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686화 (686/858)

제686화

그 시각 일상원.

주 백야는 뒷짐을 진 채 서차간에서 왔다 갔다 했고 탑상에 앉아 있는 진씨는 정신없이 구는 주 백야를 쳐다보며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나리, 가만히 좀 계세요. 그렇게 심각한 일이 아니에요.”

주 백야는 고개를 홱 돌리더니 어이없어했다.

“세상에. 이게 어떻게 심각한 일이 아니란 말이오? 벗과 함께 겨우 반나절 동안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집안사람이 감옥에 들어가 있는 꼴을 보게 되지 않았소.”

그는 진씨의 반응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황당해했다. 그러자 진씨가 어두운 얼굴로 대뜸 받아쳤다.

“무슨 집안사람이 감옥에 들어갔다는 겁니까? 지금 감옥에 들어간 사람은 일개 여종에 불과해요! 게다가 그 앤 감옥살이를 하는 게 아니라 억울한 누명을 쓴 겁니다.”

“지금 진심으로 억울한 누명을 썼다고 말하는 것이오?”

주 백야는 어제 있었던 주학해 일을 떠올리고는 부르르 떨었다.

“그게 아니면요?”

진씨는 조급한 마음에 사납게 쏘아붙이듯 되묻고는 얼른 말을 덧댔다.

“나리, 마음 푹 놓으세요. 폐하는 군주의 친조부이십니다. 군주의 여종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건 군주의 체면을 깎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요. 폐하께서는 당연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 용납하지 않으실 겁니다.”

주 백야는 순간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고 탄식을 멈추지 못했다.

“집안에 어찌 이리 많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이오? 그 앨 며느리로 들이지 않았다면 잡다한 일이 이리 많이 생겼겠소?”

그의 말투엔 원망이 섞여 있었다. 진씨는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순간 성질을 내더니 들고 있던 찻잔을 항탁 위에 탁 내려놓고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 일이 년 동안 집안에 잡다한 일이 벌어진 게 어디 한두 번이었어요?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저희 집안은 줄곧 평안했어요. 나리께서 셋째 며느리만 집안으로 데려오지 않았다면 어디 이런 잡다한 일들이 이렇게나 많이 생겼겠습니까?”

그러자 주 백야는 표정이 굳어지더니 얼른 이렇게 반박했다.

“당치 않은 소리 마시오. 두 일을 어떻게 함께 논할 수 있겠소? 셋째 며느리가 집안에 들어온 후로 셋째는 장원 급제했고 후야도 되었소.”

진씨는 주운환의 성공을 다시 상기하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냉소적인 웃음을 띤 채 차갑게 말했다.

“셋째가 장원 급제했고 후야가 되긴 했지만, 그 전에 엽씨 가문은 난장판이지 않았습니까? 난잡한 일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죠. 하지만 결국 셋째에겐 좋은 일들이 생겼죠!

지금 란이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은 좀 어수선하지만 이 일이 지나고 나면 비양이가 잘되게 해 줄 거고 집안 체면도 한껏 세워 줄 겁니다.”

주 백야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집안에 일이 벌어질 때마다 종국에는 호사다마였구나, 깨닫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진씨는 갑자기 매서운 눈으로 주 백야를 노려보며 말했다.

“방금 전에 했던 말은 절 탓하신 겁니까? 제가 오일의의 망령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죽어도 나리는 대수롭지 않으시다는 거예요?”

갑자기 자신에게 불똥이 튀자 주 백야는 소스라치며 손사래를 쳤다.

“당신도 참. 나는 그저 걱정이 되어 그런 것뿐이오.”

“셋째 나리께서 오셨습니다.”

이때, 밖에서 녹엽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주 백야가 기뻐하는데 발이 촤락 소리를 내며 걷혔고, 주운환과 엽연채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아버지.”

주 백야에게 인사한 주운환이 냉담한 눈빛으로 진씨를 쓱 쳐다봤다.

“어머니.”

진씨는 주운환을 보니 이가 갈렸다. 하필 이런 때에 돌아온 걸 보니 분명 웃음거리가 된 주비양 부부를 보며 고소해하려는 게 틀림없었다.

“셋째야, 왔구나. 집안에 일이 생겨 난장판이 되었단다.”

주 백야는 하소연하듯 주운환에게 말을 붙였다. 집안에서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이 돌아왔으니 주 백야의 마음은 마침내 조금 진정이 되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느냐?”

주 백야는 간절한 눈으로 주운환을 쳐다봤다. 그러자 주운환이 날카로운 눈썹을 추켜올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그 말씀은 좀 우습군요. 뭘 어찌한단 말입니까? 이미 관아로 넘겨졌으니 관아에서 판결하게 놔두면 됩니다. 게다가 어차피 일개 여종에 불과한데 아버지는 뭘 그리 불안해하시는 겁니까?”

주 백야는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 갈란군주에게 영향이 갈까 봐 두려워하는 줄 정말 몰라서 이리 말한단 말인가?

한편, 진씨는 주운환의 침착한 모습을 쳐다보며 하하 웃음을 지었다.

‘만심이하고 갈란군주를 처리할 수 있다고 얕보는 게지.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마님.”

방 안에 불편한 공기가 퍼지려는 순간, 녹엽이 안으로 들어왔다.

“관아에서 소환장을 보냈습니다.”

녹엽이 내미는 담황색 첩자 위엔 관아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진씨는 첩자를 쳐다보기도 싫어 그대로 녹엽에게 던지며 분부했다.

“그 애에게 가져다주거라.”

진씨는 이 첩자를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녀는 갈란군주를 보호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여전히 노여워하고 있었다.

엽연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일 군주께서 공당에 나가야 하나 보죠?”

그러자 진씨는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 엽연채가 마치 갈란이 용의자인 것처럼 말을 했으니 말이다. 그에 진씨는 성난 목소리로 강조했다.

“증인으로 나가는 거다.”

엽연채는 냉소를 짓고는 하품을 했고, 주운환은 주 백야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버지,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 참, 내일 군주가 공당에 나가야 하니 우리도 가서 그 애 곁에 있어 주자꾸나.”

주 백야가 이리 말을 보태자 엽연채는 풉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예.”

주운환은 엽연채를 끌어당겼고 방에서 나온 두 사람은 함께 궁명헌으로 향했다. 혜연과 청유는 부부 뒤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청유야, 내일 심리를 한대. 원래 공당 아래에 있어야 할 사람은 갈란군주인데 지금 여종이 군주를 대신해 무릎을 꿇고 있는 거지. 그 여종에게 정말 감사해야 할 일 아니니?”

“어이가 없는 게 어디 그것뿐인가요. 심문을 받는 사람이 여종이잖아요. 다들 눈먼 장님이 아닌데 군주가 한 짓이라는 걸 누가 모르겠어요? 파렴치한 위선자 같으니라고. 퉤!

그러고 보면 다 자업자득이에요. 일을 여종에게 떠넘기지 않았다면 대리시에서 비밀리에 심리했을 거잖아요. 그럼 공당에 나와 백성들이 보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체면을 깎이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건데요. 내일 오씨 가문 사람들도 다 올 텐데 그럼 아주 난리도 아닐 거예요.”

청유의 말에 혜연은 조금 걱정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분은 군주야…….”

황제가 자기 손녀에게 그런 평판이 생기도록 놔둘 리가 있겠는가? 황실은 그런 일로 체면을 깎여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두 사람의 얘기를 듣던 엽연채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끼어들었다.

“우린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이 말에 청유와 혜연은 엽연채가 이미 준비를 마쳤다는 걸 알게 되었고, 저도 모르게 기대감이 잔뜩 부풀어 올랐다. 전에 주학해 일도 자신들의 손을 거쳤지만 밖의 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지 않은가. 그럼에도 일은 완벽하게 해결됐고 말이다.

궁명헌으로 돌아오자 주운환은 높이가 낮은 탁자에 앉아 이름을 한가득 적더니 엽연채에게 골라 보라고 했다. 다섯 달 뒤면 아이가 태어나니 이제 이름을 정해야만 했다.

자시子時(밤 11시~새벽 1시)에 가까워지자 주운환은 검은색 옷으로 갈아입은 후 궁명헌을 떠났다.

엽연채는 탑상에 앉아 작은 내의의 옷깃에 수를 놓고 있었다. 이 작은 옷은 아이에게 줄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날 땐 날씨가 무더울 테니 아마 바로 입히지는 못할 터였다. 그래도 부드러운 옷감을 손에 쥐고 있으니 괜스레 아이를 위해 한 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리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청유는 차를 들고 와 엽연채 옆에 내려놓더니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마님. 나리는 상인들을 찾으러 밖으로 나가셨습니까?”

“그래.”

엽연채는 고개도 들지 않고 계속해서 수를 놓았다. 혜연과 청유는 서로 눈을 맞추더니, 서로의 시선에서 이 사건의 열쇠가 무엇인지 짐작했음을 읽어 냈다.

* * *

주학해 사건 해결의 열쇠는 상인이었다.

주학해의 뒤통수에서 붉은 반점을 발견했기 때문에 아이가 연지묵에 중독된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진범을 지목한 상인들이 없었다면 오리무중으로 빠졌을 터였다. 그 외에 매일 닭과 양을 파는 노점에 가서 신선한 계내금과 흑양갑을 사 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만약 오일의도 연지묵에 중독되어 목숨을 잃은 거라면 독을 섭취했던 기간 동안 분명 이 두 가지 보조 약재를 써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사건 해결의 열쇠는 이번에도 증인이었다.

물론 이 사실은 황제와 평왕비 등도 당연히 짐작이 갔을 것이다. 그러니 분명 사람을 보내 증인들을 협박할 것이다. 하여 주운환은 지금 그 증인 둘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외출한 것이었다.

주운환은 여한과 여양을 데리고 작은 마차에 올랐고, 마차가 주씨 가문 저택을 나서자 이리 물었다.

“어디에 있느냐?”

“도성 서쪽에 있는 흑호黑胡 골목에 있습니다.”

여양이 밖에서 말을 몰며 답했다.

요 이틀간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아 낮이든 밤이든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지금 달도 가려진 밤하늘 아래 홀로 지나가는 작은 마차는 쓸쓸해 보였고, 가장자리에 달린 풍등은 바람에 날려 불빛이 깜박거렸다.

마차는 삼각을 달리고 나서야 마침내 자리에 멈춰 섰다.

이곳은 바로 도성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인 서쪽 지역이었다. 이곳에 지어진 집들은 작고 허름했고 등잔에 넣을 기름을 아끼기 위해 사람들은 일찌감치 불을 끄고 잠을 청했다.

하나 이곳은 흑호 골목이 아니라 흑호 골목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작은 골목이었다.

주운환은 마차에서 내린 후 곧장 여양과 함께 골목에서 나오더니 쥐도 새도 모르게 흑호 골목에 도착했다. 저 멀리 일렬로 늘어선 작은 집들이 보였는데 어느 집이든 어둡기 일색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중간에 위치한 작은 집 한 채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주운환은 눈을 가늘게 떴다. 생각해 보지 않아도 그들이 저곳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입꼬리를 올리더니 단숨에 담장 위로 뛰어올랐고 불 켜진 집의 지붕 꼭대기를 살며시 밟고 있는데 그곳엔 이미 한 사람이 엎드려 있었다.

“다 여기에 있습니까?”

주운환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대답하며 고개를 돌린 이는 다름 아닌 주비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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