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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645화 (645/858)

제645화

주묘서는 며칠 후면 아이를 가진 지 3개월이었다. 그래서 눈에 띄게 배가 부르지 않았지만 이미 품이 여유 있는 옷을 입고 있었고 걸을 땐 허리까지 받치고 다녔다. 사람들이 그녀가 임신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주묘서는 허리를 받치고 문으로 들어섰고 정 황후는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눈에 좀 거슬렸다.

‘아주 유난을 떠는구나! 주운환의 여동생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폐위했을 것인데.’

“아유, 왔구나.”

그러나 정 황후는 겉으로는 온후한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사 마마, 밥상을 차리게.”

“예.”

사 마마는 대답을 하더니 궁녀들에게 밥상을 차리라고 분부했다.

태자와 주묘서는 바로 반청으로 갔고 정 황후와 태자 부부는 자리에 둘러앉았다. 주묘서가 식탁을 힐끗 쳐다보니 임산부들이 즐겨 먹는 음식들이 많이 보였고 그중에는 신 음식도 매운 음식도 있었다.

“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산탕노어酸汤鱸魚가 있네요.”

“그럼 많이 먹으렴. 신 걸 좋아하면 사내아이이고 매운 걸 좋아하면 여자아이라고 하니 분명 사내아이일 게다.”

태자는 정 황후와 주묘서의 대화 듣고 있자니 언짢은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에게는 이미 아들이 있기는 하나 그 아이는 서자이기 때문에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 주묘서가 아들을 낳는다면 그녀는 장차 황후가 될 테니 이 아이가 바로 적자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아들이 많아지는 걸 싫어하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태자는 기분이 얼마간 누그러져 이렇게 말했다.

“새콤한 음식들이 가득 차려져 있네요. 어마마마께서 측비에게 맞춰 주셨군요.”

“당연한 일을. 태자는 평소 측비가 먹는 음식에 정성을 다하고 있는가?”

태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주묘서가 먹는 음식은 전부 주방에서 책임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정성을 다할 게 뭐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정 황후가 이렇게 물으니 그는 그저 이렇게 말했다.

“분부를 내렸사옵니다.”

정 황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과연 아버지 티가 나는구먼. 아니지, 태자는 이미 아버지이지. 하지만 측비가 낳을 아이는 다르네. 폐하처럼 이 아이에게 잘해 줘야 하네. 내가 태자를 가졌을 때 폐하께서는 직접 주방에도 들어가려고 하셨지. 태자는 폐하의 기대를 품고 태어난 사람이네.”

태자는 멍해졌다.

그랬다. 자신은 아버지의 기대를 품고 태어난 자식이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태자는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정 황후는 그 모습을 보더니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황제가 갑자기 건강을 회복했으니 뭘 하든 간에 태자는 께름칙하고 괴로운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또 속으로 은근히 정선제와 경쟁을 벌이고 있을 것이었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그래 왔듯, 지금도 그가 올바른 길을 차근차근 걷도록 인도했다. 지금 같은 때 특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가 정말로 어리석은 일을 벌일지도 몰랐다.

그들이 걸어온 길은 항상 평탄했고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저 몇 년 더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들에게 오늘이 있는 건 전부 ‘효’와 ‘안정’ 이 두 단어 덕분이었다.

정 황후는 주묘서를 쳐다봤다. 우선 주묘서를 태자비로 책봉해야만 했다. 이렇게 놔둬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또 너무 서둘러서도 안 됐다. 왜냐하면 태자는 원래 그녀를 곧바로 황후에 책봉해 단번에 일을 끝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지금 뜻밖에도 모퉁이 하나를 더 돌아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차라리 그녀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아이와 함께 책봉해도 된다. 그럼 겹경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한편, 주묘서는 젓가락을 들고 백자 국그릇 안에 들어 있는 생선을 집었다. 그녀는 모자간의 상황을 지켜보고는 입술을 씩 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이 마귀할멈이 또 태자를 홀리고 있구나! 흥, 내가 어떻게 할지 두고 보라지!’

식사를 마친 후, 정 황후는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모르게 정선제가 태자에게 잘해 줬음을 여러 번 언급했다. 그런 후에야 두 사람을 돌려보냈다.

주묘서와 태자는 마차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주묘서는 방금 전 정 황후가 했던 말들을 떠올리고는 콧방귀를 뀌더니 미소를 지으며 입을 뗐다.

“호호. 황후 마마께서는 늘 전하께 어릴 때 이야기를 하셔서 소첩은 대화에 끼어들 수가 없네요. 마마께서 전에도 늘 이런 이야기를 하셨나요?”

“그러신 적 없소.”

태자의 대꾸에 주묘서는 순간 비웃는 눈빛을 보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이야기하지 않으셨다고요? 그럼 왜 요즘 들어 유독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 걸까요? 이상하네요.”

태자는 덩둘한 표정을 짓다가 정 황후가 했던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떠올려 보더니 낯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랬다. 정 황후는 그가 부자간의 정을 기억해 자신의 본분을 지키고 어리석은 짓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신경을 쓸까? 정 황후도 황제가 장수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주묘서는 눈알을 굴리더니 또다시 태자의 속을 긁었다.

“보니 폐하께서는 점점 더 기세가 오르시던데요. 폐하의 풍채가… 고조부님과 꼭 닮았어요. 소첩의 기억으로는… 고조부님이 워낙 건강하게 장수하셔서 결국 황태자가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죠. 그래서 제위에 오른 사람은 손자셨고요.”

태자는 표정이 말이 아니었고 속은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말을 마친 주묘서는 슬며시 태자의 안색을 살폈다. 그는 그녀를 나무라지 않았다. 보아하니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 게 분명했다.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숙이고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정 황후가 또 태자에게 황제가 잘해 주었던 일화를 늘어놓으면 태자는 감동하기는커녕 반감마저 들 것이다!

‘쯧쯧. 이 마귀할멈아, 당신은 내 적수가 못 돼!’

“전하, 전 친정에 가 볼게요.”

주묘서가 이리 말하자 걱정거리가 있는 태자는 별말 없이 그러라고만 했다.

“가 보시오.”

“네!”

주묘서는 신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 * *

궁을 나온 마차는 태자부로 돌아갔고 태자가 마차에서 내리자 마차는 곧장 도성 북쪽으로 향했다.

태자부의 마차가 주씨 가문 동쪽 측문으로 들어오자 문을 지키고 있던 어멈은 기뻐하며 얼른 일상원으로 뛰어갔다.

“마님, 측비 마마께서 오셨습니다.”

진씨는 탑상에 앉아 장부를 보고 있었다. 강심설은 아래에서 다리를 두드려 주고 있었고 주묘화는 뒤에서 어깨를 주물러 주고 있었다. 영락없는 황태후의 모습이었다.

주묘서가 왔다는 소리에 진씨는 바로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별일 없는데 어찌 여기까지 왔어? 지금 개월 수면 집에서 푹 쉬어야지.”

그녀가 장부를 내려놓자마자 발이 걷히더니 주묘서가 웃는 얼굴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어머니가 절 나무라는 말이 들리네요.”

“얘도 참.”

진씨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강심설의 손 때문에 발을 헛디디자 그녀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이런 둔치를 봤나. 네 큰시누이가 온 게 안 보이는 게냐?”

강심설은 낯빛이 창백해졌으나 감히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주씨 가문은 날이 갈수록 세력이 강해지고 있는 데 반해 그녀는 여전히 몰락한 가문의 여식에 불과하니 아들을 낳지 못했다면 진작에 설 곳을 잃었을 것이다.

주묘서는 멸시하는 눈으로 강심설을 쓱 훑었다. 전에도 이 올케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젠 더욱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각을 하던 그녀는 또 주묘화를 힐끗 쳐다봤다.

“묘화야, 오랜만이다.”

주묘화를 훑어보니 여전히 전에 입던 낡은 옷을 입고 있었고 은행나무 잎 장식이 달린 머리꽂이를 꽂고 있었다. 의복과 머리 형태 모두 예전과 똑같았다.

그에 반해 자신은 지금 화려한 비단옷 등으로 아주 곱고 아름답게 치장한 모습이었다. 정말 하늘과 땅 차이였다.

주묘서는 현재 상황에 아주 만족했다. 자신은 점점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는데 주묘화는 여전히 예전처럼 별 볼 일 없는 모습이었다.

“언니.”

주묘화가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새언니와 묘화는 먼저 나가 봐요. 난 중요한 일이 있어 어머니와 상의해야 돼요.”

주묘서가 말했다.

그러잖아도 강심설과 주묘화는 그녀에게 비교가 되는 것이 싫어 일각도 더 이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바로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고 방 안에는 모녀만 남게 되었다.

“에휴. 넌 아직 3개월도 안 됐는데 여기저기 쏘다니지 말거라. 네 배속에는 귀하디귀한 아이가 들어 있잖니!”

진씨는 그녀를 끌어당겨 자리에 앉혔다.

“참, 아직 태자비로 책봉되지 않았지?”

그녀는 그리 말하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안 되겠다. 우리 그 빌어먹을 종자에게 널 태자비로 책봉해 달라고 대신 간청드리라고 해야겠구나.”

“태자비가 무슨 대수라고요. 전 태자비 자리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전 황후가 될 거예요!”

주묘서는 고개를 쳐들고 콧방귀를 뀌었다.

“얘…….”

진씨는 깜짝 놀라 얼른 그녀의 입을 막았다.

“또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 황제 폐하께서 이미 병을 회복하셨다.”

“안 그래도 제가 오늘 이곳에 온 건 어머니와 그 일을 상의하기 위해서예요. 폐하의 병이 나았으니 전 황후가 될 수 없어요! 그럼 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5년이요? 아님 10년? 그것도 아니면 20년이나 30년이요?”

진씨는 이렇게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건…….”

3년에서 5년 정도는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정말로 수십 년을 기다려야 한다면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길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은 계속해서 주운환과 엽연채 이 빌어먹을 것들에게 눌려 지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정말로 20년 가까이 그들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한다면? 게다가 정말로 세월이 그만큼이나 흐르면 주운환 부부는 이미 기반을 다 잡았을 테니 끝장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그러니… 넋 놓고 기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주묘서는 차가운 눈빛을 번득였다.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니!”

진씨는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뭘 하려는 게 아니에요. 저희는 그저 태자 전하께서 손쓰는 걸 기다리고 있기만 하면 돼요.”

주묘서는 그리 말하고는 ‘흐음’ 소리를 냈다.

“뭐?”

진씨는 어리둥절해하더니 이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네 말이… 일리가 있구나. 한데 태자 전하께서 손을 쓰겠다고 하셨느냐?”

“아직은 그러려고 하지 않으세요. 특히 그 마귀할멈이 하루가 멀다 하고 태자 전하를 홀리고 있어요.”

주묘서는 그리 말하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마귀할멈이 태자 전하를 홀리면 전 베갯머리송사를 할 거예요! 보세요. 어디 제 상대가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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