다, 그렇지?”
“…무슨 말씀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갈란군주는 주비양이 했던 말 때문에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녀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을 떨었고 이를 꽉 물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더없이 수치스럽게 만든 이곳에서 달아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군주, 가시죠!”
만소가 황급히 갈란군주를 부축해 일으켰다. 그런데 갈란군주와 만소가 돌아서려고 하자 오 부인이 바로 그들에게 달려들어 갈란군주를 확 잡아당기더니 그녀를 사정없이 밀쳐 버렸다.
“이 빌어먹을 것! 전에 주비양과 정혼했다가 주씨 가문이 전투에서 참패하자마자 곧바로 파혼했지. 당시 내 아들은 황제 폐하의 총애를 받는 조정의 신임 관리였고, 넌 그런 내 아들을 유혹해 우리 오씨 가문으로 시집을 왔다.
한데 이제 내 아들이 전투에서 패배해 불구가 되자마자 넌 끝장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아예 내 아들을 독살하고 부흥하고 있는 주씨 가문으로 재가했다. 그런데 주씨 가문으로 시집을 가서도 자중하지 않고 정실부인을 압박한 다음 의붓아들까지 독살하려고 했어! 정실부인 자리에 앉기 위해서 말이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일시에 숨을 크게 들이켰다. 이렇게 하나하나 분석하고 결론을 내 보니 확실히… 여종이 상전을 위한답시고 오일의를 독살하고 주학해도 같은 방법으로 해치우려 했단 얘기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었다!
무슨 여종이 상전을 위해 독단적으로 사람을 죽였겠는가? 그저 죄를 뒤집어쓴 것에 불과하지! 사람들은 모두 경멸과 혐오를 담아 갈란군주를 쳐다보고 있었다.
권력과 이익에만 눈이 먼 여자. 이 여자는 가난한 자는 업신여기고 부유한 자만 좋아할 뿐만 아니라 남편까지 살해하고 상중에 재가를 했다. 이런 악녀는 기목려騎木驢(철심 따위를 박은 목마 등에 사람을 태워 죽이는 방법으로, 주로 불륜 등을 저지른 여자에게 행해졌다고 함)에 처해 죽여야 마땅했다.
“그만!”
이때, 싸늘한 호통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채결이 어두운 얼굴로 앞으로 나왔다.
“오 부인, 이제 소란은 그만 피우십시오. 이미 범인이 잡혔으니 다들 해산하거라!”
“안 됩니다! 그렇겐 못 해요!”
오 부인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치기 무섭게 갈란군주에게 달려들더니 그녀와 엉겨 붙어 싸우기 시작했다. 오 부인은 손톱으로 갈란군주의 얼굴을 마구 할퀴며 증오를 있는 대로 쏟아 냈다.
“이 빌어먹을 것! 널 때려죽일 것이다!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야!”
“아아악! 내 얼굴!”
갈란군주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발로 오 부인의 배를 걷어찼다.
“이 빌어먹을 여편네가!”
하지만 오 부인은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죽을힘을 다해 그녀의 뺨을 때렸다.
“여봐라! 오 부인을 떼어 내거라! 어서 떼어 내!”
채결이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고 주위에 있던 포졸들이 얼른 달려가 오 부인을 제압하여 한쪽으로 끌어냈다. 하지만 손이 결박된 상태에서도 오 부인은 죽을힘을 다해 발길질을 해 댔다.
“이 빌어먹을 것! 넌 남편을 살해했다! 남편을 살해했어!”
“아…….”
갈란군주는 만소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다. 그녀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얼굴엔 손톱자국을 따라 피가 흘렀고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꼴이 말이 아니었고 분노가 극에 달하자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하, 감히 황실의 군주를 모욕하다니!”
“이런 고얀!”
채결은 오 부인에게 삿대질을 하며 목청을 드높였다.
“이런 막돼먹은 여자를 봤나. 이리도 악독하게 굴다니! 좋다, 내 당장 궁으로 돌아가 황제 폐하께 이 사실을 고해 네 봉호를 박탈할 것이다!”
오 노야도 얼른 앞으로 뛰어나오더니 그녀의 뺨을 거듭 후려쳤다.
“이 빌어먹을 여편네. 아주 잘하는 짓이오! 이제 일의가 당신에게 준 봉호마저 사라지게 되었소. 이건 다 당신이 저지른 일이요. 이런 일을 벌이다니. 내 당신을 집안에서 내쫓을 것이오!”
옆에 있던 오일봉은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그녀를 쫓아내면 응당 자신을 낳아 준 이낭이 정실이 될 것 아닌가. 그럼 자신이 적자가 되는 것이다! 관직이 높아지더니 이젠 신분도 상승하게 되었다.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으랴.
갈란군주는 오 부인을 노려보며 눈썹을 추켜올리고는 당당히 외쳤다.
“모든 건 만심이 저질렀다. 난 아무것도 몰랐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