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610화 (610/858)

제610화

“나리,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이때, 밖에서 혜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서 가서 식사해요. 저도 배고파요.”

엽연채는 얼른 주운환을 끌어당기며 일어섰다. 주운환은 그녀에게 이끌려 반청飯廳으로 걸어갔고 그녀의 허리를 받쳐 주며 말했다.

“아직도 식사를 안 한 겁니까?”

“아까 조금 먹었는데 또 배가 고프네요.”

엽연채가 말했다. 방금 전에는 그가 걱정이 되어 도저히 밥을 넘길 수가 없었는데 그가 돌아오자마자 다시 입맛이 돌았다.

부부가 식사를 마친 후 아직 입을 헹구지도 않았는데, 여한이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나리!”

“무슨 일이냐?”

주운환이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에 조정의 공고문을 받았는데 예정보다 일찍 개인開印(정월 보름이 지난 후에 봉했던 관인을 풀고 다시 업무를 시작함)하여 내일 조회가 있다고 합니다.”

여한의 보고에 엽연채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주운환과 시선이 마주쳤다.

내일은 겨우 초아흐렛날이었다. 보통 조정은 정월 보름이 지난 후에 개인하는데 갑자기 시일이 당겨진 것이었다.

“알겠다.”

주운환은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꾸하고는 고개를 돌려 엽연채를 다독였다.

“깊이 생각할 것 없습니다.”

“네.”

엽연채가 고개를 주억이자, 주운환은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날씨가 춥군요. 갑시다. 가서 서책을 읽어 줄 테니.”

“좋아요.”

엽연채도 그를 향해 미소를 띠어 보였다.

두 사람은 이를 닦고 손을 씻은 후 응접실로 돌아갔다. 주운환은 탑상 위에 반쯤 기대어 누웠고 엽연채는 그의 품에 비스듬히 기대어 두께가 적당한 천운금 이불을 덮었다.

주운환은 그녀에게 『논어』를 읽어 줬다.

엽연채는 내용을 듣고 있으니 잠이 쏟아졌지만 억지로 두 눈을 부릅떴다.

“이러면 아이에게 들릴까요?”

“들릴 겁니다.”

주운환은 미소를 지었다.

“철단이가 태어나면 우리 이 아이를 가르쳐 장원으로 만듭시다.”

엽연채가 그를 쏘아봤다.

“철단이가 아니라 당이에요.”

“그래요. 알겠어요.”

주운환은 그녀의 배를 쓰다듬었다.

“사내아이이면 철단이라고 하고 여자아이이면 당이라고 부르죠.”

주운환이 쉽게 물러서지 않자 엽연채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내아이여도 당이라고 불러야 돼요.”

주운환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으니 엽연채는 어이가 없어 하늘을 쳐다보다가 이런 말을 꺼냈다.

“여자아이여도 좋아할 거예요?”

“그럼, 당연합니다.”

주운환이 단박에 고개를 끄덕이자 엽연채는 크게 기뻐했다. 그가 딸아이를 기꺼워하지 않을까 봐 그녀는 걱정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여자아이이면 부군이 매일 『논어』를 읽어 줘도 장원은 될 수 없잖아요.”

“대신 사리에 밝은 아이가 될 겁니다. …설마 내게 『여측女則』과 『여계女戒』을 읽으라는 건 아니지요?”

“그건 싫어요!”

엽연채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건… 사람 잡는 책이에요. 제 아이는 제가 가르칠 거예요. 그런 책에서 왈가왈부하는 건 필요 없어요.”

주운환은 고개를 숙이고는 그녀의 코에 대고 비비적거렸다.

“그럼 우리 계속해서 『논어』나 읽지요.”

“네.”

주운환은 반 시진을 더 읽어 줬고 엽연채는 이미 그의 품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주운환은 그녀를 안고서 침상에 올랐고 함께 잠이 들었다.

* * *

이튿날 이른 아침, 날이 밝기 전에 주운환은 관복을 입고 조정에 나갔다.

궁 안 곳곳에는 명절을 쇠느라 장식한 상서로운 의미의 창화窓花가 붙어 있었고 진홍색 등롱들도 보였다.

하지만 정선제의 병이 위중한지라 예년처럼 크게 떠들썩하게 보낼 수는 없었다. 심지어 매해 여는 연회마저도 취소했으니 말이다.

궁중 연회마저도 취소된 판국이니 귀족들과 대신들도 당연히 성대하게 잔치를 벌일 수 없었다. 친척지간의 필수적인 왕래를 제외하고는 집안에서 연회를 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뜻밖에도 조정에서 갑자기 시일을 앞당겨 개인한다는 공고문을 전했다. 그러니 조정 신하들은 온갖 추측을 쏟아내고 있었다.

정사를 논하는 태화전太華殿에는 이미 대신들이 와 있었다.

“여 대인, 진 대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전지신은 공수하고는 헤헤 웃으며 앞으로 다가갔다.

“며칠 못 본 사이에 다들 혈색이 아주 좋아졌네요.”

옆에 있던 요양성은 전지신이 여지, 진무와 친해지려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냉담한 미소를 지었다.

여지는 그들과 같은 상서이니 그렇다 쳐도, 진무는 일개 시랑에 불과했고 게다가 호부 소속이라 전지신의 부하가 아니던가. 그런데 전지신이 꼭 그의 환심을 사려는 양 행동하니 요양성은 속으로 그를 비웃는 것이었다.

전에 요양성은 전지신과 사이가 가장 좋았다. 두 사람 다 태자의 중신으로 서로 협력하는 관계였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태자비가 무너지고 주묘서가 부상하며 난인鸞印을 손에 넣었을 뿐만 아니라 황손까지 갖게 되었다. 또 주운환은 권세가 하늘을 찌르며 태자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러니 향후 황후의 자리는 틀림없이 주묘서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요씨 가문은 이미 태자에게 버림받은 셈이었다.

태자부의 전 서비도 이미 주묘서의 편에 선 후였다. 전지신은 겉으로는 요양성을 전처럼 대하고 있지만 사실 속으로는 이미 돌아선 상태였다.

진무는 주운환의 친척이니 전지신은 주운환과 우호적인 관계로 돌아설 마음으로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진무와 호형호제하면서 지내려는 것이었다.

요양성은 적대적인 눈빛을 번득이더니 살짝 차가운 기색을 보였다.

“하하. 전 대인, 잘 지내셨죠!”

한편 진무는 이 새로운 상사가 정말로 마음에 안 들었다. 주운환이 출정하려고 했을 때 전지신과 요양성이 온갖 방법을 써서 그를 방해했던 사실을 아직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관료 사회에서 벼슬살이를 하는 처지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내키지 않아도 미소를 지으며 친한 척을 해야 했다.

“왜 갑자기 시일을 앞당겨서 개인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군.”

전지신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이어 그는 상심한 기색을 보였다. 이 말인즉슨 정선제가 가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암시였다. 사실 주위에 있는 조정 신하들도 내색만 안 하지,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요양성이 전지신 쪽을 힐끗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전 대인은 신년 축하주를 진탕 마셨나 보군요.”

전지신은 요양성의 말에 가시가 돋친 것을 느끼고 얼굴이 조금 굳었지만, 이를 느끼지 못한 듯한 태도로 부드럽게 대처했다.

“허허. 태의가 나보고 술을 적게 마시라고 했는데 무슨 술을 마셨겠어요? 요 대인은 정말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전지신은 자신이 전에 주운환과 갈등이 있기는 했지만 정치적 견해가 일치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만회할 마음이 있다면 아직 만회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요양성은 달랐다. 태자비와 주묘서가 황후의 자리를 두고 다투기 때문에 요양성과 주운환은 누구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요양성은 주운환과 친해지려는 전지신의 태도를 보며 그저 냉소를 지을 뿐이었다.

“진서후. 하하하!”

이때 멀리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주운환이 안으로 걸어 들어오자 대신들은 우르르 그에게 다가가 그를 둘러싸며 친한 척을 했다. 하나 일부는 멀찍이 한쪽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주운환은 안으로 들어온 뒤 잘 아는 사람들에게 예를 올렸다. 그런데 앞쪽에서 어린 환관이 목청 높여 소리쳤다.

“태자 전하 납시오!”

사람들은 얼른 두 줄로 섰고 잠시 후 태자가 걸어 나왔다. 이계가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태자 전하를 뵈옵니다!”

조정 신하들은 얼른 예를 올렸다.

태자는 천자의 의자 옆에 놓인, 다리가 여덟 달린 이무기 문양이 들어간 의자에 앉더니 손을 들어 면례해 주었다.

“다들 일어나게.”

그의 목소리에서는 조금 성가셔하는 듯한 느낌이 풍겼다.

“오늘 시일을 앞당겨 개인한 이유는 비적 떼 일 때문이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정선제가 붕어한 게 아니라니.’

주운환은 비적 떼라는 말을 듣더니 날카로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비적 떼는 수년 동안 대제에 환란을 가져왔고 심지어 경위영 대장인 오일의를 불구로 만들었소. 이제 간신히 진서후의 영도하에 비적 떼를 일망타진했지만 아직 잔당이 남아 있으니 완벽히 성공했다고 볼 수는 없소.”

태자는 그리 말하며 주운환을 쳐다봤다. 주운환은 정말이지 써 보면 써 볼수록 쓰기 편한 사람이었다. 대외적으로는 군대를 통솔하며 나라를 안정시켰고 대내적으로는 난을 평정하고 비적 떼를 제거했으니 말이다.

출정하기 전에는 한림원에서도 능력을 십분 발휘했었다. 어서방으로 불려가 고문 역할을 할 때도 뛰어난 정견政見을 많이 제시했다. 아무튼 무슨 골치 아픈 일이 있으면 문무文武 상관없이 그에게 던져 주면 다 해결이 되었다.

태자는 이미 계획을 세워 놨다. 주운환을 도성에 남겨 두어 평소에는 경위영을 이끌며 도성을 보호하고 조정에 나와 치국에 관한 정견을 제시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타지에서 도저히 버티지 못하면 그때 주운환을 그곳으로 보내 싸우게 하면 되었다. 이로써 자신은 아무 걱정 없이 푹 잘 수 있으니 생각만 해도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예를 들면 요양성 이 늙은이 같은 작자가 그러했다.

비적 떼는 잡혀 온 뒤 바로 형부의 감옥에 갇혔는데, 요양성이 바로 형부상서였다.

태자비에게 일이 생긴 후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주묘서를 측비로 들인 후로 태자는 점점 더 요양성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있으나 마나 하다고 생각했으니 자연히 주운환처럼 중요하게 생각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젠 태자비에게 문제가 생겼으니 태자는 더더욱 요양성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그런데 비적들이 또 말썽을 일으키려고 했다.

들어 보니 비적들은 비적들뿐만 아니라 마 지부와도 결탁해서 하마터면 주운환을 살해할 뻔했는데 다행히도 주운환이 미리 이들의 간계를 간파해 냈다고 한다.

그 후 체포되어 도성으로 온 여 비장은 비적 떼와 손을 잡았으며 마 지부 외에도 도성 사람 또한 연루되어 있다고 자백했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여 비장도 알지 못했다.

진실의 열쇠를 쥐고 있는 마 지부는 태형을 비롯한 감옥에서의 온갖 고초를 견디지 못하고 연초인 초이튿날에 동사하고 말았다. 그래서 비적 떼의 두목만 남게 되었는데 이자는 강골이라 아무리 때려도 자백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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