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6화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고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나 의정을 쳐다봤다.
나 의정은 그들의 시선 속에서 말을 이었다.
“연지묵은 남쪽 이민족의 약입니다. 우선 비방을 써서 분말을 만드는데, 쓸 때 반드시 보조 약재를 배합해야 합니다. 보조 약재는 신선한 계내금鷄內金 일곱 개와 흑양갑黑羊甲 열 개인데, 이 두 가지를 사용해 탕을 끓인 다음 비방을 써서 만든 분말에 반 그릇 정도 붓습니다.
이리하면 독이 무색무취가 될 뿐만 아니라 계내금과 흑양갑의 비린내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 약을 복용하면 진맥을 해도 잡아내지 못하고 사망한 후에도 검출되지 않습니다. 중독된 기간 동안만 뒤통수에 연지색 붉은 반점이 생겨서 ‘연지묵’이라는 이름이 붙었고요.
그러니 지금 보조 약재의 출처만 조사해 내면 됩니다. 최근에 누가 신선한 계내금과 흑양갑을 샀는지 말이죠. 그리하면 누가 벌인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갈란군주는 몸을 살짝 떨었고 조그만 얼굴은 핏기를 잃어 갔다. 그녀가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반면, 진씨는 두 눈을 반짝였다.
“좋아. 단서를 알았구나!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을 게야! 녹엽아, 밖에 나가 도성 북쪽에서 양과 닭을 파는 자들을 전부 불러오거라. 그자들에게 범인을 집어내라고 해야겠다.”
진씨는 비웃는 눈빛으로 엽연채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 독한 것. 좀 있으면 순순히 인정해야 할 거다! 변명할 생각조차 못 할 게야!”
엽연채는 조롱기 가득한 눈으로 진씨를 힐끗 보고는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내가 한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으니 제대로 망신 한번 당해 보라지.’
진씨는 엽연채의 무표정한 혹은 창백한 얼굴을 쳐다보며 속으로 쾌감을 느꼈다.
‘이제야 두려운가 보구나? 하지만 그럼 어째서 제 입으로 연지묵 이야기를 꺼낸 걸까? 아, 의정은 연지묵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게야. 순간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뿐이라 하나하나 조사하다 보니 당연히 기억이 떠올랐고. 엽연채 이것은 당황한 나머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거지. 자기가 기선을 제압했다고 생각해 겁날 게 없다는 모습을 보인 것 말이다.’
“너도 가거라.”
한편, 나 의정은 저를 따라온 시동에게 이리 분부했다. 그러자 아이는 대답을 하고는 녹엽을 따라 함께 문밖으로 나갔다.
갈란군주는 낯빛이 창백했고 만소가 다급히 말했다.
“저, 저도 가겠습니다…….”
“부인은 아직 확실히 혐의를 벗지 못했으니 넌 가지 말거라. 녹엽이와 나 의정 곁에 있던 사람이 가지 않았느냐?”
주비양은 그리 말하며 갈란군주를 쳐다봤다.
“부인, 걱정 마요. 좀 있으면 부인의 결백이 밝혀질 거예요.”
“저… 저도 알아요…….”
갈란군주는 미소를 지었다. 하나 스스로도 어떻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이기에 미소를 짓는 와중에도 이는 꽉 깨물고 있었다.
그 우스운 모습에 엽연채는 시선을 아래로 하며 피식 비웃고 말았다.
그동안 어린 여종들이 의자와 수돈들을 가져왔고 사람들은 자리에 앉았다.
나 의정과 두 태의는 다시 주학해의 맥을 짚었고 아이의 뒤통수에 생긴 붉은 반점도 살펴본 다음 병세에 대해 상의했다. 나머지는 그런대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반 시진쯤 지난 후 마침내 녹엽이 돌아왔다.
“마님, 도성 북쪽에서 두 약재를 파는 상인들을 전부 데려왔습니다.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
진씨는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돌려 나 의정에게 말했다.
“의정, 수고 많았네. 이곳은 협소하니 앞에 있는 서차간으로 가세.”
“예.”
나 의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나섰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서쪽 곁채에서 나와 궁명헌의 서차간으로 향했다.
진씨와 주 백야는 상석의 탑상에 앉았고 나 의정과 상관운 등은 권의에 앉았다. 그리고 속으로 켕기는 게 있는 갈란군주는 감히 자리에 앉지 못하고 그저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주비양이 갈란군주의 손을 잡으며 그런 그녀를 걱정했다.
“왜 그래요?”
“아니에요… 너무 피곤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럼 자리에 앉아요.”
주비양이 갈란군주를 수돈에 앉히는 모습을 힐끔한 엽연채는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자리에 앉지 않고 제민, 원남옥과 한쪽에 서 있었다.
진씨가 싸늘한 눈으로 엽연채를 쓱 흘기고는 녹엽을 불렀다.
“데리고 들어오거라!”
“예.”
녹엽은 몸을 돌리더니 이어 일고여덟 명을 이끌고 왔다.
이 사람들은 전부 닭과 양을 파는 상인들이라 하나같이 지저분하고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고 게다가 직접 닭이나 양을 도축하는 일을 하니 몸에서 비린내가 났다.
시장에서야 워낙 여러 냄새가 섞여 있어 별 티가 나지 않지만 여인들이 거처하는 방에 와 있으니 비린내가 확연히 느껴지며 코를 자극했다.
진씨와 상관운 등은 저도 모르게 코를 막으며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닭과 양을 파는 상인들도 조금 놀란 눈치였다. 이런 부귀한 곳에 처음 와 본 그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아 이루 다 감상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귀한 분들을 뵈옵니다.”
“일어나게!”
진씨는 그들을 쓱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최근에 자네들 중 날마다 계내금 일곱 개와 흑양갑 열 개를 판 사람이 있는가?”
상인들은 어리둥절해했지만 이내 세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중 두 명은 사오십 대로 보이는 아낙이었는데 한 명은 통통한 체형, 다른 한 명은 마른 체형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검은 옷 차림에 나이는 환갑 가까이 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통통한 아낙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닭을 파는 사람입니다. 닭을 잡지 못하는 젊은 아낙들이 많아 저희 같은 사람들은 닭을 잡아서 판매하지요.”
도성 사람들은 농촌과 달리 집에서 닭을 키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닭요리를 할 땐 빈부를 떠나 시장에서 살아 있는 닭을 사 가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일부 젊은 아낙들 중 닭을 잡을 줄도 모르고 사람을 쓸 형편도 되지 않는 이들은 도축된 닭을 구매했다.
통통한 아낙이 이어서 말했다.
“요 며칠 날마다 계내금 일곱 개를 판 적은 없습니다. 하나 이틀간은 판매했습니다. 똑똑히 기억하는 게, 원래 계내금은 전부 제가 직접 햇볕에 말려서 약방에 파는데 그때는 갑자기 누군가가 와서 신선한 계내금을 사 갔거든요. 게다가 개수도 일곱 개라 틀림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자 옆의 마른 아낙도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전 사오 일 정도 팔았습니다. 매일 이른 아침에 사 갔는데 마침 저도 일곱 개를 팔았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마른 노인도 입을 뗐다.
“도성 북쪽에서 양을 파는 상점은 저희 집을 포함해 세 곳뿐입니다. 한데 최근에 참 이상하게도 날마다 어떤 아가씨가 양갑羊甲을 사러 왔습니다. 그런 데다 흑양의 양갑이어야 한다고 콕 집어서 말하더군요. 양의 발굽은 버리는 부위인데 10문文이나 주고 사가니, 헤헤, 그야말로 공돈이 생긴 셈이죠!”
진씨의 눈엔 조롱기가 가득했다. 증인이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생겼으니, 마음 같아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주 백야는 낯빛이 창백했고 애간장이 졸아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피해자인 갈란군주와 주비양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한마디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상관운과 두 규수는 낮은 목소리로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어서 확인해 보게. 자네들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산 사람이 저 부인인지 아닌지 말이네! 아니면 저 부인 뒤에 있는 두 여종인지 보게.”
진씨는 턱을 위로 들어 올리며 오른쪽에 서 있는 엽연채를 가리켰다.
상인들은 일제히 엽연채를 쳐다봤고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깜짝 놀라 숨을 헉 하고 들이켰다.
‘이 여인은 어찌 이리도 아름다운 거야? 강림한 선녀라도 되나?’
진씨는 입꼬리를 위로 올리며 얼른 그들을 독촉했다.
“알아보겠는가? 이 부인이 맞는지… 아니지. 이 앤 지금 거동이 불편하고 상전의 신분으로 어떻게 직접 이런 일을 처리했겠어. 분명 이 앨 곁에서 모시는 두 여종이 했을 게다. 혜연, 청유! 일어나 앞으로 나오거라.”
혜연과 청유는 낯빛이 어두워졌지만 눈빛엔 조롱기가 스쳤다. 둘이 앞으로 걸어 나오자 상인 셋은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들을 훑어봤다. 한 사람은 상냥해 보이는 작고 동그란 얼굴을 갖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계란형의 아리따운 얼굴을 갖고 있었다.
세 상인은 잠시 두 사람을 살펴보더니 이어 고개를 가로저었고 마른 체형의 아낙이 입을 열었다.
“저 두 사람은 아닙니다.”
검은 옷을 입은 노인도 고갯짓하며 동조했다.
“저희 상점에서 물건을 샀던 이들도 저 두 사람은 아닙니다.”
“예, 저 사람들은 아닙니다.”
통통한 아낙까지 이리 단정 짓자 진씨는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다른 사람을 보낸 걸까?’
하지만 이런 비밀스러운 일은 당연히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더 좋으니 일반적으로 자신의 심복에게만 알리며 그중에서도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심복이 처리하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을 감수해야 할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엽연채 저것은 다른 여종을 시켜 처리했다는 말인가? 어쩐지 대담하게 연지묵이라는 말을 먼저 꺼낸다 했지. 준비해 온 게 있었기 때문이구나. 어쩌면 위험을 무릅쓰고 외부 사람을 매수해서… 가증스러운 것!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저 계집애를 끝장내 버릴 방법을 생각해 내야만 해. 절대로 이 죄명에서 도망치지 못하게 해 주마.’
“아!”
바로 그때, 통통한 아낙이 갑자기 깜짝 놀라 소리쳤다.
“저 여인이에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진씨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누군가?”
‘엽연채의 어떤 여종이냐?’
상관운 등도 어리둥절해하더니 통통한 아낙을 쳐다봤다. 이렇게 모두들 그 아낙이 엽연채 곁에 있는 어린 여종들 중 한 명을 지목할 거라고 예상하는 순간, 뜻밖에도 그녀는 손을 뻗더니 갈란군주 뒤에 선 만심을 가리켰다.
“저 녹색 옷을 입은 처자요! 저한테서 계내금을 두 번이나 사 간 사람이 틀림없어요.”
“맞아요. 저 여인이에요. 저도 알아보겠네요.”
마른 아낙도 얼른 동조했다.
“참하게 생겼고 입꼬리 아래쪽에 옅은 색의 작은 점도 있어서 기억해요.”
“저 여인이 맞습니다.”
검은 옷의 노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흑양갑을 샀던 사람이 알고 보니 부잣집 여종이었군요? 한데 처음에 물건을 살 때 가격을 흥정해서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저한테 8문만 주겠다고 했죠! 제가 10문을 달라고 하니까 마지못해 그러자고 하더니, 참 나. 이런 집안의 사람이면서 나 같은 사람이랑 겨우 2문을 가지고 흥정을 한 겁니까?”
노인은 그리 말하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만심은 눈앞이 캄캄해지고 낯빛이 창백해졌다. 정말로 고작 2문을 아끼자고 흥정을 했겠는가. 그저 검은 옷의 노인이 저를 가난한 집안의 알뜰한 아낙으로 생각하기를 바랐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