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605화 (605/858)

제605화

청유와 백수, 소월은 이야기를 들으며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분명 그때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었다. 자신들은 이등 여종이라 전부 밖으로 나가야 했는데 뜻밖에도 온씨는 가만히 있는 매화를 쫓아내지 않았다.

그래서 매화와 추길이 온씨와 함께 돌아왔으니, 어쩌면 매화가 뭔가를 알고 있어서 자리에 남겨 둔 건 아닐까 하고 추측했었다.

그런데 지금 엽연채가 이 이야기를 꺼내자 이제서야 그건 눈속임이었음을 깨달았다. 매화가 당시 정서가 불안하고 상태가 좋지 않았던 엽연채를 얕본 것이었다.

매화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허옜다.

“저, 전 그때 마차에서 추길 언니와 자당께서 마님이 노 낭자를 싫어해 첩실로 들이길 원치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셨던 걸 들었습니다……. 자당께서 마차에서 저와도 이야기를 좀 나누셨기 때문에 전 자당께서 조금 있다가 제게 질문을 하시지는 않을까 하여…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겁니다.”

“하.”

엽연채는 헛웃음을 짓고는 이렇게 말했다.

“좋다. 네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런데 나중에 어머니께서 내게 첩실을 들이라고 충고하셨을 때, 부군이 전에 날 원치 않았고 나와 이혼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누가 말했느냐? 이 일은 여양 형제와 추길, 혜연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넌 알고 있더구나!”

매화는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더니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그랬다. 온씨를 데리러 가던 길에서 추길은 자신에게 노교아 일을 언급했다. 온씨가 엽연채를 설득해 첩실을 들이게 하도록 자신과 상의를 했었다.

온씨를 자극해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게 하고 엽연채에게 더 큰 타격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주운환이 전에 엽연채를 원하지 않았고 그가 엽연채를 아내로 맞이한 건 강요에 의한 것이며 엽연채가 달라붙은 거라는 말을 꺼내야만 한다고 말이다.

그리하면 온씨는 틀림없이 조바심이 나서 엽연채가 주운환에게 첩실을 붙여 총애를 붙들어 놓게끔 온 힘을 다해 설득할 테니까. 그럼 엽연채는 큰 충격을 받고 결국 타협을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절대로 추길이 직접 할 수는 없었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민감한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추길은 전부터 준비해 둔 첩실감인데 만약 그녀 스스로 이런 말을 꺼낸다면 엽연채와 온씨는 경계심을 품을 테고 추길이 첩실의 자리에 앉고 싶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말은 다른 사람 입에서 나와야만 쓸모가 있었다.

그런데 엽연채가 그 자리에서 추길을 첩실로 들이겠다고 말하지 않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할 수 없이 추길은 그녀를 떠보기 위해 노주 이야기를 꺼냈는데, 엽연채는 노주를 데려오겠다는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다.

혜연과 청유 등은 비뚤어진 자세로 바닥에 앉아 있는 매화를 보며 표정을 어쩌지 못했다.

특히 혜연은 방금 전 엽연채가 추길에게 했던 말과 추길이 했던 모든 일을 다시 합쳐 보니 정말이지 괘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작은 함정을 계속해서 파 놓고 엽연채가 밟기를 기다렸다니, 치명적인 건 아니지만 그 계산이 더없이 소름 끼쳤다.

혜연은 험상궂은 표정을 짓더니 앞으로 냅다 달려가 짝짝 소리가 나게 매화의 뺨을 두 대 올려붙였다.

“이런 몹쓸 것! 주인은 안중에도 없었던 게냐?”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매화의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잡아당겼다. 혜연은 늘 여종들 중에서 가장 온화한 사람이었는데 오늘 그녀는 잇달아 두 사람을 때렸다.

“악! 흑, 흐윽, 혜연 언니……! 제, 제가 잘못했어요. 마님, 마님 잘못했습니다…….”

매화는 아파서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울면서 용서를 구했다.

“추길이가 네게 뭘 약속했느냐?”

엽연채가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눈물범벅이 된 매화의 얼굴이 경직되더니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서 말하지 않고 뭐 해!”

혜연은 손에 힘을 꽉 주며 다그쳤다. 그러자 매화는 ‘악’ 하고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더니 눈물을 흘리며 실토했다.

“추길 언니가… 자기가… 이낭만 되면… 그러면…….”

“그러면 뭐?”

혜연이 오싹한 목소리로 채근했다.

“그리되면… 제게도 기회를 주겠다고 했어요. 자기가 이낭이 되고 나면… 나리께서 자기 처소에 자주 들르실 테니 그럼… 마님을 속이고 몰래 절 자기 방에 불러 나리를 모실 수 있게 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럼 저도… 반쪽짜리 상전은 될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흑흑… 마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감히 이런 짓을 벌이지 않겠습니다!”

매화는 목놓아 울었다. 그녀의 외모는 추길만큼 곱지는 않았다. 그저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좀 참하게 생긴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녀 또한 한때는 이낭이 되는 꿈을 꿨었지만 이룰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원래부터 추길과 사이가 좋았고, 추길이 그녀에게 이낭이 될 수 있게 해 준다는 약속을 해 주니 그대로 넘어간 것이었다. 추길은 매화에게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라든지 ‘사내들은 다 새로운 여인을 탐낸다.’라든지 따위의 감언이설을 늘어놓았다.

결국 매화는 속으로 간절히 바라게 됐다. 주운환은 지위도 높고 권세도 막강하며 얼굴도 그리 잘생겼으니 그녀가 어찌 마다하겠는가?

“이 빌어먹을 것!”

혜연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다시 매화의 뺨을 냅다 후려치고는 그녀를 밀쳐 버렸다. 매화는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울어 댔다.

“끌고 나가 곤장 스무 대를 친 다음 가둬 놓거라. 그리고 내일 노비를 매매하는 이를 불러와 저 녀석을 팔아 버리거라.”

엽연채가 싸늘한 목소리로 분부했다. 매화는 이 말에 몸을 휘청이더니 울부짖었다.

“마님, 용서해 주세요……!”

이런 권세가의 집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람을 팔지 않았다. 그러니 팔리게 된다면 그건 큰 죄를 저질렀다는 의미였다. 그럼 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부유한 상인들의 집에서도 그녀를 원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진서후부는 명망이 자자하니 그녀는 더더욱 팔리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매매꾼은 진서후부에 잘 보이기 위해 그녀를 질 떨어지는 기루에 팔아 버리거나 심하면 너저분하고 엉망진창인 곳에 팔아 막일을 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청유가 이미 밖으로 뛰어나가 막일을 하는 두 어멈을 불러온 후였다.

“마… 웁웁.”

매화가 엽연채를 제대로 부르기도 전에 그녀는 입이 틀어막힌 채 밖으로 끌려 나갔다.

청유와 백수, 소월 세 사람은 이 상황을 지켜보며 놀라서 숨을 헉 하고 들이켰다. 엽연채는 그들을 힐끗 쳐다보고는 이렇게 경고했다.

“앞으로 누구든 감히 이런 짓을 저지르면 똑같은 말로를 맞게 될 것이다!”

“예!”

청유 등이 얼른 대답했다.

“추길이가 떠났으니 너희들의 위치를 다시 정하자꾸나.”

엽연채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청유를 쳐다봤다.

“청유는 앞으로 일등 여종이고 추길의 자리를 대신한다. 그럼 이등 여종은 백수와 소월뿐인데 상전은 나 한 명뿐이라 바쁜 일도 없으니 당분간 사람을 뽑지 않을 것이다. 춘절을 쇤 후에 다시 말하자꾸나.”

청유는 갑자기 자신의 직급이 높아졌다는 소리에 순간 어리둥절해하더니 크게 기뻐하며 얼른 앞으로 한 발 나와 이렇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마님. 소인, 앞으로 마님을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그래.”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수와 소월은 직급이 오를 사람이 청유라는 걸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지난번 수주에 갈 때 엽연채가 청유를 데려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추길은 딴마음을 품고 있어 엽연채를 멀리하고 쌀쌀맞게 행동했기 때문에 혜연은 번번이 청유를 불러 엽연채 곁에서 시중을 들게 했다.

게다가 청유는 머리 만지는 기술도 뛰어나 추길에게 밀리지 않았다. 전에 엽연채의 머리 모양을 잡지 않았던 건 추길이 그녀 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추길은 그녀가 나서서 실력을 발휘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고 청유도 선을 지키는 사람이라 지금껏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이제 추길의 자리가 비게 되었으니 당연히 그 자리는 청유의 것이었다.

“이만 나가 보거라.”

엽연채가 차분한 목소리로 일렀다.

“예.”

그들은 예를 올린 후 모두 밖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방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탑상에 앉아 있는 엽연채는 좀 전까지 얼음장처럼 싸늘했던 얼굴이 살짝 풀리더니 긴 속눈썹을 살며시 아래로 드리웠다. 슬픔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나리.”

이때, 밖에서 소월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주운환이 몸에서 찬 기운을 풍기며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는 두꺼운 검은색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 밖에 눈이 오는지 눈송이 몇 개가 외투 위에 묻어 있었다.

주운환은 외투의 끈을 풀더니 뒤에 있는 하인의 손에 외투를 던지고 나서야 엽연채의 곁으로 걸어왔다.

“부군, 왔군요.”

엽연채는 힘든 기색이 감도는 그의 잘생긴 얼굴을 보더니 미소를 지어 보였고 주운환은 그녀 옆에 앉으며 말했다.

“잘 처리했습니까?”

그는 그녀가 입고 있는 진홍색 외투를 살짝 끌어당겨 자신의 몸에 덮더니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따뜻하네요.”

엽연채는 그의 품에 기댔다. 등 뒤로 단단한 가슴팍이 느껴지자 그의 온기가 그녀를 감싸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엽연채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쓱 올리더니 조그만 얼굴을 그의 목덜미에 대며 말했다.

“부군이 제일 좋아요.”

“그래, 나도 그렇습니다.”

주운환은 말을 돌려주며 커다란 손으로 엽연채의 조그만 머리를 쓰다듬었다.

“청유가 앞으로 절 곁에서 모시는 일등 여종이 될 거예요. 그 밑으로 여종이 둘 부족한데 당분간은 더 채우지 않으려고요.”

엽연채는 그리 말하자 또다시 조금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부인이 부리기 충분하면 그걸로 됐습니다.”

그녀의 기분이 가라앉았고 슬퍼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주운환은 그녀에게 입맞춤을 하더니 손을 살며시 그녀의 배 위에 갖다 대며 말했다.

“우리 철단이가 태어난 후에 채워 넣어도 늦지 않습니다.”

“네.”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표정이 굳어졌다.

“철단이가 누구예요?”

“요 녀석 말입니다.”

주운환은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그녀의 배를 가리켰다. 엽연채는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우리 아이를… 철단鐵蛋이라고 부르지 않을 거예요!”

“당연하죠. 이건 아명입니다.”

주운환은 그리 말하며 기대에 부푼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전에 군영에 있었을 때 장씨가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에휴, 우리 구단狗蛋이가 너무 보고 싶네요!’ 또 정걸은 ‘아! 우리 흑단黑蛋이가 너무 보고 싶어요!’라고 하고, 진명강은 ‘흥, 나도 우리 우단牛蛋이가 너무 보고 싶어!’라고 했고요.

이제는 저도 밀리지 않을 겁니다. ‘아, 우리 철단이가 너무 보고 싶구나!’라고 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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