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6화
“으……! 싫어요!”
엽연채는 화가 나 눈을 흘기며 딱 잘랐다.
“왜 싫습니까?”
주운환은 말을 하면 할수록 흥이 났다.
“철단이, 우리 철단이. 봐, 얼마나 귀엽습니까.”
“흥.”
엽연채는 그를 확 밀치더니 항탁 위로 엎드렸다.
“나가요.”
“왜 그럽니까? 철단이. 얼마나 좋습니까. 내던지고 때려도 깨지지 않을 느낌인데. 하하.”
주운환은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껴안았다. 그러자 엽연채는 곱고 아름다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그에게 성을 냈다.
“나가라니까요.”
“싫습니다. 전 철단이도 아니니 말입니다. 철단이어야 굴러서 나갈 수 있겠죠. 녀석은 동글동글할 테니까.”
주운환은 그리 말하며 그녀를 확 들어 올려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그러고는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싱글벙글, 기분 좋은 상상에 빠져들었다.
“부인처럼 동글동글할 겁니다.”
엽연채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녀가 언제 동글동글했던 적이 있는가? 설마, 요즘 살이 너무 찐 걸까? 이젠 제 몸까지 신경 쓰이게 된 엽연채는 벌컥 화를 냈다.
“가 버려요! 안 가면 때릴 거예요!”
주운환은 정말로 화가 난 그녀의 모습을 보더니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는 ‘쪽’ 하고 입맞춤을 하더니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인. 우리 부인. 귀여운 우리 부인. 화내지 마십시오.”
“화 안 났으니까 저리 가라고요.”
엽연채는 계속 투덜대며 그를 밀쳤다.
“덥다고요! 부군은 안 더워요?”
“전혀 안 덥군요.”
그래도 주운환은 그녀를 끌어안은 손을 풀지 않으려고 했다.
“부군은 당연히 안 덥겠죠. 부군은 큰 철단이니까요. 하지만 난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멀리 떨어져요.”
주운환은 말문이 막혔지만 이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철단이라고 안 부르지요. 그럼 우리 연이라고 부르는 건 어떻습니까? 아니, 이건 부인의 이름이 들어갔으니 그럼… 당糖이라고 부릅시다. 달콤하니 아주 맛있을 거 같은 느낌이지 않습니까?”
그러자 엽연채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아기도 깨물 생각이에요?”
“아닙니다.”
주운환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귀에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전 연이만 깨물 겁니다.”
그러자 엽연채는 몸이 경직됐고 조그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저도 물지 마요.”
“그건 안 됩니다.”
“못 물게 할 거니까 가요.”
“안 갈 겁니다. 못 물게 하는 것도 안 됩니다.”
방 안에선 부부가 오붓하게 떠드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바깥방에 있던 혜연은 엽연채의 신경이 다른 데로 쏠린 듯하자 안도의 한숨을 훅 내쉬었다.
그렇게 부부는 한참 방 안에서 웃고 떠들다가 식탁으로 걸어갔다.
오늘 혜연은 주방 사람들에게 훠궈火鍋(중국식 샤브샤브)를 준비시켰다. 식사를 마친 엽연채는 씻은 후 침상에 올라 잠이 들었다.
엽연채는 요즘 깊은 잠을 잤다. 오늘도 주운환의 품에 안겨 침상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주운환은 한밤중까지 함께 잠을 자다가 인시寅時(새벽 3시~5시)쯤이 되자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옷을 걸치고 문밖으로 나갔다. 여양과 여한은 이미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를 보자마자 등롱을 들고 앞에서 길을 안내했다.
찬바람이 불며 피부 속으로 스며드는 한밤중인지라 진서후부는 몹시 고요했다. 이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잠자리에 든 후였다. 다만 먼 곳에서 이따금씩 개가 두어 번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시각, 땔나무를 쌓아 두는 진서후부의 작은 곳간. 이곳에선 울부짖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는데, 그 소리에는 불만과 굴욕감, 절망감이 담겨 있었다.
문을 지키고 있는 어멈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계집애가 거의 하루 밤낮을 울고불고하네. 지치지도 않나? 넌 안 지쳐도 난 지친다고!’
어멈은 이런 생각을 하며 퉷 하고 침을 갈겼다. 주인을 배신한 인간이 무슨 낯짝으로 운단 말인가?
이 어멈은 이곳에서 막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저 추길이 주운환의 첩실이 되고 싶어 했고 엽연채가 그런 그녀를 사동의 짝으로 보낸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추길이 원래 준비되어 있던 첩실이라는 건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추길이 원래 준비되었던 첩실감이란 걸 알게 된다고 해도 다를 바가 없었다. 상전이 말을 꺼내기 전에 첩실이 되려고 하는 허튼 생각을 갖게 되면 그 또한 상전을 배신하는 일이긴 매한가지였다.
이런 뻔뻔한 자를 매질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엽연채는 대단히 가벼운 처벌을 한 셈이었다.
“흑흑……. 날 풀어 줘요… 제발 풀어 줘요……!”
그러나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는 끝없이 울려 퍼졌다. 함께 들리는 울음 섞인 목소리는 얼마나 쉬었는지 거의 사경死境에 이른 듯한 느낌이었다.
“밖에 있는 마마… 저 좀 구해 주세요. 절 도와주시면 제가… 제가 나중에 반드시 보답할게요. 저 좀 도와주세요…….”
문을 지키던 어멈은 낯빛이 한층 어두워질 뿐, 추길을 조금도 상대하지 않았다.
“나리. 흑흑……! 나리를 뵈어야겠어요!”
그래도 추길은 포기하지 않고 내내 울부짖었다.
땔나무 곳간은 어둡고 추웠고 그녀의 옷은 냉골 바닥에 쓸려 먼지가 묻어 있었다. 추길은 내리 우는 바람에 화장이 다 번진 상태였지만, 사위가 온통 어두컴컴하니 지금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추길은 다만 하늘도 참 무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아무리 소리쳐 봐도 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상황이 더없이 억울하고 못마땅했다.
자신은 분명 이낭이 되었어야 했다. 확실히 잘못한 부분이 조금 있긴 하지만 그로 인해 그 자격이 박탈당해서는 안 되었다.
자신은 분명 주운환 같은 뛰어난 사람에게 시집갔어야 했는데, 어째서 비천한 사동 따위에게 시집을 가야 한단 말인가?
추길은 주운환의 그 잘생긴 얼굴을 떠올리다가 다시 먼지투성이인 사동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만 하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설령 죽는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첩실을 들이지 않겠다고 한 건 엽연채가 한 말이었다. 그때 주운환은 곁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건 분명 그는 원하지 않는다는 뜻 아닌가.
아마 엽연채를 좋아하는 마음이 좀 있고, 또 그녀의 배 속에 든 아이가 걱정이 되어 임시방편으로 그녀를 달래기 위해 그리했을 것이다.
설령 그가 정말로 첩실을 들이지 않는 데 동의했다고 해도 사내들은 변덕이 심했다. 오늘내일은 첩실을 안 들이겠다고 하지만 모레, 글피, 내년, 후년이 되면 언젠가는 생각을 바꿀지도 몰랐다.
게다가 엽연채가 이렇듯 자신을 몰래 처리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주운환이 없는 틈을 타서 몰래 해치운 이유가 분명히 있을 터였다.
만약 주운환이 있었다면 엽연채가 감히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만약 주운환이 자신이 원래 그의 여인이 되었어야 했다는 걸 알게 되고, 그 때문에 이러한 벌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도 분노할 것이다.
‘나에겐 분명 기회가 더 있어!’
그런데 지금 당장은 하소연을 할 곳도,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날이 밝으면 별장으로 보내져 비천한 사동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흑흑……. 마마… 저 좀 도와주세요.”
추길은 문 앞에 기대어 계속해서 문을 두드려댔다. 유일한 희망이 바로 이 문 앞에 있었다.
“나중에 꼭 보답할게요.”
문을 지키던 어멈은 더는 참지 못하고 짜증을 냈다.
“왜 이리 시끄럽게 구는 게냐! 나도 반편이가 아니다. 널 놓아주면 나도 화를 입지 않겠느냐? 그만 힘 빼거라.”
“아니에요.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절대 마마를 끌어들이지 않을 거예요.”
추길은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열자 흥분이 밀려왔고 울부짖느라 통증이 느껴지는 목도 신경 쓰지 않고 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마마, 절 도와 한 가지 일만 해 주세요……. 이 일로 마마가 말려드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어쩌면 큰 상을 받을지도 몰라요.
마마와 교대 근무를 하는 마마에게 측간에 간다고 하고 나리를 찾아가… 나리께 제 상황을 알려 주세요. 그거면 돼요. 나리야말로 이곳의 진정한 주인이세요! 나리야말로 주인이시라고요! 흑흑…….”
어멈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더니 퉤 하고 침을 갈기고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나리께서 널 신경이나 쓰시겠니? 넌 정말로 뻔뻔한 애로구나. 한나절을 울부짖느라 목소리가 다 쉬어 조금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님이야말로 너의 진정한 주인이시다. 그런데 넌 감히 그런 말을 꺼내는구나. 다들 네가 주인을 배신했다던데, 조금도 억울한 말이 아니었어.”
그러자 추길은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화를 냈다.
“이, 이……! 감히 날 나무라다니. 당신이 뭔데? 이 저택은 진서후부라고 불려. 나리야말로 진정한 주인이시지! 그리고 당신은 나리의 종이야. 그런데 지금 엽연채를 도와 나리를 기만하다니! 당신도 곱게 죽기는 틀렸네. 언젠가는 나리께서 당신의 숨통을 끊어 놓을 게야.”
“참 나, 이 배은망덕한 것이.”
어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욕지거리를 한바탕 퍼부으려 했다.
“넌……!”
그런데 ‘넌’ 하고 외마디를 뱉자마자 깜짝 놀라 소리쳤다.
“나리!”
분노하며 또 원망하던 추길은 갑자기 어멈이 내뱉은 ‘나리’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이어 그녀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방금 전 그녀는 이 일을 주운환에게 알려야 한다고 소리를 질러 댔지만, 스스로도 주운환이 과연 자신을 곤경에서 구해 줄지 확신이 없었다. 어쩌면 그는 엽연채를 혐오할지언정 자신의 일은 보고도 못 본 척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사실을 알리려고 했다. 실낱같은 희망뿐이라고 해도 이 사실을 주운환에게 폭로해야만 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날 수 없다고 해도, 적어도 엽연채에게 먹칠이라도 해야 했다.
그런데 자신이 처벌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리기도 전에 그가 자발적으로 사람을 구하러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추길은 이런 생각을 하자 가슴이 설레었다.
그녀는 더는 고함치고 소리치지 않았다. 그저 얼굴을 가린 채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한편, 문을 지키던 어멈은 어둠 속에서 걸어오는 주운환을 보더니 놀람을 금치 못했다.
“나리를 뵈옵니다. 날이 이리 어두운데… 여긴 어인 일로 오셨습니까?”
그녀는 가슴이 콩닥거렸다.
‘설마 안에 있는 저것이 말한 것처럼 나리께서 정말로 저 계집애를 마음에 두고 계신 건 아니겠지?’
주운환은 냉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쓱 쳐다봤다.
“추길이 저 안에 갇혀 있는가?”
“예.”
어멈은 새파란 얼굴로 답했다.
“문을 열게. 그리고 오늘밤 일은 부인에게 알리지 말게.”
“그…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