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637화 (637/858)

제637화

“아바마마께서… 아바마마께서…….”

물론 겉으로는 속내를 감춘 채 오열하기 시작했다.

“아바마마… 이렇게 비참하게 가시다니……. 아니, 이렇게 예고 없이 우리 곁을 떠나시다니……. 흑흑. 아바마마!”

“아바마마!”

태자도 얼굴을 가리고 통곡하는데 이계는 입꼬리를 실쭉거리더니 헛기침을 하고는 이렇게 고했다.

“폐하께서는 아직 붕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젊은 부부는 울음을 뚝 그쳤고 화가 난 주묘서는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했다.

“그럼 한밤중에 왜 안으로 들이닥친 것이냐?”

“전하, 폐하의 병이 갑자기 위중해져 피를 잔뜩 토하셨다고 하옵니다……. 하여 후궁들이 전부 깜짝 놀라 달려왔고, 지금 태의들이 폐하의 곁을 에워싼 채 침을 놓고 약을 드시게 한다고 하옵니다.”

태자와 주묘서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이런 증상이라면 곧 죽는다는 의미 아닌가.

태자는 황급히 침상에서 내려왔다. 지금 다들 그곳에 가서 정선제를 에워싸고 있으니 적자이자 황태자인 그는 당연히 그 자리에 빠져서는 안 되었다.

“서둘러라! 옷을 갈아입을 것이다!”

태자는 이미 침상에서 내려와 있었고 주묘서도 배를 받치며 말했다.

“소첩도 함께 가겠습니다.”

그녀는 차기 황후였다. 정선제가 세상을 뜬다는데 곧 황후가 될 그녀가 어떻게 그 자리에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그런 장면을, 태자가 황제가 되는 모습을 목격하는 그 순간을 놓쳐서야 되겠는가. 이는 그녀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빛나는 순간 중의 하나일 텐데 말이다.

“알겠소. 그럼 함께 갑시다.”

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부는 순식간에 등불로 환히 밝혀졌고 백여언 등도 소란을 듣고 잇달아 잠에서 깼다. 하지만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고 저 멀리 시녀들이 전부 묘언거 쪽으로 가는 모습만 멀거니 바라보았다.

황궁 안은 등불로 환히 밝혀져 있었다.

궁 안으로 들어간 태자와 주묘서는 동화문에서 마차에서 내렸고 비단 휘장이 드리워진 보련步輦으로 갈아탔다. 그러자 환관 몇 명이 그들이 탄 보련을 들고 황급히 정선제의 궁침으로 향했다.

“서둘러라!”

주묘서는 서두르라면서도 쉴 새 없이 보련을 든 환관들을 타박했다.

“아이고. 조심하거라! 내 배에 문제가 생긴다면 너희들의 천한 목숨으로 갚는다 해도 갚아지겠느냐!”

한편, 태자는 초조한 나머지 손가락으로 쉴 새 없이 손잡이를 톡톡 두드렸다.

보련을 들고 가는 환관들은 이마에서 진땀이 흘렀고 이런 부산스러운 상황 속에서 보련은 마침내 정선제의 궁침 앞에 멈춰 섰다.

태자와 주묘서는 보련에서 내린 후 황급히 정선제의 궁침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통하는 방에 다다르자 한 줄로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모두 정선제의 후궁들이었다.

두 사람이 그들을 스쳐 안으로 들어가자 노왕과 용왕이 그곳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고, 태의들은 오른쪽에 한 줄로 무릎을 꿇은 채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정 황후는 정선제의 침상 옆에 앉아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며 눈물을 닦고 있었다.

“폐하, 폐하……. 어떻게 신첩을 남겨 두고 가시려는 겁니까?”

태자가 침상을 쳐다보니 정선제는 침상 위에 누워 있었고 그의 축 처진 얼굴은 있는 대로 부어 있었다. 또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보아하니 숨이 끊어진 듯했다.

그러자 태자는 콧날이 시큰거려 쿵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아바마마! 아바마마! 불효막심한 소자가 늦게 오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리 말하며 무릎걸음으로 정선제의 침상 앞으로 다가가더니 그의 손을 꽉 움켜잡았다.

“흑흑… 아바마마… 어찌 이렇게 가시옵니까……. 캑캑. 어찌 이렇게 모질게 떠나시옵니까…….”

주묘서도 침상 옆에 무릎을 꿇더니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죽었구나! 죽었어!’

물론 속으로는 한 마리 새처럼 하늘 위로 훨훨 날아오를 것 같았지만 말이다.

“대신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까?”

태자는 눈물을 흘리며 정 황후에게 물었고 그에 정 황후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미 사람을 보내 알렸네……. 곧 도착할 거네.”

최근 들어 예부에서 정선제의 장례뿐만 아니라 태자의 즉위식까지 암암리에 준비하고 있었으니 그들은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을 터였다.

“아바마마… 소자 반드시 아바마마의 가르침에 따라… 대제를 잘 다스릴 것이옵니다……. 성군이 되겠사옵니다.”

태자는 정선제의 가슴 위에 엎드렸다.

아직 정선제에게서는 호흡이 느껴졌지만 너무도 미약해 곧 있으면 끊길 것이 틀림없었다. 전에 할바마마가 돌아가실 때도 이런 상황이었다. 끽해야 한 시진을 넘기지 못할 것이었다.

방 안에선 비통함에 오열하며 구슬피 우는 소리가 퍼져 나갔다.

“아하하하!”

이때, 밖에서 갑자기 실성한 듯한 웃음소리와 다급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방 안에서 오열하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다들 노여워하는 표정을 드러냈다.

옆에 있던 채결이 호통을 치며 웃음소리를 제지하려는 찰나, 그 사람의 모습이 분명히 보였다. 선학仙鶴 문양이 들어간 짙은 남색 관복을 입고 있는 그는 머리가 조금 헝클어져 있었고 격정에 북받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바로 나 의정이었다.

“나 의정, 실성한 것이냐?”

정 황후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황제가 곧 세상을 뜨려 하는데, 이 무슨 해괴망측한 짓거리란 말인가.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리다니, 사리에 어긋나도 이리 어긋나는 짓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게… 폐하! 폐하!”

이미 앞으로 걸어온 나 의정은 숨을 헐떡거리며 외쳤다.

“폐하의 병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정 황후와 태자 등은 일제히 멍해지더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나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태자가 물었다.

“나 의정, 무슨 허튼소리를 하는 것이냐? 소갈증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있습니다. 이건 소신의 스승님으로부터 전수받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처방입니다. 사조師祖께서 소갈증을 심하게 앓았는데 후에 스승님이 이 처방을 사용했고 사조께서는 약을 복용한 뒤 병이 나았습니다.”

나 의정은 감격스러운 얼굴로 설명했다. 그러나 정 황후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방법이 있었는데 어째서 여태 폐하께 그 약을 복용하게 하지 않은 것이냐? 이제서야 그 약을 내놓는 건 무슨 의도인 것이냐?”

“마마, 옛날부터 내려오는 처방에 칠미약七味藥이라는 게 있는데 그 재료 하나하나가 전부 진귀하고 희소한 것들이라 우연한 기회에 얻을 수는 있어도 구한다고 해서 구해지는 것들이 아니었사옵니다! 또 하나라도 부족해서는 아니 됩니다! 하나라도 부족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죠.”

나 의정은 옅은 한숨을 쉬나 싶더니 다시 얼굴에 희색을 띠어 보였다.

“이제 그 칠미약을 모두 구했사옵니다. 소신이 이미 폐하께서 드실 융천환融天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매일 한 알씩 드시고 특별한 침술을 병행하면 약효가 빠를 것이옵니다.”

정 황후와 태자 등은 입꼬리를 삐죽거렸다. 어째서 나 의정이 실성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까?

“흑, 흑흑… 나 의정, 그럼 어서 아바마마를 치료하지 않고 뭐 하는 건가.”

뒤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용왕이 눈물을 흘리며 이리 말하자 정 황후와 태자는 또다시 멍멍한 표정을 지었고 정 황후는 이렇게 말했다.

“믿을 만한 것이냐?”

“마마, 폐하의 병은 줄곧 소신이 맡아 왔습니다. 게다가 폐하께서는 이미 이런 상황이시니…….”

나 의정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이 말인즉슨 정선제는 그를 신뢰했다는 의미였다.

“소신도 황제 폐하께 융천환을 언급했었고 폐하께서는 줄곧 소신에게 칠미약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년간 찾아봤지만 항상 마지막에 한 가지가 부족했습니다. 이제야 마침내 융천환을 만들어 낸 것이옵니다.”

“그럼… 나 의정, 어서 그 약을 사용해 보게.”

용왕이 조급증을 내자 정 황후와 태자는 미간을 찌푸렸으나 이내 일어나 자리를 내주었다.

“그럼 의정은 어서 폐하의 병을 고치거라.”

“예.”

정 황후의 말에 나 의정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이내 한 가지를 부탁했다.

“마마, 이곳에 사람이 너무 많아 공기가 원활하게 통하지 않습니다. 그럼 병자의 호흡에 영향을 주게 되옵니다. 또한 소신 역시 폐하께 침을 놓으려면 집중해야 하니 뒤에 계신 마마들은 돌아가서 쉬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자 정 황후는 몸을 돌려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렀다.

“다들 나가 보게!”

비빈들은 모두 우르르 궁침 밖으로 나갔고 안에는 정 황후와 태자, 주묘서 정도만 남게 되었다.

주묘서는 눈썹을 추켜올리더니 손수건을 움켜쥐고는 나 의정을 가리키며 엄포를 놓았다.

“폐하께 무슨 일이 생기면 내 너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녀는 묘약 같은 건 믿지 않았다.

‘수많은 귀인들이 소갈증으로 죽었는데 무슨.’

나 의정이 괜히 호들갑을 떠는 것이었다.

“그…….”

나 의정은 낯빛이 하얗게 변했다.

‘황제는 이미 다 죽어 가고 있었잖아! 그런데 나 때문에 무슨 일이 생길 게 뭐가 있어!’

그러나 얼른 공수하며 예를 갖추었다.

“소신,응당 최선을 다할 것이옵니다.”

나 의정은 침상 곁으로 걸어가 우선 정선제에게 빨간색 환을 한 알 먹인 후 침을 놓기 시작했다.

그가 침을 놓은 지 겨우 반각半刻이 지났을 무렵, 정선제는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뜨더니 ‘푸웁’ 하고 검붉은 피를 토해 냈다. 이 뜻밖의 광경에 당연히 정 황후와 태자, 주묘서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폐하!”

“아바마마! 아바마마!”

태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으나 정선제는 피를 토하더니 다시 혼절하고 말았다.

“아. 아바마마!”

태자는 병마로 인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정선제의 처참한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고 분노로 가득한 눈빛으로 나 의정을 노려보며 말했다.

“나 의정, 참 잘하는 짓이구나.”

나 의정은 놀라 낯빛이 종잇장이 됐으나 그럼에도 본인의 의술에는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전하, 폐하께서는 분명 호전되실 겁니다. 보십시오. 호흡이 한결 좋아지셨습니다.”

그는 그리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다른 두 명의 태의를 불렀다.

“이 태의, 장 태의. 자네들도 이리 와서 폐하를 진맥해 보게.”

그러자 그 둘이 얼른 앞으로 나와 각자 정선제의 맥을 짚었다. 그러고는 정 황후에게 공수하며 고했다.

“마마, 폐하의 병세가 큰 차도를 보이는 건 아니나 적어도 호흡은 안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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