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672화 (672/858)

제672화

주 백야는 깜짝 놀랐다.

“지금 어딜 가겠다는 것이오?”

“어딜 가겠습니까? 당연히 걜 찾아가 끝장을 봐야죠.”

진씨는 이미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이, 이런!”

주 백야는 엽연채가 정말로 그런 일을 했을 거라곤 믿지 않지만 정 마마의 말에 또 마음이 흔들려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에 그는 비 이낭과 함께 황급히 진씨의 뒤를 따랐고 그 모습을 쳐다보는 갈란군주의 눈동자에는 순간 조롱기가 스쳤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더 이상 소란을 피우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좀 더 기다려 주학해를 황천길로 보내 버리면 깔끔했을 것이다.

지금 주학해는 뜨거운 감자였다. 그런데도 자존심이 강한 엽연채는 기어코 주학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았다. 엽연채는 자신이 신중하게 행동하고 유모를 바꿨으니 주학해를 잘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엽연채의 예상과는 달리 유모를 바꾼 후에도 주학해의 병세는 여전히 호전되지 않았다. 엽연채는 분명 초조해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가다가는 분명 주학해 때문에 곤혹을 치를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엽연채도 반편이가 아니니 분명 희생양을 찾으려 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주학해가 좋아지지 않으면 엽연채는 마음이 조급해질 테니 비 이낭과 백 이낭의 음식에 독을 탈지도 모르고 그럼 두 사람은 정말로 병이 들 것이다. 그럼 밖에다 또 소문을 퍼뜨릴 거고 그리되면 갈란군주가 시댁 식구들을 잡아먹는다는 이야기가 증명되는 것이다.

“군주, 어떻게 셋째 마님이 며칠 뒤에 반드시 두 이낭에게 독을 쓰고 소문을 퍼뜨릴 거라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만소가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묻자 갈란군주는 픽 하고 냉소를 지었다.

“어제 그 여인이 입단속을 제대로 못했거든. 은근히 날 비꼬더구나!”

어제 엽연채는 집안사람들이 다들 병이 났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인즉슨 그녀 때문에 사람들이 병이 났다는 뜻이었다.

주학해는 낫지 않을 거고 엽연채는 궁지에 빠질 테니 지금 그 방법이 엽연채에겐 유일한 길일 것이다.

갈란군주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말로 그 여인이 독을 타서 두 이낭이 죽게 되고 주학해마저 죽어 버리면 모두 내 잘못이 될 게다.”

그러니 그 전에 엽연채의 길을 끊어 버려야 했다.

지금 당장, 먼저 엽연채를 제압해야 했다. 이렇게 소란을 피우고 나면 엽연채가 백 이낭과 비 이낭에게 손을 쓰고 싶어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군주, 정말 귀신 같은 통찰력이십니다.”

만소는 헤실대며 제 주인을 추켜세웠고 만심은 당연한 소리를 한다고 말을 받았다.

“군주는 황실에서 나고 자란 분이셔. 엽연채는 몰락한 후부의 여식에 불과하고. 엽이채와 엽씨 가문 차남 부부 그리고 삼남 부부는 전부 다 반편이들이야. 그런 반편이들하고 쭉 살았으니 혼자 뭐 얼마나 똑똑하겠어?”

“하지만 바둑은 정말 잘 두던데.”

만소가 이리 말하자 만심이 바로 톡 쏘았다.

“바둑을 아무리 잘 두면 뭐 해? 현실에서 머리를 쓰는 능력이 저리 떨어지는데! 이 일로 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든, 어떻게 움직이든 간에 전부 군주의 손바닥에 있는 거야.”

만심의 말을 가만 듣고 있던 갈란군주는 붉은 입술을 위로 올리더니 그제야 일어섰다.

“우리도 슬슬 가 보자꾸나!”

그들이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주비양이 황급히 이쪽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부인.”

그가 고개를 들어보니 갈란군주는 계단에 서 있었고 그녀는 그를 보고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로 왔어요?”

“다 들었습니다.”

주비양은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

“고생했죠.”

“아니에요……. 어쩌면… 어쩌면 정말로 제 불운한 기운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몰라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눈물을 떨구었다.

“불안해하지 말아요. 난 당신 탓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주비양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갑시다. 방금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궁명헌으로 가시는 걸 봤어요.”

이렇게 두 사람은 함께 문을 나섰고, 궁명헌에 도착하자 진씨와 주 백야 등이 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서둘러 그 뒤를 따라갔다.

일행이 중정 문으로 들어서자 파초나무 아래에 앉아 있는 엽연채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옆으로 여러 소저들이 앉아 있었다. 제민과 원남옥, 상관운 그리고 나머지 둘도 낯이 익었는데 어느 가문 규수인지는 알지 못했다.

진씨는 이 판국에 벗들을 초청한 엽연채의 뻔뻔함에 낯빛이 더더욱 음랭하게 변했지만 상관운을 보니 차마 화를 내기는 곤란했다.

한편, 차를 들고 걸어오던 혜연은 우르르 몰려온 진씨 무리를 보더니 약간 맹한 얼굴로 인사했다.

“나리, 마님, 군주.”

진씨와 주 백야는 혜연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고, 진씨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네가 학해를 돌보고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왜 여기서 차를 나르고 있느냐?”

혜연은 말문이 막혔다.

“교 마마와 교대로 하고 있습니다. 어제저녁부터 제가 내내 같이 있어 드리다가 방금 전에 교 마마에게 도련님을 맡겼습니다. 나온 김에 셋째 마님과 아가씨들께 차를 내온 거고요.”

“이……!”

그녀를 꾸짖으려던 진씨는 순간 이곳에 있는 손님들을 떠올리고 말을 아꼈다. 그녀는 싸늘한 눈빛으로 엽연채를 쳐다보며 말했다.

“손님들을 잠시 물리거라.”

그러자 엽연채는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어머님, 이들은 전부 제 벗입니다. 저희 집안에 병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부러 병문안을 온 겁니다.”

“맞습니다.”

제민이 말했다.

“연채가 회임을 한 상태라 저희 모두 연채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진씨는 싸늘한 눈빛으로 제민을 쏘아보다가 이내 엽연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것이 입만 열었다 하면 ‘집안에 병자가 많다.’ 둥 헛소리를 해 대니 성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말을 안 듣겠다? 그래, 좋다. 그럼 벗들 앞에서 망신을 당해도 내 탓은 하지 말거라.”

“됐소. 다음에 이야기합시다.”

주 백야가 나서서 그녀를 말렸다. 어찌 됐든 집안의 허물은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진씨는 물러서기는커녕 냉소를 지었다.

그러잖아도 엽연채를 한 번 이겨 먹지 못해 불만스럽던 참이었는데, 때마침 집안에 손님들이 찾아왔으니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여기서 엽연채의 체면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아주 제격일 것이다.

“아버님, 어머님. 여긴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엽연채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감히 모른 체를 하는 게냐?”

진씨가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인지 밖에서 온 네 벗들에게 물어보거라!”

“저희는 당연히 알고 있죠.”

제민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듣자니 주씨 가문에 병자가 많다고 하던데요! 처음엔 이 댁 큰며느님이 병이 나더니 그다음엔 어린 공자가 병이 났고 이어 두 이낭과 부인도……. 에휴. 재수 옴 붙었네요!”

제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무슨 더러운 물건이라도 본 듯한 눈빛으로 갈란군주를 쳐다봤다.

“연채야, 우린 나가 있는 게 좋겠어. 아니면 불운한 기운이 옮겨붙을지도 몰라.”

제민은 꺼림칙하고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원남옥과 상관운 등도 갈란군주를 쓱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씨는 화가 나 씩씩거렸고, 갈란군주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내가 그런 게 아니에요……. 난 그런 적 없어요! 난…….”

그녀는 말을 하며 주비양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철철 쏟았고, 그녀의 이런 행동에 상관운 등은 깜짝 놀랐다.

“어머나. 부부 사이가 어쩜 이리 다정할 수가 있어요? 전 남편을 위해 삼년상을 치른다고 하지 않았어요?”

제민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꽃가마에 오른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보름도 안 됐는데 이리 깨가 쏟아질 수 있어요?”

원남옥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뜻밖의 공격에 갈란군주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동안 그녀는 계속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집안에서도 진씨가 그녀를 보호해 줬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깜빡 망각했던 것이다.

그녀는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시집온 입장이어야 했다. 그러니 당연히 주비양과도 거리감이 있어야 하고 일 년쯤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흔들릴 수 있는’ 것이었다.

“만심아…….”

갈란군주는 바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이름이 불리자마자 만심은 얼른 앞으로 나와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군주께서 너무 상심하셨네요……. 군주, 제가 여기 있습니다.”

만심은 제민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저희 군주께서 얼마나 상심하셨는지 옆에 계신 분이 세자이신 것마저 잊으셨네요.”

“셋째 너,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지 말거라.”

진씨가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학해는 분명 네가 고의로 병들게 만든 거다. 그리고 밖에다 헛소문을 퍼뜨려 란이를 중상모략하는 게지.”

그러자 엽연채가 크게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이야말로 중상모략하지 마세요. 전 단 한 번도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제가 왜 그런 짓을 해야 하죠?”

“왜냐고 하셨어요?”

비 이낭이 사나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고는 엉덩이를 흔들거리며 앞으로 나오더니 허리에 두 손을 얹고 목청을 높였다.

“군주의 신분과 지위가 높으니 배가 아파서 그러는 거죠. 세자리께서 귀한 가문의 여식을 아내로 맞이하고 묘서 아가씨도 태자 전하께 시집을 갔으니 배가 아픈 겁니다. 세자의 가족들이 잘되는 모습을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으니 당연히 그 가족들을 억누르고 싶은 거겠죠.”

비 이낭은 말을 왁 쏟아내고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제민과 원남옥을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두 사람 다 주종과를 거절했던 여인이었다. 그런 여인들이 엽연채와 깊은 관계가 되었으니 비 이낭의 분노가 순간 폭발한 것이었다.

“셋째 마, 악!”

비 이낭이 또 엽연채를 질책하려고 하는데, 제민이 앞으로 나와 비 이낭의 뺨을 냅다 후려갈기고 침을 뱉었다.

“퉤. 네가 뭔데 이러는 게냐? 아랫사람 주제에 감히 우리 앞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이냐?”

진씨와 갈란군주는 제민이 비 이낭의 뺨을 때리는 모습을 보더니 깜짝 놀라 숨을 헉 하고 들이켰다.

두 사람도 비 이낭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 비 이낭은 그들을 위해 나서고 있었다. 그리고 개를 때릴 때도 주인을 봐 가면서 때려야 하는 법인데, 제민이 먼저 손찌검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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