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3화
회색 옷을 입은 그 청년은 마른기침을 하더니 이어서 말했다.
“진서후가 옥안관에 도착한 후 남아 있는 풍씨 가문 병마를 넘겨받았는데, 그 노부부의 작은아들인 석소전도 그중 한 명이었어요. 소전은 진서후의 부하가 됐을 뿐만 아니라 능력이 출중해서 진서후의 호위병으로까지 뽑혔어요. 이번에 비적 떼를 잡는데 그도 한몫을 톡톡히 했다 하고요.
그 후 진서후가 도성으로 돌아올 때 소전도 당연히 따라왔어요. 그리고 명절을 쇨 때 다른 호위병들과 함께 진서후를 따라 별장에 갔는데, 소전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거기서 진서후에게 맞아 죽었지 뭐에요. 그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이후는 여러분도 아시는 부분입니다. 진서후가 비적 떼를 구출하려고 했고 그의 지시를 받은 소전이 비적 떼를 지원한 사실이 발견되어 관아에서 시일을 앞당겨 개인했죠. 그러니 결국 입막음을 하려고 소전을 죽인 거나 다름없단 얘깁니다.”
주위에 있던 손님들은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쳐다봤고 다들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그들 마음속에 주운환은 걸출한 영웅으로,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관아 사람들이 석소전의 집에 가서 증거를 찾고 있는 겁니다.”
회색 옷을 입은 청년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두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그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석씨네 다섯 식구는 그 관병들에 의해 도성으로 끌려갔어요. 그런데 석씨 노부부는 몸이 허약해 이동이 느릴 수밖에 없거든요. 거기다 그저께 오면서 보니 능주에서 도성까지 오는 길이 대설로 꽉 막혀 있더라고요.
그래도 지금 이 날씨라면 눈도 거의 다 녹았을 거예요. 빠르면 이틀, 늦어도 사흘 정도면 석씨 일가가 도성에 도착할 겁니다.”
청년이 말을 끝맺자 먼저 입을 열었던 그 걸걸한 목소리의 사내가 싸늘한 눈빛을 번득이더니 이렇게 한마디 했다.
“쯧쯧. 내 어디선가 석씨 집에서 증거를 찾았다는 소문을 들은 것 같은데.”
“아이고. 그럼 곧 단죄를 받겠네요! 진서후가 그런 분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청년이 결론을 내버리자 주위에 있던 손님들은 놀라며 두려워했고 분노도 느꼈다. 그들 중 사십 대로 보이는 그 화려한 옷의 중년 여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나섰다.
“다들 구덕口德 좀 쌓으시죠! 진서후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분이 왜 그런 일을 했겠어요?”
“그걸 누가 알겠소!”
걸걸한 목소리의 사내가 크게 웃더니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어쩌면 진서후가 비적 떼 두목이 낳은 자식일지도 모르지.”
그의 이 말에 꽤 많은 사람들이 채신머리 없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지만 분노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장박원은 이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아주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바로 이때, 점원이 쟁반을 들고 오더니 술과 안주를 내려놓았다.
기분이 날아갈 듯 좋은 장박원은 소매 안에서 은화 두 냥을 꺼내더니 탁자 위에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수고비네.”
“손님, 감사합니다.”
점원은 생각지도 못한 수고비를 받자 크게 기뻐하며 얼른 은화를 챙겼다.
이 주루에서뿐만 아니라 도성 사람들이란 사람들은 모두 이 일에 대해 한마디씩 나눴기에 규모가 큰 음식점과 공연장에선 논쟁이 끊이지를 않았다.
* * *
이튿날 조회에서는 왕성촌을 필두로 한 꽤 많은 대신들이 하나둘 튀어나와 주운환을 탄핵했다.
당연히 왕성촌이 가장 먼저 앞장섰다.
“전하, 아직 황제 폐하께서 진서후 일을 결정하지 않으셨지만 그는 지금 혐의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계속 조정에 나올 수 있겠습니까?”
태자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도 지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도성 밖으로 나갔던 사람이 이미 충분한 증거를 찾아냈다고 그에게 귀띔해 줬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황제 또한 비적 떼가 주운환을 비호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태자가 말을 하려는 찰나, 주운환이 몇 발짝 앞으로 나오더니 고개를 돌려 왕성촌을 쳐다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전하, 소신은 지금 혐의가 있는 상태이니 더 이상 조정에 나오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태자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디 조정에 나오지 못하는 걸로 그칠 것 같으냐? 널 감옥에 가두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 게다.’
하지만 정선제가 아직 그를 가두라는 명을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그 또한 가슴이 조마조마해 이렇게만 말했다.
“그럼 진서후는 오늘 이후로는 며칠 휴가를 보내거라. 그리고 이 일이 종결되어 결백이 밝혀지면 그때 다시 조정에 나오거라.”
“예.”
주운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퇴청할 시간이 되자 채결이 그에게 다가왔다.
“진서후, 황제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대전에서 나온 주운환은 정선제의 궁침으로 향했다.
궁침으로 들어가자 또 짙은 약 냄새가 확 느껴졌고 정선제는 침상 머리맡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낯빛은 어두웠다.
정선제는 발걸음 소리를 듣더니 기침을 심하게 몇 번 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왔구나. 짐은 네가 읽어주던 『효경』을 생각하고 있었다!”
주운환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소신은 더는 폐하를 뵈러 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밖에선 백성들이 들끓고 있고 동료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꽤 많습니다. 황제 폐하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소신은 지금 혐의가 있는 상태입니다. 폐하와 태자 전하께서 의롭지 못하다는 말이 나오게 할 수는 없사옵니다. 폐하, 소신을 가둬 두셔야 합니다. 그것이 옳은 일입니다.”
하지만 정선제는 난처해하며 미간을 찌푸리더니 다정한 얼굴로 주운환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 고얀 것들이… 콜록… 넌 우리 대제의 영웅이다. 네가 없으면 우리 대제는 적의 수중에 함락될 것이다……. 짐은 줄곧 너를 믿고 있다.”
그러자 주운환은 정선제 앞에 무릎 꿇고 감격을 표했다.
“폐하께서 이리 말씀해 주시니 소신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없사옵니다.”
“네가 조정에서 상당히 곤란한 처지에 있다는 걸 짐도 알고 있다. 그러니 일단 집에 돌아가서 며칠 쉬도록 해라. 밖으로 파견한 정찰병들이 돌아오면 결정을 내리자꾸나.”
정선제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
주운환은 얼른 대답했다.
“쿨럭쿨럭……!”
또다시 정선제의 기침이 심해졌다. 그는 이미 말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금방이라도 혼절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폐하! 폐하!”
실색한 채결은 얼른 뛰어가 밖을 향해 소리쳤다.
“태의를 불러오너라.”
침상에 누운 정선제는 이미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태인지라 채결이 대신 말했다.
“진서후, 걱정 마십시오. 이 일은 반드시 진상이 밝혀질 겁니다. 폐하는 줄곧 진서후를 믿고 계셨습니다. 그러니 진서후는 절대로 폐하를 실망시켜 드리면 안 될 것이옵니다.”
“공공, 걱정 마시오. 난 절대 폐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오.”
주운환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인사말을 몇 마디 건네고는 돌아서서 그곳을 떠났다.
주운환의 뒷모습이 궁침 밖으로 사라지자 정선제는 그제야 천천히 눈을 떴다. 여전히 허약한 상태이기는 하나 말을 못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정선제는 힘겹게 기침을 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용호는 출발했느냐?”
“예.”
채결은 얼른 대답했다.
“지난번에 폐하께서 분부를 내리신 후 그는 바로 궁을 떠났습니다. 폐하, 걱정 마십시오. 좀 있으면 결과를 얻게 될 것이옵니다.”
정선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애석하구나. 에휴…….”
채결은 정선제가 말한 ‘애석하구나.’가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정선제와 수십 년을 함께 했으니 그야말로 정선제 배 속에 있는 회충보다도 그를 잘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정선제는 어제 능성에 갔던 사람들이 가져온 소식을 들었고, 이제 그는 이 일이 주운환이 벌인 일이라고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지금 금인위를 파견한 건 다만 주운환이 범행을 저지른 동기를 찾아내 대신들과 백성들에게 설명을 해 주기 위해서였다.
* * *
한편, 주운환이 정선제의 궁침에서 나오자 기이한 화초들이 가득한 정원 길이 보였고 저 멀리 태자가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태자는 주운환을 보더니 뒷짐을 지며 먼저 말을 건넸다.
“돌아가려나 보군.”
“예.”
주운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태자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돌아가서 푹 쉬게. 휴가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듣자 하니 자네 부인도 회임을 했다고 하니 며칠 부인 곁에 있어 주게. 진상이 밝혀지면 내 자네에게 위로 차 연회를 열어 주겠네.”
주운환은 입꼬리를 당겨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사양 않고 감사히 받겠사옵니다.”
태자는 주운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난 항상 자네를 믿고 있네.”
“예, 황송합니다. 전하.”
주운환은 감격스러운 얼굴로 사의를 표한 다음, 주묘서를 언급했다.
“묘서도 회임을 했으니 전하께서 묘서를 잘 보살펴 주십시오.”
“물론이네. 하하하!”
태자와 몇 마디 더 나누고 나서 주운환은 그곳을 떠났다.
주운환의 뒷모습이 모퉁이로 사라진 다음에야 태자 뒤에 있던 이계가 입을 열었다.
“전하, 어째서 아직도 진서후와 마음에도 없는 말을 주고받으시는 겁니까? 이미 명확한 증거가 나왔습니다.”
태자는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
“하지만 아바마마께서는 아직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 계신다! 안 그러면 왜 또 진서후를 만나시겠느냐?
그리고 정말로 진서후가 벌인 짓이라면 그때 단죄하면 된다. 그가 억울한 누명을 쓴 거라면? 난 줄곧 그를 믿어 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진서후는 군대를 통솔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데 재능이 있는 자다. 앞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날 도와주겠지. 그러니 지금 몇 마디 나누는 건 결코 손해 보는 행동이 아니다!”
“역시 전하께서는 현명하십니다.”
이계는 얼른 미소를 지으며 입에 발린 말을 했다.
태자는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그제야 돌아서서 정선제의 궁침으로 향했다. 그리고 정선제의 궁침에서 반 시진을 머무른 후 태자부로 돌아갔다.
태자부에 돌아온 태자는 묘언헌으로 가지 않고 백여언의 처소로 걸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