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8화
“오지 말라고……!”
퉁퉁한 남자는 계속해서 울부짖다가 할 수 없이 밖에 있는 귀신을 향해 계속해서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오늘은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전에 귀신을 보았을 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움직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말도 할 수 있었다! 그는 생각을 하다가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저기, 형님인지 누님인지 아저씨인지 아주머니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누구시든 간에… 절 좀 놔주세요……!”
“맞아요. 살려 주세요……!”
뒤에 숨은 마른 남자와 영감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죽이거나 잡아먹으려거든 앞에 있는 이놈을 잡아먹으세요! 이 사람은 살이 많잖습니까!”
사람을 산 제물로 떠미는 작태에 퉁퉁한 남자는 화가 나 머리가 다 어질어질했고, 뚱뚱한 사람에 대한 세상의 악의적인 시선을 또 한 번 고스란히 느꼈다. 하지만 너무 무서운 탓에 욕설조차 내뱉을 수가 없었고 그저 눈물 콧물만 마구 흘리고 있었다.
“이 악독한 여편네… 죽어라, 죽어!”
밖에 있는 귀신은 처량하면서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저기 노형老兄… 제발 저희 좀 봐주세요!”
세 사람은 놀라서 나오는 대로 얘기를 늘어놨다.
“저흰 악독한 여편네가 아닙니다. 자세히 보세요, 저희 세 사람은 아무리 봐도 여자처럼은 안 보이지 않습니까? 아이고…….”
“악독한 여편네가 죽지 않으면 너희들이 죽는다! 너희들이 죽어! 너희들이!”
밖에 있는 귀신은 처참하게 울부짖으며 손톱이 길게 자라난 두 손으로 문양이 새겨진 나무 창문을 죽어라 두드려 댔다. 쾅쾅쾅! 문양이 새겨진 창살에선 쉴 새 없이 삐거덕삐거덕 소리가 났고 창문은 언제든 넘어갈 것처럼 보였다.
“으아악……!”
세 사람은 깜짝 놀라서 죽어라 비명을 질러 댔다.
“악! 피, 피, 피가! 으아아악!”
마른 남자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바닥을 딱 가리키며 악악댔다. 퉁퉁한 남자와 영감이 고개를 숙여 보니 과연 검붉은 액체가 한가득 문틈으로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사, 사람 살려! 사람 살려!!”
하지만 그들의 날카로운 비명에도 문을 치는 소리는 점점 더 크게 울릴 뿐이었다. 귀신의 얼굴은 창살에 얼마간 가려져 있는데도 피범벅이라 참으로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세 사람은 두려운 나머지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지만 이미 다리에 힘이 풀려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이 몹쓸 것!!”
이때, 밖에서 싸늘한 호통 소리가 울려 펴졌다. 그러자 그 귀신은 ‘악’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더니 휙 모습을 감추었다.
세 사람은 갑자기 귀신이 사라진 모습을 보고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계속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들은 귀신이 있던 방향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잠깐이라도 그곳을 보고 있지 않으면 그 귀신이 다시 나타나 자신들의 목숨을 거둬 갈 것처럼.
그런데 이때, ‘쿵’ 하고 대문을 열어젖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수염과 눈썹이 희끗희끗한 노승이 그곳에 나타났다.
“에휴. 다 자네들이 자초한 일이네. 인과응보인 게지.”
노승을 발견한 세 사람은 바로 눈물 콧물을 쏟으며 그에게로 기어갔다.
“신선 어른! 대사님! 저희 좀 살려 주세요.”
퉁퉁한 남자는 노승의 다리를 꽉 끌어안더니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사정했다.
“대사님, 저 좀 살려 주세요. 저 귀신을 없애 주세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하나 노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네들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바로 자네들이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귀신에게 괴롭힘을 당했겠습니까?”
노승을 쳐다보는 퉁퉁한 남자는 그를 이미 구세주로 여기고 있었다. 귀신을 본 며칠 중 오늘은 그가 유일하게 귀신을 보고도 움직일 수 있고, 말도 할 수 있으며, 정신도 가장 또렷했던 날이었다.
전에는 비몽사몽간에 밖에서 귀신이 문을 두드리는 모습을 봤고 무서워 죽을 것만 같은데도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몸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두려운 나머지 이곳저곳 찾아가 귀신을 물리치는 굿도 해 봤고 심지어 절에서 지내기도 했지만, 귀신은 어딜 가든 그를 쫓아왔고 정말 미치기 일보 직전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오늘 밤, 이 대사가 나타나 호통만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이다. 그러니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으랴.
노승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맞습니다. 저희들은 전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방법을 알려 주십시오.”
마른 남자는 빨개진 눈을 비비며 대사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자 노승이 말했다.
“음양유별陰陽有別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에겐 인도人道가 있고 귀신에겐 귀도鬼道가 있는 법이네. 인과가 없다면 어째서 이런 못된 귀신이 자네들에게 들러붙겠는가?”
퉁퉁한 남자는 고개를 힘껏 젓는 바람에 얼굴에 붙은 살이 쉼 없이 떨렸다.
“대사님, 알아듣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 귀신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오일의네!”
노승은 희끗희끗한 눈썹을 추켜올렸다.
“아니! 오, 오일의요?”
세 사람은 깜짝 놀라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더니 두 눈을 부릅떴다.
“이제 알겠는가?”
“아, 아니요. 저흰 모르겠습니다.”
퉁퉁한 남자는 머리를 어찌나 휘저어 대는지 눈물 콧물을 흩뿌릴 지경이었다. 마른 남자와 영감도 이런 건 알고 싶지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공포스럽기만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승은 모르고 싶어 하는 세 사람에게 똑똑히 짚어 줬다.
“자네들이 그 여자에게 그런 걸 팔았으니 오일의의 입에 독약을 넣은 것과 다름없는 게지!”
“저와는 관계없는 일입니다. 저희는 그때 그런 줄 몰랐습니다, 조금도 몰랐어요!”
“흥.”
퉁퉁한 남자가 우짖었으나 노승은 작게 콧방귀를 뀔 따름이었다.
“자네들이 몰랐으니 이 정도인 게지, 알았다면 벌써 자네들의 목숨을 가져갔을 거네.”
세 사람은 몸을 떨었고 마른 남자는 홀쭉한 말상의 얼굴로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렇게 대단한데 어째서 자신을 해친 사람의 목숨을 당장 가져가지 않는 겁니까?”
그러자 노승이 말했다.
“그 여인은 고승이 그려 준 영험한 부적을 몸에 지니고 있어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네. 그러니 그 귀신이 억울한 사정을 털어놓을 데가 없어 자네들을 찾아온 게지. 만약 자네들이 감히 거짓을 고한다면… 그 귀신은 자네들을 잘근잘근 씹어먹을 거네!”
퉁퉁한 남자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고 영감은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말했다.
“아미타불.”
“자네들이 알아서 하게.”
말을 마친 노승은 돌아서서 그곳을 떠났다.
“대사님!”
퉁퉁한 남자가 그를 붙잡았으나 대사는 이미 돌아서서 문밖으로 나간 후였고, 그의 모습은 홀연히 사라졌다.
노승이 가 버리자 세 사람은 다시 주위에서 밀려드는 음침한 기운에 떨었다.
“어떡하지… 어쩌면 좋아…….”
퉁퉁한 남자는 두려운 마음에 눈물을 다 쏟았다. 그런데 마른 남자가 영감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르신… 어, 어르신도 얼마 전에 귀신에게 시달렸습니까?”
영감은 낯빛이 확 변했다.
“그렇네. 설마… 자네도?”
마른 남자는 영감에게서 긍정의 답변을 듣자 낯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전 원래 이런 건 안 믿었어요. 하지만 매번 그 귀신 때문에 가위에 눌려 꼼짝도 못 했고…….”
게다가 세 사람이 함께 시달렸으니 어떻게 우연일 수 있겠는가? 그리고 다들 알다시피 이 이전에는 주학해 일이 아직 벌어지지 않았으니 노승의 말이 사실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떡하죠? 아, 우리 내일 자백합시다!”
“그건 안 돼요.”
퉁퉁한 남자의 자문자답에 마른 남자는 바로 거절했다.
“방금 전에 채 공공이 왔었잖아요. 자백을 한다면 황제 폐하께서 진노하여 분명 우리를 잡아들여 구족을 멸하실 겁니다.”
“그럴 리가요! 그럴 리 없어요!”
퉁퉁한 남자는 고개를 힘껏 가로저었다.
“지금 하늘이 차마 이 상황을 좌시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군주에게 벌을 주려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그 군주가 저지른 악랄한 짓이 어떻게 계속해서 드러날 수 있겠어요? 우린 하늘을 대신해 정의로운 일을 하는 거예요, 선량한 행동을 하는 거라고요…….”
퉁퉁한 남자는 황제보다도 귀신이 더 무서웠고 두려워서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우리가 그 귀신을 돕지 않으면 그 귀신이 우릴 잘근잘근 씹어 먹어 뼈도 못 추릴 거예요.”
퉁퉁한 남자는 어물거리더니 소리쳤다.
“우리가 그 귀신을 돕는다면, 진실을 말해 돕기만 한다면 그보다 더 큰 공덕은 없을 거예요.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 법이니 관음보살과 하늘이 우릴 보우할 겁니다. 그 누구도 우릴 해치지 못하게 해 주실 거예요.”
두 사람도 귀신에게 내리 시달리느라 이미 한계점에 다다라 있었다. 퉁퉁한 남자의 말을 듣던 그들은 표정이 바뀌었다.
게다가 지금 진실을 말해도 죽고 거짓을 말해도 죽을 판이니, 그럴 바에야 진실을 말하는 편이 나았다! 어쩌면 오일의가 본인을 대신해 억울함을 호소해 주는 걸 보고 자신들을 보호해 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나머지 두 사람에게는 아직 이성이 조금 남아 있었다. 영감이 눈알을 굴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들어 보게, 내게 계획이 있네. 어쩌면 화를 피할 수 있을지도…….”
지붕 위의 주운환은 세 사람이 수군거리며 상의하는 모습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픽 비웃음을 지었다.
“저 살집 있는 남자가 이해가 빠르군요.”
“셋째야, 가자.”
상황이 해결됐음을 본 주비양이 냉담한 목소리로 일렀고 두 사람은 잽싸게 아래로 뛰어내린 후 살금살금 흑호 골목을 빠져나갔다.
두 사람이 마차가 세워진 골목으로 돌아오자 웬 노승이 한 손엔 깨진 사발을 다른 한 손엔 막대기를 들고선 그들을 향해 뛰어왔다.
“돈 주시오! 돈!”
그러자 주운환의 잘생긴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옷소매 안쪽을 더듬어 은병銀餠 한 줌을 꺼내 그 사발에 넣어 줬다.
“겨우 열 개?”
노승은 사발을 쳐다보더니 두 눈을 치뜨며 말했다.
“당신은 후야 아니오!”
이때, 긴 머리칼을 휘날리는 귀신이 달려오더니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는 여양이었다. 그는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대충 닦더니 ‘퉤’ 침을 뱉곤 이렇게 말했다.
“이 빌어먹을 중놈아. 우리가 네게 연기를 해 달라고 부탁하기라도 했더냐? 네가 우리 형님의 역할을 빼앗아 갔어.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와 중 연기는 중이 해야 한다고 우기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제 와서 돈이 적다고 푸념하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