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2화
저녁 무렵이 되자 주비양과 갈란군주가 돌아왔다.
진씨는 사람을 시켜 일상원에 밥상을 차리게 했고 사람들을 모두 불러 온 가족이 처음으로 함께 식사를 했다.
엽연채와 주묘화가 함께 일상원으로 들어와 보니 갈란군주와 주비양이 하좌에 놓인 권의에 앉아 있었고 주종과마저 자리해 있었다.
“식사 시간이 된 지가 언젠데 이제야 온 것이냐!”
진씨는 두 사람을 힐끗하며 잔소리를 했다.
“상을 차리거라!”
“그만하시오. 셋째 며느리는 몸이 무거우니 좀 늦게 온 게지.”
주 백야는 허허 웃더니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큰애는?”
그가 강심설을 찾자 진씨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식사하러 오라고 알렸는데 늦네요! 녹엽아! 녹엽아. 가서 보고 오너라.”
녹엽은 멍한 표정을 짓다가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이때 만월이 안으로 걸어 들어오더니 예를 올리고 말했다.
“나리, 마님. 큰마님께서 몸이 편찮으셔서 와서 식사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만심이 냉소를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것참, 공교롭네요. 저희 군주께서 시집온 지 이틀째 되는 날인데 큰마님께서 몸이 편찮으시네요. 저희 군주를 정말 싫어하는 거죠.”
진씨는 몹시 못마땅한 눈빛을 보이며 냉랭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프다고 하니 그럼 올 필요 없다.”
그녀는 그리 말하며 엽연채와 갈란군주를 쳐다봤다.
“셋째야. 네가 당분간 이곳에서 머물겠다고 한 이상 이곳의 규율을 지키거라. 우리 가문도 이제 예전 같지 않다. 규율을 세워야 하니 이후 동서지간인 너와 란이 그리고 묘화까지 전부 이곳에 와서 문안 인사를 드리거라.”
주묘화는 몸이 경직됐지만 얼른 고갯짓하며 답했다.
“예.”
“당연한 말씀입니다.”
갈란군주도 얼른 대답했다.
“어떤 가문이든 자식이 아침저녁으로 부모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지 않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자 소식을 알리러 온 만월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방금 전 진씨의 말속에 강심설이 빠져 있기 때문이었다. 만월은 당혹감을 느끼며 어떻게든 제 주인을 변호해 주려고 했다.
“이 일은…….”
“병이 났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방에서 몸조리나 잘하라는 것이다!”
진씨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못난 것이 못난 짓만 하는구나. 정말이지 궁상맞은 것일수록 몸도 시원치 않나 보구나! 몸이 그리 허약하니 시어머니인 내가 불쌍히 여겨 푹 쉬라고 하는 게다.”
만월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화가 나 얼굴도 하얗게 질렸다.
“큰마님은 정말로 몸이 편찮으세요.”
진씨는 만월을 째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난 그 애가 꾀병을 부린다고 말한 적 없다. 아프다고 하니 푹 쉬라고 하는데 그래도 불만이라는 게냐? 우리가 그 앨 푸대접한다고 생각하면 친정으로 돌아가 지내도 된다!”
‘친정으로 돌아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더할 나위 없고.’
진씨는 전부터 며느리인 강심설이 빈한한 출신이라 부끄러웠다. 이제 갈란군주가 집안에 들어왔으니 몇 년 후 오씨 가문 일이 잊혀지면 집안을 떠받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만월은 낯빛이 창백해졌지만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 강심설은 의지할 데가 없으니 만약 화가 나서 정말로 친정으로 가 버린다면 갈란군주는 바로 평처에서 정실부인이 될 거고, 진씨와 주비양 등은 희희낙락할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대로 해 주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만월은 그저 눈물을 참고선 일상원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고 녹엽과 주묘화는 동정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쳐다봤다.
“저런…….”
갈란군주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드러내더니 주비양을 쳐다보며 말했다.
“심한 건 아니겠죠? 우리 이따가 보러 가요.”
주비양은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의원도 아닌데 가서 본다고 그 사람 상태가 좋아지겠습니까? 그 사람은 원래부터 당신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가게 되면 화만 더 날 거예요. 식사합시다!”
정 마마는 여종들을 데리고 꽃문양이 들어간 붉은색 커다란 9층짜리 찬합을 들고 오더니 안에 든 음식들을 하나하나 상 위에 차려놓았다.
“비양이 말이 맞다. 우린 그 애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자기가 옹졸해서 처소에서 꽁해 있는 것뿐이지! 흥. 역시 몰락한 가문 출신답다. 어디 내놓기 부끄럽구나.”
진씨가 강심설의 흉을 보는데 갑자기 낯선 얼굴의 한 여종이 앞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 여종은 갈란군주가 시집올 때 데려온 또 다른 여종 만소였다. 그녀는 쟁반을 들고 앞으로 나왔는데, 거기엔 탕국을 담은 백자 그릇이 네 개 올려져 있었다.
만심이 진씨를 비롯한 사람들 앞에 이 그릇들을 놓자 진씨는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이게 무엇이냐?”
그러자 갈란군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님, 이건 제가 어릴 때부터 해 온 몸보신 방법입니다. 혈연노안탕血燕老雁汤인데, 안에 보양에 좋은 십여 가지의 귀한 재료를 넣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저희 어머니, 노왕비 마마, 신양 공주 마마 등 모두가 이렇게 먹습니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한 그릇씩 먹죠. 오랫동안 이리 먹으면 몸보신을 할 수 있습니다.”
진씨는 이 말을 듣자마자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거였구나. 이게 바로 황실의 몸보신 방법이구나!”
이건 궁중 귀인들의 식사법이었다. 진씨는 지금 자신도 이렇게 먹게 되자 본인이 황후와 왕비, 공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갈란군주도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이건 제 습관입니다. 앞으로도 매일 이렇게 할 거고 계절과 절기에 따라 안에 들어가는 재료를 바꾸거나 증감할 것입니다. 어머님과 아가씨도 지금 드셔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앞으로 매일 어머님과 아가씨 것도 준비하겠습니다.”
갈란군주가 말했다.
“네가 이렇게 효심을 보이는데 내가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느냐? 다만 네가 너무 번거로울까 봐 걱정이구나.”
진씨는 쌍수 들고 반기면서 겉으론 빈말을 했다.
“번거롭지 않습니다. 어차피 만심이는 날마다 저에게 이 탕을 끓여 줘야 하니, 하는 김에 두 사람 몫을 더 준비하는 것뿐입니다. 돈도 얼마 안 듭니다.”
진씨는 ‘돈도 얼마 안 든다.’라는 말을 듣더니 이 돈이 갈란군주의 혼수에서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자 그녀는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고 저도 모르게 엽연채를 쓱 쳐다봤다.
두 며느리 중 강심설은 지독히도 가난해 효도를 바라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고, 집에 있는 돈을 쓰지만 않아도 다행이었다. 그리고 엽연채는 돈이 좀 있긴 하나 인색하기 그지없었다. 전에 혼수를 한가득 가져왔지만 그녀를 위해서 돈을 쓴 적이 없었다.
생각을 하던 진씨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란이는 다르구나. 과연 황실 출신답게 도량이 아주 넓구나. 부처님이시여, 감사합니다. 세 명의 며느리를 얻었는데 이번에야말로 효심을 아는 며느리를 들였습니다.”
엽연채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큰 눈을 위로 뜨더니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어머님, 제가 어머님께 효도를 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까? 시집올 때 제가 어머님께 말액과 천운금, 머리 장신구를 선물해 드렸고 지금 어머님은 그걸 입고 계세요! 어찌 잊으신 겁니까?”
엽연채는 그리 말하며 진씨의 의복을 응시했고, 진씨는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는 정말로 잊고 있었다. 엽연채가 시집와서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엽연채는 귀한 포목을 꽤 많이 선물했고 지금 입고 있는 옷도 그 포목들을 이용해 만든 것이었다. 형태와 모양이 보기 좋았기 때문에 그녀는 지금까지 그 포목들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다.
엽연채는 피식 웃더니 이렇게 말을 이었다.
“어머님이 아무리 군주를 좋아하신다고 해도 편애하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군주께서 탕을 끓여 온 건 효심이고 제가 어머님께 포목과 머리 장신구를 선물한 건 효심이 아니군요! 정성을 따지자면 전 어머님께 교자도 빚어 드렸는데 어머님은 한 번도 절 칭찬해 주지 않으시네요.”
그러자 진씨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고 갈란군주는 슬며시 엽연채를 쳐다봤다. 그녀의 눈빛은 차갑고 어두웠다.
“더는 못 먹겠네요.”
엽연채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던지고는 돌아서서 자리를 뜨려고 했다.
“이런!”
그러자 격노한 진씨가 엽연채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너 이게 무슨 태도인 게냐?”
“제 태도가 왜요?”
엽연채는 돌아서더니 혀를 끌끌 차고는 이렇게 말했다.
“보신 그대로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십니까? 어머님께서 가시 돋친 말로 절 자극하시니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왜요? 제가 꾹꾹 참고만 있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이, 이……!”
진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좋다! 너……!”
“어머님, 태자 전하께서 큰아가씨에게 손찌검을 했던 일을 또 잊으셨나 봐요?”
엽연채는 턱을 살짝 쳐들며 대놓고 진씨를 겁박했다.
“어머님이 이렇게 저희를 싫어하시니 아예 서로 왕래하지 마시죠! 아니면 아예 관계를 끊었다는 걸 공표하시든가요! 큰아가씨도 이제 태자부에서 아주 평온하게 지내니 저희가 없어도 그리 지낼 거예요! 측비의 자리도 흔들리지 않을 거고요!”
대로한 진씨는 정신이 흐릿해져 하마터면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
만약 주운환이 정말로 주묘서와 관계를 끊는다면 주묘서는 태자의 마음속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거고, 그럼 측비의 자리도 정말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측비로 남아 더 이상 빛을 보는 날은 없을 테니까.
말을 마친 엽연채는 혜연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떠났다.
“저… 빌어먹을 것……!”
진씨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만하시오! 왜 이리 소란이오!”
주 백야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식구끼리 식사하는 자리인데 왜 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 대는 것이오? 우리 집안이 셋째가 아니었으면 어디 오늘 같은 날이 있겠소?”
그러자 진씨는 고개를 돌려 주 백야를 노려봤다.
“그러니 제가 그것들 눈치를 봐야 하죠.”
“그건…….”
주 백야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결국 이렇게 말했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 아니오?”
그는 자신의 무능함을 십분 발휘했다. 그 태평한 모습에 진씨는 나자빠질 지경이었다. 그녀는 크게 냉소하고는 마구 쏘아붙였다.
“맞습니다, 맞아요! 셋째가 입신출세를 했죠! 그러니 엽씨가 저리 기고만장하여 시어머니인 전 안중에도 안 두는 거겠죠.
게다가 셋째는 엽씨가 남편을 성공시키는 여인이라고 했어요. 엽씨를 아내로 맞이하지 않았으면 오늘 같은 날도 없을 거라고 했죠. 저도 이젠 그 말을 믿어요. 그런데 남편을 성공시키는 여인이 걔 하나만 있는 건 아니죠!”
‘이제 비양이도 갈란군주를 아내로 맞이했으니 점점 더 흥하고 잘될 거다! 그리고 결국 주운환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거야! 기다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