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694화 (694/858)

제694화

쾅쾅쾅! 정 부윤이 경당목을 있는 힘껏 내려쳤다.

“정숙하거라! 너희들이 말하고 싶은 게 이런 것이란 말이냐?”

“아, 아닙니다. 저희에겐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잿빛 옷의 영감이 다급히 말했다.

“사실 어젯밤에 저와 여기 두 동생이 누군가에 의해 어떤 집으로 납치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부귀한 차림의 노인이 나타나서 채 공공인 체를 하며 저희보고 범인을 지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이 달아날 거라고 했습니다.”

안에 있던 채결은 화가 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천민들이 그의 이름을 거론했으니 더더욱 얼굴을 드러낼 수 없게 된 것이다.

나갔다가 만약 저 세 사람이 어젯밤에 봤던 사람이 그라고 말한다면 어찌한단 말인가? 그리되면 황제의 체면도 함께 땅으로 추락하게 된다.

“아이고…….”

밖에 있던 백성들은 웅성거리며 다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야?”

“한데 이상할 것도 없지 뭐. 쯧쯧…….”

백성들은 의미심장하게 서로 눈을 맞췄다.

설령 채결이 정말로 세 사람을 납치한 다음 그들에게 위증을 하라고 강요를 했다고 해도 특별하달 게 없었다. 갈란군주는 황제의 친손녀이니 말이었다.

공당의 정 부윤과 채결, 갈란군주와 오 노야 등은 이미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 천민들은 간접적으로 황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방자하구나!”

정 부윤은 깜짝 놀라 바로 호통을 쳤다.

“너희들이…….”

그러나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 세 사람은 ‘쿵’ 소리를 내며 그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고 잿빛 옷의 영감이 이렇게 말했다.

“대인. 저희도 저희가 방자하게 굴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흰 그저 사실을 말한 것뿐이옵니다.

또 저희도 어젯밤 그 사람이 채 공공이 아님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채 공공은 황제 폐하의 사람이고 황제 폐하는 지혜롭고 총명하며 공명정대한 분이시니 당연히 그런 비열한 짓은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 사람은… 저흰 한눈에 그 사람이 변장한 것임을 알아봤습니다.”

“마, 맞습니다.”

마른 남자가 얼른 동조하며 말을 받았다.

“저희가 그자에게 속아 넘어간 게 분명합니다, 오늘… 공당에 와서 부윤 대인의 지혜롭고 총명한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하도 이러한데 황제 폐하는 더 말할 것도 없겠단 생각 말입니다!

그러니 어젯밤 그자는 분명 채 공공이 아닙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황자가 법을 어겨도 백성과 똑같이 죄를 다스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폐하의 말씀은 천금보다 무겁고 귀한 법인데 어찌 손녀가 악행을 저지른 걸 용인하겠습니까?”

그는 조금 횡설수설했지만 어쨌든 입이 마르게 정선제를 칭찬하여 부윤 등이 섣불리 자신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조정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백성들이 어리석다고 하는데 눈앞의 이 세 사람은 어쩜 이리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일까?

“됐다!”

정 부윤은 더는 듣고 있을 수가 없어 얼른 이렇게 말했다.

“이게 너희들이 말하고자 하는 전부이더냐?”

“아, 아닙니다. 당연히 아닙니다.”

퉁퉁한 남자가 황급히 부정하며 고개를 들었는데 눈물 콧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전 사실 두 형님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실만을 얘기할 것입니다. 전 도성에서 닭을 파는 사람인데, 여기 이 처자가 저희 노점에서 열흘가량 계내금을 구매했습니다.

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가장 시끌벅적한 시간인 진시辰時(오전 7시~9시) 일각에 저희 노점에 와서 계내금을 사 간 데다 제게 이튿날 같은 시간에 또 올 테니 계내금을 준비해 놓으라고 여러 번 당부했거든요. 그것도 그 자리에서 막 잡은 신선한 것으로요!

전 이 처자에게 왜 신선한 것이 필요하며 왜 매일 다섯 개나 사 가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처자가 탕을 끓여 마실 거라고 하더군요. 전 의원은 아니지만 계내금을 약으로 달이거나 탕으로 끓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더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희희낙락하며 이 처자에게 계내금을 팔았죠. 돈을 벌 수 있는데 누가 마다했겠습니까?”

퉁퉁한 남자는 그리 말하며 만심을 가리켰다.

“저 처자입니다. 저 처자가 분명합니다!”

만심은 몸을 떨었고 창백한 얼굴로 연거푸 잡아뗐다.

“전 아닙니다! 전 그런 적 없습니다! 그런 적 없어요!”

“아직도 인정하지 않는단 말이야?”

퉁퉁한 남자는 초조한 마음에 눈물마저 날 지경이었다.

“이봐, 처자! 사람을 난처하게 해도 유분수지! 여기까지 얘기했는데도 인정하지 않는 거야?

좋아, 한번은 이런 적도 있었잖아. 처자가 우리 가게에 왔는데 내가 마침 닭 네 마리를 잡은 상태였지. 마지막 한 마리 목을 자르려고 했는데 그 닭이 죽기 살기로 뛰어다니다가 결국 처자의 몸으로 날아들었고 처자의 오른쪽 팔꿈치에 큰 상처를 남겼잖아.

그런 깊은 상처는 한 해쯤 되어도 사라지지 않으니 소매를 걷어 사람들에게 보여 줘 봐. 있는지 없는지 보자고.”

만심은 현기증이 다 났지만 황급히 자신의 오른쪽 팔꿈치를 가렸다.

“왜 가리는 것이냐? 정말로 상처가 있는 게로구나?”

오 부인이 사나운 목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역시 너였구나.”

“아, 아닙니다. 그런 상처는 없습니다. 아니에요!”

만심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저께 죄를 뒤집어쓴 후 곤장을 맞았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감옥이나 다름없는 광에 갇혔으며, 그 상태로 또 끌려 나와 온갖 심문을 당했다. 이미 심신이 피폐해진 그녀는 여러 죄명과 질타에 쉴 새 없이 직면하게 되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는 상태였다.

“상처를 보이거라!”

오 부인은 험상궂은 표정으로 만심에게 냅다 달려들더니 그녀의 소매를 확 걷어 올린 다음 그녀의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백성들은 두 눈을 부릅떴고 정 부윤마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만심의 희고 보드라운 팔꿈치 위에 약 네 치 정도 되는 흉터가 보이자 다들 깜짝 놀라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

“어머! 정말로 있네?!”

밖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소리를 쳤고 정 부윤은 그만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아니에요! 저, 전…….”

만심은 당황하여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이런 고얀!”

누군가가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보니 큰소리를 친 갈란군주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서 있었고 부드럽고 참한 얼굴로는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는 이렇게 말했다.

“만심이의 이 상처는 나와 함께 앵무새에게 먹이를 줄 때… 앵무새에게 긁혀서 난 상처다! 자넨 보기엔 정직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뜻밖에도 잔꾀가 아주 많구나. 만심의 팔에 흉터가 있다는 걸 알고는 만심이가 계내금을 살 때 닭에게 긁혀 상처가 생겼다고 하는구나.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

퉁퉁한 남자는 갈란군주의 말에 겁을 먹곤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아, 아닙니다……! 정말로 제가 잡던 닭에게 긁혀서 생긴 상처입니다. 저 처자가 계내금을 살 때 그런 겁니다. 흑흑…….”

“하하.”

이때, 오 부인이 냉소를 짓더니 버들눈썹을 추켜올리며 나섰다.

“군주야말로 꾀가 아주 많군! 방금 전에 만심이는 분명 도둑이 제 발 저리는 모습을 보였고 다들 똑똑히 봤네. 이자가 닭에게 긁혀 난 상처라고 밝히자 만심이는 놀라서 멍한 표정을 지었지.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방금 전에 왜 바로 설명하지 못했는가?”

만심은 정신이 돌아왔고 그녀는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널브러지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저 사람 말에 놀라서 넋이 나갔던 겁니다. 이 흉터는 앵무새에게 긁힌 건데요, 어찌… 흑흑…….”

“그래? 그럼 의원을 불러와 검사해 보자꾸나!”

오 부인은 비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의정에게 상처를 보이고 어떤 동물에게 긁힌 건지 알아보자꾸나. 하나, 그 전에 사실대로 실토하는 게 좋을 게다. 앵무새가 닭으로 변한 다음엔 넌 말을 번복할 기회마저 잃었을 테니까.”

만심은 낯빛이 확 변했고 몸을 쉴 새 없이 떨며 두 눈을 부릅떴다. 방금 전에 왜 앵무새에게 긁힌 거라고 말했을까? 잠시 후에 태의가 와서 검사를 한 뒤 닭에게 긁힌 거라고 하면 어찌한단 말인가? 군주는 방금 전에 왜 하필 앵무새가 한 거라고 말해서……!

“아이 참. 증인이 이미 저 처자를 지목했는데 왜 또 수작을 부리는 거야.”

“한데 아직 양을 파는 상인과 또 다른 상인 얘기는 정확히 못 들었잖아요?”

밖에 있는 백성들이 계속해서 떠들어 댔고, 이렇게 자신들에게 화살이 돌아오자 잿빛 옷의 영감이 얼른 입을 뗐다.

“전 양을 파는 사람인데 이 젊은 처자가 한동안 제 노점에서 흑양갑을 구매했어요. 흑양갑은 쓸모없는 부위라 버려야 하는데 이 처자가 매번 와서 팔라고 하니 어찌 까먹었겠습니까.”

그러자 마른 남자도 고개를 끄덕이며 증언했다.

“저는 닭을 파는 사람인데, 이 만심이라는 처자가 여러 번 저희 가게에 와서 계내금을 사 갔습니다.”

세 사람 모두 만심을 지목하자 만심은 얼굴에 핏기가 가셨고 놀란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아니에요……! 전 그런 적 없어요. 저 사람들이 절 모함하는 겁니다.”

“맞아요. 저자들이 모함하는 거예요!”

진씨는 흥분하여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만심이 오일의를 살해한 게 증명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모함입니다! 다 큰 어른 셋이 어린 처자를 괴롭히고 모함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더냐?”

오 노야도 잔뜩 흥분해 소리를 쳐 댔다.

“증거는? 증거는 있는 게냐?”

“맞습니다.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만심이가 독을 쓴 걸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주씨 가문에서도 증거를 찾아냈기에 단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말만으로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오일봉까지 돕고 나서자 백성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제게 증거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걸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퉁퉁한 사내의 목소리였다. 그는 품 안을 더듬어 새빨간 뭔가를 꺼냈는데 행주 같기도 하고 손수건 같아 보이기도 했다.

만심은 뻘건 천 조각을 분명히 보았으나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저게 뭐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목을 쭉 빼고 그 물건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저게 뭐야? 이봐요. 그게 뭐요?”

“이, 이건…….”

퉁퉁한 남자는 말을 더듬으며 그 새빨간 천을 털어 펼쳤다. 보니 여기저기 해진 천은 윗부분이 벌겋게 물든 상태였는데 색의 명암이 일정치 않았다.

“아이고. 어서 말해요. 답답해 죽겠네!”

사람들이 목을 뺀 채 앞으로 모여들었지만 포졸 둘이 기다란 몽둥이를 열십자로 교차해서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위에 있는 정 부윤과 채결, 오 노야와 군주 등도 목을 뺀 채 퉁퉁한 사내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건 만심 처자의 손수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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