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1화
그 시각 일상원.
안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가득했고 진씨와 주묘서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확실한 것이냐?”
진씨는 흥분한 얼굴로 주묘서의 작은 손을 잡으며 그녀의 배를 쳐다봤다.
“네.”
주묘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조금 수줍은 얼굴로 자신의 배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의정이 이제 두 달밖에 안 됐다고 했지만요.”
“세상에!”
진씨는 감격스러운 나머지 까무러칠 뻔했다. 그녀는 두 손을 모으고 사당이 있는 방향을 향해 절을 올렸다.
“조상님들 덕택에 우리 묘서가 태자 전하의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머지않아… 전하께서 제위에 오르면 이 아이는 태자가 되는 겁니다! 그럼 전 태자의 외조모가 되는 거지요! 세상에!”
진씨는 감격스러운 나머지 가슴팍을 움켜잡았다.
“쉿. 어머니 조용히 하세요.”
주묘서는 주의를 주면서도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그녀도 큰 소리로 외치며 온 세상이 이 사실을 알게 하고 싶었지만, 관례를 알고 있어 참는 중이었다. 아이가 3개월간 안정적으로 배 속에서 자리를 잡은 후에야 알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 전에 소식을 퍼뜨리면 아이에게 이롭지 않다고들 했다.
무엇보다 이 아이는 자신의 목숨줄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황후의 자리에 앉을 확률이 얼마나 될지 물으면 자신도 십 할이라고 장담할 수 없었지만, 이 아이가 있으면 분명 십 할이 된다.
어제 점심에 그녀는 구토를 하며 음식을 먹지 못했다. 그에 녹지가 곧장 의정을 불러와 진찰하게 했고 의정은 아이가 들어선 지 두 달이 됐다고 진단을 했다.
이 일을 알게 된 태자는 기뻐하며 크게 너털웃음을 지었고 그녀를 더욱더 총애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관례만 아니었다면 태자는 태자부 사람들에게 전부 상금을 내리려고 했을 것이다.
“들어 보니 그 여인이 회임을 해서 셋째 오라버니가 사람들에게 여덟 냥을 상으로 내렸다고 하죠!”
주묘서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전 나중에 꼭 태자 전하께 태자부 사람들 모두에게 열 냥을 상으로 내리라고 할 거예요! 그 두 사람을 확 눌러 줘야죠!”
“퉤!”
진씨는 침을 뱉더니 그녀의 머리를 콩 쥐어박으며 말했다.
“그것들과 무슨 상금을 비교하려고 하니. 네 그 훌륭한 자식이 태어나면 넌 이미 일국의 황후가 되어 있을 게다. 이 아이는 태자일 거고! 그런데 무슨 상을 내리고 말고를 하는 이야기를 하는 거니. 그때가 되면 온 세상 사람들이 함께 축하를 할 게다! 그런데 아직도 네 자신을 그것들과 비교를 하려는 게냐?”
주묘서는 버들잎 모양의 고운 눈썹을 추켜올리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 말이 맞네요. 제가 뭣 하러 그런 것들과 비교를 하겠어요? 그것들은 그런 주제가 못 되죠! 절대 저와 같은 수준이 아니니까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마님.”
이때, 밖에 걸린 발이 촤르륵 소리를 내며 걷히더니 녹엽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우선 손에 들고 있던 찬합을 내려놓더니 안에서 간식거리가 올려진 접시 몇 개를 꺼내 항탁 위에 올려놓고 한쪽으로 물러났다.
“여기 서서 뭐 하는 게냐? 나가거라. 시중은 필요 없다.”
진씨는 그리 말하며 연자고蓮子糕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게 아니라 마님, 여기 서신이 왔습니다.”
녹엽은 그리 말하며 서신을 꺼냈다.
“그래?”
진씨는 버들눈썹을 추켜올리며 서신을 받아 펼쳐 봤다.
“누가 가져온 것이냐?”
주묘서도 서신을 보기 위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다만 지금은 회임을 한 귀한 몸이라는 생각에 직접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일이 있거든 사람을 보내 말하면 되지, 굳이 서신을 써서 보낼 필요가 뭐가 있담. 대체 누가 보낸 것이냐?”
그녀는 그리 말하며 녹엽을 쳐다봤고 오는 길에 서신을 미리 봤던 녹엽은 이렇게 답했다.
“셋째 마님과 셋째 나리에 관한 일 같습니다.”
“어?”
주묘서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진씨에게 물었다.
“어머니, 무슨 일이에요?”
“하!”
진씨는 서신을 탁자 위에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서신을 보낸 자는 노씨 성을 가진 낭자다.”
“노씨 성을 가진 낭자라니요?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어요.”
“그걸 누가 알겠니.”
진씨는 냉소를 지으며 서신의 내용을 알려 주었다.
“얼마 전 셋째가 수주에서 비적 떼를 잡을 때 부상을 입었는데 누군가가 그 아이를 도와줬다고 하더구나. 그 생명의 은인이 바로 이 서신을 보낸 노교아라고.
며칠 전에 이 낭자가 진서후부를 찾아왔는데 며칠 안 돼서 그자를 쫓아냈다고 하는구나. 엽연채 고것이 셋째가 노 낭자와 살을 맞댔기 때문에 그 낭자를 집으로 들일까 봐 걱정이 되어 쫓아낸 게지. 그래서 노교아라는 자가 우리에게 도와 달라고 하는구나!
자기를 쫓아냈을 뿐만 아니라 엽연채가 미색과 배 속에 든 아이를 이용해 그 빌어먹을 종자가 첩실을 못 들이게 협박까지 했다고 하는구나. 묘서 너도 알다시피 그 여우같은 얼굴이 사내들을 홀리는 데 아주 제격이잖니. 그 빌어먹을 종자가 엽씨에게 아직 신선함을 느끼니 그 애 말이라면 다 들어주는 게지.”
“쳇, 정실부인이 어쩜 그리 뻔뻔해요! 미색으로 사람을 쥐락펴락하다니 첩실만도 못하네요. 회임을 했는데도 남편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군요.”
주묘서는 냉소를 지으며 진씨에게 이리 권했다.
“가요. 가서 이야기해 보죠. 그리고 간 김에 제가 회임한 소식도 그 여인에게 알려 주고요.”
회임 3개월이 되기 전에는 그 사실을 알리면 안 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들 몇 명에게는 알려도 된다. 엽연채와는 빈말로도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어쨌든 촌수로는 가까우니 엽연채에게 꼭 알리고 싶었다. 자신이 태자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게다가 지금 이 노교아인가 뭔가 하는 사람의 일은 확실히 셋째 부부의 약점이었다. 엽연채가 제아무리 떵떵거리며 날뛰고 있어도 그녀를 약 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건수였다.
“그래. 그러고 보니 나도 그곳에 간 지 오래됐구나. 내가 계속 가지 않으면 사람들은 내가 그 애 배 속에 든 아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할 게다.”
“가요, 가요. 우리 지금 당장 가요.”
주묘서는 웃으며 설레발을 쳤다.
모녀는 대번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주묘서는 한 손으로 자신의 허리 뒤쪽을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손수건을 흔들며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녹엽은 주묘서의 행동을 쳐다보며 입꼬리를 삐죽거렸다. 이제 겨우 2개월밖에 안 됐는데 저렇게 몸이 무거운 척할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회임 사실을 함부로 공개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한 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가는 이 모습은 틀림없는 임산부의 모습이었다. 이게 어디 회임을 했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모습인가? 대놓고 팍팍 티를 내는 꼴이지.
하지만 녹엽은 감히 주묘서에게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또 다른 사람들이 주묘서의 회임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그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진씨 모녀는 수화문으로 가서 마차에 올라 진서후부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는 진서후부에 도착했고 마차에서 내린 모녀는 곧장 운연거로 향했다.
저 멀리 그들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이자 청유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으나 얼른 소월을 데리고 손님들을 맞이하러 갔다.
“마님과 측비 마마께서 오셨군요.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진씨와 주묘서는 작게 콧방귀만 뀌고는 정원을 지나갔다.
청유는 그들이 저를 무시하는데도 개의치 않고 뒤를 따라가며 또다시 말을 붙였다.
“마님과 측비 마마께서는 분명 저희 마님이 방금 전에 다리에 쥐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보러 오신 거지요?”
청유가 시답지 않은 농담을 건네는 사이, 소월은 본채 문밖으로 뛰어가 엽연채에게 소식을 알렸다.
“주 측비와 마님께서 오셨습니다.”
엽연채는 방 안에서 혜연과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소월의 목소리를 듣고는 순간 두 눈에 싸늘한 빛이 어리더니 코웃음을 쳤다.
이내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진씨와 주묘서가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엽연채는 주묘서가 허리를 받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빼죽거렸다.
“어머님, 큰아가씨.”
그래도 미소와 함께 먼저 인사를 건네기는 했으나 자리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진씨는 그 모습을 보니 속이 답답해졌고 화가 났다.
하지만 주묘서가 회임을 했고 이 아이는 태자의 아이이며 태자부에서 주묘서의 지위가 더욱 공고해졌다는 생각이 들자 일순 엽연채와 주운환이 우습게 느껴졌고 기세가 더욱 타올랐다. 또 자신이 그들의 약점을 하나 더 잡았다는 생각에 냉소를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진서후 부인은 정말 갈수록 고귀해지나 보구나. 시어머니를 보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으니 말이다.”
엽연채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방금 전에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는데, 청유가 이미 어머님께 제 상황을 말씀드렸던데요. 다리에 쥐가 나서 아직도 다리가 저리다고 말이죠. 전 어머님께서 절 아주 아끼신다고 생각했기에 가만있었답니다.”
진씨는 표정이 굳었다. 생각해 보니 방금 전 청유가 분명 그런 말을 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기에 그대로 까먹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야기를 들은 상황에서 지금 엽연채에게 자리에서 일어서라고까지 했으니, 이는 그녀가 회임을 한 며느리를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고 있다는 의미였다.
진씨는 당했단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라 표정이 한층 굳어졌다.
“어머님과 큰아가씨는 제게 관심이 있어서 오셨던 게 아니군요. 자리에 앉으세요.”
엽연채가 심드렁하게 말을 잇자 진씨와 주묘서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주묘서는 자신도 회임을 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얼른 다시 기세를 회복하며 얼굴에 득의양양한 미소를 띠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배를 받치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허리 뒤쪽을 받치며 말했다.
“회임을 하면 다리가 저리나 보죠?”
엽연채는 항탁에 올려진 청화 찻잔을 들어올리며 허허 웃고는 이렇게 말했다.
“맞아요. 그러니 큰아가씨도 주의해요.”
그러자 주묘서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깜짝 놀라며 물었다.
“어떻게 안 거예요?”
엽연채는 배를 받치고 있는 주묘서의 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임신부들의 전형적인 행동 아닌가요?”
그러자 주묘서와 진씨는 표정이 또 굳어졌고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주묘서는 자신이 회임을 한 사실을 직접 이야기하고 싶었고 엽연채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보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엽연채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반응 또한 뜨뜻미지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