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600화 (600/858)

제600화

노 영감은 끝내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 진서후는 머리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우리 교아가 이렇게나 괜찮은데 집으로 들여보낸다고 해도 기를 쓰고 싫다고 하다니! 어디 아픈 거 아냐!

이럴 줄 알았으면 괜찮은 관리를 알아봐 달라고 해서 교아를 그 사람에게 시집보내는 게 더 나았을 텐데. 그런 다음 후야에게 도와 달라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

혼자 뇌까리던 그는 두 눈을 번쩍 뜨더니 마차 벽을 냅다 두드렸다.

“멈추거라! 멈춰! 우리 교아는 너희 댁 후야께 시집가지 않을 것이다. 후야께서 책임질 필요가 없다. 우린 돈도 필요 없다! 너희 댁 후야께 교아를 위해 괜찮은 관리를 찾아 달라고 부탁해 그자에게 시집을 보낼 거다! 그래야 한다!”

‘세상에, 아까는 왜 이 생각을 못 했던 걸까?’

마음이 급해진 노 영감은 쿵쿵쿵 마차 벽을 힘껏 두드렸고 결국 마차는 멈춰 섰다.

마차는 이미 도성 밖으로 나와 있었고 교외는 새하얀 눈으로 가득했다.

여한은 마차에서 뛰어내렸고 노 영감은 마차가 멈춘 걸 보더니 얼른 목을 치켜들고 큰 소리를 치려고 하는데 뜻밖에도 ‘챙’ 하는 소리와 함께 한기가 덮쳐 왔다. 보니 날카로운 칼이 목을 겨누고 있었다.

“으악.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사람을 죽이려고 해!”

노 영감은 깜짝 놀라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 댔다.

“그 입 닥치거라. 안 그러면 내 검이 가차 없이 네 목을 벨 것이다!”

여한이 차갑고 어두운 목소리로 을렀다.

“저기요. 말로 하세요…….”

노교아는 놀라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당신들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게다가 우린 이야기할 것도 없어.”

여한은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나리는 당신들에게 이미 성심성의를 다 하셨어. 도울 수 있는 건 다 도왔다고! 뻔뻔스러운 짓은 이제 그만하시지! 여긴 황량한 교외이니 더 이상 소란을 피우면 이 검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당신들을 설원에 묻어 버리면 누가 감히 따지려고 하겠어? 감히 권세가를 건드리지 말게!”

노교아는 낯빛이 계속해서 변했고 감히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그제야 여한은 마차의 발을 확 내리더니 다시 마차를 몰았다.

* * *

노교아가 떠나는 모습을 쳐다보며 추길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수화문에 서 있던 그녀는 한발 늦게 소스라치게 놀랐다.

‘노교아마저……!’

그럼 자신은 언제 시집을 갈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은 이제 나이가 적지 않았다.

“마님께서 우리에게 갔다가 돌아오라고 하셨어.”

청유는 추길이 따라오지 않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불렀고 추길은 그제야 어리벙벙한 모습으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 걸음씩 옮기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고 잠시 후 운연거에 도착했다.

추길과 청유가 안으로 들어가 보니 엽연채와 주운환은 다시 탑상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혜연, 소월, 백수, 매화는 전부 하좌에 일렬로 서 있었다.

추길은 어리둥절해하더니 얼른 청유와 함께 하좌로 걸어가 섰다.

엽연채는 두 사람이 돌아오자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돌아왔구나. 그자들을 잘 처리했느냐?”

“예, 마님. 노교아와 그 조부는 마차에 올라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돈도 받았고요.”

“그래.”

청유의 대답에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어 갔다.

“그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너희들은 내 곁에서 오랫동안 일한 아이들이고 또 나를 가까이에서 모시는 여종들이다. 특히 혜연이와 추길이가 그렇지.”

엽연채는 그리 말하며 혜연과 추길을 쳐다봤다. 혜연은 옅은 미소를 지었지만 추길은 어쩐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내 일상생활을 전부 너희들에게 맡기고 있으니 너희들과 분명히 이야기해야 할 일이 있다. 부군은 내 남편이다. 나만의 것이다. 부군은 첩실을 들이지 않을 것이니 그 누구라도 품어서는 안 될 마음을 품었다가는 내 용서치 않을 것이다.”

혜연 등은 이 말을 듣고는 모두 깜짝 놀랐다.

‘나리께서 첩실을 들이지 않는다고? 그럴 리가? 나리께서 원하시겠어?’

여종들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엽연채가 주운환의 앞에서 대담하게 이런 말을 꺼냈으니 거짓일 리는 없었다.

주운환이 왜 그녀의 말에 동의하였는지, 어쩌면 엽연채를 달래기 위해서 임시방편으로 그리하기로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진짜였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혜연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뗐다.

“마님은 저희 상전이시니 저희는 마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잘못된 마음을 품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런 마음을 품으려는 자를 보게 된다면 저희가 마님을 도와 그자를 쫓아낼 겁니다.”

청유도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마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엽연채는 미소를 짓더니 추길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계획을 세웠거든 단념하거라.”

혜연이 그 말을 받았다.

“마님께서 계획하고 싶으신 대로 계획하시면 됩니다. 바뀌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황제 폐하의 탄신일이라고 해도 일이 있으면 날짜를 바꾸는데 저희 같은 하인들은 더 말할 것도 없죠.”

추길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엽연채가 무슨 말을 해도 그녀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그저 온 세상이 흐릿해지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첩실을 들이지 않는다고? 계획을 세웠거든 단념하라고?’

이 말인즉슨 자신은 주운환의 이낭이 될 수 없고 그와 친밀해질 수 없으며 그에게 시집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럼 누구에게 시집을 간단 말인가? 저 사동들에게나 시집을 가란 이야기인가?’

추길은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하얘졌고 저도 모르게 주운환을 힐끗 쳐다봤다.

주운환은 엽연채 옆에 편안히 앉아 한 손으로 엽연채의 부드러운 손을 잡고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너무도 따뜻했다.

그러나 추길의 눈에는 그의 마음이 아니라 비할 데 없이 근사한 외양만이 들어왔다. 완벽한 옆모습, 재기가 넘치는 화려한 얼굴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 매혹적이었고 존귀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넘쳐흘렀다. 그렇게 주운환은 뛰어난 풍채를 뽐내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추길은 현기증이 심해졌다. 하지만 엽연채가 또 무슨 말을 했는지, 혜연과 청유 등이 가볍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고는 다들 자리에서 물러났다.

추길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얼굴로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걸을 때조차 허공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축 늘어져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정원을 나와 보니 저 멀리 사동 둘이 무슨 일을 맡았는지 이리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짙은 회색의 사동 차림을 한 그들은 머리에 같은 색깔의 작은 연모를 쓰고 있었다. 외모도 지극히 평범하고 볼품없었고 아무리 봐도 비천하고 좀스러워 보였다.

‘난 후야에게 시집갈 수 없고, 그저 이런 수준의 사람들에게 시집갈 수밖에 없단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니 추길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쾅 소리를 내며 문을 닫았다. 그러자마자 침상에 주저앉아 허리를 구부리고 엉엉 통곡을 했다.

“아아……!”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지며 힘이 없었고, 얼굴을 가린 열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옷깃을 적셨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이야! 이래서는 안 된다! 왜 이렇게 되느냔 말이야!’

추길은 입술을 사정없이 깨물었고 하도 세게 깨물어 입술이 찢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짠맛이 섞인 피비린내가 입 안에서 진동했고 그 맛에 그녀를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잠시 후, 그녀는 고개를 들었고 핏발이 설 정도로 두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자신의 화장대 앞에 앉더니 붓을 들고 종이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종이를 접어 품 안에 집어넣고는 냅다 뛰어나갔다.

밖으로 나온 그녀는 곧장 수화문으로 달려가 진서후부를 나왔다. 그녀와 혜연은 엽연채를 곁에서 모시는 심복이고 지위가 가장 높은 여종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유롭게 후부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 * *

아직 명절이 끝나기 전이라 곳곳에 기쁨이 넘쳤고 여기저기서 여전히 폭죽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가장 조용하고 엄숙한 정륭가든 가장 시끌벅적한 도성 중심가든 할 것 없이 말이다.

도성 북쪽도 지금 시끌벅적하기는 마찬가지였고 특히 주씨 가문은 더욱 그랬다. 집안에서 진서후가 나오고 측비가 나왔으니 춘절을 맞아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여 문을 지키는 사동들은 하나같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런데 오늘만 드물게도 한적한 편이었다. 그에 소종은 서쪽 측문에 놓인 긴 나무 걸상 위에 앉아서 한숨을 푹 내쉬고 있었다.

“셋째 나리께서 이사를 가신 후로 여양과 여한, 경인이까지 다 떠나고 나만 이곳에 남았으니 너무 적적하네.”

이때,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거지 한 명이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소종은 꾀죄죄한 거지를 보자 낯빛이 확 변하더니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어디서 온 거지냐? 썩 꺼지거라! 여긴 네가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이곳을 더럽히지 말고 썩 가 버려!”

그러나 그 어린 거지는 고개를 들더니 지저분한 손을 내밀며 이리 말했다.

“녹엽이라는 사람에게 건넬 것이 있어서 그래요. 그러니 오라버니께서 좀 도와주세요!”

거지는 품속을 더듬거리다가 작은 쇄은碎銀을 꺼냈다.

소종은 돈을 보자마자 두 눈을 반짝이더니 잽싸게 은화와 서신을 낚아챘다. 그런데 서신을 열어 본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왜냐하면 그는 글을 읽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안에 빼곡히 쓰여 있는 건 전부 글자로, 한눈에 봐도 서신임을 알 수 있었다.

소종은 두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어린 거지를 쳐다보며 확인했다.

“녹엽이한테 전달해 달라고?”

“네, 도와주세요. 누가 제게 부탁한 거예요.”

소종은 헤헤 웃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알겠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누가 이렇게 은밀하게 녹엽이에게 서신을 보내려는 거지? 설마 녹엽이에게 정부가 있는 건가? 얼씨구! 마님을 모시는 서열이 제일 높은 여종이 밖에서 정부와 놀아나다니! 이 정부도 참 멍청하네. 집으로 이런 걸 보내다니!

하지만 내가 까발리기는 곤란하지. 지금 서신을 전달해 주는 걸로 은화 한 냥을 받았으니 가서 녹엽이에게 한 냥 더 달라고 해 보자. 어디 감히 안 주고 배기나 보지 뭐!’

소종은 이런 생각을 하자 흥분이 됐다.

“기다리고 있어라.”

그는 이 말을 남긴 후 곧장 문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런데 그가 일상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멀리서 녹엽이 찬합을 들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소종은 두 눈을 빛내며 그녀에게 말을 붙였다.

“헤헤. 녹엽 누님. 이게 뭔지 알아요?”

그러면서 서신을 꺼내자 녹엽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게 뭔데?”

그녀는 서신을 가져가더니 미간을 더욱 심하게 찌푸렸다.

“이게 뭐야. 에이!”

“헤헤. 녹엽 누님, 어찌해야 하는지 아시죠!”

그는 그리 말하며 손끝을 비볐다. 돈을 달라는 의미였다.

“제가 비밀을 지켜 드릴게요. 누님이 밖에 사내가 있다는 거 말이에요. 절대 말하지 않을게요.”

녹엽은 낯빛이 확 변하더니 이어 퉤 하고 침을 갈기며 욕했다.

“뭐라고 이 썩을 놈아! 이건 마님께 온 서신이야. 내가 떳떳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정말 떳떳하지 않으면 대놓고 집으로 들고 와 약점을 네게 넘겼겠니! 멍청한 놈!”

그녀는 그리 욕을 퍼붓고는 돌아서서 그곳을 떠났다.

소종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정부가 보낸 게 아니었다니, 게다가 마님에게 온 서신이라면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 남이 알게 되어도 두려울 것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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