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1화
물론 갈란군주는 그래도 아들을 몹시도 아꼈다. 어쨌든 제 배로 낳아 기른 아들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 아들의 병세는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향이 있으면 두통을 가라앉힐 수는 있지만 여전히 서는 것조차 힘들어하니, 목숨을 오래 부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에 갈란군주는 이미 결정을 내린 후였다.
‘오랫동안 무의미하게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짧게 고통을 겪는 편이 낫겠지.’
* * *
오씨 가문 일은 너무도 기이하여 도성 사람들 전부 이 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당연히 다들 오씨 가문 여인들이 궁에 들어가 고발한 사실도 알고 있었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누가 궁 안의 소식을 밖으로 전했는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이 이미 상부에 전해져 황제 폐하께서도 들으셨다고 하더군. 어쨌든 군주는 황제 폐하의 친손녀시잖아! 그런데 주씨 가문이 감히 모욕을 했으니 당연히 폐하께서 군주를 대신해 나서려고 하시지 않겠나.”
백성들은 눈이 번쩍 뜨여 그 사람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폐하께서 이 일은 오일의의 혼령이 꿈에 나타나 벌어진 일이니 그럼 오일의에게 직접 물어보자고 하셨다더군.”
“아이고. 그걸 어떻게 물어본담?”
“황제 폐하께서 이미 법화사의 주지승인 요명대사를 부르셨답디다. 오씨 가문으로 오라고 해서 의식을 행할 거라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요명대사가 등장하자 백성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좋은 방법이구먼! 요명대사는 득도한 고승이시니 분명 오일의의 망령이 왜 나타났는지, 진짜 이유를 알아낼 수 있으시겠지.”
* * *
이튿날 이른 아침, 백성들은 오씨 가문 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어 어떤 마차가 오씨 가문 대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고 그 마차는 수화문 밖에 멈춰 섰다.
마차에 탄 사람들이 잇따라 마차에서 내렸는데 진씨와 주 백야였다. 주비양 부부와 주묘화 등은 이곳에 오지 않았다.
오씨 가문 어멈은 두 사람이 마차에서 내린 모습을 보더니 바로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때, 곧이어 마차 한 대가 또 안으로 들어왔다. 마차를 모는 이는 환관들이 입는 짙은 남색 빛깔의 옷을 입고 있었고 마차가 멈춰 서자 어린 환관 둘이 앞으로 나왔다. 이어 그들은 채결과 노란색 옷에 붉은색 가사袈裟를 걸친 승려를 부축했다.
“어머……!”
손님들을 맞이하러 나온 어멈은 채결을 보더니 놀란 목소리를 냈다.
“채 공공이 아니십니까?”
오일의는 전에 천자를 가까이에서 모시던 신하답게 황제로부터 상을 받는 경우가 잦았고, 그럴 때 채결도 자주 직접 성지를 전달했기 때문에 오씨 가문 사람들은 그를 알고 있었다.
다만 예전이었다면 공손하게 그를 응접실로 맞이하는 게 전부였을 텐데, 이젠 상황이 예전 같지 않으니 마중이 절로 성대해졌다. 어멈은 얼른 어린 여종을 안으로 들여보냈고, 잠시 후 애어른 할 것 없이 오씨 가문 사람들이 전부 그를 맞이하러 직접 나왔다.
오 부인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와병 중인 오 노야마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공, 이렇게 직접 방문해 주었는데 멀리 마중을 나가지 못했네.”
“노야, 전 그저 폐하의 명을 받고 일을 처리하러 온 것뿐입니다. 요명대사를 이곳으로 모셔오는 일을 맡았습니다.”
“아미타불.”
채결은 사양하며 동행한 사람을 소개했고, 요명대사는 인사 대신 염불을 외웠다.
“공공, 요명대사.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오 노야가 그들을 안으로 데려가자 오 부인은 눈물을 훔쳤다. 요명대사는 고명한 승려이니 분명 오씨 가문의 억울함을 풀어 줄 것이었다.
그들은 우르르 수화문을 넘어 오일의의 방으로 향했다. 그곳은 여전히 새하얀 모습이었고 갈란군주는 창백한 얼굴에 병색이 완연한 한 아이를 데리고 한쪽에 서 있었다.
요명대사는 방 안을 둘러보다가 계단戒壇에 올라가 손가락 마디를 세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미타불. 왕생한 오 시주의 망령이 편안한 상태가 아니군요!”
오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고 오 부인은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주지 스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설마…….”
정말 갈란을 당장 재가하게 해야 한단 말인가?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요명대사는 이어서 설명했다.
“갈란군주와 주비양이야말로 부부의 연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엇갈리며 군주께 원래 주어졌던 부부의 연이 끊어져 버렸고 오일의는 중간에 끼어들어 남의 인연을 가로챈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갈란군주와 주비양의 인연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오일의는 지옥에서도 가장 고통스러운 최하층의 지옥에서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될 겁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오씨 가문 사람들은 전부 낯빛이 싹 변했다. 특히나 오 부인은 새파랗게 질린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부정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절대 그럴 리 없어요!”
그러자 진씨가 얼른 이렇게 말했다.
“보세요. 주지 스님조차도 증명해 주셨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 과… 크흠, 아무튼 난 결코 당신들을 속이지 않았어요! 억지를 부리는 건 당신들이에요.”
“어떻게 이럴 수가……!”
소리를 지른 사람은 갈란군주였다. 그녀는 이미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는데, 눈물을 철철 쏟으며 제 ‘정해진’ 운명을 한사코 거부했다.
“전 싫습니다! 싫단 말이에요!”
“아버지! 아버지!”
이때, 누군가가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보니 오 노야가 혼절해 바닥에 쓰러진 것이었다. 다행히 차남이 그의 인중을 꾹꾹 눌러 주자 금세 다시 정신을 차렸다.
오 노야는 몸을 돌려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채결을 꽉 붙들고 말했다.
“공공, 이게 다 사실인가? 하늘이 우리 가문에게 어찌 이리하신단 말인가! 내 아들은 생전에 대제를 위해 큰 공로를 세우지 않았는가. 이제 왕생했는데 아내가 바로 재가를 한다니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건 그 애의 무덤을 파헤쳐 그 아이의 주검에 채찍질을 하는 것과 다름없네.”
그는 그리 말하더니 갑자기 피를 토했다.
“컥! 푸읍!!”
깜짝 놀란 오씨 가문 사람들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더니 다들 울기 시작했다. 오일의의 발인 날 때보다 훨씬 더 비참하고 처량한 울음소리가 온 방을 채웠다.
“이젠 중도 거짓말을 하는구나. 난 죽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내 아들을 모욕할 뿐만 아니라 우리 나리도 화병으로 죽이려고 하는구나. 개가 웃을 일이다! 난 이런 세상에서 더는 못 살겠구나!”
오 부인이 길길이 날뛰자 채결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부인, 믿지 못하시겠다면 직접 다른 이를 찾아보시지요.”
그는 그리 말하고는 옷소매를 홱 뿌리치더니 이곳을 떠나갔다.
채결과 요명대사가 문밖으로 나가자 진짜로 오일의의 망령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소식이 온 도성에 파다하게 퍼지게 되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오 부인은 다른 승려들과 도사들을 불러 상황을 물었지만, 다들 눈치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지금 저명한 요명대사조차 오일의의 망령이 소란을 피우고 있다고 말하고 황제 또한 반박하지 않으니, 그들 역시 전부 같은 이야기를 건넸다.
오씨 가문 사람들은 그야말로 화병으로 죽을 지경이었고 오 노야는 또 심하게 각혈을 했다.
한편, 채결은 돌아가서 정선제에게 보고를 올렸다.
“폐하, 이제 도성 사람들이 모두 오일의의 뜻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오씨 가문 사람들이 여전히 소란을 피우고 있어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조용히 만들면 된다. 오일의가 죽었고 갈란도 재가하게 되었으니 어쨌든 뭔가를 주어 보상을 해 주면 되지 않겠더냐. 마침 형부상서 자리가 공석이니 좌시랑을 승진시켜라. 그럼 낭중 자리가 비니…….”
“맞습니다.”
채결이 얼른 나서서 정선제의 뒷말을 완성했다.
“현재 오일의의 둘째 남동생 오일봉이 사부史部의 원외랑員外郞이옵니다.”
정선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붓을 한번 휘둘러 오일봉을 4품 형부낭중으로 승진시켰다. 오일봉은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로, 이렇게 젊은 나이에 4품 관리로 승진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일을 키우기로 작정했던 오 노야는 차남이 승진했다는 소식을 듣더니 바로 태도를 바꾸었다.
무능한 그가 운 좋게 얻은 유망한 아들은 결국 불구가 되어 세상을 떠났지만, 어쨌든 며느리는 여전히 군주이니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며느리마저 도망을 치려고 하니 어찌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오일봉이 승진을 하면서 마땅한 보상을 받은 셈이었다. 오 노야는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더니 이렇게 말했다.
“일의의 뜻이라고 하니… 그럼 그 아이의 뜻에 따라야지!”
오 부인은 이 이야기를 듣더니 눈이 다 뒤집혔다. 이번엔 그녀가 피를 토하면서 그대로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녀의 친아들은 죽었는데 지금 엉뚱하게 서자가 보상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이중으로 타격을 입은 꼴이었다.
오 부인은 계속해서 법석을 떨려고 했지만 오 노야가 사람을 시켜 그녀를 처소에 가둬 버렸고 밖에는 ‘갈란군주가 시집을 가지 않으면 힘들어지는 건 이미 지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오일의다.’라는 소문을 퍼트렸다.
갈란군주는 오씨 가문에서 거듭 애걸해 오니 결국 스스로 정절을 더럽히며 오씨 가문과 관계를 정리하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녀는 친정인 평왕부로 돌아갔고 여드레 후에 주비양에게 재가하게 되었다.
백성들은 이 이야기를 듣더니 다들 한숨을 쉬며 개탄했다.
개중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망령이 요구했다고 해도 남편이 세상을 뜨자마자 재가하다니, 참나……. 쯧쯧.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소. 부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 아니오?”
“맞아. 부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는 게지!”
한 명이 물꼬를 트자마자 동의하는 사람이 바로 생겨났다. 그러나 반대 의견을 표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었다.
“에이, 퉷! 지금 군주께서 얼마나 억울해하고 계신데 체면에 먹칠까지 한단 말이오? 군주께서도 망령을 제도提導하고 선부先夫가 지옥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어쩔 수 없이 그러시는 거 아니요!”
“에휴. 보기에는 좋지 않지만… 확실히 군주를 탓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 군주께서도 난처하실 거야! 오씨 가문 사람들이 죽겠다고 난리를 치니까! 군주도 강요당하신 건데 사람들에게 욕까지 먹어야 하다니, 참 가련하시다.”
갈란군주는 남편이 죽자마자 바로 원수의 집안으로 재가를 하면서 이른 봄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를 제공해 줬다. 처음엔 그녀를 욕하는 사람들이 주류였지만 어느새 흐름이 점차 바뀌면서 그녀를 동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