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5화
한편, 비적 떼 사건은 빠르게 처리되고 있었다.
형부상서 요양성, 어사대부御史大夫 반지명, 대리시경 장찬 그리고 채결도 함께 형부의 감옥에 갔다.
형부의 감옥은 지하에 있으며 출구가 하나뿐이었다. 현재는 금위군들이 지키고 있어 상서인 요양성이 출입한다고 해도 그들이 동행해야 할 정도로 경계가 삼엄했다.
끼익 소리와 함께 형부의 감옥 문이 열렸고 양쪽에 설치된 횃불이 어두컴컴한 석조 계단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공공, 이쪽으로 오시오.”
요양성은 미소를 지으며 채결을 향해 손짓했다.
“하하. 그렇게 예의 차리실 것 없습니다.”
채결은 웃으며 답례하고는 여전히 앞에서 걸어갔다.
일행은 부하들을 데리고 뒤에서 따라갔고 한 명씩 계단을 내려갔다.
아래에는 석실石室 한 칸이 보였고 석실 뒤로 기다란 복도가 이어져 있는데, 여러 감방으로 연결된 구조였다. 그 안쪽에서는 어렴풋이 죄수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두 명의 포졸이 석실 안에 있는 탁자 옆에 앉아 있다가 요양성 일행이 내려오는 모습을 보더니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렸다.
“채 공공, 요 대인, 장 대인, 반 대인을 뵈옵니다.”
“그래. 그리 예의 차릴 것 없다.”
채결은 먼지를 살짝 털어 내며 본론을 꺼냈다.
“지금 홍광수는 어디에 있느냐?”
요양성이 그들 대신 대답했다.
“이 시간이면 아마 오른쪽에 있는 고문실에서 채찍을 맞고 있을 것이오.”
“그것들이 자백을 했을까요?”
장찬의 물음에 한 포졸이 대답했다.
“대인, 홍광수와 욱휘는 둘 다 강골이라 어떻게 해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래?”
채결은 가볍게 웃음을 짓더니 이렇게 물었다.
“그럼 석소전에 대해 입을 연 잔당은 어떻느냐?”
“원래는 왼쪽 고문실에 가뒀는데 자백을 한 뒤에는 감방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포졸의 대답에 채결이 희끗희끗한 눈썹을 추켜올리며 분부했다.
“그자를 오른쪽에 있는 감방으로 끌고 와 홍광수와 함께 가둬 놓거라.”
장찬 등은 어리둥절해했으나 요양성은 얼른 이렇게 말했다.
“어서 가지 않고 뭐 하느냐?”
“예.”
그 포졸은 대답을 하고서는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요앙성은 가슴이 뛰어 조금 조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공. 이건…….”
“흥. 아랫사람이 전부 자백했으니 그 강골이라는 자가 더 버틸 수 있을지 지켜볼 겁니다.”
채 공공은 냉소를 지었다.
“공공은 역시 이름값을 하시는군요, 헤헤.”
반지명이 미소를 지으며 그를 추켜세웠다.
“지금 가서 고문당하는 모습을 보십시다.”
그때 반지명의 말에 장찬이 제동을 걸었다.
“반 대인, 저희는 일단 안 보이는 곳에 숨어서 몰래 지켜보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 강골이 어떻게 말하는지 지켜보시죠.”
“네, 좋은 생각이십니다.”
채결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요양성은 순간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공공, 이쪽으로 오시오.”
고문실 옆에는 고문을 지켜볼 수 있는 방이 있었다. 그곳에서 구멍을 통해 고문실 전체를 분명하게 볼 수 있지만 고문실에서는 반대쪽을 볼 수가 없었다.
고문실은 뜨거운 공기로 가득 차 있고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벽 쪽에는 뜨겁고 환한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두 사람은 상반신을 드러내고 형틀에 묶인 채였다.
한 사람은 빼빼 마른 체형에 머리는 산발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내는 노인이었는데 노인답지 않게 체격이 건장했으나 빼빼 마른 사내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이 두 사람 중 전자가 비적 떼의 책사인 욱휘였고 후자가 비적 떼의 두목인 홍광수였다.
두 사람은 이곳에 갇힌 지 이미 보름이 다 되어 갔다. 당연히 온몸에는 칼에 찔린 자국, 채찍을 맞은 자국 따위가 즐비했다. 피부가 어찌나 심하게 터지고 찢어지고 갈라졌는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이얏!”
누군가가 성난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그들 맞은편에 있는 한 포졸이 뾰족한 형구를 들고 홍광수의 몸을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홍광수는 고개를 숙인 채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이때, 끼익 소리가 나며 옥문이 열리더니 포졸 두 명이 피범벅이 된 사람을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사람은 이십 대 정도로 보였는데 얼굴이 피로 범벅이 돼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포박된 채로 욱휘 옆으로 끌려갔다.
“흑흑……! 그만 때려요……! 전부 자백했잖아요, 다 자백했다고요……!”
그 젊은 사람은 포졸에 의해 형틀에 매달리면서 흐느껴 울었다.
옆에 있던 홍광수는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올렸다.
“넌…….”
“흑흑… 폐하……!”
청년은 홍광수를 보더니 두 눈을 번쩍였고 이어 두려움과 자책으로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아직 살아 계셨군요……. 살아 계셨다니……! 아아!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퉷! 누구보고 폐하라고 하는 거야?”
옆에 있던 포졸이 성난 목소리로 고함을 치더니 들고 있던 소금물을 청년에게 홱 뿌렸다.
“오합지졸인 비적 놈들이 감히 스스로 황제라고 칭하는 게냐.”
“아아악!”
청년은 고통을 못 이기고 비명을 질러댔다.
“하, 폐하? 폐하라고! 허! 내 네놈을 때려죽일 것이다!”
키 작고 퉁퉁한 포졸 한 명이 퉤 하고 침을 뱉더니 손에 들고 있던 뾰족한 채찍으로 홍광수를 쉴 새 없이 후려쳤다. 홍광수는 맞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라 맞아도 찍소리 한 번 내지 않았었다.
하지만 방금 전 그 피범벅이 된 사람이 한 말을 듣더니 오랫동안 팽창되어 있던 공에서 갑자기 바람이 쑥 빠져나가듯 더는 참지 못하고 고통스러워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으악! 그만 때려요. 흑흑……!”
그 피범벅이 된 사람은 고통스러워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고 정신이 붕괴될 것만 같았다. 분명 전부 다 자백했는데 왜 계속 때리는 것인가?
아직 자백하지 않았다면, 지금 홍광수가 옆에 있고 그가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 줄 테니 자신도 버틸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이미 모든 걸 자백한 후였다. 여기서 더 맞았다가는 견뎌 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그는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초상화 속 그 사람이 저희를 부른 겁니다. 그 사람이에요……!”
“그 입 닥치거라!”
홍광수는 성난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그러나 청년은 매를 맞더니 더욱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진서후에요……! 진서후, 바로 그 사람이에요……! 아아악!”
홍광수는 두 눈을 부릅뜨며 그를 을렀다.
“이 빌어먹을 놈. 이 이상 더 허튼소리를 지껄이면… 짐이 네 숨통을 끊어 버릴 것이다……!”
“누구 숨통을 끊어? 제 코가 석자인 놈이 짐은 무슨!”
키 작고 퉁퉁한 포졸은 또 퉤 침을 뱉더니 있는 힘을 다해 그에게 채찍질을 했다.
“이만하면 됐습니다……! 콜록…….”
이때 누군가의 기침소리가 울려 펴졌다. 옆에 있는 욱휘가 내는 소리였다.
“모든 게… 끝났습니다. 속 시원히 털어놓으시죠!”
“이, 이 빌어먹을 놈……!”
홍광수가 목청껏 호통을 쳤다.
“욱휘야……! 네가, 네가 짐을 도와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가, 다 네가… 우리가 어떻게 실패를 인정할 수 있단 말이냐.”
“맞아요……! 속 시원히 털어놔요! 속 시원히 털어놓자고요!”
청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마구 소리를 질러 댔다.
“제가 다 털어놓을게요. 진서후가 저희에게 사주한 겁니다.”
“에이 퉷. 네들이 감히 진서후를 모독하는 것이냐?”
키 작고 퉁퉁한 포졸이 또 한 번 침을 갈겼다. 그런데 홍광수가 갑자기 하하 웃음을 터트리는 게 아닌가.
“그래. 이 자식들아. 어디 한번 죽여 보든가.”
한편, 고문실 안을 볼 수 있게 만든 옆방. 채결 등은 벽에 난 구멍을 통해 고문실의 상황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봐요. 진서후였죠.”
요양성의 얼굴에는 싸늘함이 가득했다.
그러자 장찬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글쎄요. 공공, 소관이 할 말이 있소이다.”
“장 대인, 하실 말씀이 있으면 편히 하시지요. 대인은 진서후의 친척이나 요 대인은 진서후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하여 이 자리에 두 분을 다 모셨으니 무슨 이야기든 다 해 보세요. 전부 듣고 두 분 의견의 절충점을 찾아보면 어떨까 합니다.”
채결이 미소를 지으며 이리 말하자 요양성은 표정이 굳어지더니 그저 허허 웃기만 했고 장찬이 먼저 제 의견을 내놓았다.
“저 피범벅이 된 자가 진서후가 석소전에게 사주했다는 걸 어떻게 안단 말입니까? 석소전이 일을 처리할 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저 피범벅이 된 자는 초상화만 내놓았을 뿐 초상화 속 인물이 석소전이고 그자가 진서후 곁에 있는 사람이라는 건 집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요양성이 냉소를 지으며 반박했다.
“방금 전에 의도적으로 저자를 이 판으로 끌어들였잖습니까. 그래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자가 사실 진서후의 사람이란 걸 그자에게 알려 줬고요. 그러고는 또 한참 동안 채찍질을 했으니 저자는 속으로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곳에 끌려왔을 때 더는 견딜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진서후라고 말한 거죠.
네, 저자의 증언으로는 정말 진서후가 한 행동인지 아닌지 단정 지을 수 없어요. 하지만 이를 이용해 홍광수를 떠볼 수 있었죠. 그랬더니 결과가 어떻습니까. 보시다시피 떠보자마자 나왔잖아요! 정말 진서후가 배후였던 겁니다.”
하지만 장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홍광수와 욱휘 둘 다 아주 총명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갑자기 저 피범벅이 된 자를 곁으로 끌어다 놓고 채찍질을 했는데 설마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겠습니까? 분명 우리가 자신들을 떠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일부러 진서후라고 말한 겁니다. 진서후를 모함하기 위해서죠. 아무래도 진서후는 저들을 감옥으로 집어넣은 사람이고 저들의 원대한 계획을 망친 사람이니까요.”
장찬의 말에 어사대부 반지명은 멍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 대인 말이 맞네요. 홍광수가 고작 그 정도 머리를 가진 자이고 우리가 떠보자마자 바로 불어 버릴 자였다면 분명 이런 참담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거예요. 대제에 수년 동안 환란을 가져오지 못했을 거고, 경위영 대장인 오일의마저 그의 손에 박살이 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요양성은 착 가라앉은 표정으로 냉소를 짓고는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저자들이 궁전 안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상대가 떠본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동안 저자들은 모진 고문을 받았고 이미 정신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상태입니다. 이미 자백한 사람이 나왔고 저들의 정신과 육체는 고초를 겪을 대로 겪은 상태인데, 어떻게 더 버틸 수 있겠어요?”
반지명과 장찬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채결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