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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653화 (653/858)

제653화

강심설은 입술을 꽉 깨물었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괴롭고 난처한 기분이 들 뿐이라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입을 열 수 있었다.

“미안해, 동서……. 전에 난 동서를 항상 난처하게 만들었고 질투했는데 동서는 지금 날 도와주네.”

그러자 엽연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가볍게 대꾸했다.

“사소한 일인데요.”

그녀는 전생과 현생, 두 번이나 며느리로 지내 봤기에 시집에서 남편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친정과 시집이 수준 차이가 나면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강심설은 처음엔 군주라는 전 정혼자와 비교를 당했고 살면서는 남편과 동상이몽을 하며 시어머니에게 업신여김을 당했다. 강심설은 이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저 진씨를 따르고 그녀에게 잘 보이려 애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겨우 살 만해졌나 싶을 때, 자신이 이 가문으로 시집을 온 것이다. 자신은 주씨 가문보다 좋은 가문 출신이었고 혼수도 많이 가져왔으니 강심설은 한순간에 밀리게 되었다.

그릇이 간장 종지만 한 진씨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녀와 자신을 수없이 비교했다. 강심설은 친정이 별 볼 일 없고 남편도 그녀를 아끼지 않으니 당연히 자신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 * *

한편, 일상원의 진씨는 두 사람이 떠난 방향을 쳐다보다가 화가 치밀어 올라 들고 있던 찻잔을 바닥에 냅다 집어 던졌다.

‘빌어먹을 년!’

하지만 그녀가 갈란군주의 뜻에 동의하고 갈란군주와 손을 잡은 건 사실이었다.

물론 진씨는 여전히 갈란군주에게 화가 나 있었다. 자신들이 가난했을 때 바로 관계를 끊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제 갈란군주가 곤경에 처하게 되니 화가 좀 풀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일의의 발인이 있기 하루 전날, 갑자기 누군가가 그녀를 회미천하로 불러냈다.

당시 평왕비의 이름으로 초청했으니 진씨는 찾아가 그녀가 당시 눈이 삐었다고 비웃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약속한 장소로 나갔다.

그런데 문안으로 들어서자 갈란군주도 그곳에 자리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진씨는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싫은 소리를 했다.

“남편이 죽은 지 얼마 안 된 분이 이렇게 밖을 돌아다니시다니. 다른 사람에게 안 좋은 기운이 옮겨가는 건 걱정도 안 하시나 보네요.”

평왕비는 표정이 차갑게 변했으나 갈란군주는 진씨가 이런 성격의 소유자라는 걸 이미 알고 있기에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안 좋은 기운 운운하던 진씨는 자리를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하하 웃으며 혼자 말을 이었다.

“군주와 왕비께서는 참 탁월한 안목을 가지셨네요. 그런 단명할 사람을 한눈에 마음에 들어 하시다니. 그에 반해 우리 가문은… 흐음, 한동안 암울한 시기를 겪기는 했지만 이제 고난에서 벗어난 셈이죠. 우리 묘서는 큰 행운을 얻었고요.”

“맞네.”

평왕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 지금 아주 후회하고 있네. 에휴, 그때 내가 잘못한 거지. 하나 난 아직 두 아이의 인연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네. 이제 갈란이 시집을 가려고 하는데… 이 앤 자네 아들 비양이의 평처가 되고 싶어하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진씨는 깜짝 놀라더니 화를 냈다.

“저희 주씨 가문을 뭘로 보시는 겁니까? 군주께서 시집오고 싶다고 하면 시집올 수 있는 겁니까?”

평왕비는 두 눈을 살짝 깜빡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비양이가 갈란을 평처로 맞이하면 우리가 자네들을 도와 주운환을 깔끔히 제거해 줄 수 있네. 그리고 비양이가 주운환의 모든 것을 넘겨받게 해 줄 거고.”

진씨는 맹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러더니 대답을 듣기도 전에 소리 내어 냉소했다.

“왕비 마마와 군주의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우리 묘서가…….”

“황후가 될 거라고?”

평왕비는 찬웃음을 띠며 반박했다.

“언제 그리될 수 있다는 거지? 우리가 나 의정에게 물어보니 황제 폐하의 건강이 좋아져서 앞으로 이삼십 년 더 사시는 건 문제도 아니라고 하더군.”

진씨는 표정이 싸늘해졌다. 알기에 자신과 딸이 이미 큰 계획을 생각해 두지 않았는가?

“주 부인이 이리 오만방자하게 구는 걸 보니, 설마 무슨 대역무도한 짓이라도 벌일 심산인 겐가?”

평왕비가 코웃음을 치자 진씨는 화들짝 놀라 아연실색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 일을 어떻게 다른 사람이 벌써 알아냈단 말인가. 이건 목이 잘릴 대죄였다.

평왕비는 그녀를 물고 늘어지며 말했다.

“설령 두 사람에게 정말로 계획 같은 게 있다고 해도 주운환이 협력하지 않으면 어떻게 실행할 건가?”

“그,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씀은 그만하세요. 저희는 그런 생각을 품지 않았습니다.”

진씨가 다급히 부정했으나 평왕비는 냉소와 함께 물고 늘어질 뿐이었다.

“하지만 자네들이 란이를 집안으로 들이면 이야기는 달라질 거네. 우린 비양이가 한 달 안에 주운환의 모든 것을 빼앗아 오게 만들 수 있으니까.”

진씨는 이 말을 듣고 놀라서 오금이 다 저리면서도 또 혹했다. 한 달 안에 주운환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니, 공명과 권세 말인가? 만약 이런 것들이 전부 주비양의 것이 된다면 자신들 모녀도 서둘러 그런 위험한 계획 같은 걸 생각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었다.

공명과 권세만 있다면 엽연채와 주운환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테니까. 그리고 황후의 자리도 확실히 지킬 수 있으리라. 그 자리가 보장만 된다면 지금은 태자비만 되어도 더없이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지금 자신들이 계획을 꾸미고 당장 황후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도 다 주운환을 무너뜨리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지금…….’

평왕비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진씨의 마음이 흔들렸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솔직히 말하겠네. 우리 갈란의 조건이라면 3년 후에 재가를 해도 얼마든지 좋은 남편을 얻을 수 있네. 옛정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란이도 비양이를 원치 않았을 걸세.”

진씨는 집안에 상중인 여인을 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확실히 마음이 흔들렸다.

“어떻게 하실 수 있는데요?”

“자세히는 자네에게 알려 줄 수 없네. 하지만 반드시 성공할 것이네.”

평왕비의 호언장담에 진씨는 깜짝 놀랐고 전에 주씨 가문이 몰락했을 때 평왕비가 바로 파혼하겠다고 소란을 피운 일이 떠올랐다.

평왕비는 지극히 실리를 따지는 사람이었다. 만약 이들이 본인들의 약속을 지킬 수 없다면, 그러니까 주비양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면 어째서 온 세상의 비난을 감수하며 갈란군주를 주비양에게 시집보내려고 하겠는가?

‘그러니 이건 확신에 찬 약조인 셈이다.’

진씨는 조금 흥분됐다. 상중인 사람이라 재수가 없긴 하지만 권세를 떠올려 보면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고작 평처에 불과하니 그렇게 손해 보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도 전에는 갈란군주를 아주 좋아했었다. 황실 출신인 갈란군주야말로 주비양에게 어울리는 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갈란군주는 주비양을 찼지만 자신은 갈란군주를 잊기는커녕 무슨 일만 있다 하면 강심설과 그녀를 비교했다.

이제 ‘본존本尊’을 집안으로 들일 기회가 다시 찾아온 거다. 진씨는 갈란군주를 한 식구로 맞이하려는 마음이 가득해졌다. 그리하여 평왕비 쪽과 상의를 거쳐 오일의가 아내를 시집보내라고 했다는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당시 진씨는 이 계획이 성사되지 않을까 봐 걱정을 했지만, 평왕비는 모든 걸 자신에게 맡기라고 했다. 갈란군주는 순조롭게 출가할 수 있고 오명을 뒤집어쓸 필요도 없다고 했다. 진씨는 그저 소란만 피워 주면 충분하다고 했다.

이후 평왕비는 정말 수완 좋은 사람이란 게 증명되었다. 그녀는 이 일을 아주 순조롭게 해냈다.

진씨는 그 과정을 하나씩 되짚으며 흡족한 눈빛을 보였다.

‘이 빌어먹을 것들아. 어디 실컷 날뛰어 보거라. 한 달 뒤에도 그렇게 웃을 수 있을지 어디 한번 보자꾸나.’

* * *

한편, 엽연채와 강심설은 정자 두 곳을 지나치는 중이었다. 그때 저 멀리 주비양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강심설은 주비양을 보더니 낯빛이 변했고 누르스름한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이미 이쪽으로 걸어온 그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냉랭하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강심설을 마주하고도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엽연채에게 시선을 향했다.

“큰아주버님.”

엽연채가 미소를 지으며 먼저 그를 불렀다. 주비양은 다시 한번 강심설을 쓱 쳐다보더니 엽연채의 말을 받았다.

“왔군요.”

“네!”

엽연채는 호호 웃으며 자신이 방문한 까닭을 밝혔다.

“집안에 일이 많으니까요.”

강심설은 엽연채 입에서 나온 ‘일’이라는 말을 듣더니 표정이 더욱 차갑게 변했고 냉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부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는 돌아서서 잰걸음으로 그곳을 떠났다.

“형님…….”

엽연채는 강심설을 부르려고 했지만 그녀는 이미 꽤 멀어진 후였다. 엽연채는 고개를 들어 주비양을 쳐다보며 말했다.

“큰아주버님이 오늘 돌아오시긴 했지만 도성에 이미 그런 큰일이 생겼어요. 게다가 큰아주버님과 관계된 일이지요. 갈란군주 일을 이미 들으셨죠? 아주버님은 곧 군주를 아내로 맞이하시게 되었어요.”

주비양은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가 돌아왔을 때는 이미 모든 게 정해져 있었는데, 뭘 더 어쩔 수 있었겠습니까?”

말을 마친 그는 뒷짐을 지고선 그곳을 떠났다.

그의 말대로였다. 오늘은 말할 것도 없고 채결이 요명대사를 데리고 오씨 가문에 온 그 순간, 이미 모든 게 정해진 것이었다. 이미 황제가 동의해 이 혼사를 성사시키려고 했으니 어찌 이뤄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엽연채는 입을 살짝 오므렸다. 주비양 강심설 부부가 때까치와 제비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듯 각자 다른 방향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자 좀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마님, 어서 가시죠.”

곁을 따르던 혜연이 말했다.

“궁명헌에 가 본 지도 오래됐으니 가서 한번 봐야죠.”

“그래.”

엽연채는 그제야 걸음을 뗐다.

한편, 강심설과 헤어진 후 주비양은 곧장 일상원으로 향했다.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강심설의 흠을 잡아 그녀를 욕하는 진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몰락한 가문의 자식답다. 교양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데 어떻게 우리 주씨 가문 큰며느리 자격이 있겠더냐. 갈란은 다르다. 어쨌든 그 앤 군주라는 존귀한 신분인데 강… 어머, 비양이가 돌아왔구나.”

진씨는 그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더니 바로 하던 말을 멈추었다.

냉담하기 짝이 없는 표정의 주비양이 방 안을 쓱 훑어보니 진씨는 상석에 앉아 있었고 주묘화와 백 이낭, 비 이낭은 모두 하좌에 앉아 진씨의 청중이 되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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