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570화 (570/858)

제570화

“그럼 그 아이를 아내로 맞이해도 괜찮겠느냐?”

온씨는 쇠뿔도 단김에 빼고 싶어 서둘렀다.

“그 소저라면… 괜찮습니다.”

엽균은 고개를 끄덕였고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래도 본인의 혼인 이야기를 하자니 부끄러움을 탈 수밖에 없었다.

온씨는 아주 기뻐했다. 당장이라도 며느리가 올린 차를 마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더니 엽연채를 끌어당기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연채야. 네가 보기엔 어떠냐?”

엽연채는 엽균을 쳐다보며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강조했다.

“오라버니가 결정해야죠! 엽승덕이 했던 짓을 따라 하면 안 됩니다.”

이 말에 엽균은 표정이 굳어졌다.

“혼인을 하면 상대에게 잘해 줘야 합니다. 나중에 갑자기 웬 낭자 하나를 만나 그 여인을 품에 안고 진정한 사랑을 외치며 우리가 오라버니의 혼사를 몰아붙인 거라고 변명하면 안 돼요. 진짜 사모하는 사람과 함께 살 거라고 억지를 부리며 아내와 자식들에게 화를 입히면 안 된다, 이 이야기예요.”

엽연채는 코웃음을 치며 차가운 눈빛을 보였다.

“안 그럴 것이다!”

엽균은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얼른 손사래를 쳤다.

“난… 절대로 아버지처럼 행동하지 않을 거다.”

“그 말 기억하고 있을게요.”

엽연채는 작게 콧방귀를 뀌었다.

엽승덕 이야기가 나오자 온씨는 가슴이 조금 조여드는 느낌이 들더니 결국 옅은 한숨을 쉬었다.

“한번 믿어 보자꾸나!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온씨는 그리 말하며 저도 모르게 웃음을 띠었다.

“내 이따가 매파를 시켜 정확히 물어보게 하마. 그리고 지인들에게도 그 소저에 대해 알아보라고 부탁하마. 영안후부에 큰 문제만 없다면 그 대소저는 성품도 나쁘지 않으니 이 일은 이렇게 정해질 게다.”

“네.”

엽연채는 그리 말하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빼쭉거렸다. 원남옥이 전에 설옥인이었을 때 그녀는 주종과와 정혼했던 사이라 하마터면 자신의 손위 형님이 될 뻔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설옥인이 시집와서 자신과 동서지간으로 지내는 걸 결코 바라지 않았다. 그때의 설옥인이 주씨 가문으로 들어왔다면 주종과와 비 이낭은 그녀를 싫어했을 테니 분명 날마다 그녀를 못살게 굴어 집안에 소란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설옥인은 또 자신을 찾아와 본인 신세를 한탄하며 성가시게 굴었을 테고 말이다.

다행히 설옥인과 주종과의 정혼이 어그러져 그녀는 자신의 손위 형님이 되지 않았고, 그때 자신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설옥인이 이름을 바꾼 후에 또다시 자신의 올케언니가 되려고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게 어디 우연이겠는가. 그쪽에서 작정을 하고 덤벼든 거라고 봐야 했다.

“그럼 난 이만 돌아가 매파를 불러야겠다.”

온씨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엽연채는 어이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더없이 다정한 어머니였는데, 예비 며느리 이야기를 하자마자 딸을 한쪽에 내팽개치다시피 하다니. 엽연채는 입을 삐죽 내밀며 그녀를 붙잡았다.

“가긴 뭘 가세요. 점심 식사는 하고 가셔야죠!”

“허허허. 그래, 벌써 오시午時(오전 11시~오후 1시)구나.”

혜연과 추길은 이미 소청에 밥상을 차려 놓았다. 식사를 마치자 온씨는 엽균을 데리고 서둘러 이곳을 떠났다.

진서후부 문을 나선 온씨는 엽씨 가문에 가서 묘씨와 상의를 했다.

묘씨는 엽연채도 동의했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사람을 시켜 남몰래 영안후부를 알아보게 했다.

이틀도 안 되어 온씨와 묘씨는 영안후부의 상황을 분명히 파악하게 되었다. 가세는 평범하지만 적어도 청렴결백한 가문이었고 원남옥은 엽연채와 어울리는 걸 보니 당연히 인품이 나쁘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명절을 쇠기 닷새 전인 섣달 스무엿새에 엽균과 원남옥의 혼사가 정해졌다.

* * *

한편, 태자가 임시로 맡고 있는 조정에도 주운환이 비적 떼를 일망타진하고 이미 도성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제의 도성은 시끌벅적했고 곳곳엔 신년을 맞이하는 기쁨이 가득했다. 거리는 평상시보다 훨씬 떠들썩하고 화려했고, 백성들은 일 년 동안 저축해 놓았던 돈을 전부 털어 명절에 쓰이는 갖가지 물건들을 즐겁게 구입했다.

한편, 엽균과 원남옥의 혼사가 정해진 후 영안후부에도 기쁨이 넘쳐흘렀다.

원남옥은 방 안에서 영안후 부인과 함께 진서후부에 보낼 연말 선물을 만들고 있었다. 바로 난새가 날개를 펼치는 문양이 수놓아진 커다란 발이었다.

영안후 부인이 말했다.

“장씨 가문도 이 혼사에 관심이 있었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장 부인이 직접 찾아가 망쳐 버렸다고 하더구나! 쯧쯧. 엽균이 별 볼 일 없고 다리를 좀 절기는 하지만, 우리도 부귀영화를 바라는 건 아니니 먹고사는 데 걱정이 없으면 그걸로 됐다. 그리고 엽균의 누이동생이 진서후 부인이니 이 이야기를 하면 체면도 서고 말이다.”

원남옥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영안후 부인은 이어서 이리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온 부인이 엽승덕과 외실에게 당할 만큼 당해 첩실과 외실 같은 것들을 제일 증오한다는 거다. 엽균이 그로 인해 교훈을 얻었다면 그건 좋은 일이다. 설령 아니더라도 후에 엽균이 첩실을 총애하고 아내를 몰아내려고 한다면 온 부인과 진서후 부인이 제일 먼저 엽균을 가만두지 않을 거다.

엽균은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자이니 그리되면 너는 손을 쓰지 않아도 알아서 다 정리될 게다. 이렇게 좋은 혼사를 어디에 가서 찾겠느냐? 하하하.”

그녀가 시원하게 웃음을 흘리자 원남옥도 입가에 가벼운 웃음을 걸면서 바늘을 정리했다. 어느덧 수를 놓은 발이 완성된 것이다.

“진서후는 아직 도성에 도착하지 않았을 게다. 진서후가 돌아오면 정신없이 바빠질 테니 완성된 김에 지금 바로 선물을 보내자꾸나.”

원남옥은 그리하겠다고 대답하고는 여종과 함께 문밖으로 나갔다.

* * *

그 시각 진서후부.

엽연채는 나전을 상감하고 옻칠을 한 기다란 황화리黄花梨 탁자 앞에 몸을 숙인 채 세심하게 수본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서 제민이 들어오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수자嫂子(중국에선 올케언니와 형님을 모두 수자라고 칭함)가 오셨어.”

엽연채는 어리둥절했다.

“강심설?”

“원남옥.”

제민은 하하하 웃더니 엽연채 곁으로 와서 앉았다.

잠시 후, 밖에 있던 발이 걷혔고 원남옥이 부끄러워하며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연채야……. 이건 너희 집에 주는 연말 선물이야.”

쌍환계 머리를 한 여종 한 명이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왔고, 여종의 손엔 무늬 비단으로 싼 선물 상자 세 개가 들려 있었다.

엽연채는 고개를 들더니 헛기침을 하고 그녀를 쏘아보았다.

“원남옥, 너 작정하고 내 올케언니가 되려고 한 거지?”

정곡을 찔린 원남옥은 얼굴이 살짝 경직되더니 멋쩍은 웃음을 지었고, 엽연채는 입꼬리를 실쭉거렸다. 역시나, 원남옥은 엽균에게 시집오려고 수를 썼던 것이다.

원남옥도 사실 꽤 고운 편이었다. 하지만 평민들을 다 포함해야 그렇단 거고, 귀족 소저들 사이에 두면 정말 조금도 눈에 띄지 않았다.

원남옥은 여러 연회에 전부 참석했는데 거기에는 당연히 그녀 말고도 많은 귀족 소저들이 함께 자리했다. 그런데도 엽균에게 그녀의 인상이 남았다는 건 분명 원남옥이 기회를 봐서 고의로 그의 앞에서 얼쩡거렸다는 것이다.

원남옥의 입장에선 엽균이 그녀를 매우 사랑할 필요까진 없었다. 그저 엽균에게 남은 자신의 인상이 나쁘지 않고 그가 자신에게 호감만 있다면 그걸로 되었다.

그녀의 가문은 청렴하고 집안사람들도 다들 분수에 만족할 줄 알았다. 본인도 나이가 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후부의 적녀이고 용모도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엽연채와 친분이 좀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러니 혼담을 꺼내기만 하면 온씨는 괜찮게 생각할 것이고, 그녀가 엽균에게 물어봐 그가 호감이 있다고 하면 이 일은 자연히 성사되는 것이었다. 원남옥은 자신의 꾀가 들통나자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엽연채도 이미 이 혼사에 동의했으니 딱히 불만은 없는 셈이었다.

원남옥은 엽연채 쪽으로 걸어오더니 그녀 옆에 바짝 붙어 앉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연채야… 우리 잘 지내자.”

엽연채는 그녀에게 눈을 흘기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내 변변찮은 오라버니는 배운 것도 없고 재주도 없는 사람이라 일으켜 세울 수 없을 거야. 하지만 지금 보니 또 그렇게 나쁠 것도 없다 싶네. 집안에 아직 재산이 좀 있으니 하는 일 없이도 먹고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거고, 너도 오라버니에게 시집을 오면 평온한 삶은 살 수 있겠지.”

원남옥은 붉어진 얼굴을 끄덕였다.

“알고 있어. 난 그 사람이 너에게 기대 어떻게 되기를 기대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우리 어머니도 내게 좋은 데 시집가 봤자 뭐 하냐고 하셨어. 먹고 입을 걱정만 안 하고 시집 식구들과 잘 지내면 되는 거라고.”

“그랬어? 하지만 우리 어머니가 널 보살펴 주신다며 귀찮게 하실 거야.”

엽연채의 이 말에 원남옥은 얼굴이 더욱 벌겋게 익었다.

엽연채는 원남옥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특별히 뛰어날 것도 없지만 또 특별히 나쁠 것도 없는 적당한 사람이었다. 두 남녀의 여러 조건을 맞춰 보니 수지타산이 맞았고, 또 서로 잘 어울리니 두 사람은 상대의 장점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짝이라 할 수 있었다.

* * *

한편, 엽균과 원남옥이 정혼했다는 소식은 금세 장씨 가문으로도 전해졌다. 맹씨는 엽균이 후부의 적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더니 순간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녀는 엽균 같은 사람은 몰락한 가문의 서녀를 아내로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맹씨는 엽씨 가문 저택이 있는 방향에 대고 포악을 부렸다.

“후부의 적녀는 무슨. 열아홉 먹은 노처녀이지! 전에는 설씨 가문의 서녀였고! 이름을 바꾼다고 고귀해지는 건 아니거든.”

맹씨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른 매파 오씨를 불러 마음에 든 집안에 혼담을 꺼냈다. 맹씨가 마음에 들어 한 사람은 바로 정 황후의 친정인 영국후부의 넷째 공자였다. 그는 본처가 세상을 떠나 후처를 물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 혼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 정씨 가문 사공자는 구덕口德이 없는 사람이었다. 매파가 찾아온 그 이튿날 공연장에 가서 연극을 보던 중에 함부로 입을 나불댔다.

“3품 관리의 적손녀는 무슨! 도성에 널린 게 3품 관리야! 게다가 집안에 어수선한 일들이 있어서 내 사촌 형님인 태자 전하께 퇴짜를 맞은 사람이지! 뭐, 그건 그렇다고 쳐. 그 소저를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 너부데데한 얼굴은 생각도 안 하고 감히 이 몸을 넘보다니!”

이 말에 공연장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너털웃음을 지었다. 장씨 가문은 또다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게 되었고, 장씨 가문 사람들은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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