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616화 (616/858)

제616화

채결이 입을 뗐다.

“알겠습니다. 이 일은 제가 돌아가서 황제 폐하께 알리겠습니다. 모든 건 응당 황제 폐하께서 결정하실 겁니다.”

요양성과 장찬 등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공공의 말이 일리가 있소.”

어쨌든 진서후는 대제의 안위와 직결되어 있는 사람이니 당연히 정선제가 직접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지금 정선제가 중병에 걸린 몸이 아니었다면 아마 그가 직접 와서 심문을 했을 것이다.

고문실을 볼 수 있는 방에서 나오던 반지명은 채결 옆으로 다가가더니 이렇게 말했다.

“공공, 이제 돌아가서 폐하께 이 사실을 보고드릴 겁니까?”

채결은 먼지를 털더니 감옥 안의 복도를 지나가며 되물었다.

“석소전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그저께 저녁에 그 검은 옷을 입은 자가 석소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소. 이제 겨우 그자의 주검을 파냈다오.”

요양성의 이 말을 장찬이 받았다.

“일단 석소전의 생애에 대해 조사를 해야 하죠. 밖으로 파견한 자들이 돌아왔을 겁니다.”

채결은 고개를 끄덕였고 복도를 지나친 그는 석실을 나와 계단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그들은 지하 감옥에서 나왔고 요양성은 얼른 그들을 형부 안으로 안내했다.

오시午時(오전 11시~오후 1시)가 되어서야 마침내 누군가가 와서 보고를 올렸다.

“진서후는 정말 대범한 분이십니다. 진서후의 부하들 중 석소전과 접촉이 있었던 모든 사람을 저희보고 심문하라고 하셨습니다.”

요양성은 냉소를 지었다.

“진서후의 부하라……. 허허. 그자들에게서 뭘 알아낼 수 있겠느냐?”

“석소전과 함께 지내던 사람들은 뭐라고 말하더냐?”

장찬이 묻자 보고를 올리는 자가 이렇게 말했다.

“평소에 동료들과 웃고 떠들며 잘 지냈는데 얼마 전부터 진서후의 집안일을 두고 험담을 하다가 결국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석소전이 맞아 죽어도 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요양성은 작게 흥 소리를 냈다.

“다들 그의 부하니까 그러지!”

채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다른 건 없더냐? 석소전이 특별히 멀리 외출한 적이라든지?”

“있었습니다. 석소전의 고향이 능주에 있는데 도성에서 왕복하는 데 사흘이 걸립니다. 들어 보니 진서후가 도성으로 돌아온 후 석소전이 고향에 한 번 갔었는데 그곳에서 새해를 보내지 않고 도성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럼 사람들을 그곳으로 보내 조사해 보거라.”

장찬이 말했다.

형부와 어사대, 대리시 모두 사람들을 파견했고 채결마저 어린 환관 한 명을 파견해 그들과 함께 준마를 타고 출궁하여 소전의 고향을 조사하게 했다.

그들은 각각 자신들이 속한 부部의 의복을 입고 있어 의외로 하나로 통일된 느낌을 주었다.

* * *

큰길은 여전히 명절을 쇠느라 인파로 북적거렸고, 소상인들은 소리를 치며 물건을 팔고 있었다. 백성들은 경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가족들을 데리고 길 위를 누비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각기 다른 복장을 한 관병官兵들이 준마를 타고 궁 안에서 달려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길을 걷던 행인들은 깜짝 놀라 얼른 길 양쪽으로 비켜섰다.

군마는 도성 밖으로 나오더니 큰길을 따라 도성 근교 쪽으로 향했다.

도성 근교의 큰길 역시 한산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향불을 피우러 외출하기에 좋은 날이기 때문이었다. 화려하거나 소박한 마차들이 큰길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자 잇달아 길을 내주었다.

법화사가 위치한 산 아래, 귀하고 화려한 마차 한 대가 커다란 나무 아래에 멈춰서 있었다.

방금 전에 향불을 다 피운 엽연채, 제민 그리고 엽미채는 이제 마차에 오르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멀리 있는 큰길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울려 펴졌다. 엽연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고 보니 병마 한 무리가 근처에 있는 도로에서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어머……! 저건 관병들이잖아?”

엽미채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직 정월 대보름이 지나지 않았는데 정말 빨리 개인했네요.”

주운환과 비적 떼의 일은 조정에서도 어제에서야 공표되었기 때문에 아직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제민은 이 일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그저 미소를 짓더니 이렇게 대꾸할 뿐이었다.

“조정 일을 누가 알겠어.”

“민이 언니 말이 맞아요.”

엽미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톡톡 치며 말했다.

“그냥… 좀 이상한 것뿐이에요. 전에는 관병 같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면 일렬로 가지런히 움직이고 똑같은 복장을 했는데 방금 전에 보니 한 줄은 회색빛이 도는 붉은색 옷을 입고 있고 또 한 줄은 회색빛이 도는 녹색 옷을 입고 있었어요. 또 한 줄은 남청색을 입고 있어 무질서해 보였어요.”

‘삼사가 함께 조사하는구나!’

엽연채는 이 생각이 들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뜨끔했다.

“그 이유를 누가 알겠어.”

제민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참. 방금 전에 물어본다면서 깜빡했네. 넌 신불神佛 앞에서 어떤 소원을 빌었어?”

엽미채는 조그만 얼굴이 붉게 변했다.

“그게… 집에 복이 있기를 기원했어요.”

“체, 됐다 됐어. 집은 무슨!”

제민은 흥흥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니?”

“어……. 우리 어서 가요! 하늘을 보니 좀 있으면 눈이 내릴 것 같아요. 집으로 돌아가 훠궈火鍋를 먹으면 어떨까요, 큰언니?”

표정이 굳어진 엽미채는 얼른 엽연채를 잡아당겼고 멍한 표정을 짓던 엽연채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그래.”

“그래, 마차에 타자.”

제민은 그리 말하며 엽연채를 부축했다.

그들은 잇달아 마차에 올랐고 마차는 덜컹거리며 법화사의 공터를 떠나 큰길로 들어섰다.

엽연채는 말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녀는 작은 손난로를 들고 있는 한 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고 다른 한 손으로는 화본을 넘기고 있었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엽미채와 제민은 소곤거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마차가 일각 정도 달렸을 때쯤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엽연채 등은 마차의 몸체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고 마차는 갑자기 멈춰 서더니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요?”

엽미채는 깜짝 놀랐다.

밖에 있던 경인은 바로 뛰어내렸고 뒤에 있던 호위병들도 앞으로 나왔다.

잠시 후에 경인이 말했다.

“마님, 끌채가 갑자기 부러졌습니다.”

엽연채는 미간을 찌푸렸다.

‘참나, 외출을 하자마자 안 좋은 일이 생기네.’

“고칠 수 있느냐?”

“예, 잠시 기다리시면 수리가 끝날 겁니다.”

경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마차 한 대를 더 준비했어야 하는데.”

“괜찮다.”

엽연채는 미소를 지었다.

“좀 기다리는 것뿐인데, 뭘.”

그녀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숙이고는 계속해서 화본을 넘겼다.

“경인아, 이럴 땐 어떻게 고치니?”

엽미채는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마차에서 뛰어내리더니 경인이 마차를 수리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엽연채는 화본을 넘기고 있었는데 엽미채의 작은 웃음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엽연채는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쟤 지금 누구랑 이야기하는 거야?”

제민은 창문에 달린 발을 걷어 올려 밖을 내다봤다.

“엥? 웬 젊은 공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난 모르는 사람이야.”

엽연채는 미간을 찌푸리며 창문에 달린 발을 걷어 올렸다. 보니 엽미채가 근처에 서 있었는데 그녀 앞에 소박해 보이는 작은 마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열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한 소년이 작은 마차의 끌채에 앉아 있었는데 연한 남색의 나삼羅衫을 입고 그 위에 은회색 소매 없는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반묶음 머리를 한 그는 외모가 수려했고, 눈꼬리와 입꼬리에 웃음기가 담겨 있어 부드럽고 상냥해 보였다.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소저 혼자 계속 이곳에 서 있는 건 별로 좋지 않아요.”

그 소년이 말했다.

“아… 혼자 온 게 아니에요. 제 큰언니와 민이 언니가 마차에 있어요.”

엽미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저희 마차가 망가졌거든요. 좀 있으면 수리가 끝날 거예요.”

“아.”

소년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곧 있으면 눈이 내릴 거예요. 소저 일행의 마차가 수리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데 소저들만 괜찮다면 저희 집 마차를 타도 됩니다. 전 말을 타면 돼요.”

엽미채는 깜짝 놀라더니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소년은 깔끔하게 정돈된 눈썹에 예쁜 눈을 갖고 있었고 부드럽고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말투까지 살가워서 엽미채는 조그만 얼굴이 발그레하게 변했다.

“저… 어떻게 모르는 사람의 마차를 탈 수 있겠어요…….”

“하하.”

그 소년은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자신을 소개했다.

“소생의 성은 주, 이름은 이안입니다. 자, 이제 아는 사이네요.”

그러자 엽미채의 조그만 얼굴이 더욱 붉게 변했다.

“제, 제 성은 엽…….”

“미채야!”

이때, 누군가가 싸늘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엽미채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보니 마차의 발은 이미 내려져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지금 들린 소리가 엽연채의 것임을 알아채지 못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주이안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 언니가 절 부르네요. 공자의 호의는 마음으로만 받겠습니다.”

그녀는 말을 마친 후 커다란 마차를 쳐다보며 걸어갔다.

주이안은 더없이 화려하고 귀해 보이는 그 마차를 쳐다보다가 진서후부 표지標識가 새겨진 걸 보더니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엽미채는 마차에 올랐고 엽연채는 발을 살짝 걷어 올렸다. 주이안이 작은 마차를 몰고 떠나는 모습을 보자 그녀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장소와 시간을 모두 엇갈리게 했는데도 이자와 마주치게 됐어! 악연인 건가? 주이안이라……. 보니 수려한 외모에 부드럽고 상냥한 인상이라 한눈에 호감이 가는 사람이긴 하네. 하지만 시집을 가 보니 겁쟁이에 아무런 기대도 걸 수 없던 덜떨어진 물건이었지! 저자에게 시집을 가면 평생 시집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며 살아야 돼.’

엽연채는 이런 생각을 하며 마른기침을 하더니 엽미채를 쳐다보며 말했다.

“방금 전에 뭘 하고 있었던 거니?”

“어… 저, 전…….”

엽미채는 낯빛이 조금 하얗게 변했고 오늘따라 엽연채가 조금 엄하게 군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채야?”

제민 역시 의아함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가 보기에 엽연채는 그리 고리타분한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대제는 풍조가 개방적인 편이라 남녀가 서서 통성명을 한다거나 대화를 나누는 게 일절 허용되지 않는 사회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맞선을 위한 연회가 열리고 적성대에 남녀가 모두 참석할 수 있겠는가?

많은 남녀가 그런 곳에서 눈이 맞은 후 집에 돌아가 부모에게 이야기를 꺼냈고 부모들은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면 상대 쪽 집안에 혼담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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