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695화 (695/858)

제695화

퉁퉁한 사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정체를 밝히자 만심은 깜짝 놀라더니 고개를 힘껏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손수건이라니! 제 물건이 아닙니다.”

그녀는 정말로 억울했다! 언제 손수건을 잃어버렸다는 말인가? 그런 기억이 전혀 없었다.

“저 처자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퉁퉁한 남자는 딱 잘라 말하고는 고개를 들어 정 부윤을 쳐다보며 말했다.

“대인. 그날 저 처자가 닭에게 긁혔을 때 피가 콸콸 쏟아졌습니다. 전 깜짝 놀라서 얼른 행주로 처자의 상처를 눌러 줬습니다. 하지만 저 처자는 제 행주가 더러운 게 싫었는지 홱 뿌리치고 자기 손수건으로 상처를 누르더군요. 하지만 피가 너무 많이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손수건이 피로 흠뻑 젖어 더러워졌습니다.

다행히도 근처에 손수건을 파는 곳이 있어 제가 깨끗한 손수건 두 장을 구해다 처자에게 건넸습니다. 그러자 처자는 새 손수건으로 상처를 싸맸고 더러워진 이 손수건은 그냥 버렸습니다.”

이 말이 나오자 만심은 두 눈을 번쩍 떴고 이어 온몸을 덜덜 떨었다. 생각이 난 것이다. 분명…….

밖에 있는 백성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보니까 저 여종의 손수건이 맞네.”

“증거가 나왔구먼!”

사람들은 한마디씩 하며 다시 만심의 표정을 쳐다봤다. 몸속의 피를 다 빼낸 양 허예진 얼굴이 그들에게 확신을 주었다.

“와. 사실인가 본데?”

오 노야와 오일봉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고 정 부윤은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어찌해야 좋을지 더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돌려 채결을 쳐다보았다.

채결은 화가 나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고 축 처진 얼굴은 쉴 새 없이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매서운 눈으로 정 부윤을 노려보며 말했다.

“어떻게 이런……! 정철!”

정 부윤은 채결이 고함을 치자 몸을 살짝 떨었고 이를 악물고는 ‘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경당목을 휘둘렀다.

“이 증거가… 진짜라는 증거가 있느냐?”

“대인. 정말 이상하시군요!”

마른 남자는 울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정 부윤이 만심을 보호하려고 하자 세 사람은 무력감과 공포에 목이 조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미 이 길을 선택한 이상 돌아갈 방법도 없었다.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대인께서는 아직도… 만심의 겁에 질린 모습을 보세요. 자백을 한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저 처자의 것이 분명합니다.”

마른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퉁퉁한 남자가 손수건을 내보였다.

“대인께서 믿지 못하시면 이 손수건을 깨끗이 세탁해 보셔도 됩니다. 이 손수건 위에 저 처자의 이름이 수놓아져 있으니까요!

원래는 깨끗이 세탁하려고 했지만… 부잣집 천은 아주 귀하다는 얘기를 들어 함부로 세탁할 수가 없었습니다. 멋모르고 빨았다가 손수건을 버리게 되면 처자가 제게 물어내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대로 집 안에 놔두었다가 잊어버렸던 겁니다.”

오 부인은 앞으로 걸어가 그 손수건을 홱 낚아채더니 펼쳐보고는 유심히 살펴봤다. 표정에서 점차 놀랍고 기쁜 기색이 차오르나 싶더니 이내 두 눈을 번쩍 떴다.

“하하하! 이것 좀 보세요. 정말로 위에 ‘만심’이라는 두 글자가 수놓아져 있습니다! 천도 궁녀들이 자주 쓰는 완화금浣花錦을 사용했고요.

쯧쯧쯧. 이 수놓는 솜씨를 보니 역시 만심이는 군주가 가장 아끼고 중용하는 사람입니다. 영리한데 손재주도 있어요. 자수도 본인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군요.”

만심은 머릿속에서 ‘웅웅’ 소리가 울렸다. 더는 잡아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힘이 빠져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도 끝끝내 아니라고 했다.

“제 것이… 아닙니다.”

갈란군주도 사지에서 힘이 풀렸지만 꿋꿋이 일어나 창백한 얼굴로 부정했다.

“아닙니다. 분명, 분명 저자들이…….”

“분명 뭐요?”

얼음처럼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갈란군주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주비양이 차갑고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고 있었다.

“증인과 물증이 모두 있는데 아직도 잡아떼려는 겁니까?”

“부군……?”

갈란군주는 어리둥절했다. 주비양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다니. 나를 믿지 않다니……?!

“비양아!”

진씨는 아연실색하며 주비양을 확 끌어당겼다.

“어서 자리에 앉거라!”

강심설은 의아한 표정으로 주비양을 쳐다봤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전부 갈란군주에게 내어 주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지금……? 그녀가 고개를 돌려 엽연채와 주운환을 쳐다보니 두 사람은 손을 잡고선 고개를 숙인 채 속삭이고 있었다.

“증인과 물증이 모두 있는데도 아니다, 아니다. 이래서야 앞으로 사건을 어떻게 심리하겠어요?”

음침한 낯빛의 오 부인이 갈란군주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 앞으로 다가갔다.

“작년에 도성 서쪽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사위가 장인어른을 살해한 일이었네. 그때 증인이 넷 있었고 시신에서도 사위의 지문을 발견했지. 증인과 물증이 모두 갖춰졌으니 사위는 범행을 부인할 수 없었고 즉결 처형을 당했네!

지금 군주도 마찬가지로 증인과 물증이 모두 갖춰졌으니 같은 상황이지! 그럼 살인을 저지른 그 범인도 증인이 자신을 모함하는 거고 지문도 가짜라며 잡아뗄 수 있었다는 말인가? 어쨌든 죽어라 잡아떼기만 하면 그만이라면, 그자는 억울하게 죽은 셈이겠군!”

갈란군주는 가죽 아래의 핏줄이 보일까 싶을 만큼 낯빛이 창백했고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어 대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포기할 그녀가 아니었다.

“이, 이!”

“그래! 증인과 물증이 모두 갖춰졌는데도 잡아뗄 수 있다고? 그럼 국법은 왜 있는 거야?”

갈란군주가 씩씩대자 밖에 있는 백성들은 하나같이 분개했다.

“이런데도 잡아뗄 수 있으면 감옥에 갇힌 모든 죄수를 풀어 줘야지. 증인과 물증이 눈앞에 떡하니 있는데도 죽어라 부인하고 무조건 가짜라고 우기면 무죄로 석방될 수 있는 거니까.”

“모두 풀어 줘라!”

“죄수들을 다 풀어 줘!”

외치는 소리가 점점 거세지자 정 부윤은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쓱쓱 닦았고 조심스럽게 안에 있는 채결을 쳐다봤다.

화가 난 채결은 가슴팍을 움켜잡으며 저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이런 고얀 것들……!”

“어, 어……? 이 목소리는……!”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퉁퉁한 남자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더니 오 노야를 비롯한 사람들 뒤편의, 가려진 통로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제 그자랑 닮았……!”

“입 다물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는 마른 남자가 그의 입을 콱 틀어막았다. 자신도 채결의 목소리를 듣고는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하나 지금 채결을 지목하게 되면 어젯밤에 왔던 사람이 채결이라고 증언하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이런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으며 적당한 선에서 멈춰야 되는 일도 있는 법이었다!

하나 오 부인은 오 노야 곁으로 걸어가더니 안쪽을 향해 ‘쿵’ 무릎을 꿇었다.

“채 공공. 부디 제 아들 일을 해결해 주십시오!”

“뭐? 채 공공이라고?”

오 부인의 말에 구경꾼들이 모인 바깥은 한층 아수라장이 되었다.

“뭐라고? 채 공공이 왔다는 거야?”

“채 공공이 줄곧 이곳에 있었다는 거야?”

“당연히 있었겠지. 중대한 사건이니 공공이 와 있는 것도 이상할 게 없지.”

“쯧쯧. 내가 그랬잖아. 부윤 대인이 이따금씩 저쪽을 쳐다본다고 말이야. 알고 보니 공공의 눈치를 봐 가며 사건을 처리하는 거였어.”

들려오는 소리에 채결은 화가 나 죽을 것만 같았고 분노와 원망이 섞인 눈빛으로 오 부인을 노려봤다.

‘이 빌어먹을 여편네가! 감히 이렇게 대담하게 굴다니. 죽는 게 두렵지 않는가 보구나?’

다음 순간, 채결은 낯빛이 확 변했다. 그랬다, 오 부인은 이미 생사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 난감해진 사람은 오직 자신이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계속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오히려 체면을 잃게 될 것이다.

채결이 몸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뒤에 있던 어린 환관이 난처한 얼굴로 그를 부축하며 한 걸음씩 떼었다.

백성들은 그렇게 말로만 듣던 ‘채 공공’을 직접 보게 되었다. 그는 이무기 문양이 들어간 진녹색 화려한 금포 차림이었는데, 나이는 육십 대로 보였으며 언짢은 얼굴로 차갑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정 부윤이 앉아 있는 탁자 근처에 섰다.

잿빛 옷의 영감과 퉁퉁한 남자, 마른 남자는 낯빛이 확 변하더니 몸을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감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공을 뵈옵니다.”

“공공을 뵙니다.”

백성들은 우르르 바닥에 무릎을 꿇었고 공당 안의 상인들도 ‘쿵쿵’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채 공공은 훅 하고 숨을 내뱉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일어들 나거라. 요즘 주씨 가문에 일이 많아 폐하께서 내게 보고 오라고 하셨다.”

“공공… 제 아들 일을 꼭 해결해 주십시오.”

오 부인은 다시 채결 옆으로 와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흐느꼈다.

“당시 제 아들이 중상을 입기는 했지만 의지가 굳건해 태의도 아들의 상태가 호전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감정적으로도 잘 다스리고 있으니 분명 극복할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 악독한 것에게 독살을 당했습니다. 이제 물증과 증인이 모두 갖춰졌는데 부윤이… 미적거리며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폐하, 공공! 부디 제 아들 일을 해결해 주십시오!”

자신을 향한 날 선 비난에 정 부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부인……! 본관은 판결하지 않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 판결하세요! 지금 어서 판결하시라고요!”

오 부인은 흥분하여 정 부윤을 다그쳤다.

궁지에 몰린 정 부윤은 또다시 창백한 얼굴로 채결을 쳐다봤고, 채결은 두 눈에 핏발이 섰다. 지금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만회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한데, 자신더러 뭘 어쩌라는 것인가. 그는 그저 ‘흥’ 콧방귀를 뀌고는 정 부윤을 외면해 버렸다.

정 부윤은 침을 삼켰고 이제 더는 갈란군주를 보호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판결을 내릴 엄두는 나지 않아 입술만 벌벌 떨었다.

“왜 그러십니까?”

오 부인은 눈이 새빨갛게 변할 정도로 두 눈을 부릅떴다.

“왜 판결하지 않는 겁니까?”

그녀가 거듭 추궁하자 밖에 있던 백성들도 흥분한 목소리로 닦아세웠다.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법을 어기려는 겁니까? 잡아떼려는 거예요?”

“그럼 감옥 안의 죄수들도 전부 풀어 주세요! 풀어 주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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