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670화 (670/858)

제670화

녹엽이 밖으로 뛰어나가더니 잠시 후 백 이낭, 비 이낭과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주묘화도 거기에 껴 있었다.

이낭들이 각자 예를 올리고 나자 주 백야가 입을 뗐다.

“학해가 병이 났고 셋째도 몸이 편치 않네. 백 이낭 자네는 세심한 사람이니 학해를 자네에게 맡길 것이네. 얼마간 학해를 돌보게.”

백 이낭은 가슴이 철렁했다. 지금 집안의 형세를 보면 큰아들 부부와 셋째 아들 부부가 권력을 나눈 셈이었다. 그런데 셋째 부부는 이미 밖으로 나가 살고 있으니 그녀는 앞으로 진씨와 주비양의 눈치를 보며 사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강심설이 무너졌으니 갈란군주가 주도권을 쥐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주학해는 갈란군주의 아들이 아니니 내가 주학해를 데려가 돌보게 되면 틀림없이 갈란군주에게 밉보일 거야.’

백 이낭은 얼른 손사래를 치며 기침을 연발했다.

“전… 콜록콜록……! 요즘 어찌 된 일인지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흐릿합니다. 저녁에도 기침을 심하게 하고요. 그래서 안 그래도 의원을 불러 진찰을 받을 생각이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학해 도련님이 제 처소에 오게 되면 아마 병세가 더욱 심해질 겁니다.”

주 백야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비 이낭을 쳐다봤다. 비 이낭은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그놈은 강심설 자식 아냐. 잘 돌봐 준다고 해도 무슨 이득이 있겠어. 그리고 죽게 되면 내가 책임을 져야 되잖아! 누가 이런 재수 없는 일을 기꺼이 떠맡으려고 하겠어?’

“아유…….”

비 이낭은 가슴을 움켜잡으며 이렇게 소리쳤다.

“요즘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더부룩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구역질이 나요! 으, 음식도 먹을 수가 없고 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어요! 허리도 쑤시고요.”

엽연채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도 회임을 한 거 아닌가?”

그러자 주 백야는 발을 삐끗하더니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나무랐다.

“회임이라니 그게 무슨 망발이냐!”

주 백야가 비 이낭의 처소를 찾지 않은 지 이미 반년이었다. 비 이낭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전 감기에 두통까지 겹친 거예요.”

갈란군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미간을 찌푸렸고 엽연채의 눈엔 조롱기가 스쳤다.

“요즘 집안에 환자가 참 많네요.”

갈란군주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이런…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주 백야는 미간을 찌푸렸다.

‘다들 하나같이 안 된다고 하니, 내가 나서기라도 해야 한단 건가!’

하지만 자신은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몰랐다.

비 이낭이 쌀쌀맞은 목소리를 냈다.

“요즘 같은 때에 감기에 걸린 게 뭐 특별한 일이라고요. 그리고 셋째 부인께서 도련님을 계속 돌보시면 안 될 이유가 어디 있나요. 날씨가 워낙 추워서 회복이 더뎠을 뿐이에요. 이제 태의도 바꿨으니 분명 호전될 겁니다.”

그러더니 다시 이마를 만지며 비틀거렸다.

“아이고… 머리가 또 어지럽네…….”

백 이낭도 재빨리 재채기를 했다.

“에휴.”

주 백야는 어쩔 도리가 없어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됐으니 그럼 셋째 네가 신경을 더 쓰거라.”

“예.”

엽연채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진씨는 입술을 앙다물더니 휙 돌아서서 걸어 나갔고, 갈란군주는 얼른 진씨를 부축했다.

그들은 문밖을 나선 후 각자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일상원으로 돌아온 진씨는 탑상에 앉더니 항탁을 세게 내리쳤다.

“그 꼬락서니를 보니… 다 강씨 그게 아이를 잘못 가르친 게지. 아직 어린데도 저 모양이니 제대로 버릇을 들여 놓지 않으면 앞으로 볼만하겠구나. 그런데 지금 엽씨 그 빌어먹을 것과 같이 있으니… 캑캑!”

욕을 하던 그녀는 숨이 조금 막혔다.

“어머님. 노여움을 가라앉히세요. 어째서 어머니도 기침을 하시는 겁니까? 만심아, 어서 태의를 부르거라.”

갈란군주가 이리 말하자 진씨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요즘 날씨가 정말 추웠고 또 자신이 궁명헌에 다녀왔다는 생각이 들자 갈란의 뜻에 따랐다.

만심은 문밖으로 나갔고 잠시 후 육 태의를 데리고 돌아왔다.

육 태의가 진씨의 맥을 짚어 보니 아무런 문제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마님. 몸 관리를 잘하셔야 합니다. 이런 때에 감기에 걸리시면 안 되니까요.”

그는 자신이 아무 문제 없다는 말만 하면 두 사람이 믿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진씨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 며느리도 좀 봐 주게. 이 애도 요 며칠 감기에 걸린 것 같네.”

갈란군주는 입을 살짝 오므리며 미소를 지었다.

“어머님,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육 태의는 진맥을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군주는 건강하십니다. 하지만 요즘 날씨가 변덕스러우니 보온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알겠네.”

갈란군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씨는 정 마마에게 눈짓을 했고 이를 알아차린 정 마마는 육 태의를 데리고 문밖으로 나갔다.

수화문에 도착하자 정 마마는 은화 두 냥을 육 태의의 손에 쥐여 주며 본론을 꺼냈다.

“태의, 군주의 몸엔 문제가 없는 게 맞죠? 아이는 더 낳을 수 있을까요?”

육 태의는 깜짝 놀라더니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군주는 건강하시니 당연히 아이도 낳으실 수 있네.”

“정말이에요?”

정 마마는 기쁜 목소리를 내나 싶더니 이내 걱정스러운 투로 말을 보탰다.

“하지만 전에 군주께서는 아이를 한 명밖에 못 낳으셨잖아요…….”

“돌아가서 마님께 군주는 아무 문제도 없다고 전해 드리게. 오일의가 중병에 걸렸을 때 태의들이 모두 그를 진맥해 보지 않았나. 사실 오일의의 몸이 좋지 않아 대를 이을 아들을 더 보지 못했던 거네.”

정 마마는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몇 가지 질문을 더 했고 그러고 나서야 육 태의를 돌려보냈다.

그녀가 일상원으로 돌아와 보니 갈란군주는 이미 떠난 후였다. 정 마마는 육 태의가 했던 말을 진씨에게 고스란히 전했다.

진씨는 기대 이상의 이야기를 듣게 되자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정말 좋은 소식이로구나.”

“이제 군주와 세자께서 합방하여 황실의 피를 가진 도련님이 태어나는 걸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정 마마의 말에 진씨는 옳다구나 웃더니 이내 독살스러운 눈빛을 띠었다.

“이게 다 엽씨 그 빌어먹을 년 때문이다. 그것이 3년이라는 말을 해서……!”

“하지만 세자께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합방을 하게 되면 군주를 탓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두 사람은 속닥거리며 주비양와 갈란군주를 서둘러 합방시켜 아들을 낳게 할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진씨의 주학해를 향한 감정이 좀 더 시들해졌음은 두말하면 입만 아팠다.

* * *

그 시각 남월헌攬月軒.

갈란군주와 만심은 처소로 들어오더니 여종들을 밖으로 물렸다.

갈란군주는 탑상에 몸을 기울여 편히 앉았고 만심은 차를 내오더니 미소 띤 얼굴로 말을 붙였다.

“엽연채는 지금 사건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아요.”

갈란군주는 소리 내 하하 웃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 여인은 늘 자신은 정의롭고 능력 있다고 생각해 왔지.”

그러니 작년 태자부에서도 감히 자신에게 그리했을 것이었다. 엽연채가 갑자기 튀어나와 자신에게 모욕을 줬던 일 말이다.

“전에 분명 진씨, 강심설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나와 강심설의 대화를 듣고 강심설을 공격하기는커녕 오히려 나한테 뭐라고 했지.”

갈란군주는 싸늘한 목소리로 성을 냈다.

“자기가 뭔데! 지금도 이건 나와 강심설 문제잖아. 왜 자꾸만 남의 일에 끼어드는 거야? 게다가 계속해서 날 모욕하지를 않나!”

“그렇게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는 걸 좋아하니, 그럼 저희가 큰 선물을 하나 주면 어떨까요.”

만심의 말에 갈란군주는 반드시 그리하겠다는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음을 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비양은 득세할 거고 난 의기양양하게 그 옆에 설 것이야.’

며칠 전, 때마침 강심설이 병이 났기에 갈란군주는 사람을 시켜 밖에 헛소문을 퍼뜨렸다. 즉, 스스로를 헐뜯은 셈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소문을 퍼뜨리지 않아도 오 부인이 그렇게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이를 역이용해 강심설을 공격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강심설은 자기 아이를 엽연채에게 맡겼는데 이는 그녀의 일을 거들어 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원래부터 그 어린놈은 일찍 죽든 나중에 죽든 크게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일단 강심설만 죽어 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엽연채가 아이를 맡게 된 것이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그녀가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

엽연채가 주학해를 맡고 있는 와중에 아이가 병으로 죽기만 하면 그건 온전히 엽연채의 책임이 되는 것이고, 강심설은 분명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화병으로 죽게 될 것이다.

‘만약 화병으로 죽지 않는다면? 기회를 틈타 그 하찮은 것의 목숨을 빼앗는 게 무어 어려운 일이라고.’

그리되면 엽연채가 주학해를 죽게 만든 것이고 강심설도 간접적으로 해친 것이 될 터였다.

갈란군주는 이런 생각을 하자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다만 불만스러운 게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엽연채가 또 트집을 잡은 것이다.

오늘 주 백야는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고 했다. 하지만 백 이낭과 비 이낭은 모두 간교한 자들인데 어찌 이 난처한 일을 맡으려고 했겠는가? 두 사람 다 아픈 척을 했다.

식구들이 병이 났으니 또 좋지 않은 말이 오르내릴 것이다. 그러나 갈란군주는 걱정하지 않았다.

‘난 앉아서 일이 터지길 기다리기나 하는 수동적인 사람이 아니다!’

* * *

주 백야와 진씨 등이 떠난 후 엽연채는 다시 서쪽 곁채로 왔다. 보니 사 유모가 주학해에게 고기 죽을 먹이고 있었다.

사 유모는 엽연채가 들어오자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엽연채는 손을 저으며 하던 일을 하게 했다. 그러자 사 유모는 고개를 숙이고 다시 주학해에게 고기 죽을 먹였다.

사 유모가 죽 한 그릇을 다 먹이자 엽연채는 말없이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사 유모는 영리한 사람이라 얼른 그릇을 내려놓고는 뒤를 따랐다.

엽연채가 서쪽 곁채의 낭하에 멈춰 서자 사 유모는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 멈춰 섰다.

“마님.”

“무슨 이유로 학해의 병이 차도를 보이지 않는지 모르겠구나.”

엽연채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 유모는 깜짝 놀라며 변명했다.

“마님, 요 며칠 동안 전 조금도 도련님을 게을리 돌본 적이 없습니다. 도련님이 주무실 때도 전 숙면을 취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낮에 홍이에게 잠깐 봐 달라고 부탁해야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죠. 그리고 도련님이 한 번에 많이 드시지도 못 해 제가 죽을 몇 번이나 나누어 먹여 드렸습니다. 전 눈곱만큼도 게으름 피우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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