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2화
살이 떨릴 만큼 표독스러운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기겁했으나 이내 동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그녀의 깊은 분노를 느끼지 못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 독한 여편네……! 내가 무슨 억울한 누명을 씌웠다는 거야!”
창백한 얼굴의 오 노야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반박했다. 그는 피가 철철 나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붙잡고 있었는데, 출혈도 적지 않고 고통도 상당해 식은땀을 흘렸다.
“일의… 일의는 병으로 죽었소. 그 아이가 지하에서 고통을 받으니 우리가…….”
“에이, 퉷!”
오 부인은 사정없이 침을 갈기더니 목을 위로 쳐들고는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갈란군주는 내 아들을 독살하자마자 바로 주씨 가문으로 시집갔어. 순조롭게 출가하기 위해 평왕비는 진씨와 함께 소문을 꾸몄지. 내 아들이 갈란군주에게 시집을 가라고 했다고 말이야. 퉤! 내 아들은 스스로 오쟁이를 질戴绿帽子(아내가 다른 남자와 간통한다는 중국 관용구) 애가 절대 아니야!
오일봉이 4품으로 승진하게 되자마자 당신은 아직 시신도 식지 않은 아들마저 팔아 버린 거야! 오영요, 그리고 너희들. 너희들은 다 곱게 죽지 못할 거다! 전부 다 곱게 죽지 못할 게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대강 알아들었다. 갈란군주는 오일의를 독살했고, 곧바로 주비양에게 재가하기 위해 진씨와 함께 오일의의 망령 이야기를 꾸민 것이다.
그리고 오일의의 친아버지인 오 노야는 원래 동의하지 않았지만 정선제가 그의 서자 아들을 4품으로 승진시켜 주자 바로 입장을 바꿨단 소리였다.
심지어 그는 갈란군주가 출가할 때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간청하는 말까지 쏟아 내어 갈란군주가 강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시집을 간다는 인상을 남겨 줬다.
즉, 오씨 일가 사람들은 한 발 한 발 오일의의 시체를 밟으며 걸어온 셈으로, 그들의 발이 온통 선혈로 물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허튼소리 마세요. 큰형님은 분명히 우리 꿈에 현몽했어요. 어머니 꿈에도 현몽했고요. 어머니가 받아들이길 원치 않으셨던 것뿐이죠.”
오일봉이 창백한 얼굴로 앞으로 다가서자 오 부인은 크게 냉소를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하하하! 내 아들의 시신을 밟고 승진하니 아주 통쾌하더냐?”
오일봉은 낯빛이 확 변하더니 성난 목소리를 냈다.
“이, 이 무례한! 무슨 허튼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전 형님의 시신을 짓밟은 적이 없어요! 어머니야말로 아버지의 몸을 상하게 하셨죠! 어서 집으로 돌아가요! 체면 구기는 짓은 그만하시라고요!”
그는 그리 말하며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오 부인의 뺨을 쳐 기절시킨 다음 끌고 갈 요량이었다. 그런데 그가 쳐들기 무섭게 주위에 있던 백성들이 바로 벌집을 쑤신 듯 들끓었고 하나같이 성난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이 고얀 놈. 넌 누구냐?”
“저 사람은 오일봉이에요. 오일의의 남동생이자 오 부인의 서자이죠.”
“저런 괘씸한 놈. 감히 적모에게 손찌검을 하려고 하다니!”
“세상에. 이리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도 감히 저런 불효를 저지르는데 사적인 공간에선 얼마나 오만방자하게 굴며 적모를 짓밟아 왔을까?”
“이런데도 오일의의 시신을 짓밟은 게 아니라고? 그 대가로 승진을 하고 부자가 된 게 아니란 거야?”
“그래! 오일의가 정말로 독살당했는지 아닌지는 제쳐 놓자고. 어쨌든 그자의 죽음 때문에 황제 폐하께서 오씨 가문을 위로하려고 저자의 관직을 높여 주신 거잖아. 당신 말이야, 오일의 때문에 승진한 거잖아! 그래 안 그래!”
“맞아, 당신은 오일의의 시신을 밟고 위로 올라간 거야. 당신이 고의로 그런 건 아니라고 해도 그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이익을 본 건 사실이잖아. 그런데 당신은 감사한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나 봐. 길거리에서 그 사람의 적모까지 때리려 해? 이 짐승만도 못한!”
흥분한 백성들이 다들 한마디씩 하느라 계속해서 그의 몸에 침방울이 튀었다.
오일봉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높이 들어 올린 손에선 화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손을 거두기도 뭐하고 거두지 않기도 뭐한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오 노야도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고 수치심과 분노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계단에 서서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채결을 보자 이런저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에 서둘러 이렇게 말했다.
“이 막돼먹은 여편네야, 그만 집에 가자고!”
“내가 왜?”
하지만 오 부인은 또다시 차디차게 웃을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뭐가 두려운 건데? 내가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군주와 황제 폐하의 노여움을 살까 봐 두려운가 보지?”
그러자 오 노야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두려웠다. 지금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측근이 이곳에서 자신을 빤히 보고 있으니 어찌 두렵지 않을까.
하지만 백성들의 수많은 눈이 멸시하는 빛을 쏘아대고 있으니 오 노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자신이 계속 오 부인의 행동을 제지하며 억지로 귀가시키면 오히려 황제를 의롭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게 될지도 몰랐다.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오 노야는 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내 손! 내 손……!”
“어서 가서 태의를 불러야겠어요.”
그 속뜻을 읽은 오일봉은 고개를 돌려 오 노야의 손을 붙잡았고 부자는 허둥대며 자리를 떠났다.
방해꾼이 떠나자 오 부인은 계속해서 큰 소리로 우짖었고 오일의의 관을 두들겨 댔다.
“비참하게 죽은 내 새끼.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이 짐승만도 못한 것들! 아악! 너희들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이때, 장정 여럿이 우르르 달려 나오더니 오 부인을 끌고 가려고 했다. 이들은 주씨 가문 하인들이었다.
“끌고 가거라! 끌고 가!”
진씨는 계단에서 성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당신이 감히! 날 죽이려 하는구나! 죽이려고 해!”
오 부인은 소매 안쪽에서 가위 하나를 홱 꺼내더니 자신의 목에 대고 위협했다.
“난 당신들 집 대문 앞에서 목숨을 끊을 거야. 그리고 악귀가 되어 산 채로 당신들의 껍질을 벗겨 통째로 집어삼킨 다음 전부 지옥으로 끌고 갈 거야.”
“저건 너무한 거 아냐…….”
주위에 있던 백성들은 화가 난 눈빛으로 진씨를 노려보며 입을 모았다.
“저 부인 아들이 갈란군주에게 독살당했는데 이젠 그 어머니까지 죽이려고 하네.”
낯빛이 창백한 진씨가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허튼소리! 갈란군주가 언제 오일의를 독살했다는 거야? 당시 오일의는 중상을 입어 큰 병을 얻은 상태였어. 의원에게 보이지 않았어? 의원이 뭐라도 발견해 냈어? 증거가 있냐고? 증거! 검시를 하든가!”
갈란군주가 오일의를 독살했을 리가 있겠는가. 진씨도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주학해 일이 있었으니, 진씨는 생각하면 할수록 낯빛이 점점 더 종잇장이 되어 갔다.
“증거?”
오 부인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주학해가 바로 증거야. 당신 손자도 하마터면 병으로 죽을 뻔했잖아. 그런데 태의들이 뭔가를 검출해 냈어? 우연히 연지묵이라는 이상한 약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당신 손자에게 독약을 썼다는 걸 아무도 믿지 않았겠지. 그런 이상한 독은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는 더더욱 흔적도 남지 않아.”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요?”
진씨가 차가운 목소리로 거듭 물었다.
“아무것도 검출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독살을 당했다고 주장할 수 있냐고?”
“아무튼 난 인정 못 해. 내 아들은 독살당한 거야. 독살당한 거라고!”
오 부인의 통곡이 이어졌다.
주위에 있는 백성들은 그 비참한 모습을 보니 몸과 마음이 모두 떨렸다. 다들 이미 오 부인의 말에 설득된 후였다. 그녀는 아들의 무덤을 파헤쳐 관까지 꺼내 왔다. 정말로 억울한 사정이 있지 않고서야 세상 어떤 어머니가 이렇게 하겠는가.
“끌어내거라! 끌어내!”
그러나 진씨는 창백한 얼굴로 소리를 왁왁 질렀다. 오 부인의 생사 같은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인들은 할 수 없이 또 앞으로 나왔다. 하지만 오 부인에게 손을 대기도 전에 주위에 있던 백성들이 그들을 홱 밀쳐 버렸다.
“이건 사람을 죽여 입막음을 하려는 거잖아? 오 부인이 가위를 자기 목에 대고 있는데 끌고 가려는 건 부인을 죽이려 하는 것하고 뭐가 달라?”
“갈란군주는 주학해를 독살하려고 한 사람이야! 오일의를 독살한 게 뭐가 이상한 일이겠어!”
“악독한 여인이야! 정말이지 악독한 여인이라고! 남편을 살해하다니,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채결은 화가 나 몸을 파들대더니 총채로 아래를 가리키며 날카로운 목소리를 냈다.
“주학해 일은… 군주께서 벌인 일이 아니다. 군주의 여종이 분부에 따르지 않고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이다.”
그러자 아래에 있는 백성들은 멸시로 가득한 눈빛으로 채결을 쳐다봤다.
‘갈란군주가 벌인 짓인지 아닌지는 다들 알고 있거든! 여종이 그랬다고? 에라이, 퉤!’
“누가 했든 간에 어쨌든 갈란군주가 내 아들을 독살한 건 바뀌지 않아!”
오 부인이 소리를 질렀다.
“여종이 했다고 했지? 그럼 그 여종을 데리고 나와 공당으로 끌고 가 심문을 하면 되겠네!”
“맞아, 맞아. 혐의가 있고 살인 사건이니 당연히 심문을 해야지! 반드시 심문을 해야 돼! 관아에 신고하자!”
백성들도 다들 큰 소리로 외쳤다.
채결은 낯빛이 어두웠고 진씨도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조소하며 오 부인이 울부짖었다.
“하하하! 왜 내놓지 못하는 거야? 상전에게 독을 썼으니 그런 여종은 당연히 초주검이 되도록 맞아야 해. 어차피 죽기는 매한가지인데 왜 심문을 하지 않으려는 거지? 어쩌면 그 여종이 자기는 어쨌든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해 자백을 할지도 모르잖아! 그 여종이 진상을 말한다면 내 아들도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거야.”
“맞아요. 공당으로 끌고 가 심문해야 마땅해요!”
백성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동조하며 소란을 피웠다.
진씨와 채결은 화가 날 대로 난 나머지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주학해 일을 만심에게 떠넘기기는 했지만 사람들도 확실히 꿰고 있었다. 실제 흉수가 갈란군주란 사실을 말이다.
이 상황에서 오일의가 독살됐다고 증명된다면 그가 갈란군주를 재가시키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음도 따라서 밝혀지게 돼 있었다. 모두 갈란군주가 벌인 자작극임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었다.
상중에 시집을 새로이 가려고 그리 열과 성을 다했는데 그럼 평판이 얼마나 더 더럽혀지겠는가. 지금도 평판이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데 말이다.
백성들은 계속해서 공당과 심문 따위를 외쳐 댔고, 오 부인은 무섭게 진씨를 몰아붙였다. 결국 진씨는 만심이 평왕부로 보내졌으니 평왕부에 가서 만심을 찾으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정 마마가 뛰어나오더니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죽여 고했다.
“마님, 큰일 났습니다. 만심을 보내려고 했는데 서쪽 측문과 동쪽 측문이 모두 사람들에게 막혀 있었습니다. 아무리 쫓아내려고 해도 전혀 물러서지 않고, 하나같이 군주께서 의붓아들에게 독을 썼으니 오일의에게도 독을 써서 살해했을 거라고 주장하더라고요. 만심이가 벌인 짓이라고 말하니 그럼 만심이를 관아로 넘기라고 억지를 써 대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