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8화
매파 오씨가 떠나자 맹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마님, 어, 어디 가시려는 겁니까? 참, 어서 어르신을 찾아가 엽균에게 시집보내는 건 절대 안 된다고 말씀하시지요.”
“아버님? 하하하. 그게 소용이 있을 것 같은가?”
곡씨의 말에 맹씨는 냉소를 터트리더니 이어 싸늘한 목소리로 고함을 쳤다.
“아버님은 다 결정한 다음에 통보하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 아닌가? 가세. 온씨 그 여편네를 보러 가자고. 감히 내 딸을 넘보다니! 제 분수도 모르고!”
맹씨는 외투를 들어 몸에 걸치더니 쿵쿵쿵 발소리를 내며 문을 나섰다.
* * *
그 시각, 추씨 가문.
매파 고씨가 온씨와 함께 방 안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온씨는 상석에 앉아 미소 띤 얼굴로 고씨를 쳐다봤다.
“무슨 바람이 불어 이곳에 왔는가? 명절을 쇤 후에 다시 찾아보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혼처 한 곳이 생겨 이리 왔습니다.”
매파 고씨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게다가 양가가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입니다. 가세와 용모, 품성도 나쁘지 않은데 다만 나이가 좀 있을 뿐입니다. 마님께서 응하신다면 이 혼사는 확정될 수 있습니다.”
“어느 가문 규수인가?”
온씨는 은근히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바로 장씨 가문 대소저인 장만만입니다. 장씨 가문 어르신께서 직접 절 찾아오셔서 부인을 찾아가 혼담을 꺼내 보라고 하셨습니다. 어르신은 진심이셨습니다. 부인께서 부군과 헤어지고 이곳에 혼자 계시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어르신께서 직접 이곳에 오셨을 겁니다.”
“뭐라고 했는가?”
온씨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장만만?”
“예! 장 대소저…….”
그런데 고씨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갑자기 여종들이 소리를 쳤다.
“어? 장씨 가문 부인 아니십니까? 이곳엔 갑자기 어인 일로 오신 겁니까? 하지만 아무리 부인이라고 하셔도 이렇게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저희가 아직 마님께 고하지 못했습니다. 저희도 규율이라는 게 있는데… 마님……!”
“장 부인이 왔다고?”
온씨는 놀라 밖을 두리번거렸다. 정말로 맹씨가 어멈 한 명과 여종 두 명을 데리고 노기등등한 모습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온씨는 제멋대로 남의 집에 들어오는 맹씨의 모습을 보자 미간을 살짝 찌푸렸으나 이내 몸을 일으켜 밖으로 걸어 나갔다. 매파 고씨도 얼른 그녀의 뒤를 따랐다.
걸음을 재촉하던 맹씨는 온씨가 정말로 매파 고씨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더니 순간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맹씨는 외투를 한 손으로 여미며 냉소를 지었다.
“하하! 엽 공자는 재능이 넘치고 도성에서 유명한 사내 아닙니까. 천하의 규수들 중 엽 공자가 원하는 규수를 고르면 될 겁니다. 우리 만만이는 공자에게 어울리는 짝이 못 되니 온 부인이 너그러이 생각해 주시기를 부탁하죠!”
온씨는 어리둥절했고 이어 낯빛이 새파랗게 변했다. 엽균이 전에 한량이었다는 걸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고 해도 배운 것도 없고 재주도 없는 사람이었다.
맹씨의 비아냥거림에 온씨는 부끄럽고 분하기 이를 데 없어 화가 난 목소리로 대꾸했다.
“우리 빙 돌려서 말하지 맙시다. 우린 장만만을 며느리로 들일 생각이 조금도 없으니 장 부인은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세요.”
그러자 맹씨는 냉랭한 목소리로 받아쳤다.
“하하. 그쪽에서 그럴 마음이 없는데 우리 아버님께서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셨단 말입니까? 어떻게 만만이를 부인의 그 무능한 아들에게 시집보낼 생각을 했느냔 말이에요? 여기 있는 매파는 왜 부인의 집에 방문을 했고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매파 고씨를 가리켰다. 매파 고씨가 난감해하며 대답을 고민하는 차에 온씨가 크게 노하여 웃었다.
“하하. 정말 웃기는군요. 지금 매파를 우리 집으로 보내 혼담을 꺼낸 건 장씨 가문입니다! 그쪽 어르신께서 벌인 일이라고요! 부인은 어르신께 묻지 않고 왜 내게 묻는 겁니까? 저야말로 어르신께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신 건지 궁금하네요!”
“이!”
맹씨는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보아하니 지금 이곳에 매파를 보내 혼담을 꺼내게 한 건 분명 장씨 가문이었다. 그래서 도리어 그녀의 여식이 엽균에게 들러붙으려는 것처럼 되어 버렸으니 이보다 더 굴욕적일 수가 없었다.
온씨는 고개를 돌리더니 매파 고씨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가 신경을 써 줬네만 장씨 가문 소저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이 혼사는 아닌 것 같네. 그러니 거절하겠네.”
맹씨는 온씨가 자신 앞에서 매파에게 거절의 말을 건네자 낯빛이 더욱 어두워졌지만, 딱히 할 말은 떠오르지 않아 그저 분통만 터트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돌아가서 장씨 가문 어르신께 그리 전달하겠습니다.”
매파 고씨는 그리 말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녀는 이미 온씨가 이 혼사를 그다지 원치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잘 설득하면 장만만도 괜찮은 신붓감이니 그래도 조금은 희망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맹씨가 와서 훼방을 놓는 바람에 일이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온씨는 고개를 돌려 맹씨를 쳐다보고 쐐기를 박았다.
“장 부인, 이제 마음이 놓이시겠군요! 돌아가서 그 댁 어르신께 우리 아들은 부인의 여식에게는 어울리는 짝이 아니라고 잘 말씀드려 주세요. 더는 매파를 저희 집으로 보내지 말라고도 이야기해 주시고요.”
“이……!”
맹씨는 부끄럽고 분해 빽 소리를 내질렀지만, 더 머무를 면목도 할 말도 없었다. 그에 장씨 가문으로 급히 돌아온 그녀는 곧장 장찬의 서재로 향했다.
한편, 장만만은 집에서 맹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함께 장부를 기록하기로 했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외출한 것이었다. 그때 여종이 와서 장만만에게 아뢰었다.
“마님께서 돌아오셨는데 바로 어르신의 서재로 향하셨습니다.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이셨어요.”
장만만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얼른 그쪽으로 달려갔다. 문 입구에 도착한 그녀는 서재 안에서 맹씨가 고함을 치는 소리를 들었다.
“아버님! 어떻게 이런 일을 하실 수가 있습니까? 엽균은 절름발이입니다. 그런데 만만이를 그자에게 시집보내려고 하시다니요. 이건 만만이를 불구덩이에 밀어 넣는 것 아닙니까?”
장만만은 이 이야기를 듣더니 낯빛이 확 변했다.
‘날 엽균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다고?’
그녀가 서재 안으로 걸음을 재촉해 보니 장찬은 어두운 얼굴로 배나무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맹씨는 금방이라도 미쳐 버릴 것처럼 흥분한 상태였다.
“그 입 다물거라! 네가 뭘 아느냐!”
장찬이 성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제가 모른다고요? 하, 전 아버님께서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다 알고 있습니다!”
맹씨는 머리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더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장찬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전부터 집안일은 전부 장찬이 결정했고 가족들은 전부 그의 말에 따라야 했으며 아무도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많은 일들에 있어서 맹씨는 원치 않았음에도 종국에는 장찬의 뜻에 따라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 그녀의 아들은 폐인이 되었고 딸도 곤란한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시집만 잘 가면 이 고난을 헤쳐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장찬이 그녀의 딸을 무능한 사내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강한 법. 자신은 죽어도 이 혼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맹씨는 원망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님은 지금 그저 주운환이 진서후가 된 걸 보고는 위로 올라가고 싶어서 만만이를 엽균에게 시집보내고 싶으신 거잖아요. 그리해서 엽연채와 주운환에게 잘 보여 아버님의 앞날을 도모하시려는 거죠.”
“네가 감히!”
장찬은 화가 나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뭘요? 정말로 앞날을 도모하고 싶으시다 해도 만만이를 무능한 자에게 시집보낼 필요가 있습니까?”
맹씨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밖에 재능이 뛰어난 청년들이 널려 있습니다.”
“재능이 뛰어난 청년들이 널려 있다고?”
장찬은 기가 막혀 숨을 훅 내뱉더니 이렇게 말했다.
“네가 고른 그 빛 좋은 개살구들 말이냐? 지금 만만이의 평판과 우리 가문의 평판이 어떤지는 생각도 안 하는 것이냐! 만만이는 나이가 적지 않다. 열아홉 살 노처녀란 말이다!
나이가 많은 건 그렇다 쳐도 전에 황실에서 퇴짜를 놓는 바람에 사람들이 만만이의 행실에 문제가 있다고 비웃고 있다. 그게 아니면 우리 장씨 가문을 콩가루 집안이라고 비웃고 있는데 이게 다 누구 때문이냐? 이게 다 박원이 그 고얀 놈 때문이다!”
장박원이 언급되자 맹씨는 표정이 굳어졌다.
“그렇다고 해도 만만이를 엽균에게 시집보낼 필요는 없습니다! 세상에 사내가 다 죽었답니까? 그 엽균을 한번 보세요. 그자는 장래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인간입니다. 주운환이 도와줄 마음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배운 것도 없고 재주도 없는 무쓸모한 인간이고 절름발이에요! 평생 빛을 보는 날은 없을 거란 말입니다.”
“그 입 다물래도!”
장찬은 노여움에 낯빛이 더더욱 어두워졌다.
“제가 왜 입을 다물어야 합니까? 만만이는 제 친딸입니다. 그 누구도 그 아이를 짓밟을 수는 없습니다! 주운환이 잘나간다 해 봤자 그저 후야에 불과한데, 무능한 절름발이를 어찌 일으켜 세울 수 있겠습니까? 아버님은 주운환이 황제라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그 무능한 작자가 죽어도 마음에 안 듭니다! 엽균이 만만이에게 어울리는 구석이 어디 있습니까?”
맹씨는 주눅 들기는커녕 한층 더 분노와 원망을 불태우는 모습이었다.
“아버님께서 기어코 주운환과 관계를 맺으시려고 한다면 차라리 만만이를 주운환의 평처나 첩실로 시집보내겠습니다! 전 엽균 그 무능한 자를 사위로 원치 않습니다.”
장찬은 화가 나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이런 고얀 것! 이 장찬의 친손녀를 어찌 남의 첩실로 보낼 수 있단 말이냐?”
이건 자신의 체면을 있는 대로 깎는 행동 아니겠는가? 그리하면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조정에 발을 붙일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겠는가 이 말이다! 후야에게 아부하기 위해 적출인 자신의 친손녀를 남의 첩실로 보냈다고 흉을 볼 것이었다.
“만만이가 주운환에게 시집가 이낭이 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그런데 어떻게 만만이가 추문으로 가득하고 몰락한 엽씨 가문에 시집가는 것은 괜찮다고 여기십니까? 그거야말로 창피하기 이를 데 없는 일입니다! 만만이가 배운 것도 없고 재능도 없는 무능한 절름발이에게 시집가는 게 얼마나 창피한 일인지 정녕 모르십니까!”
“네가 뭘 안다고! 엽균이 전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개과천선했다. 우린 친척이고 만만이의 나이도 적지 않다. 엽균이 배운 것도 없고 재주도 없기는 하나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는 아니니 엽균에게 시집가 평범하게 생활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안 됩니다! 꿈도 꾸지 마십쇼.”
맹씨는 죽어도 엽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딸이 정말로 억울하게 엽균에게 강가하게 된다면 자신 역시 온씨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그녀는 이 수모를 참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