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588화 (588/858)

제588화

“추길 누나, 마님과 나리께서 싸우셨어요?”

그때, 킥킥거리는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추길이 고개를 돌려 보니 근처의 매화나무 아래에 소전이 서 있었다. 추길은 멍해졌다가 안타까운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그래, 두 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소전은 그 말을 듣더니 쳇 하고 혀를 찼다.

‘무슨 일이겠어? 분명 나리께서 마님에게 불만을 드러낸 거지.’

이때, 주운환이 입구로 들어왔다. 즐겁고 여유로운 분위기로 가득한 매화림이었으나 그의 눈은 엽연채부터 찾고 있었다.

호위병들이 그를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했다.

“나리.”

“후야께서 오셨군요.”

근처에서 누군가의 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보니 노교아가 매화꽃 가지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원래도 수수하고 우아하게 생긴 사람이라 그녀의 분위기와 매화꽃이 유난히도 잘 어울렸다.

그녀의 손에 들린 매화꽃 가지는 그다지 활짝 피어 있지는 않았다. 꽃가지 끝에 달린 두세 송이만, 그것도 반만 피었는데, 하얀 꽃잎의 끝부분에 붉은빛이 돌고 있었다. 그런 매화꽃 가지를 들고 있으니 노교아에게서 꼭 선녀 같은 분위기가 흘렀다.

“부인은 저쪽에 앉아 계세요.”

그녀는 차분히 말하며 고개를 돌려 공터를 쳐다봤다. 그쪽으로 가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뒤에서 누군가의 키득대는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이 서로 쫓고 쫓기며 이곳으로 달려오다가 그만 실수로 노교아의 등에 부딪쳤다.

노교아는 비틀거리며 주운환 쪽으로 몇 걸음 다가오다가 우뚝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들더니 주운환을 쳐다보고 사과했다.

“후야… 죄송합니다.”

주운환은 날카로운 눈썹을 추켜올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괜찮소. 낭자.”

그러고는 발걸음을 돌려 엽연채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멀리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니 여한이 안으로 달려 들어왔고 그가 주운환의 귀에 대고 무슨 이야기를 하자 주운환은 깜짝 놀라며 빠른 걸음으로 탁자가 차려진 공터로 걸어갔다.

“다들 먼저 연회를 시작하세요. 전 조금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는 그리 말하며 엽연채를 쳐다보고는 여한, 여양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 엽연채는 그를 흘깃하고는 조용히 고개만 숙였다.

엽영교 등은 이미 자리에 앉았고 소전과 평해 등은 하하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병사들은 주운환이 일이 있어 떠난다는 소리를 듣더니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똑바로 섰다.

상석에 앉아 있던 엽연채가 마른기침을 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먼저 연회를 시작합시다.”

주위에서 놀고 있던 사람들은 얼른 대답하더니 하나하나 연회석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별장 관리인과 그의 아내도 이쪽으로 오더니 우선 여종들을 시켜 간식거리와 여러 가지 고기 그리고 술을 가져오게 했다. 부부 자신들은 공터의 중간에 앉더니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매화 향기와 술 냄새,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해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놨다.

엽연채는 혼자 상석에 앉아 있었는데, 탁자 위에는 갖가지 먹을거리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입맛도 없고 술을 마실 수도 없어 그녀는 오룡차烏龍茶와 맹물만 홀짝거렸다.

“듣자 하니 이 별장의 매화가 도성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더라.”

엽영교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붙였다.

“전에는 황실에서 소유한 뜰이라 구경하기 어려웠지만 말이야. 매화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부탁해야만 황제 폐하께서 이 별장을 열어 주며 매화를 꺾어서 가지고 갈 수 있게 하셨대. 그런데 이젠 너희 집안 소유가 되었잖아? 틈나면 자주 날 불러 주렴. 자랑 좀 하게.”

그녀는 일부러 깔깔거리며 웃었다. 엽연채와 주운환이 말다툼을 벌인 데다 방금 전 주운환이 일이 있어 떠났으니 엽연채의 마음이 분명 불편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지라고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네.”

엽연채는 정신을 딴 데 팔고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한편, 소전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엽영교의 말을 듣더니 헤헤 웃으며 끼어들었다.

“저도 이 별장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월東月 공주께서 매화를 가장 좋아하셔서 황제 폐하께 오랫동안 이 별장을 달라고 간청을 드렸는데도 폐하께서 안 된다고 하셨대요. 그런데 결국 나리께 하사하셨네요.”

자리에 있던 호위병들과 여종들은 일제히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상전과 함께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큰 행운도 없을 터였다.

“자, 자, 나리와 마님께서 새해에도 운수대통하시고 자식도 얻고 부유해지시 우리 기원합시다.”

소전은 생글생글 웃으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엽연채도 붉은 입꼬리를 당기더니 오룡차가 든 찻잔을 들어 올리며 답례했다.

“너희들도 원하는 바를 이루고 높은 곳에 오르기를 기원하마.”

“좋습니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잇달아 환호성을 지르며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 낭자에게도 한잔 올리겠습니다.”

소전은 또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술잔을 가득 채웠다.

노교아는 왼쪽 하좌에 앉아 있어 소전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의 말을 들은 노교아는 순간 멍해졌다가 얼른 자신의 술잔에 술을 붓고는 수줍어하며 말했다.

“오늘 우린 후야 내외께서 마련한 술과 음식을 즐기고 있는데, 오라버니는 왜 저에게 술을 올리십니까?”

“올리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소전은 탁자를 탁 치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때 낭자가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목숨을 부지하고 이곳에서 술을 마시며 꽃구경을 하겠어요! 전부 낭자의 덕이죠!”

함께 동우산에 갔던,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스무 명가량의 병사들은 이 말을 듣더니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얼마 전 동우산에서 겪었던 위험천만했던 그 며칠을 절로 떠올리며 노교아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낭자에게 술을 올려야겠네요!”

그들의 동조에 노교아는 얼굴이 붉어지더니 가녀린 목소리로 사양했다.

“과찬이세요. 전 결코 대단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천만에요! 낭자는 우리의 생명의 은인이에요. 또 나리의 생명의 은인이고요.”

소전은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들어 올리려고 했다.

“다들… 이러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제가 마시면 되죠?”

노교아는 분위기에 떠밀려 들고 있던 술을 단숨에 털어 넣었다.

아래에 있는 우락부락한 사내들은 좋다고 외쳤으나 엽연채는 그쪽을 향해 비웃음을 짓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소전을 바라보았다.

엽영교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녀는 노교아에게 아무런 편견이 없었다.

처음 노교아가 주운환의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녀는 노교아가 의술도 알고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크게 탄복했다. 게다가 주운환의 목숨을 구한 건 엽연채의 목숨을 구한 것과 같았다. 그래서 노교아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 후 제민이 운연거에서 죽자 사자 노교아를 몰아붙이자 엽영교는 제민이 너무 매몰차게 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소전 등이 열성적으로 노교아를 띄우며 소란을 피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엽영교는 저도 모르게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고 주객이 전도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하하. 한잔으로 되겠어요!”

소전은 또 자신의 술잔을 가득 채웠다. 노교아는 표정이 굳어지더니 미소를 지으며 거절했다.

“더 이상은 못 마셔요.”

“낭자는 연약한 여인인데 어떻게 더 마시라고 하겠어요. 그저 우리가 낭자에게 술을 올리기만 할게요.”

그는 그리 말하며 또 술잔에 든 술을 마셨다. 이렇게 소전이 분위기를 잡자 다른 호위병들도 하하대며 술잔을 비웠다.

그러자 노교아가 얼른 이렇게 말했다.

“술을 많이 마시면 몸에 안 좋아요. 술은 안 올려도 되니 다들 음식을 드세요.”

“계속 올릴 거예요! 그 전에는 다들 여기 앉아서 술 마시고 고기 먹는 건 꿈도 꾸지 마요.”

“오라버니, 너무 과분합니다. 전 그저 지나가는 길에 사소한 도움을 드린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언급하실 필요는 없어요.”

소전이 고집을 부리자 노교아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사소한 도움이라고요?”

소전은 웃음을 지으며 콧방귀를 뀌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때 비적 떼는 산으로 도망을 갔고, 그 후에 마 지부가 악랄한 계책을 준비해 우리를 모해하려고 했어요. 우리가 낭자에게 길을 물었을 때 낭자가 쓸데없는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면 그저 지형만 알려 줬으면 됐을 거예요.

그런데 낭자는 산에 뱀이 있다고 말해 줬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뱀을 유인하고 쫓아내는 비방까지 세심하게 가르쳐 줬죠. 우리를 위해 생계 수단까지 잃게 되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요.

만약 낭자가 자신의 생계 수단까지 잃어가면서 그렇게 세심하게 알려 주지 않았다면 우린 이미 마 지부의 계책에 당했을 거예요. 전부 산에서 죽었겠죠! 어떻게 목숨을 부지해 이곳에서 놀 수 있겠어요!”

소전은 감정을 담아 목청을 높였고, 동우산에 갔었던 사람들은 그의 말에 꽤나 감동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시 자신들은 뱀을 물리치는 해독약 덕분에 뱀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지만, 옆에 있던 포졸들은 독사에게 물려 입에서 검붉은 피를 토하고 목숨을 잃었다. 노교아의 해독약이 없었다면 자신들도 그 포졸들과 같은 운명이었으리라.

호위병들은 원래 노교아에게 그렇게 크나큰 은혜를 입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소전이 이렇게 말하니 절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낭자는 사심 없이 우리를 도왔어요.”

소전은 또 술을 들이켜더니 이어서 말했다.

“낭자가 알려 준 덕분에 나리께서 단번에 마 지부의 음모를 간파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완벽한 대비책을 생각해 낼 수 있었고요.

나리는 사람들에게 뱀에게 물려 죽은 척하고 전부 숨으라고 하셨죠. 저녁에 마 지부 등이 나리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산에 올라 수색을 한 다음 비적 떼와 합류했을 때, 바로 그때 그자들을 일망타진하려고 말이에요.

하지만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았죠. 갑자기 맹호 한 마리가 튀어나와 나리를 공격한 거예요. 그 독사들이 피비린내를 맡더니 뱀을 쫓는 약조차 무서워하지 않고 나리를 물었고, 결국 나리는 중독되셨어요.

이각 안에 해독하지 못했다면 목숨을 잃으셨을 거예요. 한데 그때 낭자가 다시 나타난 거예요. 낭자는 비적 떼와 맹호도 두려워하지 않고 나리를 구했어요. 낭자는 용감하고 강인한 사람이에요.”

“맞다, 맞아.”

평해는 술을 홀짝이더니 그의 말에 호응해 줬다.

“낭자는 정말 용감하게 사람들을 구했어!”

“그러게 말이에요!”

보다 못한 제민이 허허허 하고 웃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우리 여인들도 사내들에게 뒤처지지 않아요. 다들 이렇게 용감하죠. 우리 연채도 부군이 걱정되어 용감하게 수주에 가서 부군을 찾았는걸요.”

제민은 사람들이 노교아를 한도 끝도 없이 추켜세우는 꼴을 도저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엽연채도 주운환을 위해 많은 것을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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