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590화 (590/858)

제590화

“허허허. 됐습니다. 마님께서 저희가 이 낭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시고 이 낭자가 베푼 친절을 언급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으시니, 저희도 그만 말하겠습니다.”

소전은 그리 말하며 또 술을 한 모금 들이켜고는 자리에 앉았다.

“저… 그럼 다들 어서 드세요!”

지금껏 침묵을 지키던 노교아는 그제야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관리인 할아버지, 고기는 다 익었어요?”

별장 관리인은 환갑이 다 되어 가는 노인으로 이 이야기를 듣더니 에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싶어 구운 당나귀 고기를 접시 위에 올려놓더니 크게 외쳤다.

“여러분, 당나귀 고기가 다 익었어요! 뒤에 사슴 고기도 있어요! 다들 우선 이것부터 드시죠.”

남편과 함께 고기를 굽던 관리인의 아내는 얼른 고기를 들고 나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는 탁자 위에 하나하나 올려놓았다.

엽영교와 제민은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웠지만, 지금 잘잘못을 따지면 엽연채에게 탓이 있으니 뭐라고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관리인 부부는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지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두 부부는 얼른 몇 입 먹고선 핑계를 대어 이 자리를 뜨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소전이 옆에 있는 평해에게 술을 권하더니 헤헤 웃으며 또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닌가.

“형님, 지난번에 집에 돌아가면 마누라를 때려 줄 거라고 하셨잖아요. 정말 그리하셨어요?”

그러자 주위의 사내들이 바로 떠들썩하게 웃어댔다.

“하하하. 형님, 마누라는 왜 때려요?”

그러자 소전이 웃으면서 평해 대신 대답했다.

“형님이 나리를 따르게 된 후로 월급이 많아져서 흑림촌黑林村에 가서 젊은 여인 한 명을 첩실로 들였는데, 아내가 우는소리를 하길래 형님이 자꾸 그러면 때려 줄 거라고 했대요.”

평해는 정색을 하더니 억지웃음을 지으며 부정했다.

“내 마누라는 그런 속 좁은 사람이 아니야. 전에 집에 돈을 가져다줬더니 자기가 데리고 있던 어린 계집애를 내게 첩실로 줬다고. 그런데 내가 사람을 또 사니, 마누라는 다른 게 아니고 내가 부양해야 할 사람이 또 늘어난 게 못마땅한 게지. 돈을 써야 되니까.”

“제가 오해한 거였네요. 형님의 아내는 시정 사람이지만 자신의 본분을 잘 아시네요. 부덕이 뭔지도 아시고요.”

엽영교는 소전의 입에서 ‘부덕’이라는 두 글자가 언급되자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 그렇게 따지자면 엽연채는 이 부덕이란 게 없는 사람이었다.

“맞아.”

평해는 술을 꿀꺽 들이켰고, 소전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대제의 부인들은 대부분 어질고 현명하며 부녀자의 미덕을 갖췄죠. 참, 방금 전에 이야기가 나왔던 그 동월 공주 마마도 말이에요. 공주이고 황녀인데도 강가한 후에 신분으로 상대를 업신여기며 억누르지 않았다고 해요. 회임을 한 뒤에는 바로 부마에게 첩실 둘을 붙여 줬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공주 마마의 시어머니가 사람들을 만나면 공주 마마가 아주 현명하고 어질다며 칭찬을 한다죠. 그야말로 대제 여인들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죠. 하하하. 여러분, 안 그런가요?”

다른 사내들도 꽤 마신 터라 다들 술기운에 얼굴이 불타는 것처럼 새빨갰다.

그들은 노교아에게 은혜를 입었는데 그녀가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으니 엽연채에게 조금 불만을 느꼈다. 더군다나 옹졸하게 투기하는 엽연채의 행동이 혐오스러웠기에 허허 하고 웃음을 지을 뿐, 아무도 소전을 말리지 않았다.

엽연채는 숨을 크게 내쉬었고 조금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냉소를 짓더니 이렇게 말했다.

“첩실을 들인다 어쩐다 계속 떠들어대는데 그만하지 못할까! 우리 집안일이 너랑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냐? 이렇게 말이 많은 걸 보니 넌 조용히 매화를 감상하는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구나. 혜연아, 저자를 내보내거라.”

소전은 멍해졌다. 그는 엽연채의 낯짝이 이렇게 두꺼울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자신이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했는데도?’

정상적인 여인이라면,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노교아와 주운환이 살을 맞댄 일이 언급됐을 때 노교아를 첩실로 들이겠다고 했어야 했다.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 해도 감히 찍소리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엽연채는 감히 큰 소리로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소전은 평생 이런 경우는 처음 봤다. 엽연채처럼 이렇게 염치없는 여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소전은 본래 교활한 성격이라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이렇게 반박했다.

“마님, 전 제가 한 말이 어디가 틀렸는지 모르겠는데요? 어떤 말이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던 거죠?

전 그저 낭자가 나리를 구한 걸 칭찬한 것뿐입니다! 사실이잖습니까! 또 전 그저 낭자와 나리가 살을 맞댔고 그 일 때문에 낭자가 파혼을 당해 고향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말밖에 안 했습니다. 이것 또한 사실이고요!

그리고 공주 마마를 칭찬한 것뿐이에요. 이것도 사실 아닌가요? 제가 무슨 틀린 말이라도 했습니까? 마님, 왜 이렇게 화를 내시는 거예요?”

엽영교는 화가 나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엽연채의 편을 들어줄 수도 없었다.

“마님…….”

추길이 다급히 엽연채를 불렀다. 소전이 지금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엽연채는 여전히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그냥 대범하게 노교아를 첩실로 들이면 되는 거 아닌가?

“난 정1품 부인이다. 지금 네 말투를 보니 벌을 내려야겠구나!”

그러나 엽연채는 냉소를 지으며 호통을 칠 따름이었다.

“벌을 내리신다고요?”

소전도 발끈했다. 지금 그는 술에 얼큰하게 취해 있고 자신의 행동이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형제들도 자신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운환은 늘 사리에 맞게 행동하며 형제들을 보호해 주는 사람이니 그는 그녀가 두렵지 않았다.

소전은 쳇 소리와 함께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냉소를 띠었다.

“마님께서 무슨 이유로 저에게 벌을 내리신다는 겁니까? 마님이 이렇게 화를 내시는 건 제가 마님의 약점을 건드렸기 때문이죠?

마님, 지금 마님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세요. 엽씨 가문이 작위를 빼앗기기는 했지만 전에 마님은 후부의 적녀이자 대갓집 규수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시정 여편네만도 못합니까? 어째서 공주 마마를 보고 본받지 않으시는 겁니까?

노 낭자는 나리와 살을 맞댔습니다. 나리께서 입을 열지 않으시는 건 여인네들의 일은 마님께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마님은 보고도 못 본 척하고 계시죠. 그래서 낭자는 지금 외로운 처지고 기댈 곳조차 없게 됐습니다. 나리는… 악!”

소전은 한창 흥이 올라 입을 쉬지 않고 놀렸고 평해를 비롯한 우락부락한 사내들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흥분해 있었다. 그런데 소전이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더니 저 멀리 날아가 뒤편의 매화나무에 부딪치는 게 아닌가!

사람들 모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보니 언제 왔는지 주운환이 공터의 입구 쪽에 서 있었다.

가장자리에 털 장식이 달린 검은색 소매 없는 외투를 입은 그는 검은 머리칼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었고, 더없이 잘생긴 그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차 싸늘하고 어두운 빛을 띠고 있었다.

두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날카로운 눈썹 아래에는 새빨간 핏빛이 어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서릿발 같은 그의 모습에서는 광풍과 폭우가 사납게 몰아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기우닝 마치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휩쓸어 버릴 듯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이런 주운환의 살기 어린 모습을 보더니 놀라서 몸을 덜덜 떨었다. 전쟁터에서 가는 곳마다 적을 무너뜨리며 사람을 삼대 베듯이 죽이던 소년 사신을 눈앞에서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장군…….”

장정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다들 바른 자세를 취했다.

주운환은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한 써늘한 시선으로 그들을 쓱 훑어보더니 마지막에는 엽연채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엽연채는 몸을 떨었다. 어째서인지 그동안 억눌려 왔던 억울함이 전부 한꺼번에 몰려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아래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은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었다.

주운환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누군가가 그의 심장을 꽉 움켜쥐는 것처럼 가슴이 너무도 아파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그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믿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부하가 이렇게 엽연채를 몰아붙였다니 말이다.

자신의 엽연채를, 그녀가 조금이라도 마음 상하지 않게 자신조차 심한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자신의 아내를 말이다.

그런데 지금 뜻밖에도 엽연채가 자신의 사람에게, 이렇게 가시 돋친 말로 모욕을 당한 것이다.

“나리…….”

얼굴을 맞고 멀리 나가떨어졌던 소전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어찌나 충격이 컸는지 그는 온몸의 뼈가 다 부서져 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얼굴이 통증이 심해 쓱 만져 봤는데 손에서 끈적한 느낌이 들었다. 보니 전부 피였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건 청옥패靑玉佩였는데, 이건 주운환의 소지품이었다. 방금 전 그는 이 옥패에 맞았던 것이다. 소전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나리께서 날 때리시다니! 왜 날 때리신 거지?’

하지만 소전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얼음처럼 차디찬, 그러면서도 피에 굶주린 듯한 주운환의 눈동자와 마주치게 되었다.

“저놈을 끌고 나가 혀를 뽑고 죽도록 몰매를 놓거라!”

소전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째서 이러십니까? 나리, 왜 절 죽이시려는 겁니까?”

“넌 내 부인에게 불경을 저질렀다! 당장 끌고 나가 매질을 하거라!”

주운환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사람들 안에는 장형杖刑 집행을 전담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곧장 뛰어나와 소전을 제압했다. 주운환이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된 소전은 아연실색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잠시만요……! 이곳은 군대가 아닙니다! 제가 군율을 어긴 것도 아니고요! 전 팔려 온 사람도 아니니 아무 때나 처형……! 우웁!”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양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소전은 질겁하며 두 눈을 부릅뜨고 주운환을 쳐다봤다. 평소 자신과 농담을 주고받던 주운환은 지금 지옥에서 온 아수라처럼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전은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한 가지 사실은 똑똑히 알게 되었다. 바로 엽연채가 주운환의 역린이라는 사실 말이다.

주운환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인 적 없었다. 그는 결단코 권세로 사람을 억누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권세로 양민을 죽이려고 했다. 아무 때나 처형할 수는 없는 백성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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