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1화
오 부인은 뻔뻔하게 눈물을 흘리는 갈란군주의 모습을 보자 격정을 감추지 못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질렀다.
“네가 손을 쓰지 않았다면 일의가 왜 죽었겠느냐! 왜 죽어!”
밖에 있는 백성들은 오 부인이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러 대자 그녀에게 깊은 동정심을 느꼈다.
“부인. 이건 정말 억지입니다.”
갈란군주는 통곡을 하며 말했다.
“그 사람은 다리가 잘리고 여러 곳에 내상을 입은 상태였잖습니까. 거기다 전투에서 패하고 다른 이에게 직위마저 빼앗겨 날마다 몹시도 우울해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하니 어떻게 제대로 상처를 치료했겠습니까? 제 부군과 시아버님이 전투에서 패배한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첫 몇 년간은 아마 늘 자진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을 겁니다.”
뒤에 앉아 있던 주 백야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고 가슴이 꽉 조여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도 갈란군주를 추궁할 생각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녀가 폐부를 찌르는 말을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는 저도 모르게 대패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그는 정말로 자진하고 싶었고 죽음으로 모든 걸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위로는 모셔야 할 어른이 있고 아래로는 보살펴야 할 아이들이 있으니 이를 악물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주 백야가 옅은 한숨을 쉬자 진씨가 얼른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했다.
“군주의 말이 맞습니다. 정말 죽지 못해 사는 거였죠! 당시 비양이도 그랬습니다. 그때 전 비양이가 순간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자진할까 봐 날마다 그 애를 살펴봤습니다.”
갈란군주는 동요하는 주 백야를 흘깃 보더니 더욱 심하게 울며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올렸다.
“부인… 당시 일의 그 사람은… 정말 죽지 못해 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전투에서 패했을 뿐만 아니라 번번이 비적 떼를 놓쳐 무고한 대제의 백성들에게 화를 입혔음을 자책했죠. 이것만이었으면 또 모를까, 할바마마의 신뢰도 잃었고 다리마저 잘리게 되었죠! 그 사람은 불구가 되었어요… 흑흑……. 그렇게 건장하고 빼어났던 사람이…….”
그녀는 그리 말하며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밖에 있는 백성들은 그녀가 가슴이 찢어지게 눈물을 흘리며 말 한마디 한마디를 뱉을 때마다 슬픔이 극에 달한 듯한 모습을 보이자 흔들렸다.
적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바람에 처참하게 목숨을 잃은 백성들을 향한 죄책감, 그리고 황제의 총애를 잃으며 느낀 수치심……. 하나하나 그를 죽음으로 내몰기에 충분한 일들이었다. 하물며 오일의는 다리까지 잘려 불구가 되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많은 이들이 오일의의 이전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위엄이 넘치는 장군이었는데 결국 다리 하나를 잃게 되었다. 타인도 이렇게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운데 본인은 오죽했으랴. 만약 자신이 오일의의 상황에 처했다면 어쩌면 단칼에 목숨을 끊었을지도 몰랐다.
“당시 부인께서는 줄곧 눈물을 흘리며… 그 사람에게 어리석은 일은 하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부인을 위해, 우리를 위해 말이죠. 그리고 그 사람은 그리하겠다고 했죠.
하지만 감정이라는 걸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요……. 그 사람도 나아지고 싶었을 겁니다. 가족을 위해서 말이죠. 하나 몹시도 심한 우울은 어쩌지 못했습니다……. 거기다 상처 또한 깊으니… 버티지 못한 거죠…….”
포졸들과 백성들은 몸과 마음이 모두 떨려 와 동정심이 가득한 눈빛을 갈란군주에게 보냈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오일의를 향한 그녀의 깊은 정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았다.
“부인… 전 그 사람을 살리지 못했어요. 그 사람을 회복시키지 못했어요. 지금 부인의 심정을 전 이해합니다. 그러니 절 마음껏 원망하세요!”
갈란군주는 그리 말하며 만소의 몸에 기대어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밖에 있는 백성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중 새까만 얼굴의 한 아낙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작년에 왕이구의 큰아들이 강에 가서 고기를 잡다가 익사했던 사건과 비슷하네. 왕이구가 그날 자수품을 팔러 외출했던 막내딸을 나무랐지. 외출하지 않았다면 큰아들에게 새로 밥을 해 줬을 테고, 그럼 큰아들은 집에서 밥을 먹느라 강에 있는 물고기를 잡으러 가지 않았을 테니까.
하나 다들 알다시피 왕이구의 큰아들은 남은 밥과 국을 배불리 먹고 강에 고기를 잡으러 갔어. 그저 노는 게 너무 좋아서 그곳에 갔던 거지. 하지만 왕이구 부부는 죽어도 그 말을 듣지 않았고 막내딸이 아들을 죽게 만들었다고 매일같이 울부짖었잖아.”
옆에 있던 영감이 이 얘기를 듣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마디 덧댔다.
“그래, 자기가 너무 괴롭고 죄스러운 마음이 드니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긴 게야. ‘살인자’를 때리고 욕을 해야 마음이 좀 편해지는 거지.”
그 새까만 얼굴의 아낙이 계속해서 말했다.
“오 부인도 말이에요. 지위가 높았던 멀쩡한 장군 아들이 갑자기 불구가 됐으니 충격을 감당할 수가 없었겠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다리가 잘리고 중상을 입었으니 상태가 나빠져 죽은 건 충분히 말이 돼요. 오 부인은 아들을 잃은 아픔을 받아들일 수가 없고 며느리가 재가를 한 건 더더욱 받아들일 수가 없으니 근거 없는 소리를 하며 공연히 사람 목숨을 빼앗으려는 거죠.”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아낙의 말에 하나둘 맞장구를 쳤다.
“이런 일이 많긴 하죠.”
“군주도 가련한 사람이네요. 오 부인은 사람이 어찌 그리 모질고 독할까요?”
이어 꽤 많은 사람들이 조잘거리며 갈란군주를 동정했다.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자 다른 의견이 있는 사람들은 입을 열기가 곤란해졌다. 괜히 나섰다가 마음이 몹시 음흉한 사람처럼 보이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통곡하던 갈란군주의 입이, 손수건으로 가린 그 입이 호선을 그렸다. 그녀가 원했던 것이 바로 이런 반응이었다.
됐구나! 갈란군주는 눈물을 머금은 눈으로 조심스레 오 부인을 힐끗했다. 그러잖아도 방금 전의 그 말을 언제 꺼낼 수 있을지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오 부인이 큰 도움을 주었다. 오 부인이 먼저 화제를 꺼낸 게 이쪽이 백성들 앞에서 ‘속마음’을 자연스레 털어놓을 수 있는 기회를 준 셈이었다.
잠시 후면 증인들이 도착할 거고 그들은 당연히 계내금과 흑양갑을 샀던 만심을 지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백성들은 분명 증인을 매수했을 거라고 생각할 테니 반드시 그렇지 않다고 그들을 설득해야만 했다. 물론 모두가 단번에 믿지는 않겠지만 동조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히 ‘사실’이 될 것이었다.
채결은 갈란군주가 방금 전에 했던 말을 듣고는 그녀를 높이 평가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오 노야 등도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 부윤은 뻣뻣이 경직되어 있던 몸이 풀렸다. 안심한 그가 채결 뒤에 선 포졸에게 눈짓을 하자 그 포졸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대인, 증인이 도착했습니다.”
“데려오거라.”
사실 증인은 이미 도착한 후였다. 하지만 갈란군주가 감정이 격양되어 얘기를 하고 있으니 정 부윤은 그녀의 말을 끊지 않았고 그녀가 제 생각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를 줬던 것이다. 그러면 더 보기 좋게 죄명을 벗을 수 있게 될 테니 말이다.
“비키거라, 비켜!”
백성들 뒤에서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니 포졸 둘이 밖에 있는 백성들을 좌우로 물리쳤고 열댓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두 줄로 서서 관아의 문으로 들어섰다.
이 사람들은 갖가지 무명옷을 입고 있었고,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몸에서 퀴퀴한 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오씨 가문 사람들과 갈란군주, 진씨 등은 얼른 코를 틀어막았다. 불려온 참고인들은 전부 시장에서 닭과 양을 파는 상인들이었는데, 평소와 달리 깨끗한 공당에 와 있고 거기다 이렇게 여럿이 한데 모여 있으니 공당 안은 순식간에 퀴퀴한 비린내가 진동하게 됐다.
만심 뒤에 두 줄로 서 있던 상인들은 이어 하나둘 ‘쿵’ 소리를 내며 정 부윤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미천한 속인俗人들이 대인을 뵈옵니다.”
“일어나거라.”
정 부윤은 예를 면케 해 준 다음, 상인들을 데리고 문으로 들어오는 포졸에게 물었다.
“전부 데리고 왔느냐?”
“예. 이 상인들은 전부 도성 동쪽에서 닭과 양을 파는 상인들입니다.”
포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도성은 동서남북으로 나뉘는데 황궁과 정륭가는 동쪽에 위치했고 오일의는 전에 황제를 가까이에서 모시던 신하였기 때문에 정륭가에 위치한 저택이 하사되었다. 그러니 갈란군주가 제일 신선한 계내금이 필요했다면 분명 동쪽에서 구입했을 것이다.
정 부윤은 아래에 있는 상인들을 쳐다보며 경당목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너희가 도성 동쪽에서 닭과 양을 파는 상인들이냐?”
“예, 대인.”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회색 옷의 한 영감이 답했다.
“그래.”
정 부윤은 아래를 쓱 훑어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무릎을 꿇고 있는 이 여자를 아느냐?”
상인들은 어리둥절해하며 서로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무릎 꿇고 있는 이 처자가 설마 어제 말했던 그…….”
“맞아, 맞아. 분명 그 처자일 거야.”
갈란군주 일은 여기저기서 쑥덕거려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정 부윤은 버릇없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는 경당목을 또 세게 내리쳤다.
“정숙! 정숙하거라! 지금 본관이 너희들에게 저 여자를 아느냐고 물었다.”
상인들은 그제야 몸을 떨더니 다들 목을 빼고 만심을 쳐다봤다. 한참이 지나서야 사람들은 잇달아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모르는 처자이옵니다.”
갈란군주는 시선을 아래로 하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위로 당겼고, 정 부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황제가 이미 손을 다 써 놨으니, 이 관문만 무사히 넘기면 이 까다로운 사건은 끝이 나는 것이다.
반면 오 부인은 표정이 차갑게 변하더니 이 상인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물었다.
“보름 전에 누군가가 너희들 좌판에서 계내금과 흑양갑을 사 가지 않았느냐?”
“망신살 뻗치는 짓은 그만하시오!”
이때, 상석의 오 노야가 어두운 얼굴로 오 부인을 꾸짖었다.
‘정말이지 어리석고 미련한 여편네야.’
그러자 오 부인이 증오가 끓어 넘치는 눈빛으로 오 노야를 노려보며 따졌다.
“물어보는 것도 안 됩니까? 아들이 젊은 나이에 요절했는데 신중을 기하는 것도 안 된다는 거예요? 나리에게는 죽은 아들이 애처롭단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겁니까?”
오 노야는 축 처진 얼굴 근육을 파르르 떨 뿐 바로 되받아치지 못했다.
“원래 사건을 이렇게 처리하는 겁니까? 이리 대충 처리해요?”
오 부인은 정 부윤을 노려보며 닦아세웠고 정 부윤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그녀를 다독였다.
“부인, 일단 진정하세요. 부인이 묻지 않아도 본관이 물을 겁니다.”
그는 그리 말하며 경당목으로 탕탕 소리를 냈다.
“오 부인께서 제대로 질문했다. 그 물건들을 사 간 이가 있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