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560화 (560/858)

제560화

엽연채를 보호해 도성으로 바래다주는 사람들도 소전과 엽연채의 대화를 듣더니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시끌벅적했던 분위기도 조금 어색해졌다.

이에 외부와 차단된 마차 안의 분위기도 한층 경직되었다. 엽연채는 무표정한 얼굴로 마차 안에 기대어 앉아 있었으나 혜연과 청유의 얼굴엔 긴장한 기색이 보였다. 그들 또한 바깥의 분위기를 느꼈으니 말이다.

여하를 막론하고 지금 엽연채가 속 좁게 비치고 있는 건 틀림없었다. 하지만 소전의 말에 응해 그 노교아라는 낭자를 보러 가게 되면 상대의 기세를 높이고 엽연채의 위세를 꺾는다는 느낌이 들기에 그리하자고 할 수도 없었다.

제민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사내들을 욕했다.

“고얀 것들.”

그러고는 엽연채를 쳐다보며 다독였다.

“신경 쓰지 말자. 저런 비루한 것들은 다 저래. 내가 저런 자들을 많이 봤거든.”

그녀가 한창 내기 바둑을 하던 시절, 상대한 사람들은 대부분 사내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하는 일 없이 거리에 나와 바둑이나 두며 노는 한가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치들은 온갖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했는데, 입만 열었다 하면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고 하면서도 기녀들의 살결이 얼마나 부드럽고 매끄러운지로 이야기를 마쳤다.

하지만 암만 많이 들어봤다고 해도 제민은 여전히 이런 내용이 혐오스럽게만 느껴졌다.

엽연채는 제민에게 별 대꾸를 하지 않고 그저 이불을 끌어안더니 마차 구석에 몸을 한층 웅크렸다.

“자야겠어.”

“네, 주무세요.”

혜연은 얼른 비단 이불을 끌어당겨 그녀에게 덮어 줬다.

엽연채 일행은 계속 이런 분위기 속에서 도성으로 향했다.

* * *

닷새가 지나 마침내 일행은 도성에 도착했고, 엽연채는 익숙한 운연거 안으로 들어서자 자신이 살아 돌아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추길과 매화 등은 엽연채가 돌아온 걸 보더니 전부 재잘거리며 밖으로 뛰어나왔다.

“마님! 돌아오셨군요.”

여종들이 엽연채와 제민을 둘러싸고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왜 이렇게 마르셨지?”

“그러게요. 마르셨어요.”

추길의 말에 소월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으, 피곤하다. 난 방으로 돌아가 쉬어야겠구나.”

엽연채는 그리 말하며 정원을 지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탑상 위에 비스듬히 기댔고 여종들은 전부 안으로 들어왔다.

추길이 말했다.

“마님, 왜 이렇게 오래 있다가 오셨어요?”

“그러게 말이에요.”

매화도 맞장구를 치며 온씨 이야기를 꺼냈다.

“자당께서 그간 몇 번 오셨는데 헛걸음만 치셨지 뭐예요.”

“알겠다, 알겠어. 여정이 길어 피곤하니 여기서 이렇게 둘러싸고 있지 말고 다들 나가 보거라!”

제민은 성가심을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를 냈다. 추길과 매화 등은 말문이 막혔고 기분이 조금 언짢았다. 자신들은 그저 엽연채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기운도 없어 보이고 살이 밭았으니 관심을 가진 것뿐이었다.

공기를 읽은 혜연이 각자에게 할 일을 분배했다.

“현주의 말씀이 맞아. 매화야, 마님과 현주께서 목욕하시게 뜨거운 물을 준비하렴. 소월이 넌 주방에 가서 먹을 것을 준비하라고 하고.”

매화와 소월은 얼른 대답하고 밖으로 나갔지만, 추길은 자리에 남아 재차 물었다.

“마님,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혜연은 이 일을 숨길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평해와 소전 등 수십 명이 그녀가 수주에 갔던 걸 알고 있고 이는 기밀도 아니니 말이 나오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마님은… 법화사에 가셨던 게 아냐. 나리를 찾으러 수주에 가셨어.”

추길은 깜짝 놀랐고 이내 용납할 수 없단 식으로 분해했다.

“마님이 나리를 찾으러 가신 걸 왜 나한테도 숨긴 거야?”

그리 말하는 그녀는 코가 다 시큰거렸고, 너무도 억울해 청유를 쳐다봤다.

자신과 혜연이 엽연채를 바로 곁에서 모시는 일등 여종 아닌가. 그런데 수주에 가는 이런 큰일에 자신이 아니라 청유를 데려갔던 것이다. 거기다 숨기기까지 했다. 추길은 당연히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그게… 제가 마침 수주 사람이라 저를 데려가셨던 거예요.”

난처해진 청유는 얼른 변명을 했고 혜연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추길을 달랬다.

“그때 비둘기 한 마리를 쏘아 떨어뜨렸고 서신에 뭔가가 적혀 있었잖아. 마님은 나리께 곤란한 일이 생긴 거라고 생각하셨는데 확신할 수는 없었어. 어쩌면 틀렸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을 놓으실 수 있었겠어? 그래서 길을 떠나셨던 거야. 집안에 주인이 없는 상황이 되는데 너마저 따라가 버리면 집은 누가 봐?”

추길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억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날 속일 필요는 없었잖아……. 사실대로 말해 줬으면 되지.”

“사실을 알려 줬다면 네가 집에 남아 있으려고 했겠어?”

혜연은 그녀를 쏘아봤다.

그러자 추길의 마음속엔 ‘물론 그러지 않았겠지!’라는 말만 남았다. 주운환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그녀도 무척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마음속에 품고 있는 일이 있으니 추길은 감히 더 추궁을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기분은 계속 언짢았고 엽연채가 자신을 경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추길은 별다른 말은 더 하지 않았다. 보니 엽연채는 살이 쪽 빠졌고 기력도 없어 보였다. 엽연채가 무슨 일을 겪었던 건지 알지 못하는 그녀는 다만 침실로 가서 엽연채가 집 안에서 입는 옷가지를 준비했다.

잠시 후, 따뜻한 물이 준비되었고 엽연채와 제민은 목욕을 하고 식사를 한 뒤 응접실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한편, 운연거를 나온 추길은 평해를 찾아가 술값을 쥐여 주며 엽연채가 수주에 갔던 일을 물어봤다.

평해는 이런 일은 말해도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눈이 지켜보고 있었으니 숨길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는 엽연채가 어떻게 수주에 갔고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뜬금없이 노교아라는 낭자가 나타난 일까지 전부 이야기해 줬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였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농담을 좀 했는데 마님께서 언짢아하시더라고.”

추길은 노교아라는 여인이 튀어나왔고 주운환의 생명의 은인이며 살을 맞대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짜증이 났지만 기쁘기도 했다. 그런데 평해가 마지막에 엽연채가 농담에도 언짢은 기색을 보였다고 하자 그녀는 또 마음이 괴롭고 답답했다.

이 일을 물어본 사람은 추길뿐만이 아니었다. 소월과 매화도 호기심에 물어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사람이 이 일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저녁이 되었지만, 제민은 집으로 가지 않고 밖에 있는 객원客院에 가서 휴식을 취했다.

해시亥時(밤 9시~11시)의 절반이 흐르자 진서후부는 조용해졌다.

하인들은 모두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고 야경을 도는 일부 어멈들만 정원에 남아 있었다.

그 시각, 엽연채는 구리 거울 앞에 앉아 있었고 추길은 그녀의 머리를 풀어 주고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거울을 쳐다보니 엽연채는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추길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뜨끔했고 걱정이 됐지만 감히 뭐라고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추길이 밖으로 나간 뒤 엽연채는 새의 깃털로 만든 진홍색 겉옷을 벗고 바로 침상 위로 올라가 잠이 들었다. 그러자 혜연은 그 겉옷을 병풍 위에 건 다음, 등불을 끄고 건넌방으로 넘어가 탑상에 누웠다.

침실 안엔 어둠이 깔렸다. 때는 음력 섣달 한겨울, 밖에는 눈도 내리지 않았고 벌레나 새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사람의 소리는 더더욱 들리지 않았다. 너무 고요하고 휑하니 무서운 느낌마저 들었다.

엽연채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침실에서 계속해서 뒤척이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소리는 축시丑時(오전 1시~3시)가 되어서도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혜연은 갓등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님.”

그녀는 엽연채를 부르며 얇은 사紗로 만든 침상의 발을 걷어 올렸다. 엽연채는 몸을 옆으로 돌려 웅그린 채 누워 있었고 검은 머리칼은 베개 위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으며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엽연채는 혜연이 부르자 눈을 떴고 혜연은 갓등을 내려놓고는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한밤중인데, 잠이 안 오셔요?”

엽연채는 혜연에게 의지해 자리에 앉았는데, 그녀의 작다란 얼굴은 창백하며 지쳐 보였다. 그녀는 숨을 훅 내쉬더니 이렇게 말했다.

“정신이 너무 또렷해 잠이 오지 않는구나…….”

머릿속의 모든 신경이 곤두선 듯한 느낌이었고 눈만 감았다 하면 동우산의 모습과 노교아가 주운환을 안고 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 일을 너무 생각하지 말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사고는 통제가 되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었다. 그 탓에 너무도 피곤했지만 잠은 조금도 오지 않았다.

혜연은 그녀가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알기에 얼른 이렇게 말했다.

“마님, 생각을 너무 깊게 하지 마세요. 나리께서 더는 그 낭자를 만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감사 인사조차 하인들을 보내셨잖아요. 그러니 마음 푹 놓으세요!”

하지만 엽연채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말했다.

“노씨 낭자가 없어도 조씨 낭자, 전씨 낭자, 이씨 낭자가 생길 게다…….”

이번 수주행을 통해 엽연채는 현실과 제대로 맞닥뜨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두 눈을 번쩍 떠야만 했고 그동안 회피해 왔던 사실에 직면해야만 했다. 그건 바로 주운환이 첩실을 들이는 문제였다.

혜연은 옅은 한숨을 쉬더니 이렇게 말했다.

“지금 그 문제를 생각하셔 봤자 아무 소용 없습니다. 정 잠이 안 오시면 차라리 일어나서 화본을 보는 건 어떠세요?”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응접실에 가서 엽연채의 화본을 꺼내 왔고 다시 후조방으로 가서 추길을 깨워 주방에 가서 먹을 것을 좀 만들라고 했다.

엽연채는 화본을 들고 있었지만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 후, 추길은 교자 한 그릇을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엽연채는 한 입을 먹자마자 던지듯이 수저를 내려놓고는 가슴을 움켜잡고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혜연과 추길은 깜짝 놀랐고 혜연은 얼른 그녀의 등을 살살 쓸어내렸다.

“마님, 왜 그러세요?”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추길을 노려보며 탓했다.

“너 음식을 어떻게 만든 거야?”

“내가 뭘……?”

추길은 어리둥절해하더니 억울한 목소리로 항변했다.

“내가 뭘 어쨌다는 거야? 이건 교 마마가 어제저녁에 새로 빚은 교자야. 내일 아침 식사로 쓸 거였다고. 주방에 놔두긴 했지만 한겨울이니 상하는 건 불가능해.”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보니 엽연채는 가슴팍을 부여잡은 채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추길은 얼른 교자 하나를 떠서 먹어 봤지만 아무 문제도 없었고 맛있기만 했다. 그러다 추길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는지 얼굴에 희색을 띠며 말했다.

“마님이 드시게 국수를 다시 해 올게.”

추길은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가더니 얼마 후, 담백하고 뜨끈뜨끈한 고기 국수 한 그릇과 나복고蘿蔔糕(무채 등을 넣고 찐 떡) 한 접시를 가져왔다.

“웁. 치우거라……!”

엽연채는 나복고의 냄새를 맡았을 뿐인데 또다시 헛구역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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