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671화 (671/858)

제671화

엽연채는 싸늘한 눈빛으로 사 유모를 쓱 쳐다봤다.

“그 말은 전에도 들었네.”

“정말입니다…….”

“됐네!”

사 유모가 억울함에 무어라 더 변명하려는데 엽연채가 말허리를 끊었다. 그녀는 손사래를 치더니 이렇게 말했다.

“유모. 자네도 요 며칠 지쳤을 테니 일단 돌아가서 좀 쉬게. 앞으로 며칠 동안은 혜연이가 돌볼 것이네.”

사 유모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얼른 대답을 했다.

“네.”

사 유모가 밖으로 나간 후 엽연채는 돌아서서 방으로 돌아갔다.

혜연은 이미 주학해 곁에 누워서 작은 몸을 톡톡 다독여 주고 있었다. 그녀는 엽연채를 보곤 고개를 들더니 이렇게 말했다.

“마님, 여긴 제가 있으니 이쪽으로 오지 마세요.”

“그래.”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한 명 더 생기니 이 정도 일손으론 영 부족하네요.”

청유는 저도 모르게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 말이 맞다.”

엽연채도 청유의 말에 동의했다. 추길과 매화를 처리한 후로 그녀의 곁엔 여종 네 명만 남았는데 원래는 그 정도로 충분했다. 그런데 주씨 가문으로 오게 되면서 후부를 볼 사람이 필요하니 소월은 남기고 혜연과 청유, 백수만 데려온 참이었다.

그때도 셋이면 되겠거니 했지만, 뜻하지 않게 주학해를 돌보는 일이 떨어졌다. 그에 혜연은 사 유모를 대신해 주학해를 보고 백수는 약을 달이는 등의 잔심부름 등을 하게 되면서 청유만 옆에 있으니 확실히 좀 불편하긴 했다.

“경인이에게 가서 교 마마를 데려오라고 하거라.”

“예.”

청유는 대답하며 엽연채를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 돌아가면 여종들을 더 들여야겠다. 유모도 준비해야 하고.”

오시가 지나 교 마마가 왔고 그녀는 혜연과 번갈아 가며 주학해를 돌봤다.

교 마마는 젊을 때 주운환을 직접 키워 낸 유모였다. 경험이 많은 그녀는 능숙하게 주학해를 챙겼다. 하지만 이렇게 살뜰히 돌봤음에도 이튿날 진맥을 해 보니 주학해의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 * *

그 시각 일상원.

진씨는 탑상에 앉아 있었고 갈란군주는 그녀 옆에 놓인 수돈에 앉아 있었다. 비 이낭도 하좌에 자리해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주 백야 역시 웬일로 일상원에 있었다. 갈란군주가 시집온 후로 날마다 이곳에 찾아와 진씨와 한담을 나누면서 주 백야는 자주 집 밖으로 나가 연극을 보거나 차를 마시곤 했다.

하지만 주학해가 병이 난 후로 그는 외출할 마음이 내키지 않아 일상원에 틀어박혀 있었다.

오늘 이른 아침, 어린 여종이 주학해의 상태를 보고했다.

“궁명헌 쪽에서 사람을 바꿔 도련님을 돌보고 있습니다. 셋째 마님을 곁에서 모시는 혜연 언니와 교 마마인데 오늘 아침에도 도련님의 머리는 여전히 뜨거웠다고 합니다.”

“엽씨 그 빌어먹을 것!”

진씨가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치자 주 백야가 그녀를 쏘아봤다.

“됐소. 왜 욕을 하는 것이오? 셋째도 최선을 다하고 있소. 그 애도 이런 상황을 원치 않을 것이오.”

“마님, 마님!”

이때 누군가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소리 난 방향을 보니 정 마마가 황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왔고 만소가 헐떡거리며 그 뒤를 쫓아왔다.

진씨와 주 백야는 짜증이 났다. 지금 주학해의 병세 때문에 모두가 초조해하고 있는데 정 마마가 법석을 떠니 저도 모르게 화가 치민 것이다.

주 백야가 냉랭하게 호통을 쳤다.

“왜 이리 소란스러운 게냐?”

주 백야는 화를 내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에 정 마마는 깜짝 놀라 얼른 발걸음을 멈추고는 예를 올렸다.

“나리, 마님.”

“밖에 나가서 약재들을 구해 오라고 하지 않았는가? 뛰긴 왜 뛰는 게야?”

진씨도 들고 있던 청화 찻잔을 항탁 위에 탁 내려놓으며 싫은 소리를 했다.

“정말이지… 분해 죽겠습니다.”

정 마마가 말했다.

“마님, 방금 전에 제가 만소와 함께 약방에 가서 약재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맞은편에 혼돈餛飩을 파는 노점상에서 저희 주씨 가문 이야기가 들려오지 뭡니까. 그 사람들이 저희 가문을 헐뜯고 있었습니다.”

“그저 험담 좀 하는 것뿐인데 뭐 대수라고.”

주 백야가 성난 목소리로 핀잔을 줬다.

“그렇지 않습니다.”

정 마마는 얼른 이렇게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씨 가문 큰마님이 얼마 전에 병이 났는데 그건 화병이었지만 어린 도련님도 화병이 났다고? 어린 도련님이 병이 난 건 우연의 일치라고 해도 그럼 다른 사람들은 왜 병이 난 건데? 그리고 두 이낭도 병이 났으니 주인마님도 곧 병이 나겠네. 태의와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집을 들락날락하던데.’ 이렇게요.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뭐?”

정 마마가 말을 잇지 못하자 진씨가 차가운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저희 군주의 불운한 기운 때문에 집안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거라고 했습니다.”

만소가 억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진씨와 주 백야는 동시에 멍한 표정을 지었고 이내 진씨는 격노해 항탁을 힘껏 내리쳤다.

“이런 고얀 것들! 우리 집안사람들이 다 병에 걸린다고? 난 멀쩡하다! 백 이낭과 비 이낭 저 가식적인 것들은 딱 봐도 꾀병을 부리는 게다. 그런데 그걸 갖고 허황된 말을 하다니.”

그녀는 그리 말하며 비 이낭을 매섭게 노려봤다. 비 이낭은 당연히 표정이 굳어졌다. 이럴 줄 진작에 알았다면 오늘 이곳에 와서 이들 틈에 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습니다.”

만소가 말했다.

“거기 있던 사람들은 군주가 불운을 가져와 온 집안사람들을 잡아먹으려 한다고 욕했습니다. 하나 그런 일이 어디 있겠어요… 흑흑…….”

“우매하고 무지한 것들! 지난번에 분명히 밝히지 않았느냐?”

“그 이유를 누가 알겠습니까……. 지난번에 분명 제대로 말했는데 지금 또…….”

진씨의 말에 만소가 격양된 목소리를 내다가 곧 말꼬리를 흐렸다.

“군주…….”

갈란군주의 참한 얼굴엔 슬픈 기색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화를 내기는커녕 반 마디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물은 조용히 눈가를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진씨와 주 백야는 깜짝 놀랐고 진씨가 얼른 입을 얼었다.

“아이고, 란아…….”

“어머님.”

갈란군주는 미소를 지었다.

“제가 생각을 해 봤는데 차라리 사찰에 가서 한동안 머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뭐? 밖에서 떠도는 소문 때문이냐?”

“어쩌면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르죠.”

갈란군주는 쓴웃음을 지으며 살며시 눈물을 닦았다.

“어쩌면… 정말로 제가…….”

그러자 만심이 얼른 이렇게 말했다.

“군주, 이러지 마세요. 잘못한 사람은 절대 군주가 아닙니다. 군주께서는 아무것도 안 하셨어요. 큰마님은 화를 못 이겨 병이 나신 거고 어린 도련님은 분명 큰마님에게서 병이 옮은 겁니다. 그리고 지금 도련님을 돌보고 계신 사람은 셋째 마님이시고요.”

“맞다.”

진씨가 옳다구나 맞장구를 쳤다.

“란이 넌 아무것도 안 했다. 그저 시집온 게 다다. 그런데 이것들이 계속 널 겨냥해서 상처를 주는구나.”

“항상 저희 군주를 헐뜯습니다. 저희 군주가 큰마님에게 무슨 해를 끼쳤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만소는 이리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고 정 마마도 끼어들어 한마디 했다.

“밖엔 더 악독한 것들도 있습니다. 군주께서… 학해 도련님의 음식에 약을 넣었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의붓아들을 독살하려 한다고 말이죠.”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냐? 감히 그런 말까지 하다니.”

독약 이야기를 전해들은 진씨는 가슴이 벌렁거렸고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만소 너 방금 전에 뭐라고 했느냐? 아, 그래……! 그런 거였구나!”

까닭을 알아냈다고 확신한 그녀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표정이 싹 변했다.

“계속해서 란이를 겨냥했다. 전엔 강심설이 사람을 시켜 소문을 퍼뜨렸고, 지금 이건 분명히 엽씨 그 빌어먹을 것이 벌인 짓이다……! 이제 알겠어!”

“그게 무슨 말이오?”

주 백야가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비 이낭이 흥 코웃음을 치더니 이렇게 거들고 나섰다.

“나리, 셋째 마님이 벌인 짓이 분명합니다. 학해 도련님의 병이 왜 낫지 않겠습니까? 분명 셋째 마님이 도련님을 병들게 만든 겁니다.”

“자넨 또 무슨 허튼소리를 하는 겐가?”

주 백야는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말해 보게. 셋째가 왜 학해를 죽이려 하는지.”

그러자 비 이낭이 말했다.

“듣기론 예전에 연회에서 군주와 셋째 마님이 얼굴을 붉혔다고 합니다. 군주께서 시집오신 후로 셋째 마님은 여러 번 군주를 난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뭐겠습니까?

하하, 나리. 여인들은 때론 이렇답니다. 셋째 마님은 1품 후부인이고 셋째 나리도 능력 있는 분이라 그간 집안사람들이 모두 셋째 마님의 눈치를 보며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니 마님은 줄곧 자신이 집안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라고 생각하셨을 텐데 갑자기 자신과 어깨를 견줄 수 있는 황실의 군주가 집안에 들어왔으니 이를 어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세자야는 군주를 아내로 맞이하셨고 측비 마마가 여동생이시니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일만 남았습니다. 셋째 마님은 세자야 부부가 잘되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군주를 못살게 굴고 핍박하는 거예요.”

주 백야는 깜짝 놀랐다. 듣고 보니 그럴싸했다. 형제간에 서로 비교하고 질투하는 마음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는가.

“그랬던 거구나!”

진씨는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게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그 앤 강심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강심설을 위해 나서더구나. 알고 보니 강심설을 이용해 란이를 누르고 싶었던 거였어. 다행히도 우리가 마음이 거울처럼 맑은 사람들이라 란이가 문제를 피할 수 있었구나.”

“제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비 이낭은 얼른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전에는 큰마님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갑자기 사이가 좋아졌죠. 또 전에는 학해 도련님에게도 다정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자발적으로 도련님을 본인의 처소로 데려가 돌보겠다고 하셨죠. 회임을 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겁 없이 병자를 돌보고 계십니다. 셋째 마님에게 꿍꿍이가 없다면 제가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

진씨 등은 이 말을 듣더니 창백했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한편, 정 마마는 비 이낭이 이렇게 마음에 들었던 적이 없었다. 그녀는 이때다 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전에 셋째 마님은 분가를 하겠다고 소란을 피우셨어요. 후부로 이사를 간 후엔 저희와 전혀 왕래를 하지 않으셨죠. 그런데 이젠 본가로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눌러앉아 갈 생각을 안 하시네요! 흥, 역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겁니다!”

“그래. 맞다 맞아. 계략이 안 먹히니까 또 다른 계략을 쓰는구나.”

진씨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낯빛이 더없이 차갑고 어두웠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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