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648화 (648/858)

제648화

망령 이야기에 분위기는 또다시 일변했다.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쑥덕거렸다.

“아니, 오일의의 망령이 꿈에 나타나 갈란군주를 재가하게 하라고 했단 말이야?”

“그럴 리가 없어!”

오 부인은 싸늘한 목소리로 소리쳤고 화가 나 이마에 핏줄이 굵게 부풀어 올랐다.

“내 아들이 왜 내 꿈에 나타나지 않고 하필 당신 꿈에 나타나?”

“그걸 누가 알겠어요.”

진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어쩌면 이미 부인 꿈에 나타났는데 부인이 그저 며느리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걸지도 모르죠.”

“함부로 지껄이지 마! 이 빌어먹을 여편네. 이 이상 헛소리를 지껄여 대면 내 당신을 죽여 버릴 거야!”

오 부인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진씨에게 달려들었다. 다행히 그녀가 진씨의 머리채를 붙잡기 전에 오씨 가문 사람들이 그녀를 잡아당겼으나 진씨에게 심한 욕을 퍼부었다.

“심보가 못돼 처먹었구만. 감히 이런 양심이라곤 털끝만치도 없는 몹쓸 짓을 벌이다니……!”

그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을 총동원하는 동안, 갈란군주는 바닥에 엎드린 채 가슴이 찢어지듯 슬피 울 따름이었다. 옆에 있는 여종들이 그녀를 저지하지 않았다면 돌사자에 머리를 들이받아 지금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몰랐다.

“이제 그만하십시오.”

주운환이 싸늘한 눈으로 진씨를 노려보자 진씨 역시 고개를 돌려 주운환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셋째야, 이건 비양이가 널 위해 빚을 갚고 있는 거란다! 갈란군주와 네 큰형이 정혼을 했던 건 맞지만, 왜 하필이면 우리 가문에 들이라 했겠느냐! 이건 다 네가 그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우리 주씨 가문에게 빚을 갚으라고 하는 거다. 우리 주씨 가문이 자기를 대신해 갈란군주를 돌봐 주라는 거지!”

주운환의 잘생긴 얼굴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어머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제가 언제 오일의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까? 그 사람은 저에게 맞아 다친 게 아니라 비적들에게 당한 겁니다! 제가 경위영을 맡지 않았어도 다른 사람이 맡았을 겁니다. 오 부인, 안 그렇습니까?”

그는 그리 말하며 수묵화로 그린 것 같은 두 눈으로 오 부인을 냉담하게 쳐다봤다. 그러자 오 부인은 입술을 꽉 물더니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그래, 자네 탓이 아니야! 아니라고! 다 비적들이 한 짓이네. 내 아들이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지. 자네는 우리 가문에 빚진 게 없으니 빚을 갚을 필요는 조금도 없네! 자네 집안에서 우리를 대신해 갈란이를 돌봐 줄 필요는 더더욱 없고! 그러니 우리 집에서 나가게! 다들 나가라고! 더는 내 아들을 짓밟지 말게.”

“어머니, 들으셨습니까?”

주운환의 말에 진씨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것이냐? 지금 너보고 갈란군주를 아내로 맞이하라는 게 아니다. 네 큰형의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거야!

넌 이런 걸 꺼려 하니 상관하지 않으면 그만이겠지만, 난 마음이 영 불편하다. 나라고 과부인 데다가 상중인 갈란군주를 집안으로 들이는 걸 원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이게 다 오일의의 망령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힘들다… 흑…….”

그녀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겠는지 말끝에 눈물을 찍어 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백성들은 서로의 얼굴만 들여다볼 뿐이었다. 하나둘 우는 걸 보니 좀 있으면 다 같이 울 기세였다.

오 부인과 진씨는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치만 놓고 보면 진씨의 말이 더 설득력 있었다. 방금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상중인 과부를 집안에 들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러니 오일의가 정말 꿈에 나타나 괴롭히는 바람에 진씨도 견딜 수가 없어서 이런 용납될 수 없는 일을 벌인 것이었다.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씨 가문은 주운환을 탓하지 않는다고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분명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오일의는 주운환이 정식으로 경위영을 다스리게 되자마자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줄곧 주운환을 원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인, 여기서 무슨 소란을 피우는 것이오.”

그때, 누군가의 싸늘한 호통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니 주 백야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고 그 뒤로 강심설, 주종과, 주묘화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주비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집에 있던 그들은 갑자기 진씨가 오씨 가문을 찾아가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이곳으로 오는 동안 진씨의 기이한 행동에 대해서도 듣게 되었다. 진씨를 마주하자 주 백야는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고 강심설은 어안이 벙벙했다.

“제가 무슨 소란을 피웠다는 겁니까?”

진씨는 고개를 돌려 주 백야를 쳐다보며 억울해했다.

“이게 다 그 오일의의 망령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뭣 하러 소란을 피우려고 했겠습니까?”

“어머님, 저희 일단 집으로 돌아가 차근차근 상의해 보시지요.”

강심설이 창백한 얼굴로 나서기 무섭게 진씨는 눈에 불을 켜더니 강심설의 뺨을 후려쳤다.

“이 빌어먹을 것! 오일의 때문에 내 수명이 전부 달아나게 생겼는데 넌 아직도 갈란군주에게 투기를 하고 있구나. 역시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몰락한 가문의 여식답구나.”

강심설은 진씨에게 맞아 몸이 휘청거렸고 주묘화는 깜짝 놀라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

“새언니.”

계단에서 눈물을 닦고 있던 갈란군주는 강심설이 뺨을 맞는 모습을 보더니 버들잎 모양의 고운 눈썹을 추켜세웠다.

“집으로 돌아가시죠.”

주운환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진씨가 목을 빼며 무어라 반박하려는데, 주 백야 등이 억지로 그녀를 붙들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

“집으로 그만 돌아갑시다! 시끄럽게 소란 피우지 말고.”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주운환은 사과를 한 뒤 돌아서서 그곳을 떠났다.

이렇게 주씨 가문 사람들은 황급히 오씨 가문을 떠났지만 오씨 가문 사람들은 이 울분을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특히나 오 부인은 두 눈에 핏발이 다 섰고 이마에는 굵은 핏줄이 부풀어 올랐다. 그녀는 목소리를 심하게 떨 정도로 화가 난 상태였다.

“그래 좋아. 소란 피우고 싶으면 그렇게 해 봐! 어디 누구 말이 맞는지 보자고! 인품이라곤 말아먹은 것들, 양심이라곤 털끝만치도 없는 것들! 너희들이 얼마나 잘나가는지 내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가자. 어전에 가서 고발하자꾸나. 흑흑… 어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꼬! 어찌 이런 일이 있을꼬!”

“맞습니다, 어머니. 황후 마마를 찾아가 시비를 가려 달라고 부탁드려야 합니다.”

이십 대로 보이는 한 청년이 울면서 그녀에게 동조했다.

그는 그러잖아도 오일의가 분을 못 참고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에서 더는 자신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감히 소란을 피울 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황궁에 얼굴을 내밀 기회가 없어 근심하던 와중에 이런 일을 당했으니, 차라리 전화위복이라 여기고 황제를 배알해야 마땅했다.

억울한 일을 당했으니 요구해야 할 건 요구해야 했다.

오씨 가문 여인들은 마차를 타고 황궁으로 향했다.

하지만 오씨 가문 사내들은 마음대로 궁에 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천자로부터 봉호를 받은 오씨 가문 여인들만 궁에 들어가 황후에게 문안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 * *

한편, 주 백야 등에게 이끌려 강제로 귀가한 진씨는 일상원에 도착했다.

주 백야는 화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오? 그런 일을 벌이다니.”

“절 탓하지 마세요! 저라고 그런 과부를 원해서 간 줄 아십니까? 게다가 상중인 여인이라 온몸에 불길한 기운이 가득하니 보기만 해도 재수 없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여인을 가까이하고 싶겠습니까?”

진씨는 억울한 목소리로 빽 소리를 쳤다.

“이게 다 오일의의 망령 때문이에요……! 밤마다 절 찾아와 반드시 갈란군주를 집으로 들여야 한다고 보챘어요. 안 그러면 절대로 저희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이래도 제 탓인가요?”

이어 그녀는 오일의의 망령이 얼마나 무서운지, 자신은 그가 세상을 뜬 이후로 단 한 순간도 평온한 적이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주 백야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낯빛이 얼마간 하얘졌고 마음도 조금 흔들렸다. 왜냐하면 그는 진씨 같은 사람이 상중인 과부를 집으로 들이는 걸 원할 리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진씨의 말이 정말 사실인 걸까?’

한편, 진씨의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주운환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갑자기 엽연채를 데리고 문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갑시다. 이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군요.”

그러자 엽연채는 그의 팔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부군…….”

그녀는 귀신 이야기를 믿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한 번 죽었던 사람 아닌가. 그러니 당연히 귀신과 부처를 믿었다.

하지만 오일의가 주비양에게 갈란군주를 거두라고 했다는 말은 아무리 들어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게 사실이 아니라면? 설마 진씨의 자작극이란 말인가? 그럴 이유가 무엇 있다고?

찜찜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또 갈란군주였다.

이 여인은 요즘 어디든 다 나타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된 게 다 그녀와 관련된 일이었다.

‘설마 갈란군주가 재가하고 싶은 걸까? 하지만 어째서 주비양에게 시집을 가려는 걸까? 과거 정혼한 사이라서?’

하지만 갈란군주의 신분이라면 옛날 옛적 인연에 매달릴 필요가 없었다. 과부로 수절하다가 몇 년 후에 재가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정선제에게 부탁만 하면 된다. 분명 괜찮은 사람에게 시집갈 수 있을 테니 굳이 주비양을 고를 필요가 없었다.

정말이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 * *

오 부인은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분하게도 지금 주씨 가문의 위세가 나는 새도 떨어뜨릴 지경이니, 자신들은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오직 황제와 황후만이 그들을 처리해 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오 부인은 갈란군주를 비롯한 며느리들을 데리고 궁으로 들어갔다.

정 황후는 상중인 오씨 가문 사람들이 궁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

“이런 고얀 것들!”

곁을 지키던 사 마마가 옅은 한숨을 쉬며 그런 그녀를 다독였다.

“황후 마마, 마마께서는 귀한 몸이시니 그런 걸 꺼리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사실, 황실 사람들은 본래 진용眞龍이 자신들을 보호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상사喪事를 꺼리지 않는 법이었다. 선황이 붕어하면 태자가 바로 제위에 올라야 하고 조정에 나가 정사를 논해야 하니, 애초에 이를 꺼려 할 수도 없었다.

“안으로 들이거라.”

정 황후의 명이 떨어지고 밖에 있던 궁녀가 대답을 하자, 이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오 부인과 갈란군주, 그 밖의 다른 며느리들이었다. 그들은 차례로 정 황후 앞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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