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6화
“어머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악독한 사람을 말하자면 갈란군주겠죠. 갈란군주는 남편이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상중인데 출가를 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재수 없는 기운이 몸에 묻어 있을 거고 그 바람에 제가 병이 난 건데, 이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죠. 그런데 제 탓을 하시는 겁니까?”
이 말에 엽연채는 눈을 가렸고 갈란군주는 깜짝 놀라더니 상심한 얼굴로 말했다.
“형님……! 저, 전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법화사의 주지 스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제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시집오게 됐다고요. 그분은 고승이시고 법화사의 주지 스님이세요. 할바마마께서도 믿으시는 분인데 설마 저희를 기만하겠습니까? 전 나쁜 기운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하하. 그걸 누가 알겠어.”
강심설이 냉소를 지었다.
“드디어 인정했구나!”
진씨가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네가 옹졸해 화병이 난 거면서 감히 란이를 모함하다니. 입만 열었다 하면 란이가 널 잡아먹는다고 하는구나. 일부러 이런 말을 퍼뜨려 란이의 평판을 망가뜨린 게야.”
강심설은 낯빛이 확 변했다.
“저도 지금 알게 된 사실을 어떻게 퍼뜨려서 갈란군주의 평판을 망가뜨렸겠습니까?”
“남들조차 도저히 보고 있을 수가 없어 이런 말을 한 게 분명하네요.”
보다 못한 엽연채가 나서자 진씨가 싸늘한 눈빛으로 엽연채를 쓱 쳐다봤다.
“남들조차 도저히 보고 있을 수가 없어? 하하. 참 궁금하구나. 하룻밤 사이에 온 도성에 파다하게 펴졌는데 누군가가 의도한 게 아니라면 할 짓 없이 누가 남의 이야기를 함부로 떠들고 다니겠느냐?”
“그걸 제가 어찌 압니까!”
강심설은 화가 나 눈물을 떨구었다.
“전 아닙니다! 분명 저 여인이 한 거예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갈란군주를 가리켰다.
분명 피해자는 자신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은 이미 화병이 나 자리보전하고 있지 않았는가. 다른 사람들도 갈란군주가 눈에 거슬려 그녀를 욕한 것이다. 그만큼 파렴치하고 천박한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진씨는 갈란군주를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나무랐다.
“어머님, 형님과 관계된 일이 아닙니다. 그저 사람들이 멋대로 입을 놀리는 것뿐입니다.”
갈란군주는 얼른 진씨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어떻게 형님이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얘야. 넌 이런 상황에도 저쪽 편에 서서 말해 주는 것이냐? 호의도 사람 봐 가면서 베푸는 거다.”
진씨는 갈란군주를 힐긋하더니 다시 형형한 눈으로 강심설을 노려봤다.
“증거? 여긴 공당도 아니고 조정도 아니니 증거는 필요 없다! 이건 내 집안일이니 내가 관장한다! 그 일은 네가 벌인 거다! 여봐라. 저것을 정원으로 끌어내 뺨을 스무 대 때린 다음 침향거에 가둬 놓아라. 또다시 이런 일을 벌이면 그땐 널 정실부인 자리에서 쫓아낼 것이다!”
그러자 엽연채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어머님, 증거도 없이 사람을 때리시려는 겁니까? 알고 보니 갈란군주와 정국백 부인은 이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분들이었군요.”
진씨는 격노하여 엽연채를 가리키는 손을 살짝 떨었고 만심이 앞으로 한 발짝 나오더니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인마님께서는 이 일 때문에 큰마님을 벌하시는 게 아닙니다.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저희 군주는 고승의 조언을 듣고 이 가문에 강가한 겁니다. 또한 황후 마마의 의지도 있었죠. 설마 고승과 황후 마마께서 잘못하셨겠습니까?
밖에서 허튼소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주씨 가문 사람인 큰마님께서도 이런 대역무도한 말씀을 하시니 주인마님께서 화가 안 나시겠습니까?”
“내 말이 그 말이다!”
진씨는 헛웃음을 치고는 정 마마를 불렀다.
“정 마마, 끌고 나가게.”
강심설은 낯빛이 확 변했다.
“어머님, 어떻게… 아……!”
그러나 이미 강심설 쪽으로 달려온 정 마마는 그녀를 끌고 밖으로 걸어갔다.
“마님!”
만월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갔지만 만심과 만소가 그녀를 잡아당겼다.
엽연채는 숨을 몇 번 들이마시며 강심설이 끌려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갈란군주를 힐끗 쳐다봤다.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보고 엽연채는 냉소를 지었다.
‘과연,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고 말썽을 일으키는 데 능한 자로구나.’
정 마마는 강심설을 끌고 중정 밖으로 나갔고, 일상원 문 앞 널찍한 곳에 다다라서 막일을 하는 어멈 두 명을 불렀다.
이른 아침, 즉 집안이 가장 바쁠 시간이어서 여종들을 비롯한 하인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화초를 정리하거나 여러 정자의 장랑長廊(정자와 연결된 기다란 복도)을 닦고 있어 꽤나 소란스러웠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은 정 마마와 어멈 둘이 강심설을 끌고 나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날카로운 비명과 호통, 욕지거리도 듣게 됐다.
지나가던 여종들은 모두 깜짝 놀라 눈을 떼지 못했다. 그들은 정 마마가 강심설의 다리 뒤편을 발로 차서 꿇어앉히는 모습도 똑똑히 보았다.
“무릎을 꿇어라!”
“이 천한 노비가! 아악!”
강심설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저항했지만 힘에 밀려 이내 쿵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게 됐다.
“흥. 그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 이 꼴이 났으면서 지금 또 욕을 하는구나.”
정 마마는 ‘짝’ 소리를 내며 강심설의 뺨을 냅다 후려쳤다. 무릎에서 오는 고통이 다 사그라들기도 전에 강심설의 조그만 얼굴이 옆으로 홱 젖혀졌고 입가에 피가 흘렀다.
주위에 있던 여종들은 하나같이 헉하고 숨을 들이켜며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들뿐만 아니라 멀리서 이 소식을 듣고 온 사람들도 주위를 에워싸고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정 마마가 강심설을 이곳으로 끌고 나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뺨을 때리는 이유가 이 모습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천박한 것. 스스로 화를 못 다스려 화병이 났으면서 군주의 불운한 기운 때문에 병이 난 거라고 헛소리를 해대다니.”
정 마마는 그리 말하며 또 뺨을 갈겼다.
“게다가 사람을 매수해 소문을 퍼뜨려 우리 가문을 도성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만들었어. 군주를 모함하고 군주의 평판을 망가뜨린 것은 말하면 입만 아프고!”
정 마마는 쉴 틈 없이 강심설의 뺨을 후려쳤다.
여종들은 이 광경을 지켜보며 다들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그중 일부는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정확히 몰라 작은 목소리로 옆에다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주인마님께서 왜 큰마님을 때리시는 거야?”
“아직도 모르는 거야? 군주께서 시집을 오셨는데 큰마님께서 이에 불복하고 여기저기에 군주를 깔아뭉개는 말을 하셨대. 그래서 주인마님께 혼쭐이 나셨지. 그런데 요 며칠 큰마님이 병이 나셨잖아? 그랬더니 이번엔 군주의 불운한 기운이 큰마님을 잡아먹는 거라는 소문이 밖에 퍼졌다지 뭐야.”
“정말?”
“알고 보니 큰마님께서 사람을 매수해 소문을 퍼뜨리신 거지. 군주의 평판을 망가뜨리려고 말이지.”
“맞아, 나도 어제 들었는데 학해 도련님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군주를 가리키며 욕을 했대. 군주 때문에 큰마님이 병이 나신 거라고도. 이러면 뻔하지. 모두 큰마님이 뒤에서 수를 쓰신 거 아니겠어.”
주위에서 속닥거리는 소리를 들은 정 마마는 아주 흡족해하며 또 뺨을 냅다 후려갈겼다.
“이 천박한 것!”
그러잖아도 몸이 좋지 않던 강심설은 매질에 이미 다 죽어 가는 모습이었다. 이젠 너무 아픈 나머지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 마마가 계속해서 강심설의 뺨을 때리려고 하는데 밖에서 사람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세자.”
“마마, 여기서 뭐 하는 겐가?”
누군가가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정 마마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보니 뒤에 주비양이 냉랭한 기운을 풍기며 서 있었다. 그리고 높이 들어 올린 손은 이미 주비양에게 꽉 잡힌 채였다.
“세자, 큰마님이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정 마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비양이 그녀를 확 밀쳐 버렸고 그녀는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아악!”
강심설을 누르고 있던 어멈들도 깜짝 놀랐다.
미간을 찌푸린 주비양이 강심설을 보니 그녀는 이미 정신을 잃었고 무릎을 꿇을 수조차 없는 상태로 두 어멈의 팔에 붙잡혀 있었다.
“부군, 뭐 하는 거예요?”
갈란군주가 진씨를 부축하며 밖으로 걸어 나왔다.
“내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어머니, 뭐 하고 계신 겁니까?”
주비양이 싸늘한 목소리로 따져 묻자 갈란군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곤 이미 정신을 잃은 강심설의 모습을 쳐다보며 깜짝 놀란 듯 소리를 질렀다.
“이런! 어떻게 이리 심하게 때릴 수가 있어! 난…….”
“부인, 이게 어찌 된 일이죠?”
주비양의 말투에는 노여움이 섞여 있었고 갈란군주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강심설을 위해 그녀를 책문하다니 그녀는 당황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비양아, 너 이게 무슨 태도인 것이냐?”
분위기를 읽은 진씨가 급히 나섰다.
“아직 저 애를 아끼는 것이냐?”
“저 사람은 어쨌든 제 아내입니다! 학해의 어머니이고요.”
주비양이 화를 내자 이번엔 진씨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하룻밤 부부라도 만리장성을 쌓는다 이거지. 그래, 정말로 아무런 감정도 없을 수는 없는 게지.’
“맞다, 저 앤 네 아내일 뿐만 아니라 내 며느리이고 내 손자의 어미다. 넌 이 어미를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때리는 그런 사람으로 보는 것이냐? 하하, 저 애가 무슨 짓을 했는지 너도 알게 된다면 아마 저 애를 때려죽이고 싶을 게다!
저것이 란이가 불운한 기운을 가져와 자기가 병이 났다는 헛소문을 퍼뜨려 란이의 평판을 망가뜨렸다. 이건 란이를 죽음으로 내모는 짓과 무어가 다르더냐! 저것이 먼저 독살스러운 짓을 벌였으니 훈계하고 매질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주비양은 생각지도 못한 일에 조금 놀라더니 갈란군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어요?”
“아니에요.”
갈란군주는 연신 손사래를 쳤다.
“오해예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런데 형님이 저렇게 다치셨으니…….”
그녀는 그리 말하며 눈물을 떨구었다.
주비양은 그런 갈란군주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러자 갈란군주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형님을 부축해 돌아가요!”
진씨는 거친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란이가 인자한 마음으로 봐주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땐 정실의 자리에서 쫓아낼 것이다! 처소로 돌려보내거라!”
“예.”
두 어멈은 얼른 강심설을 부축해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