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7화
주운환은 가는눈을 뜨더니 주비양을 따라 지붕 위에 엎드렸다. 두 사람이 기와 한 장을 떼어 내니 본채가 한눈에 들어왔다. 중간엔 팔선상이 놓여 있었고 남자 셋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중간에 있는 남자는 회색 옷을 입은 육십 대 정도의 영감이었고 양쪽에 앉은 마른 남자와 퉁퉁한 남자는 사십 대로 보이며 무명옷을 입고 있었다.
퉁퉁한 남자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어르신, 형님. 두 분도…….”
그는 쭈뼛거리며 두 사람을 쳐다봤다. 그러자 영감과 마른 남자는 서로 눈을 맞추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퉁퉁한 남자는 여태 그들이 자신과 같은 상황인지 알지 못했다. 저녁 무렵, 갑자기 웬 사람이 둘 오더니 저를 억지로 붙잡아 이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그 뒤로 이 영감과 마른 남자도 이곳에 왔다.
퉁퉁한 남자가 말했다.
“전 도성에서 닭을 파는 사람이에요.”
그러자 마른 남자가 말했다.
“전 양을 파는 사람이에요.”
그러자 영감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 나도…….”
세 사람은 눈을 맞추더니 다들 낯빛이 확 변했다.
자신들은 형편이 어려운 백성들로 이렇다 할 유흥거리가 없으니, 평소 장사를 하거나 이웃들과 술을 마시며 한담을 나누곤 했다. 도성에서 일어난 기이한 사건이나 흥미로운 일에 대해 떠들어 대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갈란군주 일에 대해서도 얼마나 많이 입에 올렸는지 모른다.
어제 또 큰 소식이 전해졌는데 갈란군주의 여종이 주씨 가문 어린 공자를 독살하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한데 의정조차도 정확히 모르는 기이한 독약을 썼으며 결국 우연한 기회에 발각됐다는 내용이었다. 닭을 파는 상인과 양을 파는 상인의 확실한 진술이 여종을 단죄하는 데 쓰였고 결국 그 여종의 방에서 분가루로 위장한 독약을 찾아냈다고도 알려졌다.
당시 주씨 가문에서 많은 상인들을 집으로 불렀기 때문에 이들은 돌아간 뒤 이 특이한 경험을 이곳저곳에 떠벌리고 다녔다.
하지만 여기 모인 세 남자는 이 일을 듣고는 낯빛이 변했다. 그 일이 있기 전, 예쁘장한 여종이 와서 계내금이나 흑양갑을 찾았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에 겁을 먹고 무슨 대응책을 생각해 보려고 했는데, 그러기도 전에 오늘 이른 아침 오 부인이 주씨 가문을 찾아가 소란을 피웠다.
평소에 이런 얘기를 많이 했지만 이 말로만 듣던 기이하고 흥미로운 일이 자신들과 관련이 있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퉁퉁한 남자가 곁눈질을 하며 말했다.
“말할 것도 없어요. 분명 그 군주가 남편을 살해하고 흡……!”
“쉿.”
마른 남자는 얼른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주의를 줬고 영감도 놀라서 안색이 변했다.
“더 이상 말하지 말게.”
아무리 그래도 그 사람은 군주였다. 게다가 자신들은 이곳으로 끌려왔으니, 분명…….
이때,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자 방 안에 있던 세 사람은 화들짝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이어 ‘끼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더니 녹색 비단옷을 입은 위엄 있는 분위기의 노인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환갑을 좀 넘겼을 것 같은 그 노인은 손에 총채를 들고 있었는데, 낯빛은 창백하며 유순해 보이나 속은 시커먼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옷차림과 분위기를 보니 평범한 인물이 아님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의 뒤를 따라오던 어린 환관이 방 안의 셋을 쳐다보며 사나운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채 공공을 뵈고도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올리지 않는 겁니까?”
세 남자의 귀에선 ‘채 공공’이라는 세 글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려 퍼졌다. 도성 사람들 사이에서 채결은 대단히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황제를 곁에서 모시며 황제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는 신하였다!
“아……!”
세 사람은 기함해 몸을 떨었고 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듯했으나 그래도 ‘쿵’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나이가 가장 많은 영감이 개중 담력도 가장 센지라 먼저 인사를 올렸다.
“공공… 공공을 뵈옵니다……. 공공, 천세를 누리소서.”
남은 두 사람은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두려움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들의 반응에 채결은 흡족해하며 총채를 살짝 흔들더니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내가 오늘 이곳에 온 이유가 짐작이 가느냐?”
세 사람은 몸을 떨고 있었다. 이들은 오랫동안 장사를 해 온 사람들이라 하나같이 영리해서 딱 봐도 이유가 뭔지 가늠이 됐다. 하나 세 사람은 감히 아무 말도 못 했다. 말실수를 했다가 목이라도 잘리면 어찌한단 말인가?
채결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었다.
“어제 있었던 주씨 가문 공자 일을 너희들도 들었겠지? 그럼 오늘 오 부인이 주씨 가문에서 소란을 피운 일도 들었느냐?”
세 사람은 창백한 얼굴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영감이 겨우 소리를 내 대답했다.
“예.”
“좋다.”
채결은 축 늘어진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그들을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황제 폐하는 군주를 믿고 계시고 군주께서 가르친 여종이 그렇게 악독할 수 없다고 생각하신다. 너희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황제’라는 두 글자에 세 사람은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이 말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얼른 떨리는 목소리로 동조했다.
“예, 예…….”
채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탄식하며 말했다.
“난 군주를 어릴 때부터 봐 왔다. 군주는 상냥하고 선량한 분이시며 이건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다. 폐하께서는 손주들 중에서도 군주를 가장 아끼신다. 누구든 감히 군주께 억울한 누명을 씌운다면 폐하께서는 반드시 그자의 목을 베실 게다.”
세 사람은 몸과 마음이 주체가 안 될 정도로 떨렸고 이마가 땅에 닿을 듯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채결은 잠시 그들의 반응을 살폈는데, 셋 다 어찌나 벌벌대는지 가소로울 지경이었다. 웃음을 꾹 참고 채결은 말을 이어 갔다.
“그럼 묻겠다. 최근에 누군가가 한동안 너희들을 찾아와 잡다한 것들을 사 갔느냐?”
“아니요! 아닙니다!”
세 사람은 고개가 떨어져 나가라 가로저었다. 여기까지 얘기가 나왔으니 반편이라고 해도 지금 채결이 이곳에 온 목적을 알 것이었다. 그건 바로 갈란군주를 위해 위증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증인이니 반드시 공당으로 소환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만심이 와서 계내금과 흑양갑을 샀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만 한다면 만심은 무죄가 되고 갈란군주도 평판을 회복할 수 있다.
채결은 세 사람이 감히 허튼소리를 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다. 그가 허허 웃었다.
“역시 다들 성실하구나. 너희 같은 백성들이 있으니 황제 폐하께서도 아주 기뻐하실 게다. 오늘 밤은 이곳에서 보내거라. 그리고 내일 아침이 밝자마자 관아에 가야 한다.”
“예…….”
세 사람은 죽어라고 알겠다고 대답하며 덜덜 떨어 댔다.
이윽고 채결이 떠나자 잔뜩 겁을 먹었던 세 사람은 맥이 풀려 바닥에 널브러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들은 정신이 돌아왔고 마른 남자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어.”
그러자 영감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우리 얌전히 시키는 대로 하세. 허튼소리만 하지 않으면 되네.”
평범한 민초가 어찌 감히 황제의 권력에 맞서려고 하겠는가?
그런데 이때, 문이 또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세 사람은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단정한 자세로 무릎을 꿇으려고 했다.
한데 뜻밖에도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무명옷을 입은 웬 젊은 남자였다. 그는 들고 있던 이불 몇 장을 그들에게 집어 던졌다.
“오늘 밤은 이곳에서 지내시오.”
그러고는 찬합 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정교한 꽃 모양의 간식거리와 닭다리 세 개, 술 주전자 한 개가 놓여 있었다. 그는 찬합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공공께서 놀란 세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주시는 것이오. 다 먹고 마신 후에 좀 자면 내일 기운이 날 것이오.”
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고 문양이 새겨진 나무 문은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물론 이 상황에 세 사람이 어디 식욕이 있겠는가? 하지만 간식거리에서는 향긋한 냄새가 풍겼고, 아주 정교한 장미꽃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다들 가난하고 거친 사내들인데 어디 이런 정교한 간식거리를 본 적이 있겠는가? 그뿐만 아니라 탁자 위엔 술도 있었다. 된통 놀랐던 세 사람은 모두 먹고 마시며 놀란 가슴을 진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마른 남자는 술을 따랐고 퉁퉁한 남자는 간식 하나를 집어 들더니 입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맛있다! 맛있어!”
영감은 닭다리를 들었고 간식거리는 호주머니 안에 밀어 넣었다. 손자에게 먹이려고 챙기는 것이었다.
세 사람은 음식과 술을 동낸 후 이불을 바닥에 깔더니 다닥다닥 붙어 잠이 들었다.
그들은 시간도 모를 정도로 곤한 잠에 취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퉁퉁한 남자가 흠칫하며 잠에서 깼다. 주변은 칠흑같이 어둡고 오늘 밤은 달빛이 없는데도 이 집은 밖에 등이 달려 있어 흐릿하게나마 주변 사물을 볼 수 있었다.
밖에서 ‘휘익’ 바람 소리가 들려오자 퉁퉁한 남자는 낯빛이 확 변했다. 설마!
그는 생각조차 하기 싫어 그저 두 눈을 꽉 감고 얼른 이불을 위로 끌어당겨 자신을 가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불이 너무 짧아 얼굴을 가리자 발이 드러났다.
그런데 밖에서 갑자기 ‘탁’ 하는 소리가 났다.
퉁퉁한 남자가 놀라 두 눈을 뜨자 머리가 산발인 귀신이 바깥문에 서 있는 게 아닌가! 그 귀신은 문양이 새겨진 창살을 두 손으로 두드리며 썩은 동태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윽!”
퉁퉁한 남자는 두 눈을 크게 뜨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또 왔다! 또 왔어! 이번엔 귀신이다! 아아악!”
퉁퉁한 남자가 큰소리로 외치자 마른 남자와 영감도 두 눈을 번쩍 뜨더니 귀신을 보고는 역시 창백한 얼굴로 비명을 질러 댔다.
“으아악!”
두 사람은 왁왁 고함을 지르며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고야!”
퉁퉁한 남자는 눈물 콧물을 질질 흘렸다. 하지만 이 집은 어디 숨을 곳도 없었다.
“오지 마!”
마른 남자와 영감은 퉁퉁한 남자를 인정사정없이 밖으로 밀어내며 그의 뒤로 몸을 웅크렸다.
퉁퉁한 남자는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이 귀신을 처음 본 게 아니었다. 이 귀신은 일주일쯤 전부터 밤이면 밤마다 그를 찾아왔다. 오늘 또 이 귀신을 본 그는 오줌을 지릴 것만 같았다.
같이 잡혀 온 두 사람은 자신보다 더 몰인정한 사람들이었다. 자신을 방패 삼고 등 뒤에서 몸을 웅크리니 말이다! 제 몸뚱이가 두 사람을 가려 주기에 충분하기는 하나… 그렇다 해도 사람을 이렇게 괴롭히면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