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8화
“어찌 됐느냐?”
정선제는 태자의 몸에 기대어 힘없이 물었다.
채결이 말했다.
“소인과 형부, 대리시, 어사대가 함께 감옥에 가서 홍광수를 심문했습니다. 물론 그자 앞에 직접 나가 심문하지 않았고, 이미 자백을 한 부하를 그의 곁에 묶어 놓고 계속해서 채찍질을 했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압박을 받은 그 비적은 죽어라 울어대며 용서를 빌었고 진서후가 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이용해 홍광수와 욱휘를 떠봤는데 홍광수는 놀라며 화를 냈고 욱휘는 상황을 지켜보더니 진서후가 한 일이라고 자백했습니다. 홍광수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과 태도는 자백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태자는 미간을 잔뜩 째푸렸고 정선제는 심하게 기침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장찬과 요양성 등을 불러오너라……! 캑캑.”
채결은 어리둥절해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는 돌아서서 문밖으로 나갔고 잠시 후 장찬, 요양성, 반지명을 데리고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세 사람은 정선제를 쳐다보며 예를 올렸다.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쿨럭쿨럭……. 일어나거라.”
정선제는 지쳤는지 손조차 제대로 들어 올리지 못했다.
“폐하… 괜찮으신 겁니까?”
요양성은 얼른 살뜰히 그를 챙겼다.
“캑……! 괜찮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 보거라.”
정선제는 그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일 기력조차 없었다. 그저 죽어라 기침을 해댔고 그 때문에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푹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주운환의 일은 중대한 사안이니 그가 직접 신문해야만 했다. 그래야 안심이 될 것이다.
“오늘 심문한 후에… 그 홍광수의 반응이 너희들이 보기에 어떻더냐?”
정선제의 하문에 장찬이 가장 먼저 답했다.
“홍광수는 아주 교활한 자입니다. 저희가 피범벅이 된 부하를 그들 곁에 끌어다 놓고 채찍질을 했는데, 설마 눈치채지 못했겠습니까? 그들은 분명 저희가 자신들을 떠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일부러 진서후라고 말한 것일 테지요. 진서후를 모함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어쨌든 지금 그들이 가장 미워할 사람은 바로 진서후이지 않겠습니까.”
반지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찬의 의견에 동조했다.
“소신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그러나 요양성은 냉소를 지으며 반박했다.
“홍광수는 연일 심한 고초를 겪었기 때문에 이미 정신이 붕괴되기 일보 직전일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한 명이 자백까지 했으니, 당연히 버텨 낼 수 없을 겁니다. 황제 폐하, 폐하께서 보시기에…….”
그런데 정선제는 요양성이 아니라 채결을 쳐다보며 물었다.
“네 생각은 어떻느냐?”
채결은 시선을 아래로 하며 대답했다.
“소인은 장 대인과 반 대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옵니다.”
“아바마마, 소자도 그 홍광수라는 자가 일부러 진서후를 모함하고 있다고 생각하옵니다.”
태자까지 나서서 주운환을 비호하자 요양성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러나 그가 다시 입을 떼기 전에 정선제가 기침을 심하게 했다. 이윽고 기침이 멎자 그는 바로 신하들을 물렸다.
“너희들은 이만 나가 보거라.”
요양성과 장찬 등은 정선제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정선제가 물러가라고 하니 절을 올린 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자 정선제는 피곤했는지 눈을 감았다. 파리한 이마 위에는 이미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태자는 침상 곁에 앉더니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아바마마, 괜찮으신 겁니까? 나 의정을 불러오는 편이 좋겠습니다.”
“됐다.”
정선제는 손사래를 쳤고 요양성 등이 떠난 방향을 쳐다보며 말했다.
“태자, 짐은 오늘 태자에게 사람 보는 법을 알려 줄 것이다.”
“아바마마…….”
태자는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주의를 집중했다.
“보아하니… 대부분 홍광수가 진서후를 모함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짐도 장찬 등이 한 말에 동의한다. 홍광수는 확실히 교활하고 총명한 자다. 한데… 그리 총명한 자인데 너희들이 그자의 의중을 단번에 알아챘다고 하지 않았느냐?”
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채결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캑캑……. 홍광수가 그리 교활한 자라 짐의 병사들이… 그자를 무려 삼사 년이나 쫓았는데 결국… 오일의마저 그의 악랄한 수에 처참하게 당하고 말았다……. 교활하기 이를 데 없는 놈의 마음을 어떻게 너희들이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단 말이냐!”
그는 그리 말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니까…….”
태자는 숨을 살짝 들이쉬고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아바마마의 말씀은… 홍광수는 저희가 그를 떠보려 한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어서 진서후가 자신들과 한패라고 드러냈다는 말씀이지요. 저희는 그자가 교활하다고 생각해 절대 믿지 않았고, 그자가 죽음이 가까워지니 진서후를 모해해 저승길 동무로 삼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게 그자가 바라는 바로, 그의 진짜 속셈은 진서후를 보호하고 싶단 말씀이시지요?”
정선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채결은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의심 많고 교활하기로 치자면 황제를 당할 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럼 폐하께서는…….”
“진서후라…….”
정선제는 표정이 조금 창백해졌고 애석함이 가득한 그의 눈빛에는 고민스러움도 담겨 있었다.
“그자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대제의 미래를 책임질 동량인데…….”
“아바마마… 설마 진서후를……?”
태자의 낯빛이 확 변했다.
‘설마 주운환이 정말로 비적 떼와 결탁했을까?’
이런 가능성이 떠오르자 태자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주운환을 아주 좋게 보고 있었다. 주운환은 능력이 출중한 외양 그 이상인 사내였다. 그 어떤 골치 아픈 일도 그에게 던져 주면 해결이 됐다. 게다가 태자는 향후 제위에 오르면 주묘서를 황후의 자리에 앉힐 준비를 해 놓았고 주묘서는 자신의 아이마저 가진 상태였다.
태자는 이맛살을 한껏 찌푸렸다. 주운환이 이런 일을 했으리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이런 능력 있는 사람을 어렵사리 내 편으로 끌어들였는데, 이제 와서 다시 사람을 갈아치워야 한단 말인가?’
태자는 짜증이 치밀었다.
“진서후는 앞날이 창창한 사람인데 어째서 죽도록 고생만 하고 좋은 소리도 못 듣는 이런 일을 했겠습니까?”
정선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 의문점이 많은 게다. 진서후가 왜 비적 떼를 도우려고 했을까? 이 일은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 또한 조사에 착수해야 할 부분 중의 하나이고……. 그들 사이에 분명 무슨 관계가 있을 것이다. 짐도… 진서후가 이런 일을 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진서후는 평범한 신하가 아니었다. 지금 그는 대제 최고의 무장이라 대제는 이런 존재를 잃어서는 안 되었다.
‘게다가…….’
정선제는 저도 모르게 또 운하공주와 닮은 주운환의 얼굴이 떠올랐다. 줄곧 주운환이 운하의 환생이라고 생각했으니 주운환은 자신의 적이어서는 안 된다.
정선제는 주운환에게 자애로운 마음을 가졌기에 이 순간 진심으로 그가 무고하다고 믿고 싶었다.
* * *
그 시각 요씨 가문.
요양성이 집으로 돌아오자 요 노부인이 얼른 그를 맞이하러 갔다.
부부가 서재로 들어서고 요 노부인이 다급히 물었다.
“어찌 되었습니까? 폐하께서 믿으십니까?”
요양성은 하하 소리 내 냉소를 지었고 커다란 배나무 탁자로 걸어가며 대꾸했다.
“우리의 그 연로한 사돈은 의심이 아주 많고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자요. 장찬과 반지명 그 두 늙은이가 비적 떼가 일부러 그 서자를 모해하는 거라고 말하자 승부욕이 보통이 아닌 황제는 더욱 제 생각만 믿더군. 황제는 비적 떼가 정말로 주운환을 보호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소. 그 홍광수와 욱휘라는 자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오!”
“지금 그들이 가장 증오하는 사람은 바로 주운환일 거예요!”
요 노부인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그들의 수하를 전부 죽이고 그들의 대업도 무너뜨렸으니, 주운환을 통째로 삼키고 산 채로 껍질을 벗겨 버리고 싶은 심정이겠지요.”
“그러니 지금은 그저 석씨 집안 쪽을 기다리면 되오……. 모든 준비가 완료되면 원수를 갚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요씨 가문도 찬란했던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게요.”
요양성이 말했다.
석씨 집안은 아들이 죽었기 때문에 주운환을 죽도록 원망하고 있었다. 그는 석씨 집안을 찾아가 그들에게 큰돈을 주었다. 석씨 집안은 복수도 할 수 있고 돈도 생겼으니 단박에 그를 돕겠다고 대답했다.
* * *
주운환이 운연거로 돌아오자 날은 이미 저문 후였다.
그가 방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엽연채는 탑상 위에 누워 잠이 들어 있었고 두꺼운 모란 문양이 들어간 천사금 이불을 덮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바로 잠에서 깨어났고 몸을 일으키며 눈을 비볐다.
“부군. 돌아왔군요.”
주운환은 눈을 비비는 게슴츠레한 그녀의 모습을 쳐다보며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임신한 후로 그녀는 깊은 잠을 잤는데, 요즘에는 자신이 안으로 들어오면 금세 알아채고 잠에서 깨는 게 영 마음에 걸려서였다.
다 자신이 모함받은 일을 그녀가 걱정하고 있기 때문 아니겠는가.
주운환은 그녀에게로 걸어가 침상 곁에 앉더니 이렇게 물었다.
“오늘 법화사에 가서 재미있게 놀았습니까?”
엽연채는 대답하기에 앞서 먼저 제가 덮고 있던 이불을 끌어당겨 그의 몸에 덮어 주며 그를 따뜻하게 해 줬다.
“그냥 그랬어요. 법화사가 뭐 특별할 것도 없잖아요. 전에도 가 본 곳이라 평범하게 향불을 피우고 불상 앞에서 절을 올리고 돌아왔죠. 아아. 참, 부군에게 줄 게 있어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자신의 베개 밑을 뒤적이다가 담황색 낙자 하나를 꺼냈다. 윗부분에 상서로운 구름 문양이 수놓여 있고 아랫부분에는 붉은 술 장식이 달린 조그만 낙자였다.
엽연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부군을 위해 부적을 받아 왔으니 앞으로 가지고 다녀야 해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숙이더니 그의 허리춤에 정성스럽게 묶어 줬다.
주운환은 고개를 숙인 채 정성을 들이는 그녀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쓱 올렸다. 하나 그러면서도 마음이 조금 아팠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좀 있으면 끝날 테니.”
엽연채는 어리둥절했다.
“정말요?”
“네.”
주운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담했다.
“부인과 아이가 다치지 않게 할 겁니다.”
엽연채는 기뻐하며 그의 몸에 기댔다.
“부군에게 말할 게 있어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그의 손을 들어 올리더니 자신의 배 위에 올려놨다.
“오늘 아이가 움직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