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1화
청유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마님은 똥을 드셨는지 입에서 아주 구린내가 진동을 하네요!”
그러자 엽이채는 허허 웃더니 이렇게 받아쳤다.
“난 다 큰언니를 위해서 이러는 것뿐이다. 지금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잖니. 형부가 무서운 재판에 연루되어 있고 증거들도 나왔으니 이제 정죄만 남은 게지!”
그러잖아도 뼈만 남아 야윈 얼굴인데 지금 이렇게 웃음을 지으니 엽이채는 더욱 괴팍해 보였다.
그녀의 저주에 청유와 혜연은 낯빛이 확 변했고 흥분한 청유는 이렇게 말했다.
“허튼소리 마세요. 저희 나리께서는 결백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벌써 억류되었을 겁니다. 어떻게 자유인처럼 돌아다닐 수 있겠어요?”
“하하. 허튼소리라고?”
엽이채는 좀 전보다 더 짙은 냉소를 지었고 그녀의 눈에는 조롱기가 가득했다.
“지금 너희가 뭘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스스로가 정말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게냐? 넌 지금 이 사건을 조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지?”
청유와 혜연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삼사가 함께 사건을 조사하고 있고 그중에는 장찬도 있었다. 설마 장찬이 집에서 뭔가를 내비친 걸까? 그래서 엽이채가 뭔가를 아는 걸까?
엽이채는 부채를 살살 흔들며 말을 이었다.
“언니가 제 큰언니이니까 저도 위험을 무릅쓰고 알리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말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어제 제가 집안 화원에서 꽃을 따고 있었는데 할아버님께서 갑자기 사동과 함께 화원 쪽으로 걸어오셨어요. 아마 절 못 보신 모양인지 할아버님이 뒤에 있는 사동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폐하의 말과 그 비적들의 자백 내용을 들어 보니 주운환이 비적 떼와 한패라고 결론지을 수 있더구나. 지금 그 소전이라는 자의 집에서도 소식이 전해졌다. 들어 보니 이미 그쪽 사람들을 찾아냈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중요한 증거도 얻었으니 주운환이 벌인 짓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다고.
다만 석씨 일가가 도성으로 오는 내내 바람이 불고 눈도 많이 내렸다. 그 집안에는 노인이 두 명 있어 길을 너무 재촉하면 그 두 사람이 길에서 죽을까 봐 여정을 며칠 늦춰야만 했다. 아니었다면 이미 도성에 도착했을 거고 주운환을 단죄했을 게다.’라고요.”
엽이채는 그리 말하며 입술을 위로 올리며 엽연채를 쳐다봤다.
“허튼소리 마세요! 이 이상 헛소리를 했다가는 그 입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겁니다! 감히 진서후 대인을 모독하다니!”
인내심이 동난 혜연이 싸늘한 목소리로 쏘아붙이고는 엽이채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그런데 엽연채가 살며시 손을 가로젓더니 냉담한 모습으로 엽이채를 쳐다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이채야, 말을 신중히 하지 않으면 재앙을 불러들이는 법이니 조심하거라! 청유가 말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는 여전히 자유로운 몸이고, 황제 폐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믿고 계신다. 부군이 억울한 누명을 썼기 때문이지. 그러니 진상이 밝혀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믿는다.”
그러자 포기가 코웃음을 쳤다.
“귀가 먹은 거예요? 방금 이채가 폐하께서는 그저 후 부인과 진서후 대인을 미혹하고 있는 것뿐이라고 말했잖아요.”
그러자 엽연채는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그들을 크게 나무랐다.
“참 대담하군요! 감히 천심天心을 함부로 추측하고 폐하를 모함하려고 하다니!”
포기와 엽이채는 깜짝 놀라 낯빛이 싹 변했다.
“무, 무슨 허튼소리를 하는 거예요?”
“내가 무슨 허튼소리를 했다는 거예요?”
엽연채는 냉소를 지었다.
“아직 폐하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는데 두 사람이 폐하를 대신해 이야기하는 거예요? 두 사람이 뭔데요? 하하! 폐하께서 우리 내외에게 부군을 믿는다고 하셨어요. 설마 폐하께서 우리를 속이고 있다고 말하는 거예요?”
엽이채는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들 속으로는 분명히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는 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포기는 이를 악물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말실수를 했네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그저 좋은 마음으로 부인에게 소식을 알려 주려던 것뿐이었어요. 부인을 위해서였다고요.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준비를 해 두라고 말이죠. 하지만… 흥.”
그녀는 그리 변명하며 엽이채를 잡아당겼다.
“이채야, 우리 상대하지 말자. 다들 속으로는 빤히 알고 있으면서 저런다니까?”
“흥! 그래, 우리 보에게 줄 장신구를 고르자.”
엽이채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자신이 왜 가야 한다는 말인가? 그녀는 속으로 찔릴 것도 없었다.
지금 곤란한 사람은 엽연채다.
이제야 마침내 엽연채가 곤경에 빠진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자신이 어떻게 쉽사리 이 자리를 뜰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건 단순히 곤경에 빠진 게 아니라 어쩌면 온 집안이 재산을 몰수당하고 참형을 당할지도 모르는 대죄였다.
그리고 정말 그리되면 자신은 자매의 정을 봐서 처형장에 갈 것이다. 엽연채가 목이 잘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마지막 길을 배웅해 줄 것이다.
엽이채는 엽연채의 난처한 꼴을 더 구경하고 싶었는데 뜻밖에도 엽연채가 입꼬리를 쓱 올리더니 고개를 돌려 청유에게 말했다.
“가서 부윤을 모셔오너라. 여기 감히 천심을 함부로 추측하는 자가 있다! 폐하를 모함했어!”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엽이채와 포기는 관아 사람을 부른다는 엽연채의 말에 기함하고 말았다. 하지만 엽연채는 두 사람을 상대하는 시늉도 않고 다시 청유를 독촉할 뿐이었다.
“어서 가거라!”
“예.”
그러자 청유는 희색을 보이며 대답하고는 그길로 밖으로 나갔다.
엽이채와 포기는 머릿속이 멍해졌고 어안이 벙벙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이 돌아온 엽이채는 크게 놀라 이렇게 말했다.
“관아 사람을 부르겠다고요? 게다가 방금 전에 뭐라고 했어요? 우리가 천심을 함부로 추측했다고요? 그저 말실수를 한 것뿐이에요. 그리고 좋은 마음으로 충고한 거고요. 자매끼리 한 말인데 언니는…….”
한편, 포기의 눈에는 엽연채의 싸늘한 표정이 들어왔다. 엽이채를 조금도 안중에 두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포기의 마음속에선 경고음이 크게 울렸다. 그녀는 얼른 엽이채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우리 가자!”
엽이채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금 웃음거리가 되어야 하는 건 분명 엽연채인데 어째서 되레 자신이 기죽은 모습으로 이곳을 떠나야 한단 말인가?
엽이채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엽연채의 표정을 보니 지금 그녀가 진지하다는 걸 알고도 남았다. 엽이채는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하는 수 없이 포기의 손을 잡으며 몸을 돌렸다.
“그래, 가자. 저들과 똑같이 행동하면 안 되니까.”
두 사람이 돌아서서 자리를 뜨려는 찰나, 엽연채가 여주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보게, 주인. 방금 전에 저 두 사람이 한 말을 자네도 들었겠지. 잠시 후에 자네가 증인이 될 거네! 그러니 협조 좀 해 주게. 이 상점의 대문을 걸어 잠가 저 두 사람이 도망치는 걸 막아 주게나.”
여주인은 멍한 표정을 지었고 그녀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엽이채가 어두운 얼굴로 으름장을 놨다.
“자네도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겠지? 그리고 언니가 뭔데 이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거예요?”
엽이채가 상점 주인에게 엽연채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하자 엽연채는 미소를 지으며 상점 주인을 다시 쳐다봤다.
“여기서 저 두 사람이 도망을 친다면 그건 자네 책임이네. 그리고 난 정1품 부인이니 자네에게 이 일을 하라고 명령할 힘이 있네!”
엽이채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뭐라고 더 말하고 싶었지만, 여주인이 미소를 지으며 한발 먼저 입을 뗐다.
“부인의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고는 난간이 있는 곳으로 가더니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홍아, 문을 닫거라.”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고개를 돌려 엽연채를 쳐다봤다.
“부인, 이리하면 됩니까?”
엽연채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주인은 옅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도 당연히 진서후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녀는 주운환이 결백하다고 믿었다.
사람들 마음속에서 주운환은 영웅이었다. 서노군을 쫓아내고 대제의 국토를 지킨 호국영웅 말이다. 그런 위대한 영웅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좀 있으면 관아 사람들이 올 테니 정말 무슨 일이 생긴다면 관아 사람들이 책임을 질 것이었다.
“이, 이……!”
엽이채와 포기는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이, 이건 정말 관아 사람들을 부르겠다는 이야기잖아?’
엽이채는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성을 냈다.
“이 빌어먹을 년……!”
그런데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엽연채는 표정이 착 가라앉더니 짝 소리가 나게 뺨을 냅다 후려갈겼다.
어찌나 사정을 두지 않았는지 엽이채는 휘청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는 잠시간 넋 나간 표정을 짓고 있다가 두 눈을 부릅떴다.
“가, 감히 날 때린 거야?”
그녀는 그리 말하며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엽연채에게 달려들었다.
엽이채가 손바닥을 높이 들어 엽연채의 얼굴을 향해 내리치려고 하던 바로 그때, 동작이 날쌔 벌써 관아에 다녀온 청유가 엽연채의 앞을 막아섰고, 그녀가 엽이채를 확 밀치자 엽이채는 쿵 소리를 내며 다시 꼴사납게 넘어지고 말았다.
엽이채가 고개를 들어 보니 엽연채가 두 발짝 앞으로 나와 비웃음과 냉소가 섞인 아름다운 얼굴로 그녀를 조롱했다.
“때렸다, 어쩔래? 난 황제 폐하께서 직접 봉호를 내린 정1품 부인이다. 네가 감히 욕을 할 수 있는 사람인 줄 아느냐? 네가 내게 ‘빌어먹을 년’이라고 욕했다는 건 황제 폐하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는 뜻이지?”
이 말에 엽이채와 포기는 낯빛이 종잇장처럼 희게 질려 버렸다.
“이, 이……!”
포기가 창백한 얼굴로 오기를 부렸다.
“부, 부인이 지금 이리 오만방자하게 굴 처지에요? 부인과 부군은 지금… 흥……!”
그러자 엽연채가 붉은 입술을 위로 올리며 되받아쳤다.
“우리가 지금 어떤데요? 지금 우리 집안이 어떻든 간에 이후 결론이 어떻게 나든 간에 지금, 현재의 나는 정1품 부인이에요! 두 사람이 감히 날 모욕하는 말을 한다면 난 두 사람의 죄를 다스려 벌을 줄 수 있답니다!”
엽이채와 포기는 이를 부득부득 갈았지만 더는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