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660화 (660/858)

제660화

두 옥졸은 낯빛이 확 변했지만 그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퉤, 죽긴 뭐가 죽어 간다는 거야? 그냥 중풍 증상을 보이는 거구만! 당신들이 매일 밥 먹이면 목숨은 충분히 부지해.”

옥졸들이 감히 어찌 황제를 찾아가겠는가. 방금 전 갈란군주의 험담을 했는데 그건 황제가 현명하지 않아 그 혼사에 동의했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자칫 이 이야기가 밖으로 새 나가게 된다면 죽음은 면하더라도 살가죽이 다 벗겨져야 할 것이었다.

두 옥졸은 그들을 상대조차 하지 않고 방금 전에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곤 요씨 가문 사람들이 그곳에서 처량하게 울부짖도록 내버려 뒀다. 이런 우짖음은 이미 이골이 나게 들었으니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요양성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 느낌만 들었다. 입이 삐뚤어지고 손 근육도 뒤틀리니 말조차 할 수 없고 손 또한 움직일 수 없었다.

‘견기牽機(극약의 일종)다!’

무엇에 당했는지 깨달았지만 요양성은 눈 흰자위를 까뒤집더니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갈란군주는 정말 독한 여인이었다. 아들의 목숨도 개의치 않고 요씨 가문 사람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려고 하니 말이다.

그녀가 요양성을 독살하지 않은 건 그가 조정의 중죄인이니 죽게 되면 분명 위로 보고가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황제를 비롯한 귀인들은 그의 사인死因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겠지만 공교롭게도 갈란군주의 혼례식 전후에 그가 죽게 되고 주운환이 이 일을 알게 된다면 어찌될지 몰랐다.

그는 원래부터 갈란군주를 집안으로 들이는 걸 환영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우연치고는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어 조사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갈란군주는 요양성에게 견기를 쓴 것이다.

입은 물론이요 손발도 못 움직이게 만들어 죽지조차 못하게 말이다.

옥졸들마저 상부에 보고할 생각이 없으니 요씨 일가는 그저 이곳에서 죽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요양성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이 발견된다 해도, 그땐 이미 갈란군주는 뜻을 이루고 주운환도 죽었을지 몰랐다.

* * *

이튿날 이른 아침. 갈란군주는 일어나 씻고 단장을 마친 후 주비양과 함께 정청正廳으로 갔다.

진씨와 주 백야, 주운환과 엽연채 등 모든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백 이낭과 비 이낭도 자리하고 있었다.

진씨와 주 백야는 상석에, 강심설은 진씨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엽연채와 주운환은 하좌의 왼쪽에, 주종과와 주묘화는 오른쪽에 자리했고 백 이낭과 비 이낭은 엽연채 뒤에 서 있었다.

진씨와 주 백야가 고개를 들어 보니 주비양과 갈란군주가 함께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사내는 검붉은색 천사금으로 만든 상운祥雲 문양이 들어간 의복을 입었고, 여인은 한 줄기에 가지런히 핀 한 쌍의 연꽃 문양이 들어간 진홍색 배자를 입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주비양은 지적이고 준수한 외모를, 갈란군주는 참하고 우아하며 아름답고 매력적인 외모를 자랑했다. 멀리서 그들의 모습을 보니 금동옥녀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두 사람은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주 백야는 함께 걸어오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정신이 조금 아득해지며 과거 주비양과 갈란군주가 아직 파혼하기 전이었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가 바로 주씨 가문이 가장 화려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지금, 갈란군주가 다시 주씨 가문으로 시집을 왔다. 주씨 가문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은 것이었다.

그러자 주 백야는 저도 모르게 감회가 새로워지며 몸과 마음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집안이 마침내 과거의 번영을 되찾은 것이다.

이런 뿌듯한 생각을 하며 갈란군주를 쳐다보는 주 백야의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마치 갈란군주의 도래가 그들의 번영과 영광을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둘째 큰마님, 이쪽으로 오시지요.”

녹엽이 두 사람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유, 두 분을 보고 있으니 꼭 금동옥녀를 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정말 천생연분이에요. 어쩐지 이래서 황후 마마조차 특별히 의지를 내리신 거군요. 역시 뭐든 간에 제일 먼저 시작했던 게 최고죠! 고진감래, 호사다마라는 말처럼 이제 마침내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비 이낭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아부를 해 댔다.

그러자 원래도 창백했던 강심설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고 엽연채는 슬쩍 비 이낭을 노려봤다. 그런데 엽연채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주종과가 성난 목소리로 그녀를 나무랐다.

“어머니는 말씀 좀 적게 하세요.”

그는 그리 말하며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셋째는 후부의 적녀를 아내로 맞이했고 이젠 주비양마저 기사회생해서 군주를 평처로 들였네! 남편이 죽은 과부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황실의 군주가 주비양의 평처가 됐으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주비양이 이득을 보는 거잖아. 그런데 나는 뭐야. 나만 아무것도 못 건졌잖아!’

“둘째 도련님!”

비 이낭은 그를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봤다. 지금 그녀는 차기 황후인 주묘서에게 달라붙을 생각뿐이었지만, 갈란군주에게도 잘 보이려고 애썼다. 두 사람 다 황실 사람이니 말이다. 지금 줄을 잘 대 놓으면 나중에 그들이 대충 손가락만 까딱해도 주종과에게 황실 여인을 찾아 줄 수 있을 것 아닌가.

“세자 좀 보세요. 얼굴이 환한 게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에요.”

진씨가 주비양을 쓱 쳐다보니 과연 그는 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전에는 말수도 적고 우울해 보였는데 오늘은 활기가 넘쳐 꼭 온몸에서 빛을 발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진씨는 눈시울이 좀 붉어졌다. 과연 갈란군주를 평처로 들이는 건 올바른 선택이었다.

주 백야도 주비양의 변화를 보더니 과부인 갈란군주에게 가졌던 반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함박웃음을 짓더니 옅은 숨을 내쉬고는 이렇게 말했다.

“갈란아… 넌 우리 가문과 인연이 있나 보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진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랑 신부를 향해 말했다.

“어서 예를 올려라.”

그러자 녹엽이 곧장 상운 문양이 들어간 진홍색 부들방석 두 개를 가져와 바닥에 놓았고 두 사람은 무릎을 꿇었다. 녹엽의 손엔 쟁반이 들렸는데, 그 위엔 찻잔이 두 개 올려져 있었다.

“둘째 큰마님.”

갈란군주는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건네받더니 녹엽을 쳐다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복잡하게 부를 필요 없다. 그저 군주라고 부르면 된단다.”

그러자 녹엽은 멍한 표정을 지었고 상석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던 강심설은 가슴이 벌렁거렸다.

집안에선 친근함을 보이기 위해 일반적으로 주인마님, 마님과 같은 호칭으로 상전을 불렀다. 그 때문에 강심설이 세자의 부인이고 엽연채가 진서후 부인이라고 해도 집안 하인들은 모두 그들을 큰마님과 셋째 마님으로 불렀다.

그런데 지금 하인이 갈란을 둘째 큰마님이라고 강심설보다 낮춰 부르자 갈란군주는 기어이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강심설이 냉랭한 목소리를 냈다.

“자네가 군주인 걸 누가 모르는가. 하지만 오늘은 자네가 날 존중한다는 걸 보이기 위해 차를 올리는 날이네. 그러니 둘째 큰마님이라고 불러야지.”

그러자 진씨가 쾅 하고 항탁을 힘껏 내리치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강심설을 쏘아봤다.

“갈란은 군주다.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행동하라는 말이 있듯이 집안에서의 서열보다 군신관계가 먼저다. 갈란은 원래부터 너보다 고귀한 신분이다! 내 앞에서 이 무슨 괴상망측한 짓을 하는 게냐?

차를 마시기 싫으면 썩 돌아가거라! 그 누구도 네게 차를 마시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역시 넌 옹졸하고 사람들 앞에 내놓기 부끄러운 물건이구나.”

강심설은 화가 나서인지 아니면 놀라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혀서인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가 오늘 이 차를 마시지 않는다면 그녀는 영원히 갈란군주에게 밀리게 된다. 실은 차를 마시든 안 마시든 간에 이번 생은 갈란군주의 그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어머님 말씀이 맞습니다.”

엽연채는 냉담한 눈빛으로 진씨를 쓱 쳐다봤다.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행동해야 하죠. 하지만 지금 황후 마마조차 의지를 내리시면서 군주를 평처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군주는 평처인데 어디 정실부인보다 더 고귀한 신분이겠습니까? 안 그러면 황후 마마께서 아예 큰아주버님에게 정실부인을 내치고 다시 아내를 들이라고 하셨겠죠. 뭐 하러 굳이 평처로 들이라고 하셨겠습니까?”

진씨는 화가 나 몸이 기우뚱했다.

‘역시 날 제일 구역질 나게 만드는 건 엽씨 이 빌어먹을 것이구나. 저것이 지껄이면 난 한 마디도 반박을 할 수가 없으니!’

갈란군주는 조그만 얼굴이 조금 하얗게 변했고 주비양을 쳐다봤다. 이어 그녀는 찻잔을 들고 있는 손마저 부들부들 떨었다.

남편의 마음과 총애를 얻었고 황실의 군주라는 출신과 황후가 혼사를 맺어 준다는 의지도 얻었으니, 평처라고 해도 그녀가 강심설보다 위에 있게 되는 것은 지극히 명백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엽연채의 한마디가 까마득히 높은 곳에 앉아 있는 그녀를 단숨에 아래로 끌어내렸다.

황후의 의지는 분명 그녀의 고귀함을 드러내는 보물이었건만, 엽연채의 입을 거치고 나니 그녀가 그저 평처에 불과하며 규율을 위배하면 안 된다는 걸 명시해 각인시키는 종잇조각이 되어 버렸다. ‘평처’라는 모욕적인 기둥에 그녀를 못 박아 버리는 종잇조각 말이다.

갈란군주는 이날 이때까지 감히 자신의 체면을 이렇게 깎아내리며 궁지에 빠뜨린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오직 눈앞의 이 여인만이… 엽연채만이……!’

이런 생각을 하자 시선을 살짝 아래로 한 갈란군주의 눈동자에 순간 표독스러운 눈빛이 스쳤다.

“차를 올려요.”

그때, 주비양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며 갈란군주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갈란군주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그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강심설은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의 낯빛은 새파랬고 입술도 핏기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녀의 품에 기대어 있던 주학해가 손가락을 입에 문 채 이렇게 물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왜 저기서 무릎을 꿇고 있어요?”

강심설은 주학해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꺼내면 울음을 터뜨릴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 지금 상황에서 기가 꺾인 것처럼 보여 좋을 게 무어 있겠는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생일을 축하하는 거예요?”

그러나 어린 주학해는 어미의 심정을 알지 못하고 계속해서 물었다.

“아버지는 왜 어머니와 함께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지 않고 저 아줌마와 무릎을 꿇, 웁……!”

강심설 뒤에 있던 여종 만월이 주학해를 끌어당겨 입을 틀어막고는 이렇게 속삭였다.

“말하시면 안 돼요. 돌아가서 도련님께 계화 사탕을 드릴게요.”

진씨는 입술을 살짝 오므리더니 고개를 돌려 주학해를 쏘아봤다. 그녀는 여전히 이 손자를 아주 사랑하지만 지금은 좀 눈에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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