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3화
그러자 갈란군주는 낯빛이 확 변했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서둘러 이렇게 말했다.
“부인, 애먼 사람 잡지 마세요! 저자들이 말하지 않았다고 해도 하는 짓거리만 봐도 목적을 알 수 있으니까요. 저자들은 분명 만심이 보조 약재를 구매했다고 말하며 만심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려는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 속이 시커먼 것들이 왜 갑자기 튀어나왔겠어요!”
그러나 이게 오히려 잘못된 한 수였다. 구경하던 백성들은 갈란군주의 말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엽연채는 갈란군주가 제 무덤을 파는 꼴에 픽 하고 비웃음을 지었다.
오 부인은 버들잎 모양의 고운 눈썹을 추켜올리고는 이렇게 대꾸했다.
“군주는 참 재미있는 사람이야. 저자들은 참고인이자 증인이네! 모두가 증인일 수 있단 말이네! 저들의 말을 신뢰하기에 증인으로 불러온 것이 아닌가?
조금 전 저자들이 범인을 지목하지 않았을 때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으면서, 이제 범인을 지목하니 애먼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는 속이 시커먼 놈들이라고 말하는군.
하! 정말 가소롭기 짝이 없어! 이 증인들은 군주의 편만 들어야 하고 사실을 말해서는 안 되나 보지? 사실을 말하면 믿어서는 안 되나 보군.”
그 말에 밖에 있던 백성들이 왁자지껄 웃어 댔다.
갈란군주는 낯빛이 창백하게 변했다. 이건 그녀가 자기에게 유리하면 좋은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라고 말한다는 뜻이 아닌가? 갈란군주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오 부인을 노려봤다. 이를 사리물었으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바람에 이는 연신 딱딱 소리를 냈다.
갈란군주 뒤에 앉아 있던 주 백야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 진씨는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심장이 쉴 새 없이 쿵쿵 뛰었다. 그녀는 ‘정말 증인이 있었다니. 설마……?’ 이런 생각을 하며 이를 악다물었다.
반면 강심설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고소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전이다. 반전이 일어났어!’
엽연채는 고개를 돌려 주운환을 힐끗 쳐다보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귀신 연극이 이렇게 쓸모 있단 말이에요?’
그러자 주운환도 그녀에게 눈빛을 보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쓸모 있군요.’
한참 전부터 시작한 귀신 연기가 생각보다도 훌륭한 성과를 낸 것이다.
갈란군주가 주씨 가문에 들어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귀신 연극을 시작했었다. 상인 세 사람은 두려움에 떨다 못해 병이 날 지경인데 어찌 감히 함부로 행동할 수 있겠는가?
채결은 표정이 잔뜩 구겨졌고 매서운 눈빛으로 정 부윤을 노려봤다.
정 부윤은 눈앞에서 돌발 상황이 벌어지자 어안이 벙벙해져 식은땀만 줄줄 흘렸다. 그는 채결의 눈길에 겨우 정신을 차렸고 마침 밖에 있는 백성들이 소란스럽게 떠들어 대자 경당목을 힘껏 내리쳤다.
“정숙하시오.”
이제 그 스스로 이 상황을 수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이 고얀 것들. 여기가 어디라고 허튼소리를 지껄이는 게냐? 감히 공당을 혼란스럽게 만들다니. 여봐라. 일단 저것들을 밖으로 끌어내거라!”
어쨌든 일단은 끌어내야만 했다. 그들이 더는 군주에게 해를 가하는 말을 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
그때 오 부인이 앞으로 한 발짝 나오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인, 어째서 끌어내려고 합니까? 대인은 항상 엄격하고 공정했던 분이신데 오늘은 사사로이 법을 어기려 하시는군요.”
오 부인의 이 짤막한 두 마디에 정 부윤은 전전긍긍했고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오랫동안 관리로 지내며 사람들에게 공명정대한 재판관이라고 칭송을 받았고 역대 부윤들 중 가장 좋은 부윤이라는 평가를 자랑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도 시세時勢를 잘 살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건은 공명정대하게 처리해야 하지만, 어떤 규칙들은 반드시 준수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공명정대하게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작은 기회마저 가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본관… 본관은 사사로이 법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정 부윤이 황급히 부정하자 오 부인은 그런 그가 우습다는 듯 바로 반박했다.
“이거 참 재밌군요. 아니라고 하시면서 왜 증인이 말을 다 하지 못했는데 끌어내려고 하나요?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거 아닌가요?”
정 부윤은 몸이 뻣뻣하게 굳었고 괜히 경당목을 휘두르며 이렇게 말했다.
“무엄하오! 본관은 저들이 처음엔 꾸물거리며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지금 갑자기 말을 바꾸니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럼 분명히 물어보면 되죠! 의문이 들면 확실히 물어봐야죠. 왜 여기서 못 묻고 끌고 나가기부터 한단 말입니까!”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정 부윤의 말허리를 끊고 소리쳤다. 다시 좌중이 술렁이려던 순간, 오 부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쐐기를 박았다.
“‘황자도 법을 어기면 백성과 같은 죄로 다스려야 한다.’, 황제 폐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심을 관아로 넘길 때 채 공공도 자리에 있었고 채 공공은 친히 만심을 관아로 보내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채 공공은 황제 폐하께서 보낸 사람입니다! 그러니 황제 폐하조차 범인을 법에 따라 처벌하는 데 동의하신 거예요! 공명정대하게 말이죠!
그런데 어째서 부윤의 손에 넘어오니 부윤은 사건을 덮으려고 하시는 거죠? 설마 부윤은 황명을 어기시려는 겁니까?”
“황명을 어긴다! 황명을 어긴다!”
밖에 있던 백성들이 한입으로 소리를 질러 댔다. 그러자 정 부윤은 낯빛이 확 변했고 하마터면 의자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 채결은 더욱 대로해 밖으로 뛰쳐나올 뻔했는데 밖에서 누군가가 이런 말을 꺼냈다.
“염라대왕을 만나 보기는 쉽지만 변변치 않은 잡귀를 상대하기는 어렵다고들 하잖아. 황제 폐하는 지혜롭고 총명하며 공명정대한 분이신데 아랫사람들이 폐하께 아첨하기 위해 오히려 비열한 짓을 하는 거지.”
그 말에 정 부윤과 채결은 하마터면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그러나 저 말까지 나온 판국에서 채결은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사람들이 황제가 아주 지혜롭고 공정하다고 칭송을 하고 있는데 그가 뛰쳐나가 증인을 제압한다면 황제의 체면을 깎는 게 아니겠는가? 사람들에게 황제는 사실 엄격하고 공정한 사람이 아니라고 알려 주는 꼴만 되지 않겠는가? 그리하면 황제의 권위를 어떻게 세울 수 있겠는가?
채결은 이를 악물었다.
‘이 비천한 상인 놈들이 감히, 감히……!’
그는 가슴이 벌렁거렸고 정 부윤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정 부윤은 쾅쾅쾅! 있는 힘을 다해 경당목으로 책상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정숙하시오. 본관은 그저 저자들의 정서가 불안해 보여 후당으로 보내 냉정을 되찾게 한 다음 다시 나오게 하려고 했던 것뿐이오. 그런데 다들 그리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니 그럼 여기서 분명히 말하게 하겠소.”
백성들의 아우성은 그제야 잠잠해졌지만, 누군가는 몰래 비웃음을 지었다.
정 부윤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이렇게 말했다.
“너, 너희들은 할 말이 있었으면서 왜 방금 전에 얘기하지 않은 것이냐? 왜 지금까지 질질 끌다가 이제서야 입을 연 것이냐?”
“대인. 저희도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퉁퉁한 남자는 눈물을 닦으며 억울해했다.
“너무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아아, 그게 아니라 저희도 강요로 인해 어쩔 수 없었던 것이옵니다…….”
그는 뭔가를 더 얘기하려고 했지만 옆에 있던 잿빛 옷의 영감이 그를 눌렀다. 세 사람은 함께 정 부윤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올렸다.
몸을 바로 한 잿빛 옷의 영감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저흰 정말로 사실을 얘기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너무 두려워서 그랬습니다.”
“뭐가 두려웠다는 말이냐?”
“대인, 대인도 아시다시피 군주는 군주이시고 황제 폐하의 손녀이니 저희가 그분을 지목하면…….”
“날 지목하다니!”
갈란군주는 조그만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녀 스스로도 귀청을 찢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걸 막지 못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이렇게 말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똑바로 보거라. 아래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자가 이 군주란 말이냐?”
만심은 몸이 경직됐다. 자신이 원해서 죄를 뒤집어쓴 거라지만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갈란군주가 죄를 전가하자 그녀는 마음속에서 한기가 느껴졌고 괴로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리며 주인을 감쌌다.
“혐의가 있는 사람은 접니다……. 다들 군주를 손가락질하지 마세요.”
그러자 잿빛 옷의 영감은 몸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희는 너무 두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저분은 군주…의 여종이니까요! 황제 폐하의 손녀를 곁에서 모시는 직급 높은 여종이니까요. 저 사람은 군주의 얼굴입니다. 만약 저희가 정말로 저 여종을 지목해 죄가 있다고 하면 군주의 명예 역시 더럽혀지는 겁니다. 그리되면… 저흰 군주께서 나중에 저희에게 보복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갈란군주는 화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중에? 그녀는 지금 당장이라도 저들을 전부 끌어내 구족을 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군주. 저희에게 보복하실 겁니까?”
잿빛 옷의 영감은 두려워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갈란군주는 화가 나 피를 토할 지경이었지만 ‘허허’ 냉소를 짓고는 이렇게 잡아뗐다.
“난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만심이는 결코 그런 짓을 한 적이 없다는 건 일단 제쳐 두고… 설령, 설령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이 군주는 공정하게 처리할 걸세. 내가 무슨 보복을 한단 말인가?”
잿빛 옷의 영감과 두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마른 남자는 감동한 얼굴로 말했다.
“군주는 과연 도리와 정의를 제대로 아시는 분이군요. 그럼 오늘 이후로 저희가 갑자기 실족사하거나 병사하는 등 뜻밖의 사고로 죽는 일은 없겠네요. 죽거나 다쳐서 불구가 되는 일이 많다 보니까요.”
밖에 있던 사람들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이어 푸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이 말인즉슨 오늘 이후로 저 셋에게 이상한 사고가 발생하면 그건 분명 군주가 벌인 짓이라는 의미였다!
갈란군주는 조그만 얼굴에 붙은 살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대로했다. 오늘 만심이 정말로 단죄된다면 그녀는 큰 손해를 보게 되는데,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들을 찾아가 보복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랬다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