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589화 (589/858)

제589화

“그게 무슨 말이야?”

엽영교는 깜짝 놀라 눈을 똥그랗게 떴다.

“에휴!”

제민은 한숨을 쉬더니 엽연채를 쏘아보며 사정을 자세히 들려주었다.

“얘가 집에서 활 쏘는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전서구를 맞춰 버린 거예요. 서신에 동우산이 언급되어 있었는데, 어떻게 예상을 한 건지 아무튼 후야가 위험하단 걸 눈치채고는 허약해진 몸도 개의치 않고 그길로 수주로 달려갔어요.”

“뭐?”

엽영교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임신한 몸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녔다는 거야!”

제민은 허허허 웃었다. 물론 그때 엽연채는 자신이 회임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엽연채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티를 내기 위해서 일부러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기만 한 게 아니에요. 연채는 저녁에 주씨 가문 병사들이 오고 가는 걸 보고는 후야가 산에서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몰래 마 지부가 이끄는 포졸들 틈에 꼈는데, 거기서 마 지부가 후야를 살해하려 하는 줄 알아챈 거예요!

그때 마 지부가 뭐라고 말한 줄 알아요? 산에 있는 후야는 가짜 후야이니 그를 보면 바로 사살해도 무방하다고 했어요.

연채는 후야가 살해될까 봐 자신의 신분을 드러냈어요. 그런 다음, 도성으로 이미 서신을 보냈다고 사람들을 속였죠. 이렇게 지략을 써서 여 비장이 마 지부를 배반하게 만들었고 그자를 결박했어요. 포졸들도 전부 연채의 사람이 되었고요! 그렇게 함께 후야를 찾았던 거예요. 하하, 연채는 참 총명한 아이예요!”

그 말에 주위에 있던 호위병들은 깜짝 놀랐다. 반면 소전은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하하 소리 내어 냉소를 흘렸다.

“맞습니다. 마님께서도 오셨죠! 하지만 사실 마님은 집에서 푹 쉬고 계셔도 됐어요. 왜냐하면 나리께서 이미 계획을 다 세워 놓으셨거든요.

여 비장이 배반하지 않고 마 지부와 함께 산에 올라 비적 떼와 합류했어도 결과는 똑같았을 겁니다. 저희가 바로 그치들을 포위할 수 있었거든요.

그러니 회임도 하신 연약한 마님은 집에서 푹 쉬고 계셨어야 했어요. 그것이야말로 나리에겐 가장 큰 도움이었을 테니까요.”

계획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때는 이미 계획이 세워진 상태였으니 여 비장이 배반을 하든 안 하든 전체적인 국면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반해 노교아는 달랐다. 만약 그때 노교아가 나타나 뱀을 유인하고 쫓아내는 방법을 알려 주지 않았다면, 계략에 당해 모두 타지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혹은 노교아가 위험을 무릅쓰고 산에 올라 주운환을 구하지 않았다면, 주운환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설령 엽연채가 여 비장과 마 지부를 자신의 계획에 말려들게 했다 하더라도 수장이 사라졌으니 자신들은 분명 패배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님께서도 나리에 대한 관심이 지극하여 그런 경솔한 행동을 하셨던 거겠죠.”

소전은 허허허 웃더니 두 입에 독한 술을 다 털어 넣었다. 이렇게 많은 형제들이 자신을 지지해 주고 있으며 주운환이 엽연채와 말다툼까지 벌인 상태였다.

소전은 주운환이 엽연채가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첩실을 들이지 않는 데에 속으로 불만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점점 더 대담해졌고 평소 가슴속에 눌러 놨던 말도 전부 꺼내 놓으려고 했다.

“그래도 마님은 참 용감한 분이세요.”

소전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어 보였다.

“눈길을 밟고 비를 맞으며 나리를 찾아내셨잖아요. 한데 그때 나리는 상처를 치료하고 계셨고 노 낭자는 나리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약을 갈아 주고 있었죠. 마님께서는 하필 마침 그 모습을 보시고는 바로 울면서 뛰쳐나가셨고요.

아내가 울고 있는데 나리께서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어요. 중상을 입은 몸도 개의치 않고 마님의 뒤를 쫓아가 간신히 마님을 달래 드렸죠.

하지만 무리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상처가 벌어졌고, 겨우 눌러 놨던 뱀독이 다시 몸으로 퍼져 나리는 혼절하고 마셨어요. 노 낭자가 간신히 치료를 해 놨는데 공든 탑이 무너져 버린 거죠.”

그는 그리 말하며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손을 쳤다.

주운환의 호위병들은 다들 놀라고 말았다. 그들은 그저 노교아가 주운환을 구했고 서로 살이 맞닿게 되는 일이 있었으며 엽연채가 주운환을 찾으러 왔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중간에 이런 일도 있었을 줄이야. 그들은 저도 모르게 엽연채를 쳐다봤고 그들의 눈빛에는 분노가 살짝 담겨 있었다.

‘마님도 참 주제를 모르시네. 아무 쓸모도 없으면서 기어코 나리를 찾아와 폐만 끼치고 갔잖아. 노 낭자는 나리를 구할 마음뿐이었는데, 마님은 괜히 찾아와서 터무니없이 투기까지 부렸네.’

‘제대로 된 현숙한 아내라면 누군가가 자기 남편을 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으로 뛰어 들어가 머리를 숙이고 고마움을 표현했을 거야. 그런데 마님은 질투심을 느껴 뛰쳐나갔고, 그 바람에 다친 나리께서 달래 주시느라 상처가 도지고 말았잖아.’

엽영교와 엽미채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엽연채를 쳐다봤다. 소전의 말에 따르면 엽연채는 제대로 처신하지 못한 셈이었다.

엽연채는 당시의 상황과 다친 주운환이 노교아에게 안겨 있던 장면을 떠올렸다. 자신은 도저히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탓에 주운환의 상처가 악화되고 말았다.

엽연채는 그때의 상황을 생각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니 우린 낭자에게 감사해야 해요. 헤헤헤.”

소전은 다시 술잔에 술을 따르더니 꿀꺽 들이켰다.

“낭자는 지금 우리 때문에 생계 수단을 잃었어요. 들어 보니 원래 정혼했던 사람도 낭자가 그렇게 사람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대요. 상의를 벗은 사내를 안았다는 이야기에 그런 여인은 필요 없다며 파혼을 했다죠……. 에휴. 너무 가엾어요. 좋은 일을 하려다 인생을 망치고 만 거죠!”

노교아는 어리둥절했다. 그녀에겐 정혼자 같은 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파혼을 하고 말고 하는 이야기가 나왔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그저 이 이야기를 못 들은 척하며 고개를 숙인 채 떡을 살짝 베어 물었다.

엽영교와 엽미채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상의를 벗은 채로 껴안았다고? 그건 살을 맞댄 거잖아!’

엽영교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제민을 쳐다봤다. 어쩐지. 그래서 제민이 노교아에게 그리 까칠하게 굴었던 것이다. 노교아는 정말로 엽연채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였다.

그녀는 주운환에게 큰 도움을 주었고 그를 구했으며 살을 맞대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직 시집도 안 간 상태이고 출신이 미천한 농가 소녀에 불과하니, 사내라면 응당 그녀를 책임지려고 할 것이다. 이런 신분의 여인은 그저 첩실로 들이면 되니 처리가 아주 손쉬운 일이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추길은 기뻐서 날아갈 것만 같았다. 지금 모두가 노교아를 돕고 있었다. 엽연채는 노교아를 좋아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그래도 상황에 떠밀려 노교아를 첩실로 들인다면, 자신 또한 주운환의 첩실이 되어 엽연채의 오른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추길은 저도 모르게 엽연채를 쳐다봤다. 곱고 아리따운 그녀의 얼굴은 차갑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추길은 뛸 듯이 기쁜 마음을 억누르곤 걱정스러운 얼굴로 운을 뗐다.

“마님…….”

“연채야…….”

엽영교도 염려스러운 얼굴로 엽연채를 바라봤다.

지금 이 상황을 보니 노교아는 사실 첩실로 들어올 계획이었던 거고, 소전 등도 노교아가 첩실이 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주운환은…….’

엽영교는 주운환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혹시 그도 노교아가 첩실이 되는 걸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

어쨌든 여러 일이 둘 사이에 있었으니, 만약 노교아가 원한다면 그녀를 첩실로 들이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더욱이 그녀의 정조를 지켜 줄 수 있고 은혜도 보답할 수 있으며 곁에 미인들도 더 생길 테니 그야말로 일거삼득인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런데 엽연채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주운환은 내향적인 성격이니 내심 엽연채가 나서서 첩실을 붙여 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엽연채는 못 본 척 무시하고 있었다.

한편, 엽연채는 아래에 있는 소전과 고개를 숙인 채 간식거리를 먹고 있는 노교아를 쳐다보더니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

그녀는 줄곧 참으려고 했다. 양왕의 일이 마무리되면 그때 주운환과 분명히 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가 요즘 얼마나 바쁜지 알고 있고 양왕과 연락이 끊겨 그가 이 일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를 위해 첩실을 들이지 않았다. 현숙하고 좋은 아내가 되지 못하며 그를 위해 집안 여인들을 정리해 주지 않았다. 이는 이미 자신의 소임을 다하지 못하는 행동이며 자신의 잘못이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이혼까지 하겠다고 소란을 피워 그의 심기를 어지럽힌다면 그가 일에 전념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며, 심지어 그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

‘그건 너무나도 큰 잘못이야. 하지만 지금…….’

엽연채는 소전이 날뛰는 모습을 쳐다보며 냉소를 지었다.

“그래서 뭘 어찌하고 싶은 게냐?”

소전은 어리둥절해하더니 도통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마님,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제가 뭘 어찌하고 싶으냐고 물으셨습니까?”

“이……!”

제민이 새파란 얼굴로 말했다.

“너 말투가 그게 뭐냐? 감히 주인마님께 불경을 저지르는 것이냐?”

그러자 소전은 해죽해죽 웃더니 농담하듯이 말했다.

“거기 누님, 전 누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첫째, 전 불경한 짓을 하지 않았어요. 전 방금 전에 그저 노 낭자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한 게 다예요. 제가 뭐 다른 이야기라도 했나요? 둘째, 전 나리의 부하이지 팔려 온 종이 아니에요.”

그랬다. 그들은 주운환의 부하였고 양민이며 평범한 백성이었다. 팔려 온 노비가 아니었다. 그리고 평해는 외부에서 초빙해 온 호위병이었다. 즉 다들 양민이었다.

제민은 당장이라도 앞으로 나가 소전을 목 졸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소전이 방금 전에 한 말은 전부 사실이었고 노교아가 주운환에게 베푼 친절을 칭찬하는 말뿐이었으니, 무엇이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내뱉은 말마다 가시가 돋쳐 있으니 어찌 곱게 들리겠는가.

그가 노교아를 추켜세우면 세울수록 엽연채는 더욱 옹졸한 소인배처럼 보였다.

하지만 제민과 엽영교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건 다 엽연채가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비롯된 사달이었다.

엽연채가 대범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먼저 나서서 노교아를 첩실로 들었다면 노교아도 더 많은 것을 바라는 허튼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면 그쪽의 잘못이 되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엽연채는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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