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558화 (558/858)

제558화

사실 마 지부가 오기 전에 주운환은 이미 병사들에게 꿩을 잡게 해 함께 식사를 마친 상태였다.

주운환은 병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체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간도 있고 사냥감도 있는 상황에서 자기 병사들을 배곯게 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쉬지 않고 아첨하는 마 지부의 행동에 주운환은 의심이 들어 그러자고 동의해 주었다.

그에 마 지부는 사람들을 시켜 사냥을 했는데 사냥 시간 또한 너무 짧았다. 주운환의 정예병들보다 마 지부가 데려온 얼치기 포졸들이 사냥감을 빨리 포획했다. 그러니 아무리 봐도 수상했다. 어떠한 까닭에서 사냥감들을 미리 준비해 놓았을 가능성이 컸다.

의심이 깊어지는 찰나, 주운환은 그 약초를 채집하던 소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떤 약초를 불에 태운 연기를 쐬면 뱀을 꼬이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주운환은 마 지부가 꿍꿍이수작을 부리고 있으며 뱀으로 자신들을 공격하려 한다는 걸 눈치챘다. 이에 몰래 사람을 시켜 그 소녀에게서 얻은 월견초를 주씨 가문 군사들에게 나눠 줬다.

이후, 주씨 가문 군사들은 포졸들과 섞여서 함께 조를 이루어 산에 올랐다. 그럼으로써 마 지부에게 의심을 사는 것을 피했다. 왜냐하면 뱀은 정말로 사람을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공격의 대상이 포졸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원래 주운환은 죽은 척 위장해 마 지부가 그 비적 떼를 끌고 나오게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호랑이가 튀어나와 그의 계획을 망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호랑이의 습격에 당한 상처에서 피가 멈추지 않았다. 동면에서 깬 적명사들은 원래는 해독약 때문에 주운환을 공격하지 않았는데 피 냄새를 맡더니 그를 물어 버렸다.

절체절명의 순간, 뜻밖에도 약초를 채집하는 소녀 노교아가 되돌아와서 그와 여한을 구해 줬다.

중독된 주운환은 상처를 치료해야 했고, 주씨 가문 병사들에게는 계속 바닥에 누워 죽은 체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비적 떼가 나타나 마 지부와 함께 행동하는 모습을 목격한 다음에 일망타진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여한은 사건의 전말을 엽연채에게 전부 이야기해 준 뒤 돌아서서 그곳을 떠났다.

엽연채는 긴 나무 걸상에 웅크리고 앉아 뒤쪽에 세워진 붉은 칠을 한 기둥에 몸을 기대었다. 그녀는 기다란 속눈썹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손에 든 손난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혜연은 풀 죽은 엽연채의 모습을 보고는 무어라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막상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들 중 단 한마디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그저 조용히 서서 그 곁을 지켰다.

그런데 이때,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엽연채가 조그만 머리를 밖으로 내밀어 보니, 천사금天絲錦으로 만든 소매가 넓고 옷단에 끈 모양의 장식을 덧댄 검은색 옷을 입은 한 사내가 보였다.

그는 털 장식이 달린 은회색 소매 없는 피풍을 걸치고 있어 설경을 몸에 걸친 듯 중후하고 존귀한 느낌이 들었으며, 동시에 눈부시게 화려한 외모를 뽐내고 있었다. 바로 주운환이었다.

엽연채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돌려 얼른 기둥 쪽으로 몸을 숨겼다.

한편, 주운환은 걸어오다가 기둥 뒤에서 반쯤 내민 새하얀 얼굴과 진홍색 옷자락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녀가 저를 보더니 도리어 숨어 버리는 게 아닌가.

주운환이 의아한 마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보니, 엽연채는 붉은 기둥과 기다란 나무 걸상 사이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손엔 손난로를 쥐고 있었다. 이 각도에서 내려다보니 그녀는 머리를 숙인 채 깃털부채 같은 기다란 속눈썹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 아래, 보드라워 보이는 앵둣빛 입술을 힐끔한 주운환은 마음이 포실해졌다. 그는 엽연채 곁에 앉더니 그녀를 끌어안으며 물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습니까?”

엽연채는 그가 갑자기 자신을 그러안자 모든 감각 기관이 싱그럽고 은은한 그의 숨결에 휩싸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순간적으로 콧날이 시큰거렸지만 여전히 고개를 떨군 채 입을 삐죽거렸다.

“햇살을 쬐고 있었어요.”

“안 됩니다. 지금은 안에서 쉬어야 합니다.”

주운환은 아래턱을 그녀의 정수리에 대나 싶더니 이내 고개를 숙여 코로 그녀의 정수리를 비비적댔다.

“싫어요. 볕을 더 쐴 거예요.”

싫다고 거부했지만, 작은 목소리에는 애교가 섞여 있었다.

“왜 싫습니까? 같이 돌아가지요. 내가 안아 주겠습니다.”

그는 그리 말하며 그녀를 확 안아 들었고 엽연채는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뭐, 뭐 하는 거예요? 상처를 입었는데……!”

주운환은 부상을 입었다. 그날 그는 온몸이 피범벅이었고 몇 번이나 졸도하기까지 했다. 낯빛 역시 너무나 창백해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 몸으로 외출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안아 들기까지 하다니, 상처에 영향이라도 준다면 어찌한단 말인가?

엽연채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런데 한순간 이렇게 함부로 움직이면 도리어 그의 상처가 더 심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뜩 들면서 하는 수 없이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았다.

주운환은 얌전해진 그녀의 모습을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고, 그대로 그녀를 품에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주운환은 엽연채를 부드러운 침상 위에 내려놓은 후 손을 뻗어 그녀의 신발을 벗겨 주려고 했다. 그러자 엽연채는 끝내 화를 내며 그를 쏘아봤다.

“다쳤으면서 왜 자꾸 무리해요!”

“별것 아닙니다. 보기에만 심하지 그냥 좀 긁힌 것뿐이지요. 그날 몸이 쇠약했던 건 뱀독 때문이었습니다.”

실지로는 어깨의 상처가 정말로 아팠지만, 주운환은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축 처진 그녀가 안쓰러워 기분이 좋아지게 해 주고 싶었으니까.

주운환은 고집을 꺾지 않고 침상 옆에 앉아 그녀의 신발을 벗겼다. 그러자 하얗고 보드라운 작은 발이 드러났는데, 발가락마다 찰과상을 입은 상태였다.

주운환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아리다 못해 조금 언짢아졌다.

“왜 침상에서 내려온 겁니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서 몸조리에 신경을 쓰는 게 좋겠습니다.”

그는 그리 당부하며 창문 아래에 놓인 탁자로 걸어갔다. 그곳엔 정교한 작은 바구니가 놓여 있었는데, 상처에 바르는 여러 가지 약을 담아 둔 것이었다. 그는 이내 침상으로 돌아와 걸터앉더니 그녀의 발을 잡고 발가락마다 연고를 발라 줬다.

상처에 연고가 닿자 화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졌고 엽연채는 아파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주운환은 한쪽 발에 연고를 다 바른 후 다른 발로 바꾸려고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그녀가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술을 물고서는 소리를 꾹 참고 있는 게 아닌가.

“부인?”

주운환이 당황해하자 엽연채는 앵두 같은 입술에서 이를 떼더니 고개 숙여 사과했다.

“미안해요. 부군에게 폐를 끼쳤어요.”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깜짝 놀란 주운환은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조그만 얼굴을 감싸며 날카로운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하지만 엽연채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재차 사과했다.

“미안해요. 이곳에 오면 안 되는 거였어요. 부군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더 크게 다치게만 했네요. 제가 부군의 발목을 잡았어요…….”

그녀는 스스로를 주체할 수 없는 듯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주운환이 위험하다는 걸 처음 알게 됐을 때, 엽연채는 무섭고 당황스러웠고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저 소식을 하루빨리 그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수주에 도착하여 소식을 전했지만 감감무소식이었고, 그 상황에서 주위의 주씨 가문 병사들과 포졸들이 움직이며 내는 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가 주운환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해 주는 것만 같았다.

더없이 초조해진 엽연채는 주운환이 살았든 죽었든 어떻게든 그를 찾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포졸로 변장해 동우산으로 향했고, 그다음에는 책략을 써서 여 비장이 마 지부를 배반하도록 그를 속였고 자신을 도와 주운환을 찾도록 했다.

하지만 그녀 스스로 아주 용감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이 일은 사실 불필요한 것이었다. 애당초 이 판에서 자신은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주운환은 모든 걸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자신이 그를 구할 필요가 없었다. 그를 구한 사람은 따로 있었고 모든 건 그렇게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일련의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는 불필요했을뿐더러 도리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 결과, 그의 부상을 더욱 악화시켰을 뿐이다.

엽연채는 자신이 원망스럽고 미워서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때, 주운환이 살포시 그녀를 자신의 품에 끌어안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어떻게 민폐일 수가 있습니까? 부인을 봐서 난 무척 기뻤습니다.”

그리 말하며 엽연채의 조그만 얼굴을 어루만지더니 고개를 숙여 거볍게 입맞춤을 했다.

“나도 부인이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당장 부인을 찾으러 왔을 겁니다. 그리고 부인은 날 크게 도왔습니다. 아주 똑똑하고 대단하고 용감하게 말입니다. 여 비장이 배신해 마 지부가 일을 꾸몄다고 지목했으니, 도성 쪽에서도 바로 마 지부를 정죄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여 비장이 배신하지 않았다면 내가 그자들을 전부 체포해서 도성으로 보냈다 해도 증거가 부족했을 테니, 내가 권세로 그자들을 억압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건 피할 수 없었을 테지요. 그럼 그들의 행위를 입증할 만한 더 많은 증거를 찾아야 했겠죠. 그러니 부인은 날 많이 도와준 겁니다.”

“하지만 부군은… 마 지부가 산에 오르고… 비적 떼가 나타나 그자와 함께 행동하면 마무리 작전을 펼칠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엽연채의 명령에 따라 마 지부는 묶인 채 산 아래에 머물러야 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 비장은 원래 마 지부와 한패였지요. 비적 떼는 여 비장을 보고는 밖으로 나와 그자와 함께 행동하려고 했습니다.”

주운환은 엽연채의 얼굴을 감싸 쥔 채 그녀를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게다가… 처음부터 내가 잘못했습니다. 다 내가 잘못한 겁니다! 도성의 정세가 급변해서 이상한 낌새를 보이는데 양왕 전하는 도성을 떠나셨고, 부인만 혼자 도성에 남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비적들이 한창 기승을 부리며 매일 장소를 옮겼고 백성들에게도 화를 입혔습니다.

그래서 부인에게 서신을 보낼 수가 없었지요. 서신을 보냈다면 오로지 ‘부인이 언제쯤 회신을 줄까.’ 하는 생각만 했을 테니까 말입니다. 적을 상대하는 데 전념할 수 없었겠죠.”

“그래도, 앞으로 타지에 있을 땐 서신을 보내 주세요……. 내가 회신하지 않으면 되잖아요. 그럼 부군은 답장을 기다릴 필요가 없고요.”

“그리하겠습니다.”

엽연채의 부탁에 주운환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미안합니다. 내가 부인을 걱정시켰군요. 울지 마십시오, 부인. 귀여운 우리 연채……. 내겐 부인이 최고입니다.”

그는 코를 비비적거리더니 또 그녀에게 입맞춤을 했다.

“알겠어요…….”

엽연채는 그가 따뜻하게 안아 주자 결국 울음을 멈추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그의 품으로 파고들어 얼굴을 그의 목덜미에 비스듬히 기대었다.

주운환은 그녀의 등을 톡톡 두드리며 작은 목소리로 그녀를 다독였다. 너무도 피곤했던 엽연채는 주운환과 끌어안은 채 그렇게 침상에서 잠시간 꼬물거리다 곧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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