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553화 (553/858)

제553화

주운환은 헤헤 웃는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꿩고기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커다란 꿩다리를 쫙 찢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지부도 드시오.”

“아. 그럼 잘 먹겠습니다.”

마 지부는 뜻밖에 과분한 대우를 받은 데 기뻐하며 고기를 뜯기 시작했다. 어찌나 맛있게 먹어 치우는지 모르는 사람은 그가 산해진미라도 즐긴다고 여길 듯했다.

“정말 맛있습니다! 40년간 살면서 이렇게 맛있는 꿩은 처음입니다, 헤헤헤.”

여한은 그가 입만 열었다 하면 과장되게 아첨을 하자 흰자위를 번득이며 눈을 부라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 지부는 꿩의 뼈만 남기고 전부 다 먹음으로써 주운환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음식을 다 먹은 주운환은 손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몸에 걸친 갑옷에서 차르랑차르랑하는 쇳소리가 났다.

“다 먹었으니 출발하자.”

그는 그리 말하며 고개를 돌려 마 지부를 쳐다봤다.

“포졸들이 대부분 현지인이니 5인 1조로 편성하겠소. 포졸들과 우리 병사들이 섞여서 전진할 것이오.”

“예.”

마 지부는 얼른 대답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말을 타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고, 부하들은 주씨 가문 병사 세 명과 포졸 두 명이 한 조씩 이루어 흩어졌다.

마 지부와 그 곁의 포졸 둘은 주운환과 여한의 뒤를 따라 함께 산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길이 너무 가파르고 숲도 너무 울창했다. 게다가 초목과 쌓인 눈에 오솔길마저 가려져 있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마 지부와 두 포졸은 숨을 헐떡거렸고, 특히 마 지부는 퉁퉁한 몸집 때문에 길을 헤치고 나아가기가 몹시 힘들었다.

“아이고……. 후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소관이…….”

주운환은 고개를 돌리더니 냉랭한 눈빛을 보냈다.

“정 안 되겠으면 지부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으시오! 아니면 누굴 불러 산 아래까지 바래다 달라고 하시오.”

말을 마친 그는 여한과 함께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나아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거진 숲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대인, 어서 내려가시지요!”

마 지부 옆에 있던 한 포졸이 말했다.

“기다려라. 서두를 것 없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알랑거리는 미소를 짓고 있던 마 지부가 갑자기 정색을 했다. 우둔해 보이던 작은 두 눈도 돌연 교활한 눈빛을 보이더니 싸늘하게 번뜩였다.

“우리에겐 해독제가 있으니 두려워할 것 없다. 잠시 후 저자가 이곳에서 비명횡사하는 꼴을 내 눈으로 직접 봐야 안심할 수 있을 게다.”

“역시 대인은 현명하십니다!”

포졸은 미소를 지으며 마 지부를 추어올렸고, 마 지부는 허허하더니 간교해 보이는 눈으로 주운환이 떠난 방향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입꼬리를 당겼다.

“역시 애송이구나! 하기야 내가 걸어온 길이 네가 걸어온 길보다 훨씬 길다. 너는 전장에서 사람들을 때려죽이는 거나 할 수 있지, 다른 사람의 음모는 방비하지 못한다. 그러니 아무리 용맹스러우면 뭐 하느냐.”

“대인, 슬슬 저들의 뒤를 쫓으시지요. 그러다가 들키게 되면 하산하기 싫다고 둘러대면 그만입니다.”

포졸의 말에 마 지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숨을 훅 내쉬었다. 이 험준한 설산을 오르려니 보통 고역이 아니었지만 앞날을 위해 참고 견뎌야 했다.

이틀 전, 마 지부는 도성에서 보낸 밀서를 받았는데, 거기에는 주운환을 암살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원래 밀서는 전서구를 이용해 전달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서신을 보낸 도성 사람은 전서구를 날려 보낸 후, 이 외에도 마 지부에게 분부할 일이 있다며 자기 측근에게 직접 가서 어떤 물건을 전달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 전서구의 행방이 묘연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행히도 전서구에게 단 서신은 간결하게 썼기 때문에 설령 누군가 그 전서구를 붙잡았더라도 내용을 알아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또 마침 도성에서는 다른 일 때문에 사람을 파견해 마 지부에게 통지를 했고, 사람이 직접 찾아오지 않았다면 마 지부는 이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도성에서 이렇게 연락을 받지 않았다면 마 지부는 주운환과 맞서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밀서를 전한 자는 비적 떼 쪽과 이미 이야기가 됐으니 마 지부에게 그들과 힘을 합쳐 주운환을 죽이라고 했다.

그런 뒤 비적 떼를 섬멸하고 황광수를 처치하면 공은 전부 마 지부의 것이 되니, 그때 도성 쪽에서 함께 움직이면 그는 반드시 위로 오를 수 있다고 설득했다.

벼락출세를 꿈꾸는 마 지부는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며 눈빛을 번뜩였다.

동우산에는 널린 게 뱀과 곤충, 쥐와 개미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전신이 까맣고 반짝이며 뱃가죽이 불그스름한 뱀이 있는데 수주 사람들은 모두 이 뱀을 ‘적명사赤冥蛇’라고 불렀다. 이 뱀은 강한 독을 가졌는데, 물리면 즉사할 정도의 맹독이었다.

음력 섣달 추운 날씨에는 뱀들이 모두 동면하고 있지만 벽락초碧落草를 쓰면 적명사의 잠을 깨우고 녀석을 유인할 수 있었다.

방금 전 마 지부가 사람들을 시켜 사냥을 하고 사냥감을 구워 먹자고 했던 건 사실 몰래 벽락초를 마른 나뭇가지 안에 넣어 나뭇가지가 탈 때 연기가 주운환 일행의 몸에 묻게 하기 위함이었다. 벽락초의 향은 어떤 수를 써도 사흘 안에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은 그 향을 맡을 수 없지만 적명사는 그 향을 맡을 수 있었다. 마 지부 등은 해독제를 몸에 지니고 있으니 적명사는 그 냄새를 맡고 그들은 비켜 갈 것이었다.

이제 적명사가 벽락초의 냄새를 맡고 잠에서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면 됐다. 적명사가 공격하면 주운환은 이곳에서 비명횡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자!”

마 지부는 그리 말하고는 두 포졸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이때, 근처의 주씨 가문 병사들 몇 명과 포졸이 갑자기 큰 소리를 냈다.

“어……! 이게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가 났어요?”

“안 들렸어요? 전 들었어요. ‘사사삭’ 하고 뱀이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났어요.”

“착각이겠죠. 이 시기에는 뱀이 전부 동면에 들잖아요. 어서 비적들이나 찾읍시다.”

마 지부와 그를 수행하는 두 포졸은 사람 키만 한 풀이 자라나 있는 덤불 속에 숨어 두 눈을 살짝 깜빡였다.

“으악……! 대인!”

그런데 갑자기 마 지부 곁의 한 포졸이 왁 비명을 지르며 그를 쳤다. 마 지부는 고개를 돌리더니 역시 깜짝 놀라 숨을 헉하고 들이켰다. 온몸이 새까만 뱀 한 마리가 수풀 속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는데, 그 뱀은 마 지부를 향해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

마 지부는 온몸의 솜털이 삐죽삐죽 솟는 듯한 느낌에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는데, 뱀은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마 지부와 포졸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훅 내쉬었고 가슴팍을 두드리며 말했다.

“이 해독제 정말 신통하네.”

이때, 먼 곳에서 깜짝 놀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뱀이다!”

“어떻게 뱀이 있을 수 있지? 지금은 음력 섣달이잖아! 이 시기에 뱀이 튀어나오다니!”

그들은 그리 말하며 철컥 칼을 뽑더니 단칼에 뱀을 두 동강 냈다.

“또 있어요!”

그런데 방금 막 한 마리를 베었는데 근처에서 또 네다섯 마리가 기어 나오더니 사람들을 향해 냅다 달려들었다.

그때, 더 먼 곳에서도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끄아악!”

이어 사람들은 쿵쿵 소리를 내며 땅에 쓰러지더니 경련을 일으켰다.

마 지부와 두 포졸은 이 소리를 듣고 있자니 흥분이 밀려왔다.

“가자. 어서 진서후를 찾아 상태가 어떠한지 보자꾸나.”

마 지부는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세 사람은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걷다 보니 그들의 눈앞에 사람 키만 한 높이의 나무들이 일렬로 자라난 곳이 나타났다. 마 지부가 얼핏 보니 앞에 사람 형체가 둘 보였다. 바로 주운환과 여한이었다.

마 지부는 얼른 눈앞의 나뭇가지를 헤쳤는데, 이때 여한이 갑자기 새되게 소리쳤다.

“나리, 뱀이 있어요!”

주운환은 날카로운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허리춤에 차고 있던 청란검青鸞劍을 확 잡아 뽑았다. 그런데 그의 낯빛이 삽시간에 변하더니 고개를 휙 돌려 큰 소리로 외쳤다.

“조심하거라!”

여한은 깜짝 놀랐다. 보니 빽빽한 숲속에서 커다란 형체가 주운환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누런 몸체에 검은색 줄무늬. 집채만 한 호랑이였다.

여한은 낯빛이 확 변했다.

“나리!”

근처에 숨어 있던 마 지부와 포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주운환이 뱀에게 물려 죽는 꼴을 보려고 왔는데 갑자기 커다란 호랑이가 튀어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마 지부와 포졸들은 기겁해 낯빛이 싹 변했고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댔다.

“으악! 호랑이라니……! 가자!”

세 사람은 걸음아, 나 살려라 허겁지겁 산 아래로 내려갔다. 산기슭으로 돌아온 마 지부는 온몸이 흙투성이였고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채였다.

포졸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지부 대인, 상황을 보아하니… 진서후는 뼈도 못 추릴 겁니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는다고 해도 바닥에 깔린 게 적명사이니 돌아가서 결과를 보고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안 된다. 난 내 눈으로 직접 그자의 시신을 확인할 것이다.”

마 지부는 독살스러운 눈빛을 뿜어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반드시 재차 확인을 해야 실수가 없다.”

그는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눈으로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요? 저희 쪽 사람들도 피해를 입었습니다.”

포졸이 말했다.

산에 오른 후 독사가 주씨 가문 병사들만 물고 포졸들은 물지 않으면 주운환은 금세 함정을 눈치채고 분명 관아 사람들에게서 해독제를 빼앗을 것이었다.

그래서 마 지부와 두 포졸은 완벽한 연극을 꾸몄다. 자신들과 임의로 뽑은 포졸들 열을 제외한 다른 포졸들에게는 해독제를 나눠 주지 않음으로써 결백을 위장한 것이다.

“대인, 산에 올라가 진서후를 찾아 붙잡으려고 해도 산에 맹호나… 다른 들짐승이 있으면 아무래도 힘들 겁니다.”

이 말에 마 지부는 두 눈을 살짝 깜빡이고는 명을 내렸다.

“관아로 돌아가 이곳으로 병력을 파견하거라. 내일 해가 떠오르기 전에 내 주운환의 시체를 볼 것이다!”

* * *

달빛조차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 수주의 교외에는 쓸쓸하고 적막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근처에 자라난 나무의 가장귀에는 부엉이 두 마리가 앉아 있었는데, 목을 사방으로 돌리며 부엉부엉 울어 댔다. 그 나무 아래에는 누렇게 변한 마른 풀이 그득했는데, 그 풀숲에서 짙푸른 두 눈동자가 나오나 싶더니 이어 조그만 여우 두 마리가 머리를 쑥 내밀었다.

다그닥, 다그닥.

이때,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밝게 빛나는 불빛 아래로 십여 명의 사람들이 말을 타고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여우 두 마리는 인기척에 깜짝 놀라 풀숲으로 냅다 달아났다.

“이랴!”

여 비장과 말을 탄 십여 명의 사람들은 바람같이 말을 몰고, 2백 명가량의 포졸들이 그 뒤를 따라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1