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572화 (572/858)

제572화

주운환은 기쁨에 겨운 채 따라 침상 위에 눕더니 자신의 품 안으로 엽연채를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으며 정답게 말했다.

“마침내 우리한테도 조그만 찐빵이 생겼군요.”

엽연채는 그와 가까이 있고 싶지 않았다. 이럴수록 더욱더 미련이 남을 테니 그녀는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

“조그만 찐빵이라니요. 이 아이는 찐빵이 아니에요.”

“왜 아닙니까. 동그랗고 포동포동하고 부드러우니 딱 찐빵인데.”

그는 그리 말하며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묻었다.

“이 조그만 녀석은 우리 부인과 꼭 닮았을 겁니다!”

그러자 엽연채는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

“당연히 날 닮았죠. 전부 다 날 닮았을 거예요.”

주운환의 잘생긴 얼굴이 굳어지나 싶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인, 우리 조금만 타협합시다. 절반은 부인을 닮고 절반은 날 닮은 거로 하는 건 어떻습니까? 괜찮죠?”

“안 돼요!”

엽연채는 두 눈을 감은 채 진지하게 말했다. 그를 닮게 되면 날마다 아이를 쳐다볼 때 괴로운 마음이 들 것 아닌가.

주운환은 하는 수 없이 그녀를 안고 얼렀다.

“그럼 7할은 부인을 닮고 3할은 날 닮은 거로 합니다. 이건 괜찮죠?”

“안 돼요!”

엽연채는 말을 길게 늘어뜨리며 거절했다.

“그럼 2할!”

“안 돼요!”

“1할도?”

“안 돼요!”

엽연채는 그를 쏘아보며 강조했다.

“이 아이는 전부 날 닮아야 해요. 이 아이는 내 거예요!”

주운환은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조그만 입을 뽀로통하게 내밀고는 풀 죽은 모습을 하고 있자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부 다 우리 부인을 닮았을 겁니다. 그럼 난 더 좋죠. 하하하하!”

문득 엽연채를 빼닮은 조그만 찐빵 같은 아이의 모습이 떠오르자 그는 또 달콤한 기분이 들어 그녀를 안고선 입맞춤을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날마다 안아 줄 겁니다.”

이 말에 엽연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쳐다보며 톡 쐈다.

“이 아이는 내 거예요.”

주운환은 표정이 굳어졌다.

“나한테 조금도 나눠 줄 수 없는 겁니까?”

“안 돼요. 전부 내 거예요.”

엽연채는 그리 말하며 자신의 배를 꼭 안더니 몸을 돌려 그에게 뒤통수만 보였다.

‘부인 기분이 상한 것 같은데, 왜지?’

영문을 모르는 주운환은 그녀를 안고만 있다가 결국 몸을 돌리더니 그녀의 옷깃을 들추었다. 그러자 살짝 부푼 그녀의 조그만 배가 드러났고 그는 몸을 숙여 배에다 살며시 입을 맞췄다.

엽연채는 화들짝 놀라 왁 소리쳤다. 그녀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그 순간 불현듯 노교아를 비롯해 첩실을 들이는 일이 떠올랐다. 그러자 또 마음이 쓰려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침상 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는 그를 상대해 주지 않았다.

주운환은 그녀가 왜 화가 났는지 알지 못해 그저 꼬물거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부인… 입맞춤 한 번만 하면 안 되겠습니까?”

“싫어요.”

엽연채는 그리 말하며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지만, 주운환은 더욱 찰싹 달라붙었다.

“그럼 한 번만 깨물어 봐도 됩니까?”

“안 돼요!”

엽연채는 모질게 딱 잘라 거절했다.

“이만 잘래요.”

엽연채는 하품을 했다.

엽연채가 회임을 했다는 기쁨에 흠뻑 빠져 있던 주운환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 푹 쉬십시오. 전 부인 곁에 있겠습니다.”

엽연채는 이불 안에 쏙 들어가 있었고 주운환은 옆으로 누워서 그녀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엽연채는 그가 자신에게 다정하게 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그는 정말로 자신을 아꼈다.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평생 자신을 아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내는 이상한 생물이라 한 여인을 사랑하면서도 다른 여인과도 잘 수 있었다.

아는데도, 그에게 안겨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그와 서로 기대어 있는 게 좋았고 그에게 찰싹 달라붙어 비비적대는 것도 좋았다. 그를 안고 있는 손을 놓고 싶지 않았고, 항상 함께 있을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만약 자신이 앞으로 그가 첩실들을 몇 명 들이는 걸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이렇게 그와 함께 쭉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동우산에서의 그 장면만 떠오르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엽연채는 옅은 한숨을 쉬더니 몸을 돌렸다. 주운환은 모로 누워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 어느새 그는 잠이 들어 있었고 그의 잘생긴 얼굴은 노을이 비치는 것처럼 아름답게 빛났다.

엽연채는 얼마간 그를 바라보더니 살며시 몸을 일으켜 자신의 체온이 남아 있는 이불을 그에게 고이 덮어 줬다.

그 시각. 엽연채의 여종들은 오른쪽 곁채의 낭하에서 즐겁게 떠들고 있었다.

“나리께서 돌아오셨으니 상을 주시지 않을까?”

청유가 그리 말하며 두 눈을 반짝이자 혜연은 풉 하고 웃으며 말을 받았다.

“넌 빼놓지 않고 주실 게다.”

추길은 주황색 긴 나무 걸상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더니 얼른 고개를 돌리고 동조했다.

“그래, 네 말대로 상을 주실지도 몰라.”

주운환이 방으로 들어간 후로 추길의 마음도 그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귀 또한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주운환의 머리를 빗어 주고 환복을 도우며 시중을 들고 싶었지만, 혜연이 모두를 끌고 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이야기나 나누고 있었다.

추길은 불만스럽기 짝이 없었지만, 지금 다들 방이 아닌 이곳에서 담소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으니 감히 나설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사람들이 상전에게 치근댄다는 싫은 소리를 할 게 뻔하지 않은가.

그런데 청유가 이런 말을 꺼내니 추길은 옳다구나 바람을 잡았다.

“나리께서는 분명 뛸 듯이 기뻐하고 계실 거야. 우리 들어가서 나리께 상을 달라고 하자. 어쩌면 은화 몇 냥을 더 주실지도 몰라. 가자!”

“가긴 뭘 가?”

혜연은 허허 하고 웃더니 추길을 끌어당겼다.

“나리는 이제 막 집으로 돌아오셨으니 마님과 오붓이 이야기를 나누셔야지. 우리가 가면 흥이 깨지지 않겠어?”

“맞아요.”

소월이 호호 웃었다.

추길은 입을 살짝 오므렸다. 그녀는 엽연채와 주운환이 둘이서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고 있을 생각만 하면 속에서 구역질이 치밀었다. 더욱이 이미 말머리를 뗐으니 자신의 생각을 한시도 더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럼 내가 물을 가져다드릴게. 집에 돌아왔는데도 씻지 못하셨으니 되게 찝찝하실 거야. 지금쯤 우리가 놀기만 하고 일은 안 한다고 언짢아하실지도 몰라.”

추길이 일부러 농담조로 말했는데도 혜연은 빈정거리는 말투로 응수했다.

“그럼 조금 혼나면 되지, 뭐! 얘들아, 우리 지금은 절대 일하지 말자.”

“하하. 그래요! 우리 게으름 좀 피워요.”

청유와 소월 등이 까르르 웃어댔다.

젊은 부부가 오래간만에 서로를 보게 됐으니 당연히 둘만의 시간을 가지려 할 것이고 사람들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씻고 싶다면 알아서 자신들을 부를 터였다.

추길은 표정이 굳어진 채로 그들을 따라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마음은 조마조마하기 그지없었다. 주운환이 이미 돌아왔는데도 엽연채는 아직 자신을 불러 단장을 하고 시중을 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추길은 초조함을 견디기 어려웠지만 감히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이때, 본채의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여우 털로 만든 진홍색 소매 없는 외투를 입은 엽연채가 밖으로 나왔다.

추길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마님께서 나오셨다.”

“마님!”

청유를 비롯한 여종들이 일제히 엽연채 쪽으로 걸어갔다. 엽연채는 무덤덤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더니 이렇게만 분부했다.

“부군께서는 잠이 드셨으니 너희들은 따뜻한 물과 저녁 식사를 준비하거라.”

“예.”

청유와 소월 등은 얼른 몸을 돌려 각자 할 일을 하러 갔지만, 혜연은 곁을 지켰다.

“마님께서는 왜 나리와 함께 쉬지 않으십니까?”

“오늘 너무 많이 쉬었어…….”

엽연채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밖에 나가 좀 거닐어야겠구나.”

그녀가 정원 쪽으로 걸어가자 혜연은 어리둥절해하다가 얼른 뒤를 쫓았다.

혜연은 엽연채가 회임을 했으니 주운환에게 첩실을 붙여 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엽연채는 그것이 탐탁지 않으니 주운환에 대한 마음을 접으려는 것이었다. 혜연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것이 옳은 방법이었다. 사내에게 강한 집착을 가져서는 안 된다. 안 그러면 나중에 그가 첩실에게 다정한 모습을 보일 때 그녀는 죽도록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겠는가.

지금처럼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려서 이 일을 좀 더 가볍게 보는 시각을 가지는 건 좋은 일이었다.

추길은 엽연채가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쳐다보며 머뭇거렸다.

그녀는 갈팡질팡했다. 주운환이 지금 방에서 자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안으로 들어가 그의 시중을 들고 싶었지만, 엽연채가 말을 꺼내지 않았으니 감히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없었다.

지금 엽연채가 밖으로 나가 산보를 하려고 하니 당연히 따라가야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엽연채는 이미 혜연과 함께 정원을 걷고 있었다. 추길은 여전히 계단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한 가지 묘안을 떠올리고는 잰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마님, 요즘 입맛이 예전과는 조금 달라지셨죠. 한데 나리께서 돌아오셨으니 주방 사람들이 거기만 신경 쓰다가 마님의 입맛을 못 살필지도 모릅니다. 지금 제가 가서 지켜보겠습니다. 주방 사람들이 깜박하고 마님께서 냄새도 맡지 못할 음식을 내올지도 모르니까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문을 나섰다.

혜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보니 엽연채는 냉담한 표정을 지은 채 콧방귀를 뀔 따름이었다.

운연거에서 뛰어나온 추길은 호숫가를 걷고 있었다.

그녀는 엽연채가 밖으로 나갔으니 방 안에는 주운환 한 사람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자 흥분을 억누를 수가 없었고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운연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방금 전에 자기 입으로 주방에 가 보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후부 안은 사람들로 북적이는데 만약 지금 자신이 주방에 가지 않는다면, 나중에 엽연채와 혜연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입장이 크게 난처해질 것이다.

추길은 우선 주방에 가서 식단을 살펴보고 주방 사람들에게 대충 분부를 내린 후, 직접 따뜻한 물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방금 전에 엽연채가 주운환이 씻을 수 있도록 따뜻한 물을 준비하라고 말했으니 떳떳하게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설령 엽연채가 꼬투리를 잡으려고 해도 자신은 잘못한 부분이 없으니 문제 삼지 못할 것이었다.

추길은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들떠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고 기분이 너무 좋아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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