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592화 (592/858)

제592화

엽연채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지금, 뭐라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엽연채가 미처 반응을 하기도 전에 주운환은 그녀의 손을 확 끌어당겨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는 두 손으로 그녀의 조그만 얼굴을 부여잡고 고개를 숙이더니 그녀의 입술에 뜨거운 입맞춤을 선사했다.

엽연채는 몸과 마음이 모두 떨렸다. 이 세상에 오로지 그의 향기만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비통함, 쓰라린 마음, 짜디짠 눈물, 그의 품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열렬한 마음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이 순간 엽연채의 머리는 백지장처럼 하얬다. 그녀는 조금 멍한 모습으로 이렇게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요?”

“난 첩실을 들이지 않을 겁니다.”

주운환은 그녀를 꼭 부둥켜안으며 말했다.

“난 부인만 사랑합니다. 이번 생엔 부인만 있으면 됩니다. 다른 여인은 없어요.”

엽연채는 거듭 듣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부군… 정말이에요?”

“당연합니다.”

주운환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엽연채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눈앞의 현실을 감당하지 못했다. 그녀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채로, 그저 그를 꽉 끌어안고 쉰 목소리를 냈다.

“부군… 만약 제가 부군에게 시집오지 않았다면 부군은 누구를 부인으로 맞이했을까요?”

주운환은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대꾸했다.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그때 전 부군에게 시집갈 마음뿐이었는데, 부군은 저를 원하지 않았죠……. 나중에야 부군이 능력 있는 사람이고, 진작부터 양왕 전하와 함께 미래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부군은 후야에 봉해지고 재상이 될 생각이었죠.

그러니까 분명 나중에는 높은 지위에 막강한 권세를 가진 규수를 아내로 맞이해 권력을 공고히 할 계획이었죠? 이를테면 상관운이나 황실의 적장녀인 공주 같은 규수들 말이에요. 다들 저보다 고귀한 출신이며 아내로 맞이하기에 더 가치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 결과적으로 제가 부군의 앞날을 망치고 만 셈이에요…….”

“맞습니다.”

주운환이 그녀를 놓더니 고개를 숙여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진심을 전했다.

“하지만 부인이 나타났지요. 전 부인을 연모합니다. 정말로, 부인을 가장 사랑합니다.”

“만약에 제가 부군에게 무리하게 시집오지 않았다면 부군은 다른 사람을 좋아…….”

“부인, ‘만약에’라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그럼 부인은 다른 사내에게 시집갔으면 다른 사내를 좋아했을 겁니까?”

이렇게 가정하는 말에 엽연채는 말을 잃고 얼빠진 표정만을 지었다.

“첩실을 들이고 권세 있는 자를 끌어들이는 게 흔한 일이긴 하니다. 하지만 난 부인을 위해서 그러지 않을 겁니다. 부인이 마음 아파하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 내가 더 노력할 겁니다. 그러면 되지 않습니까?”

주운환은 미소를 지으며 엽연채에게 확신을 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부군이 이렇게 오랫동안 노력한 건 공명과 관록을 위해서잖아요. 지위가 가장 높은 대신이 되고 처첩들을 거느리고 살기 위해서잖아요.”

“아뇨, 부인 때문이입니다.”

주운환은 엽연채의 말에 반박하며 그녀의 이마에 드리워진 부드러운 머리칼을 살살 어루만졌다.

“게다가 난 서자라 서출의 고통을 잘 알고 적출이 서출을 얼마나 꺼리는지도 잘 압니다. 그러니 내 자식도 이런 설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게다가 내 적모 같은 분도……. 난 적모를 싫어하지만, 그분이 비 이낭과 백 이낭, 돌아가신 제 어머니를 싫어한다는 걸 압니다. 내 아버지 같은 사람이 남편인데도 적모는 이런 일로 초조함과 불안함, 분노와 질투심, 괴로움을 느낄 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 앞에서는 우리에게 잘해 주는 척을 해야 하죠. 이 또한 적모를 괴롭게 만들고 있을 겁니다.

난 부인 때문에 노력한 겁니다. 부인은 내게 소중한 사람이니 부인이 마음 아프고 괴로운 걸 조금도 원치 않아요. 부인이 적모와 같은 설움을 겪게 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엽연채를 확 안아서 자신의 무릎에 앉히더니 그녀를 힘껏 그러안았다.

엽연채는 놀라서 멈칫했으나 이내 그의 가슴에 기대어 역시 꼭 끌어안으며 재차 확인했다.

“부군, 지금 절 속이는 건 아니겠죠?”

“절대 아닙니다.”

주운환은 자신의 턱을 그녀의 목덜미에 괴더니 맹세하듯 말했다.

“난 부인을 정말, 정말 사랑합니다.”

“알겠어요.”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제야 눈물을 거두고 미소를 지었다.

그랬다. 주운환은 자신을 사랑하는 게 틀림없었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녀의 입장에 서서 그녀를 위해 생각하겠는가?

또 그는 자신을 속일 필요가 없었다. 그는 진서후였다. 기어코 첩실을 들이려고 하면 여덟이고 열이고 들이면 그만이었다. 이혼도 원치 않는다면 자신을 가둬 버리면 됐다. 자신이 죽지 않는 한, 아니 죽는대도 결코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오랫동안 짓눌려 있던 엽연채의 마음이 비로소 홀가분해졌다. 그녀는 드디어 눈물을 멈추었지만 몸은 여전히 살짝 떨리고 있었다.

주운환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자책했다.

“미안합니다, 부인.”

모두 다 자신이 제대로 처신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잖아도 시집온 후로 엽연채는 억울한 일을 여러 번 겪었다. 시집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자신이 그녀를 거절해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 후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고, 입맞춤 한 번으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옥안관에서 도성으로 돌아온 후에도, 자신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녀와 합방을 했다.

여인에게 가장 중요한 혼례가 엉망진창이 됐던 것이다. 피로연도 없었고 신랑 신부가 천지신명과 웃어른께 절도 올리지 못했고 합환주도 마시지 못했다. 엽연채는 그렇게 얼렁뚱땅 자신에게 시집왔다.

‘결국엔 합방마저도…….’

하지만 엽연채는 너무도 쉽게 그를 허락해 줬다. 그래서 줄곧 그녀가 그에게 달라붙는다고 생각한 게 틀림없었다. 그 와중에 엽씨 가문도 몰락해 버렸고, 그에 반해 그는 공을 세워 이름을 날리게 됐으니 그녀는 자신감과 배짱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부인, 양왕 전하의 거사가 성사되면 우리 천지신명과 웃어른께 인사를 올리고 합환주를 마시지요. 부인을 위해 성대한 혼례식을 치를 겁니다.”

주운환의 약속에 엽연채는 다시금 몸이 떨렸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얼굴을 살짝 불그스름하게 붉힌 채 거절했다.

“창피해요……. 그때가 되면 배가 얼마나 불러 있을지 몰라요.”

“창피하지 않습니다.”

주운환은 그녀의 작은 얼굴을 감싸 쥐더니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물 자국에 입맞춤을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전 신랑이 되고 싶군요. 혼례복도 입고 싶고요. 그런 다음 부인을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올 겁니다.”

일생에 한 번 신랑이 되고 일생에 한 번 혼례를 치르니, 주운환은 자신도 그리하고 싶었다.

“미안합니다. 부인에게 이런 것들을 해 주지 못했습니다.”

엽연채는 잠시간 입을 삐죽거리더니 결국 응했다.

“그럼 그렇게 해요.”

그러고는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쓱 올라갔다.

“좋습니다.”

옥안관에서 도성으로 돌아온 후, 눈앞의 엽연채를 보니 그녀를 너무 갖고 싶었다. 그래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로 합방을 했다.

이후로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풍씨 가문 형제의 일도 있었고 주씨 가문에서 나와 이사도 했고 태자도 상대해야 했다.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온 지 겨우 두 달 만에 비적 떼 일로 또 도성을 떠나야만 했다.

그간 너무 바빴기 때문에 첩실을 들이는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또 엽연채는 독립적이고 강인한 사람이라고 여겼기에 자신의 부하가 이렇게 그녀를 핍박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건 다 그녀가 세속世俗에 대항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혼인 관계에서 그녀는 자신의 힘을 보이지 못하고 전적으로 그의 마음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그녀는 소전이나 생명의 은인 같은 자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가 두려웠던 건 바로 그의 마음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용감하고 총명해 소전 등의 콧대를 시원하게 누른대도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자신이 첩실을 들이고자 한다면 그녀가 한 모든 행동은 그저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데.

주운환은 그녀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더니 옅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째서 내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엽연채는 시선을 아래로 하며 대답했다.

“말할 생각도 했었는데, 보니 부군도 꽤나 원하던 눈치여서요.”

그러자 주운환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이렇게 물었다.

“내가 언제 그랬습니까?”

“그랬어요. 소전이 부군의 소연을 기대한다고 했잖아요.”

주운환은 더욱 어리둥절했다.

“그 말이 어디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엽연채는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의아한 얼굴로 대답했다.

“소연은 첩실을 들일 때 여는 연회를 말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그자가 말을 마치니 부군은 활짝 웃고 있었거든요.”

그 생각을 하니 그녀는 또 마음이 아파 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주운환은 깜짝 놀랐다.

“확실히… 부인이 그 이야기를 하니 생각이 나는군요. 그러고 보면 첩실을 들일 때 여는 연회도 소연이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정말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까?”

“그게 아니면 뭐겠어요?”

엽연채는 입을 삐죽이 내밀었다.

“갑자기 부군에게 소연을 열라고 하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때 일이 떠오르자 엽연채는 화가 불쑥 치밀었다. 주운환은 잔뜩 성이 난 그녀를 보고 있으니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그녀의 하얀 뺨을 감싸고 피식 웃었다.

“네, 난 소연을 준비할 생각이었습니다. 곧 있으면 부인을 위한 소연을 베풀려고 했죠!”

그 말에 엽연채는 멍멍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위한 소연? 무슨 연회를 연다는 말인가? 생일 축하연을 말하는 걸까?’

그러고 보면 자신의 생일이 이월 열엿새였다.

보통 젊은 여인의 생일을 ‘소수연小壽宴’이라고 부르는데, 소연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연회엔 딱히 정해진 명칭 같은 게 없어서 제각각 좋을 대로 표현했으니까.

아무튼 성대하게 치르는 게 아니면 대개 작은 연회, 즉 소연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일반적인 사내들에게 소연이란 첩실을 들일 때 여는 연회를 의미했다.

하지만 주운환은 그런 쪽으로 생각을 못 했기 때문에 엽연채의 생일 축하연만을 떠올렸고, 그때 모두에게 홍포를 나눠 줄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엽연채는 주운환의 말을 들으니 표정이 조금 어색해졌다. 주운환은 민망해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작게 웃음을 짓더니 그녀의 얼굴을 매만지며 애정을 표했다.

“부인은 정말 귀엽습니다.”

엽연채는 괜히 심통을 부리며 흥흥 콧김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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