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680화 (680/858)

제680화

사람들은 갈란군주 일을 두고 여기저기서 쑥덕거렸다.

결국 이 일은 진작에 정선제와 정 황후의 귀로 들어갔다.

어제 갈란군주가 나 의정을 부른 것이 발단이었다. 나 의정은 정선제의 태의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황에선 왕진을 하지 않았다. 하여 갈란군주는 만심에게 자신의 영패令牌를 들고 궁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당시 나 의정과 정선제는 어화원御花園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채결이 만심을 데려왔고 그때 만심은 이렇게 말했다.

“도련님이 병이 나셨는데 오랫동안 치료를 했는데도 낫지 않고 있습니다. 이 태의와 육 태의 모두 도련님을 진찰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어제 두 이낭도 병이 났는데 사실 그 두 사람은 병이 난 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밖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고… 다들 군주께서 주씨 가문 사람들을 잡아먹는 거라고 떠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건 별일 아닌 축에 속합니다……. 더 악랄한 소문은 군주께서 독을 써서 의붓아들을 살해하려고 했다는 겁니다. 물론 저희 군주는 도련님 털끝 하나도 상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여 나 의정에게 왕진을 부탁드리려는 겁니다. 도련님의 상태를 봐 주세요.”

당시 만심의 그 억울한 표정을 보며 정선제는 당연히 분노했다. 만심이 자신의 손녀를 대신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즉시 나 의정에게 출궁해 주씨 가문에 가서 주학해를 제대로 진찰하라고 명했다. 누가 과연 암적인 존재이고 누가 감히 그녀의 손녀를 해하려 했는지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날 궁으로 돌아온 나 의정은 사실 모든 게 갈란군주가 꾸민 자작극이었다고 고했다.

의붓아들을 독살하려 했다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방귀 뀐 놈이 성을 내듯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남을 비난했으며 황제의 힘을 믿고 일석삼조의 이득을 얻으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엽연채가 그 자리에서 사실을 폭로하여 체면이 깎이고 말았다.

보고를 들은 정선제는 화가 나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사실 정선제도 자신의 손녀가 평처가 된 것엔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정실부인을 밀어낸 다음 적장자를 처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갈란군주가 이렇게 어리석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타인이 그녀의 계획을 간파했을 뿐만 아니라 황실의 체면도 바닥에 떨어뜨릴 줄 말이다.

이제 온 도성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오늘 조회에서 조정 신하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를 쳐다보는 눈빛도 조금 달라 보였던 것 같았다.

‘손녀가 공공연한 웃음거리가 되어 버렸으니 신하들이 짐도 비웃은 게지!’

어서방으로 돌아온 정선제는 옥으로 만든 문진文鎭을 집어 던졌다. 채결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를 진정시켰다.

“폐하, 고정하십시오. 모두 그 급살맞을 여종이 벌인 짓이옵니다. 그러니 주씨 가문에서 분명 그 여종을 제대로 처리할 것입니다.”

이 일은 만심이 한 거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절대로 갈란군주가 벌인 짓이라고 인정해서는 안 됐다. 정선제가 갈란군주를 처벌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정선제는 음산한 표정으로 명했다.

“갈란에게 여종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으니 벌로 집에서 『금강경』을 백 번 필사하라고 하거라!”

정선제는 생각을 하더니 또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주학해에게 하사품을 내리거라.”

“예.”

채결은 얼른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하고는 돌아서서 문밖으로 나갔다.

이때만 해도 정선제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지금의 상황이 최악은 아니었음을 말이다. 머지않아 갑작스레 벌어진 한 사건 때문에 정선제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하게 된다.

* * *

온 도성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탓에 진씨는 어젯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녀는 어두운 얼굴로 일상원의 탑상에 앉아 있었다.

“그 고얀 것. 소문이 이렇게나 빠르게 퍼져 여기저기서 쑥덕거리는구나. 분명 엽씨 그것이 사람들을 시켜 밖에다 허튼소리를 지껄이게 하는 게다. 갈란은 황실의 군주인데 그게 감히 사람들을 시켜 군주에 관해 허튼소리를 지껄이게 하는구나, 하!”

정 마마는 낯빛이 창백해지더니 염려를 토했다.

“어제 상관운을 포함한 규수들이 그 자리에 있었고 거기에 태의들, 태의 곁의 시동까지 함께 있었습니다. 게다가 하인들도 여럿이었으니 중구난방으로 떠들어 댔을 겁니다. 군주께서 남편을 잃자마자 재가한 일은 그러잖아도 세상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군주를 주시하고 있으니 여기저기서 쑥덕거리지 않기를 바라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엽씨 그 빌어먹을 것……! 그 계집애가 일부러 그런 거였어.”

진씨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엽연채는 일부러 제민과 상관운 등 많은 사람들을 불러 집안의 웃음거리를 목격하게 했고 그런 다음에는 사람을 시켜 그 일을 다시 밖으로 퍼뜨렸다.

‘이래서야 엽연채의 약점을 잡기는커녕…….’

이때, 어린 여종 한 명이 앞으로 걸어왔다.

“마님, 큰마님께서 여종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처소 밖으로 뛰어나가 궁명헌으로 가셨습니다.”

그러자 진씨는 낯빛이 확 변했다.

“그 빌어먹을 것이 벽을 보고 반성하라고 했더니 감히 멋대로 행동해? 가서 그것을 제압해서 처소로 데려다 놓거라.”

밖엔 이미 듣기 거북할 정도로 소문이 퍼져 있는데 강심설까지 처소 밖으로 달려 나가면 강심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음을 증명하는 게 아니겠는가.

진씨가 이런 체면 깎이는 일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정 마마가 핏기 없는 얼굴로 그녀를 만류했다.

“큰마님은 벌써 궁명헌에 도착하셨을 겁니다. 설령 궁명헌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해도 이미 큰마님께서 소란을 피우셨으니 셋째 마님은 분명 알게 되셨을 겁니다. 지금 나섰다간 셋째 마님이 또 저희 앞으로 달려와 난동을 부리실 겁니다.

어제… 가까스로 그 일을 만심에게 떠넘겼는데 지금 또 소란이 일어나… 셋째 마님께서 기어코 군주께 죄명을 씌운다면… 또 한 번 풍파가 일어날 겁니다. 마님, 지금은 가급적 말썽을 일으키면 안 됩니다.”

정 마마의 말을 듣고 있던 진씨는 눈빛이 점점 더 싸늘하게 변했고 끝내는 항탁에 놓인 손을 있는 힘껏 주먹 쥐었다.

‘참자! 지금은 일단 참아야 한다! 이 일은 곧 지나갈 테다. 갈란군주가 비양이를 위해 모든 것을 빼앗아 오는 그날, 엽연채 같은 것들이 여전히 웃을 수 있을지 내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강심설을 처리할 방법은 차고 넘칠 거다.’

“만심이 그 천비賤婢를 묶어 평왕부로 보내게.”

진씨가 냉랭한 목소리로 분부하자 정 마마는 몸을 낮추며 밖으로 나갔다.

이때, 녹엽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마님, 채 공공께서 오셨습니다.”

진씨는 깜짝 놀랐다.

“어서 안으로 뫼셔라.”

그녀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내 주렴이 촤락 소리를 내며 걷히자 채결이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고, 그의 뒤로 어린 환관 둘이 뭔가를 들고 따라왔다.

“채 공공.”

진씨는 얼른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다가갔다.

“백 부인.”

채결이 진씨를 향해 예를 올렸다.

“황제 폐하께서도 주씨 가문 일을 아셨습니다. 이 일은 군주께서 여종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셔서 벌어진 일이라 폐하께서 화가 많이 나셨습니다. 또 주씨 가문 공자가 억울한 일을 당하셨으니 특별히 소인에게 공자의 병문안을 다녀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진씨는 유감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군주와는 관계없는 일이오. 다 그 천한 여종이 함부로 벌인 짓이지. 감히 이런 악독한 일을 벌이다니. 녹엽아, 가서 군주를 모셔오너라. 그리고 학해를 안고 와 공공에게 인사를 드리게 하거라.”

녹엽은 예를 올린 후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우선 남월헌으로 가서 갈란군주에게 일상원에 가라고 알렸고 그 뒤 오솔길을 따라 궁명헌으로 향했다.

* * *

그 시각 궁명헌.

엽연채는 서쪽 곁채에 있었다. 그녀는 배나무 원탁에 앉아 백자 찻주전자를 들고 찻잔에 차를 쪼르륵 따랐고, 침상 옆에 앉아 있는 강심설은 눈시울을 붉히며 주학해에게 죽을 한 숟갈씩 떠먹여 주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연지묵은 원래 앓고 있는 병을 악화하는 독이었다. 어젯밤에 이미 해독 성분이 든 탕을 마셨고 또 나 의정이 새로운 약방문을 써 준 덕에 주학해는 열이 내렸고 감기 증상 또한 호전되어 있었다. 이미 고비는 지나갔고, 다만 몸이 아직 조금 허약한 것뿐이었다.

“어머니, 언제가 돼야 어머니의 처소로 돌아가 함께 지낼 수 있어요?”

주학해가 앳된 목소리로 물어 오자 강심설은 아이의 조그만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곧 있으면 그리될 게다.”

그녀는 옅은 한숨을 쉬었고 고개를 숙이는 찰나에 불만스러운 눈빛을 번득였다.

“갈란군주를 손보지 못하더니 결국 만심이 그 빌어먹을 것조차 손보지 못했구나. 들어 보니 평왕부로 보내려고 한다던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쉽게 넘어가는 것 아닌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매 좀 때리고 끝내다니.”

가만 듣고 있던 엽연채는 미간을 씰룩이더니 냉소를 지었다.

“매 좀? 형님은 갈란군주를 너무 선량한 사람으로 생각하시네요.”

엽연채의 말뜻을 대강 짐작한 강심설은 깜짝 놀랐다.

“갈란군주가 이 일을 만심에게 떠넘긴 상황에서 그 애를 죽여 버리면 살인멸구殺人滅口했다는 오명을 쓰게 될 거야. 그러니… 그리하지는 않겠지?”

엽연채는 입꼬리를 씩 당기며 말했다.

“이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밖에서 떠도는 소문을 말하는 거야? 확실히 한동안 갈란군주를 물어뜯기는 하겠지만 그 사람은 황실의 군주야. 어찌 됐든 간에 황제 폐하께서 그 사람을 보호하고 계시고, 설령 소문이 있다고 해도 백성들은 잘 잊어버리니 금세 지나갈 거야.”

강심설은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이미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엽연채는 그녀와 시각이 달라도 아주 달랐다.

“아니에요. 좀 있으면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길 겁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청유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녹엽이가 왔습니다.”

강심설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진씨에게 완전히 체념한 상태였다. 진씨와 자신의 관계에 체념한 게 아니라 진씨와 주학해의 관계에 대해 체념한 것이었다.

진씨는 갈란군주를 위해 손자조차도 버리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번 일을 이렇게 얼렁뚱땅 처리한 게 그 증거였다.

녹엽은 몸을 낮추며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큰마님, 셋째 마님. 채 공공이 오셨습니다. 학해 도련님의 병문안 때문에 오셨다고 합니다.”

“알겠다. 곧 건너가마.”

엽연채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하자 녹엽은 고개를 숙이더니 다시 밖으로 뛰어나갔다.

“형님,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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